똑 똑

"들어와요."
"여, 프리스크! 나야."
"아, 차라구나. 몸은 어때? 괜찮아?"
"완전 좋지! 네가 만들어준 이 몸뚱아리 완전 옛날 그 때 그 느낌 같아."
"헤헤, 그거 다행이네. 뭐... 난 그냥 좀..."
"아 그렇지, 넌 괜찮을리가 없겠네. 그... 미안해 프리스크. 방금 그 말은 오히려 내가 했어야 할 말인데."
"내 걱정은 하지마. 차라 너가 살아있으면 됐지 뭐."
"나한테 이런 육체를 만들어준건 고맙지만, 네 건강도 생각해야지. 솔직히 영혼을 나눠주는건 진짜 무모한 짓이였어. 자칫 영혼이 깨져서 죽을 수도 있었다고."
"헤..."
"그 코미디언처럼 실실 웃지마. 아 그녀석이 나와서 말인데, 구상은 어느정도 잘 되어가?"
"응, 아빠에게 구상도를 보냈어. 완성되면... 뭐..."
"프리스크 너 말야. 진짜 이해가 안가는 녀석이야. 그 해골 녀석이 대체 어디가 좋다고? 대체 무슨 점 때문에 이런 일을 강행하려는거야?"
"난 그냥, 모두가 행복하면 돼. 그게 내 행복이거든."
"... 너란 놈은 진짜. 뭐, 그나저나 컴퓨터도 있네? 나 심심한데 이거 써봐도 되지?"
"응, 써도 돼. 켜놨으니까 그냥 모니터만 켜."
"그래? 그럼 뭐 좀 볼까... 언더테일, 스탠리 패러블, 히어로즈... 아니 씨발 이건 대체 왜 깔아놓은건데? 어, 프리스크! 이거 봐 봐. 이건 무슨 폴더야?"
"응? 어... 그거는... 우리 아빠가 적어놓은 기록을 모아놓은 폴더들 같은데."
"그래? 그럼 야, 한번 읽어보자."
"그건 안 돼 차라. 혹시 우리가 알아선 안될 비밀을 알게 되면-"
"아이씨! 그냥 입 싹 닫으면 되잖아. 그럼 기록같은거 왜 적어두는건데?"
"그야 당연히 일기장처럼 자신의 삶이나 어떤 연구 내역 등등을 짤막하게 적어두고 그 다음을 위해 참고하는 용도로 활용하는거지. 남에게 알리기 위한 목적이면 차라리 인터넷에 공개했을거 아냐."
"그럼 자기 혼자 그걸 가지고 다녔겠지, 이 멍청아. 이렇게 대놓고 '기록 저장용 폴더' 라고 적어놓는 사람이 어딨냐?"
"음... 그것도 그렇긴 하네."
"그니깐 딱 한번 보고. 설령 비밀이 있다 해도 우리끼리만의 비밀로 간직하자고. 알겠지?"
"뭐... 생각해보니 내가 기록을 몰래 훔쳐봐도 전혀 뭐라 안하셨으니까. 한번 봐 봐."
"아 일어나진 마, 너 몸 엄청 약해졌잖아. 내가 그냥 이거 읽어줄게. 어... 그러니까... 그래, 이거네. 이게 제일 재밌어보인다. 음, 첫번째 기록부터 봐볼까?"



아이를 돌보는 과학자의 기록 링크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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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돌보는 과학자의 기록

한낯 인간 아이에 불과한 존재는 한 과학자의 냉철함을 깨뜨리기에 충분하다.



첫번째 기록 (203X년 2월 2일)

인적이 드문 골목 구석에 놓여져 있는 한 인간 아이를 발견하였다. 당시 아이의 모습은 멀리서 보아도 절대 정상적인 모습이 아니었다. 아이의 목엔 애완동물에게 사용될 만한 목줄이 꽉 채워져있었고 도망가지 못하게 하기 위함인지 오른쪽 발목에 무거운 구체가 달려있는 사슬이 묶여있었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참으로 영리하다고 볼 수 밖에 없다. 무거운 구체는 힘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아이를 완벽하게 속박할 수가 있었다. 또한 어떻게든 끌고 가더라도 구체가 바닥에 긁혀서 주변에 소리만 날 것이 뻔하다. 그러한 점을 아이도 잘 아는지 그저 몸을 웅크리며 가만히 있었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아이는 순간 놀란 표정과 함께 자신의 몸을 최대한 구석으로 몰아넣었다. 지금 나의 모습이 충분히 무서워할 만 하다. 나는 아이에게 안심하라는 의미에서 손을 건네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아이는 다가오는 손을 피하거나 쳐내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계속 쓰다듬어달라는 듯이 자신의 머리를 다가오는 손에 맡겼다. 아이의 머리는 눈으로 봐도 충분히 까칠해보였다. 한동안 목욕도 제대로 하지 않은 듯한, 아니 그 때 아이의 상태를 보면 '못한 것'이 옳은 표현이겠다. 옷은 갈기갈기 찢겨져 아이의 온 몸이 적나라하게 들어나있었고 온 몸에는 자잘한 상처 투성이로 가득했다. 몸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것 같아 천천히 아이의 몸을 당겨 안았으며 역시 아이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그래도 이런 따사로운 포옹을 받은게 오랜만인건지 한방울씩 자잘한 눈물을 흘린다. 아이를 안고서 혹시 이 아이를 괴롭히려는 자가 있을지 몰라 빠르게 목줄과 사슬을 풀어주고 내가 머무는 집으로 이동하였다.

집에 들어와 일단 임시로나마 옷을 입혀주었다. 아이는 가만히 있는 동안 어린 강아지처럼 혀를 살짝 내밀며 헥헥거리는 모습 등 어린 강아지가 할 법한 모습을 취하고 있다. 혹시나 해서 넓은 그릇에 물을 담아 주었더니 몸을 낮춘 채 혓바닥으로 핥으며 물을 마셨다. 이 아이는 분명 세뇌 학대를 받은 것이 분명하다.

지금 이 기록을 작성하는 동안 인간 아이는 접시에 담겨진 구운 고기를 허겁지겁 먹고 있다. 굳이 그 모습을 정확히 말하자면 굶주린 어린 짐승과도 같은 모습이였다. 오 이런, 이 말을 다 적기도 전에 벌써 그 많은 고기를 다 먹어치워버리고 또 다시 내게 애절한 눈빛을 보낸다. 여간 배고픈게 아닌 모양이다. 아무래도 한 끼에 2인분 만큼 먹여주어야 할 것 같다.

- * -

"와 완전 '개'같은 인생을 살았네. 나도 이정도로 몰락한 인생을 살진..."
"..."
"야, 너 왜 그렇게 우울해?"
"아,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야."
"... 찌질이 녀석. 그렇게 우울해 할 필요는 없잖아."

- * -



두번째 기록 (203X년 2월 4일)

혹시나해서 동물에게 통할 법한 명령어 몇 가지를 두세번 정도 해보니 아이는 그 말을 듣고 곧장 몸을 움직인다. 다만 아이의 행동을 자세히 관찰해보면 평범한 애완동물처럼 결과나 보상 등을 바라는 것이 아닌 절대 죽기 싫어서 억지로 복종하려는 듯한, 공포에 지린 듯이 벌벌 떨고 있었다. 아이가 내 말에 따를 때 마다 아이는 울먹거리며 눈물을 흘린다. 이 아이를 잘 꾸며준다면 어린 강아지처럼 예쁘겠다만 그렇다고 인간으로서 살아가야 할 아이를 진짜 개로 만들어서는 안된다. 왜인지는 몰라도, 죄악이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것이 느껴진다.

우선적으로 일단 '인간' 처럼 밥 먹는 법을 알려주기로 하였다. 다행히도 이 아이는 '기다리는 것'을 잘 이해하였다. 원래부터 기다리는 것이 자신만의 특기인 것 처럼. 숟가락과 포크를 집는데에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진 않았지만 (대충 63분 정도 걸렸을까?), 습득 능력이 좋은건지 어떻게든 잡은 포크로 음식을 집어 입에 넣기까지 1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아이에게 올바른 식사법을 알려주며 다정하게 여러번 타일러준 끝에 이제 아이는 오로지 숟가락과 포크만으로 밥을 먹는데에 성공하였다. 이번에도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숟가락을 잡는 손모양이 굉장히 어린 아이들만의 방식이지만 이미 이 아이도 그만큼 어린 아이이므로 그건 전혀 상관없다. 언젠가 숟가락을 제대로 잡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하게 될 것이다. 중요한 건 이 아이가 이제 인간답게 식사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이 기록을 쓰는 동안 아이는 포크로 고기를 찍어 먹고 있다. 한동안 제대로 먹지 못해 몸이 삐쩍마른 아이에겐 고기 섭취는 필수적이다. 한달이 넘어가기 전에는 이 아이를 본연의 인간으로 되돌리는것이 가능할 것 같다.

그나저나, 고기를 어디서 구한담. 소고기는 너무 비싼데. 그렇다고 라면을 줄 수도 없는 노릇이니.

- * -

"63분? 포크를 잡는데 1시간이 걸리는 사람이 어딨어?"
"아무래도 오타인거 같은데. 급하게 적으려다가 3과 6이 동시에 눌려진거지."
"야, 상식적으로 3 옆에는 2와 4 밖에 없는데 어떻게 6이 눌리냐?"
"키보드 오른쪽을 봐 봐. 3 바로 위에 6 있잖아."
"오. 그렇네."
"그니깐 아마 3분일거라 생각해."
"그나저나 거 참 힘들게 사시네. 어디 싸돌아댕기는 애를 붙잡아서 바꾸는게 얼마나 힘든 일인데."

- * -



세번째 기록 (203X년 2월 6일)

그러고보니 아이를 데리고와서 바쁜 나날을 보낸 탓에 몸을 제대로 씻어주길 못했다. 기왕 목욕을 시켜줄 겸 아주 깨끗하게 바꾸어주기로 하였다. 임시로 입혀준 옷은 그동안 충분히 더러워졌으니 미련없이 아이의 옷을 버려두고 아이를 최대한 깨끗하게 씻어주기로 하였다. 그 때 본 것 처럼 여전히 아이의 몸에는 자잘한 상처가 있어서 씻는 동안 아이는 그 상처 때문에 따가워하는 작은 고통을 토해내지만, 그러면서도 그저 가만히 앉아있는다. 평범한 아이라면 그저 대견하다고 보겠지만, 이 아이만큼은 오히려 애잔함만이 감돈다. 목욕을 다 끝내고서 아이의 상처가 잘 낫도록 약통에서 (쉽게 아물 것 같지 않은 상처를 위주로) 반창고를 붙여주었다. 까칠한 머리는 이제 더 이상 까칠하지 않다. 대신 반짝거리며 부드러운 머리결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아이에게 입힐 새 옷을 직접 입혀주었다. 상의는 어린아이임을 보여주기 위한 줄무늬 티셔츠, 하의는 활동하기 편하도록 부드러운 소재의 바지로. 이제 더 이상 아이는 더럽지 않으며, 이제 본연의 어린 아이의 모습을 어느정도 되찾았다. 아이는 이런 자신의 모습에 기분이 좋아보인다.

어째 마음 한 켠이 이상하다.

- * -

"이거 네 이야기 아니야?"
"그럴지도."
"그렇게 애매하게 답하지 마! 그리고, 마음 한 켠이 이상하다는건 뭔 소리야?"
"네가 플라위를 만날 때를 상상하면 될걸."
"그건 또 왜 꺼내냐."
"그냥 이해가 잘 되라고 하는 말이야."
"플라위... 아 또 아스리엘 생각나네. 너 때문에 또 보고싶어지잖아."

- * -



네번째 기록 (203X년 2월 10일)

대략 일주일정도의 시간이 지난 것 같다. 이제 아이는 밥을 곧잘 먹는다. 숟가락과 포크 사용하는 법을 이제 잘 익혀서 음식을 제대로 먹는데에 큰 문제는 없다. 다만 여전히 그 때의 트라우마가 아직도 머리속에 남아있는 모양인지 그 기간동안 가끔 나를 부를 때 마다 "주인님"이라는 불편한 호칭을 사용한다. 그럴 때 마다 나는 수시로 아이에게 너는 애완동물이 아니라 인간이라며 부드럽게 타일러줘 아이가 본연의 정체성을 되찾도록 하였다. 물론 그것은 어느정도 효과가 있는 모양이다. 이렇게 타일러준 이후로는 저절로 나오려는 주인님이라고 부르려는 입을 순간적으로 막아내기도 한다. 그런 모습이 어찌 그리 귀여운지.

오늘은 아이에게 "아빠"라고 불러보라고 하였다. 호칭이 문제라면 다정하고 편한 호칭을 부르게 하는 것이 더욱 나을 것이다. 아이는 그것이 어색한 모양이였는지 말을 더듬으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고, 마지막에 "아빠"라는 소리가 아이의 입에서 들려왔다. 나는 칭찬해주면서 머리를 쓰다듬어주었고 그것에 아이는 다시 나를 아빠라고 부르며 처음으로 웃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저 헤헤 하고 웃은 것 뿐이지만, 내가 처음으로 보는 아이의 웃음이였기에. 그 웃음에 나는 한번 더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리고 내가 아빠라 불러달라 한 이후에서일까? 이제 아이는 진짜 아이처럼 활발해졌다. 더 이상 그 때의 짐승같은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 * -

"와, 너의 입에서 '주인님'이라는 말이 나왔다고?"
"난 그게 싫어."
"그럼 나한테 '주인님'이라 해볼래?"
"싫다니까."
"프리스크, 내가 다정하게 머리 쓰다듬어줄게. 한번 '주인님'이라 불러봐."
"차라리 대장님이라 부르는게 낫겠어."
"오, 그으래? 그럼 이 차라 대장님의 명령이다. 날 주인님이라 불러봐라."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습니다, 차라 대장님."
"그딴 선택을 하는게 어딨어! 제발 좀 해봐아아! 누가 보는것도 아니잖아!"

- * -


다섯번째 기록 (203X년 2월 13일)

이제 아이를 여기에 들인지 대략 열흘은 지난 듯 하다. 자주 아이가 사는 집을 비우는 덕에 아이가 집에 혼자 남아있는 경우가 많지만 아이는 혼자 지내는 것이 익숙한지 아이에게 다가가보면 항상 기쁜 표정으로 환영해준다. 그래도 나는 아이가 심심하지 않도록 많은 장난감을 들여와서 아이에게 건네주었다. 아이는 그닥 장난감에 큰 관심을 안가지는 모양이다. 특히 공 모양 장난감은 아예 멀리 던져버리기도 하다. 혹시 혼자서 노는것이 싫은건지 같이 장난감을 가지고 놀아주지만 아이의 표정은 그리 밝진 않다. 그 때의 일도 있을테니, 아무래도 장난감을 좋게 보지 않을 듯 하다. 그래도 혹시나 아이가 장난감에 관심을 조금이나마 가질 수 있을테니 버리지 않고 대신 장난감이 담겨진 상자를 구석에 넣기로 하였다.

장난감이 싫다면 대신 퍼즐을 풀어보는 것이 어떨까 생각해보았다. 집 안에 있을 만한 퍼즐들을 가져와서 한번 혼자의 힘으로 풀어보라고 하였다. 아이는 그런 퍼즐에 관심을 가졌고 처음에는 쉽게 풀지 못해서 어려워할 때가 잦았다. 그럴 때 마다 자잘한 힌트를 주면 아이는 그 힌트를 토대로 퍼즐을 차근차근 풀어냈다. 점차 퍼즐에 익숙해지니 심리상담을 하는데에 사용될 만한 좀 어려운 퍼즐문제들을 내보았고 아이는 퍼즐의 답을 틀리거나 풀지 못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물론 아이가 퍼즐이라고 모든 퍼즐을 좋아하는것이 아님을 알아냈다. 주로 창작능력을 시험하는 퍼즐은 우물쭈물하는 모습을 많이 보였으며 무언가를 그려달라, 만들어달라 하는 퍼즐의 경우 항상 비슷한 구조와 비슷한 형태만을 결과물로 내놓는다. 즉 아이는 무언가를 창작하는데에 소질이 없다는 것이다. 그 대신 공간지각능력이 뛰어난 것 같다. 간단하게 구멍난 티셔츠 문제를 시작해서 쌓여진 상자 갯수 맞추기, 단순한 전개도를 보고 완성되는 입체도형 맞추기 등 여러가지 공간지각능력 문제들을 내 예상보다 훨씬 짧은 시간에 맞추는 것에 놀라웠다. 분명 이 아이는 기둥 뒤에 공간이 충분하다는 것을 확실하게 증명해낼 지도 모른다.

현재 아이는 트위스티 퍼즐 (큐브모양 퍼즐)을 가지고 논다. 지금 아이가 가지고 노는 퍼즐은 굉장히 특이한 모양이다. 마치 플로피처럼 납작한 1x3x3 크기의 큐브이다. 그 작은 손으로 퍼즐을 만지작하는 모습을 보니,,,

- * -

"트위스티 퍼즐이 그거 큐브였구나. 플로피 큐브라니, 참 이상한것도 다 있어."
"난 평소에도 큐브 가지고 노는데. 차라, 너도 큐브 해볼래?"
"싫어."
"그럼 작은건 어때? 엄청 쉬운건데"
"싫다니까."
"에이 한번만 하자. 응?"
"아 다 치워! 근데 왜 문장이 이상하게 끊겨있지?"

- * -

여섯번째 기록 (203X년 2월 16일)

그러고보니 여태 아이의 이름을 묻지 않았다. 현재까지 아이를 '아가'라고 부르긴 했지만, 그래도 이름을 지어주어야 할 것 같다. 이름은 자기자신을 표현하는 수단 중 가장 중요한 하나인 만큼 아이의 행동을 어느정도 관찰한 뒤에 그에 적절한 이름을 적어주기로 하였다. 일단은 이 기록을 임시적으로 저장해두고 대략 사흘 정도 관찰할 것이다.

아이의 행동을 더욱 자세하게 관찰하기 위하여 집 안 곳곳에 아주 작은 관찰용 카메라를 여러 대 설치한 후, 아이에게 자유롭게 놀고 있으라고 하였다. 물론 아이가 언제든지 원할 때 자신의 생활을 짤막하게 적어두라는 용도로 어린이용 그림일기장을 놓아두기로 하였다. 옆 방은 정리가 잘 되어 있어서 복도 방과 비슷한 크기이면서도 훨씬 넓게 느껴질 것이다. 그 안에는 책도 많으며 또한 아이가 그동안 즐겼던 (혹은 즐기던) 장난감과 퍼즐 등을 안으로 들여와 마음껏 즐기도록 하였다. 물론 아이가 좋아할 만한 과자 네봉지 정도도 복도 탁자 위에 두었다. 항상 지켜보고 있어줄테니 전혀 걱정말라는 말과 함께 잠시 외출을 핑계삼아 나는 집을 떠났다.

관찰 카메라 기록은 내가 없을 때, 즉 아이가 혼자일 때를 위주로 기록을 적어둘 것이다.

- * -

"그림일기장은 지금도 계속 써?"
"불행히도 지금은 안 써."
"일기장에 더 미련은 없지?"
"응."
"그럼 이거 다 보고 네 일기장도 좀 보자."
"음, 미안하지만 난 그게 어디있는지 잘 모르겠는걸."
"에라이. 네 그림좀 보고싶었는데."
"헤헤, 정 원하면 이거 다 보고서 나중에 보여줄게."

- * -



일곱번째 기록 (203X년 2월 17일)

[관찰 카메라 기록 첫째날]
아이는 그나마 좀 넓은 크기의 방을 열정적으로 이곳저곳 누비고 다녔다. 옆 방은 정리가 잘 되어 있어서 아이는 그 방을 거대한 운동장을 달리는 것 처럼 마구 뛰어다닌다. 하긴 어지럽게 놓여져있는 중앙 방은 솔직히 아이가 뛰어다닐 만한 방이 아니었으니. 아이는 달리다가 약간 넘어지면서도 꿋꿋이 서서 달린다. 역시 아이의 체력은 절대 뒤따라갈 수가 없는 모양이다. 그 때 소심했던 그 아이가 맞는지 믿겨지지 않을 지경이다. 혹시 아이는 그저 살고싶은 욕망이 간절하게 앞서서 그렇게 행동해온 것이 아닐까?

오랫동안 달리고 나서야 지친 모양인지, 낮지만 넓은 크기의 침대에서 두꺼운 이불 속으로 자신의 몸을 숨기며 휴식을 취한다. 이불을 돌돌 말아서 얼굴만 빼꼼 내놓는 그 모습이 꽤나 귀여웠다.

- * -

"이땐 넌 진짜 활발하게 뛰어다녔구나. 지금은 넌 별로 움직이는걸 싫어하잖아?"
"그때야, 맘껏 뛰고싶어서 그런거지. 너도 생각해 봐, 몇 날 몇 일동안 계속 가만히 있다가 풀려나면 몸이 간질간질해서 뛰고싶어질걸?"
"음... 이해를 잘 못하겠어."
"그니깐, 너가 초콜릿을 한달 동안 못먹게 되는-"
"아 이제 이해된다. 이해했어. 이해했으니까 닥쳐. 진짜 끔찍하니까."

- * -

여덟번째 기록 (203X년 2월 18일)

[관찰 카메라 기록 둘째날]
아이는 이미 먹은 과자 봉투에 유독 많은 관심을 쏟아주고 있었다. 아이의 시선을 계속 받는 과자 봉투는 굉장히 불편해보인다. 아이는 과자 봉투 뒷편에 있는 성분 표시표를 읽는 모습이 많이 보였다. 물론 그리 오래 읽는편은 아니였다. 그리고 그런 과자 봉투를 고이 접어서 무거운 책으로 고정시키기도 한다. 다른 과자 봉투도 똑같이 그렇게 고정시켜놓는다. 그 후에 책장에 있는 책들을 색깔별로 놓는 모습이 보여졌다. 비슷한 색끼리 나열해놓고, 그것을 다시 이름순으로 재나열해놓는 모습도 보여졌다. 그동안 자신이 외면해왔던 몇몇 퍼즐에 큰 관심을 쏟아붇고 있다. 아무래도 책도 많이 읽어보고 이것저것 살펴보았으니 이젠 그런 퍼즐을 푸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려는 것 같다. 특히 어려운 퍼즐을 혼자서의 힘으로 어떻게든 풀어나아가려는 모습이 인상적이였다.

아이가 관찰 카메라 하나를 찾아냈다. 아이의 목젖이 보인다.

- * -

"그래, 이거 보니깐 생각나는데 넌 대체 쓰잘때기없는거를 왜 그렇게 모아두는거야?"
"그냥 말하자면... 뭔가 계속 모아두기만 해. 머리는 버려야지 버려야지 하는데 정작 몸은 그러지 않거든."
"넌 참 이상한 녀석이야. 쓰레기를 모아두질 않나, 쓰잘때기없이 정리를 해두지 않나."
"그래도, 쓰레기를 마구 어지럽히는 것 보다야 낫지."
"그래그래 그쪽 잘나셨어 아주. 저 컵라면은 대체... 아니 대체 라면을 얼마나 먹은거야?"
"난 라면 안먹어."
"응? 그럼 누구건데?"
"글쎄?"
"에이 또 넘어가려하네."

- * -



아홉번째 기록 (203X년 2월 19일)

[세번째 관찰 카메라]
아이가 숨겨진 창고 문을 발견했다. 아이는 그 창고 문을 어떻게든 열어버리고 그곳에서 여러가지 잡동사니들을 몇개 안고 나오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심지어 구석에 있는 쓰레기들을 모아서 한 곳에 모아두는 모습을 보여준다. 무언가를 나열하고 바로 버려야 할 것을 일부러 모아두고 심지어 과자 봉투를 구기지 않고 정성스럽게 접어두는 것을 본다면 아마 아이는 강박 장애가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강박 장애는 어떻게 고치긴 힘들다. 나도 강박 장애가 약간 있으니.

이 와중에도 아이는 다시 창고로 들어가고 있다. 창고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 * -

"그러고보니 넌 여기 찾은것도 네가 직접 뒤져서 찾은거랬지?"
"응, 맞아. 이곳저곳 뒤지다보니 문이 보이더라고."
"진짜 뭐 찾는건 잘해."
"차라, 저기 컵라면 갯수가 23개라는거 알아?"
"아니 그걸 왜 세는건데?"
"알잖아, 난 뭐 세는거 좋아해."
"넌 네가 지하세계에서 와서 결계를 부수는데에까지 죽은 횟수를 기억해?"
"미안, 그건 세지 않아."
"나도 모르지만, 네가 얼마나 많이 고통받았는지는 알아. 그래서... 그들에게 복수할 생각은 없어?"
"아니, 그럴 생각 없어. 그들에게 받은 상처가 있다 한들, '개'같은 인생을 산 것 만큼이나 큰 상처는 없을걸."
"뭐, 맞는 말이야. 육체적 고통보다 정신적 고통이 더 크다지?"
"어... 차라, 왜 그런 눈으로 쳐다보는건데...?"
"왜?"

- * -

열번째 기록 (203X년 2월 22일)

[행동 관찰 분석]

1. 항시 기운차다.
현재 어느정도 회복하여 본연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되찾은 아이는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것을 매우 좋아하였다. 아이는 주체 못하고 넘쳐흐르는 에너지를 소비하려고 평범한 아이들보다도 더욱 활발하고 기운차게 뛰어다니는 것이 잦았다. 그동안 방출하고싶지만 하여서는 안되었던, 누군가의 애완동물로서의 생활 때문에 이 자유로운 사흘 동안 그런 한을 풀고자 마구 쏟아부은 것으로 예측된다. 물론 아이가 자주 넘어지는 일이 그만큼 많았지만은 오히려 꺄르르 웃으면서 다시 일어나 뛰어다닌다. 그 웃음에는 '좀 넘어지면 어때' 하는 듯한, 전혀 걱정이 없어보이는 웃음이였다. 아 물론 돌아다닌다는 것은 단지 이유없이 활보하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평소 산만한 성격인지는 몰라도, 그저 한 자리에 오래 앉아있지 못한다.

2. 찾아보고 살펴보는 것 (탐색)을 좋아한다.
처음 집에 들어와 제대로 적응을 못한 때부터 부터 지금까지 아이는 항상 무언가를 찾아보는 것에 늘 열중이였었다. 부엌에 감추어둔 면음식 (그저 끼니를 급하게나마 때우기 위한 용도), 곳곳에 들어가있는 크고 작은 물건, 특별히 알려주지 않은 공간을 찾아내는 특출난 능력이 있다. 특히나 작은 카메라를 지금까지 네 개나 찾은 것을 보면, 아마 이 아이는 숨겨진 물건 찾기 게임에서 그 누구보다 잘 할 것이라고 감히 예상해본다.

3. 강박 장애가 있다.
일단 다 먹은 과자 봉투를 그저 어딘가에 던져놓고 내버려둘 만 한데 아이는 그것을 고이 접어두는 것이 일반 다른 아이와 확실히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쓰레기들을 정성스럽게 어딘가에 모아두는 행위, 그리고 책들을 어떤 순을 기준으로 나열해놓는 것 만으로도 아이는 충분히 강박 장애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마 이 아이는 쓰레기를 쉽게 버리지 못하고 차곡차곡 쌓아둘 것이다. 물론 넉넉한 가방도 필요하겠지. 어쩌면 마법의 창고가 필요할 지도 모른다.

[행동 관찰 결과]
그동안 많은 것을 종합해보았을 때, 아이는 언제나 지치지 않는 활발함을 가지고 있다. 이 활발함은 좁은 곳이든 넓은 곳이든 어디서든지 뛰어노는 것이 자주 나타났다. 때문에 정리가 잘 된 방에서 아이가 자주 들락날락거리는 것이 잦았다. 아이의 그 주체못하는 에너지를 쏟아내기 위해서는 아마도 진짜 넓은 공원이나 운동장으로 데려가는 것이 적합할 것이다. 그리고 그 활발함은 호기심과 연결되기도 했다. 자주 돌아다니기 때문에 이곳저곳으로 들어가보고 이것저것을 살펴보는 모습이 많다. 책장 주변을 어슬렁거리면서 책 몇권을 가져와 글로 이루어진 상황을 그림으로 풀어보기도 했다. 물론 단지 살펴보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직접 무언가를 '찾아내는데'에 능통하다. 아이는 어려운 퍼즐을 어떻게든 풀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돋보였고 특히 3x3x3 트위스티 퍼즐을 아이는 절대 포기하지 않고 정육면체의 큐브 이곳저곳을 살피면서 회전시키고 마지막에 퍼즐의 답을 완벽하게 '찾아내었다'. 완벽한 답을 찾아내는데에 대략 2시간이 걸렸다.

'기운차게 뛰어다니는' 모습과 어떻게든 이곳저곳을 '수색'하고 많은 것을 '찾아'내려 하는 것에서 본따 아이의 이름을 프리스크 (Frisk)라고 지어주기로 하였다.

어찌되었건 이 정보는 실험에 있어 좋은 자료로 남겨질 것이다. 하지만 이게 최선인지 모르겠다.

- * -

"네 이름이 그냥 멋있다곤 생각은 했는데, 프리스크라는 이름에 그런 뜻이 담겨있을 줄은 줄은 몰랐네."
"맞아. 난 항상 프리스키 (Frisky)한 프리스크 (Frisk)거든."
"으으, 제발. 그런 끔찍한 말장난은 그만두면 안 돼? 혹시 그 코미디언한테 전염된거야?"
"글쎄. 중요한건, 내 말장난은 참으로 '골'때린다는거지."
"으아아아!!! 그걸 아는 놈이 그러냐!"
"왜, 차라? 너도 즐기고있잖아?"
"아 닥쳐! 근데 이 마지막 문구는 뭔가 이상하지 않아? 뭐, 넌 알고 있겠지만."
"그럼 스포일러 방지를 위해 말은 안할게."
"이게 영화라도 되는 줄 아냐?"
"영화든 뭐든, 미리 알려주면 재미가 없잖아."
"하. 뭐... 그렇기도 하겠네. 분명한건, 지금 이건 재미없어."
"혹시 하이라이트를 원하는거야?"
"그래! 하이라이트! 지금까진 그냥 네가 누군가한테 데려가 키워지는것 뿐이잖아!"
"아마 언젠간 나올거야."
"으으! 못참겠어!"

- * -



드디어 '의지의 프리스크'라는 이름으로 첫번째 문학 싸지른다. 프리스크와 가스터 둘 다 설정이 없기로 유명해서 뭘 넣어도 그리 큰 캐붕은 안일어난다 하더라고. 그래서 용기가지고 올렸어.

원래는 3~5개씩 올리려했는데 그냥 한번에 많은 양을 올리려고 10개씩 올리기로 했어. 물론 내가 강박증이 있어서 기록의 갯수에 너무 얾매인 덕에 억지성이 좀 있을수도 있어. 가스터 시점에서 적는 형태이고 또 쓰잘때기 없는 것은 최대한 빼내려다보니 기록 하나당 분량도 짧아.
근데 가스터가 나오면 의지 실험이 빠질 순 없잖아? 그래서 이 다음부터 11~20 사이에서는 프리스크가 의지실험에 대한 피실험체가 될 지도 몰라. 어떻게든 잘 연계해서 이어나아가야지.

가스터의 기록이 끝나면 특별편으로 프리스크 시점에서 보는 '그림일기장'도 연재해볼 생각도 있어. 그림일기장인 만큼 중간중간에 어린애가 그린 티가 나는 그림도 넣어야겠지. 흙손이니까 오히려 그런걸 잘할지도 몰라.



쨌든 11시네. 가게 문 닫고 가야겠다.

언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