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링크 따위는 전편을 굳이 찾아보는 수고를 하는 갤럼들이 없을 것이기 때문에 달지 않는다.
*솔직히 말하자면 초등학생이 써도 이보다는 잘 쓸 것 같다.
*이번 내용은 특히 짧다. 중간에 의지가 바닥나 버려서.
***
회색,
모든 사방이 회색 뿐이었다.
빛도 그림자도 없이 그저 그 공간은 회색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마치 애초에 그런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 처럼.
그래서 그런 것일까.
빛도 그림자도 없고 그저 회색뿐인 공간은 마치 그렇기에 너무나도 넓어보였다.
회색은 그 공간에 시작과 끝까지 잡아먹은 것 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곳에는 살짝 곤란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은 샌즈와
누군가 누운 자국이 있는 이불이 있었다.
"일단 휴식시간이라 여기서 숙면을 취하긴 했네만...여기는 대체 어디인건지 도통 모르겠군..."
샌즈는 그렇게 중얼거면서 조용히 마치 무한히 펼쳐져있는 것만 같은 자신 앞에 있는 회색 공간을 보았다. 그리고 그렇게 회색 공간을 계속해서 바라보던 샌즈는 그냥 그대로 눈을 감아버리고선
이불에 엎어져버렸다.
"아...뭔가가 생각날 듯 하네만...귀찮네...뭐 그리 급한 일도 아니니 천천히 해도 되겠지."
샌즈는 태평하게 중얼거리면서 자신이 사랑하는 푹신한 이불 속으로 조금 더 파고 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미동도 없이 누워있는 샌즈에게서 부드러운 숨소리가 들려왔다.
***
밤과 같이 하늘에는 어둠이 가득 찼으나 땅은 낮과 같이 밝은, 볼 때마다 현기증이 나는 보라색이 가득찬 공간에서 치스크는 시선을 그 공간에 고정시킨 채 기계적으로
한 만들어진지 10년 쯤은 되보이는 곰팡이 핀 푸른 식빵을 입에 문자 그대로 쑤셔넣었다. 치스크는 대충 아주 옛날에 부서진 것처럼 보이는 기둥에 걸쳐 앉았다.
"이 공간은 대체 또 뭐냐..."
치스크는 이 공간에서 느껴지는 정말 이질적인 분위기와 입 안에서 느껴지는 도저히 형용할 수 없는 식빵에 맛의 정말 끝을 모르는 불편함을 느끼며 중얼거렸다.
*당신은 당신에게 당신 발로 찾아왔으니 당신이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
"내 발로 찾아왔어도 모르는 경우도 많다고, 약쟁이들이 약빤 것 처...우웁..."
순간 그래도 그럭저럭 견딜만 했던 그 맛의 역겨움이 실수로 가장 썩어문드러진 부분을 건드렸는지 진짜 !@#!@#같은 맛이 치스크의 입 안에서 폭팔했다.
치스크는 그제서야 도저히 자신에 입에 든 미확인 물체를 씹기에는 자신의 능력이 부족할 것 같아서 정말 괴로운 듯이 그 미확인 물체를 그대로 식도를 통해 위로 집어 넣어 버렸다.
그러자 정말 도저히 말로는 표현 할 수 없고 만약 말로 표현하라면 입에서 욕지거리가 튀어나올 것만 같은 맛이 치스크의 입안에 퍼져나갔고
치스크는 그 맛에 전율하며 정말 오랜만에 이런 것을 먹을 바에야 차라리 목을 매다는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였다.
*당신은 당신에게 당신의 몸에 이상한거 넣지 말라고 경고했다!
*...
분노와 반항이 가득 담긴 목소리가 치스크의 가득이나 그 환상적인 맛으로 혼란스러워져 있던 정신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으나
치스크는 아마 저 빌어먹을 머리 속 목소리에게 일일히 대답해주다간 분명 오늘 하루를 의미 없이 보내게 될 것이란 것을 알기에
바닥에 그대로 털썩 앉아버리고선 머리 속의 목소리를 무시한채 진지하게 이 곳이 어디인지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앉아서 턱을 괴면서 생각한지 5분 쯤 지나자 치스크는 그제서야 그 맛에 충격에서 벗어났는지 드디어 머리 속에서 그럴 듯한 한 단어를 혀로 꺼내올 수 있었다.
"폐...허?"
술꾼들의 주정이라고 쓰고 소문이라고 읽는 것에 따르면 본래 이 폐허라는 곳은 옛 에봇에 수도였으나
갑자기 어느날 역병이 퍼져 그 알코올에 푹 숙성된 몸뚱아리들이 태어나기 전에 아스고르 드리무어 대왕이 갑자기 폐쇄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폐허에는 아직도 역병에 흔적으로 벽과 바닥이 전부 보라색으로 물들어 있고
서럽게 죽은 자들의 혼이 아직도 그 폐허를 떠돌아다니고 있어 그 빛 때문에 항상 낮처럼 밝다고 한다. 한 여기까지가 이 폐허에 대한 그나마 공통된 소문들이다.
몇몇 주정뱅이들은 사실 드리무어 대왕이 폐쇄시킨게 아니라 아주 옛날 옛적에 사라진 여왕이 이 곳을 지키고 있다고 이야기 하기도 하고,
대부분 저 공통된 이야기를 제외하면 술집이나 도박장에서 이야기 되는 폐허에 대한 이야기는 말하는 사람마다 다르다.
하지만 그렇게 가지각색에 다른 이야기가 나옴에도 항상 그 술주정꾼들이 이 이야기를 끝마칠 때 하는 말은 같다.
"폐허는 위험하다."
하지만 나는 오늘 영광스럽게도 진짜 빌어먹을 폐허라는 곳이 어떤 곳인지 진실을 밝혀내고
그 술주정뱅이들과 사기꾼들에게 귓방망이를 날리고선 그들에 더러운 귀에 진실을 때려박아 줄 수 있는 영광을 손에 넣게 된 것 같다!
아마 이 모험담을 이야기 해준다면 주점 사람들은 전부다 나를 용기 있는 자식이라고 하며 술이라도 한잔 사주겠지!
하.하.하. 그럴리가.
"대체 어떻게 일이 꼬이게 된거지..."
치스크는 지금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을 생각하니 참으로 더럽게 영광스러워서 중얼거렸다.
치스크는 식량을 구하러 왔을 뿐인데 실수로 나뭇가지를 밣혀서 프로깃이랑 윔선에게 들키고 한바탕 도주극을 벌이다가 결국은 프로깃의 목과 웜선의 다리에 칼을 박아놓고 처리해 보니까.
갑자기 그녀가 굳게 서 있었던 바닥이 사라져 버렸고 떨어져보니, 어떤 미친 정신병자 미확인 생물체가 놀이라고 하면서 자신을 죽이려 들었다.
그리고 토리엘이라는 사람을 만나고 이리저리 어찌저찌해서 결국에는 술집에서 소문으로만 듣던 폐허에 이렇게 남겨지게 되었다. 상당히 그/그녀가 생각해도 미친 것 같은 상황이었다.
"아무래도 신은 나를 싫어하는 것 같아..."
지금 상황에 대한 치스크의 간단하면서도 불편한 결론이었다. 대체 어떻게 이렇게 인생이 꼬일대로 꼬일 수 있을까. 정말 더럽디 더러웠다.
살아남기 위해서 발버둥치면, 또 다른 재앙이 치스크를 덮쳐왔고 그 것에서 가까스로 도망쳐오면, 사람만 보면 죽이려 드는 정신병자들이 사방에 천지였다.
그러나, 그럼에도 일단 치스크는 언제나 살아왔었다. 분명 온 몸에 치명상도 입고 식량도 다 털리고 험한 꼴을 볼 때도 있었지만 어찌어찌 됬든 17년간이라는 시간동안 쓰레기라도 입에 쑤셔넣으며 살아왔다.
그러니까, 아마 이 번에도 치스크는 살아나갈 것이다. 영리하면서도 불편하게.
"그럼, 일단 그 토리엘이라는 사람을 다시 만나러 가볼까..."
치스크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기지개를 폈다. 일단 그/그녀는 뭐가 되었든 어찌 되었든 이 폐허에서 나가야만 했다.
폐허가 위험하던, 위험하지 않던 지금 확실한 것은 치스크는 이렇게 현기증 나는 보라색으로 도배 되어 있는 곳에서는 불편해서 못 산다는 진실이었다.
그리고 치스크가 여기서 나가기 위해서는 정보가 필요했다. 확실한 정보, 물론 토리엘이 폐허에서 나가는 방법을 알 가능성은 적지만 그녀가 여기에 일종에 별장까지 지어놓은 것을 고려했을 때,
토리엘이 이 폐허에 대해서 뭐라도 알고 있을 가능성은 크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와는 해야할 일이 남아있었다.
***
"이런 미친."
치스크는 자신의 얼굴 정면으로 빠르게 날아오는 몇개의 화살들을 보며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당신은 피할 수 있을 것이다.
*...
머리 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치스크는 그 목소리를 무시하고선 오른쪽으로 자신의 몸을 날렸다. 바로 자신이 있던 곳에서 화살들이 살벌하게 벽에 박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방금 전에 피한 함정이 아마 76번째인가 그랬을 것이다. 치스크는 화살들을 피하기 위해 날린 몸을 그대로 보라색 벽에다 자신의 등을 박고 숨을 돌리기 시작했다.
"하아...하아..."
거친 숨소리가 자연스레 치스크의 입 안에서 튀어나왔다. 그리고 치스크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뒤통수에서 느껴지는 불편함에 고개를 살짝 옆으로 떨구었다
서슬 푸르고 맞았다간 그대로 저승길로 갈 것만 같은 작살 하나가 그녀가 머리가 위치해있던 벽 부근에서 튀어나와, 그녀의 머리 바로 옆을 지나갔다.
그래. 이제 77개 피했네. 치스크는 불편한 듯이 눈쌀을 찌뿌렸다. 이 것은 꽤나 공평하지 못했다. 치스크는 그렇게 생각하다 머리 위에서 느껴지는 또 다른 종류에 불편함에 바로 앞으로 굴러갔다.
무릎에서 살짝 쓰라린 고통이 일었으나 지금 자신이 앉아있던 자리에 떨어진 거대한 돌에 맞았다면 일었을 고통과 비교하면 꽤나 경미한 부상이었다.
"아, 진짜 시발."
치스크는 나지막하게 욕설을 내뱉었다. 이건 솔직히 너무했다. 너무해도 너무한 상황이었다. 폐허라는 곳은 절대 위험한 생물이나 그런 위험한 역병 같은게 퍼져있는 곳이 아니었다.
아니, 사실 위험한 생물은 커녕 쥐새끼, 한마리조차 치스크는 지금까지 봐오지 못했다.
그냥 폐허라는 곳은 그저 더럽게, 정말 욕설이 안 나올 수 없을 정도로 수 많은 함정이 그냥 눈이 닿는 모든 곳에 있는 그런 곳이었다. 치스크는 불편함이 목 끝까지 올라오는 것을 강제로 꾹 눌렀다.
치스크는 이제는 거의 본능적으로 갑자기 자신의 눈을 노려 날아오는 화살을 낚아챘다. 이제 78개, 이제 치스크는 이 폐허에서 나가지 못하면 불편함에 목을 매달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분명히 토리엘이라는 여자의 발언과 행동을 보았을 때, 약도에 분명히 이런 함정이 그나마 적게 설치되어있는 곳이나 함정을 돌파하는 최적의 방법 같은 것을 적어 놓았을 가능성이 있고,
그리고 그 것을 이용한다면 조금 더 이 함정을 수월하게 돌파할 수 있겠지만. 79개. 치스크는 본능적으로 위협을 감지하고선 옆으로 또다시 굴렀다. 간발에 차로 치스크의 엉덩이를 아래에서 솟아나온 작살이 스쳐지나갔다.
치스크는 도저히 그 토리엘이라는 여자가 준 약도를 알아 볼 수가 없었다. 치스크는 엉덩이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느낌에 또 다시 불편함을 느끼고 지렁이들이 잔뜩 그려져 있는 약도에 불편함을 한 번 더 느꼈다.
약도가 치스크의 손에 의해서 그냥 단순한 종이뭉치료 변하고, 바닥에 던져지는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래서 치스크는 그냥 눈 앞에 펼쳐진 길을 따라갔다. 그리고 그 결과는 보다시피 지금까지 만난 79개의 함정과 앞으로 수십 개는 더 남아있을 것만 같은 함정들이었다.
"하아...일단, 지금 길을 따라가보면 뭐라도 나오겠지?"
치스크는 절망적인 현실에 불편한 표정과 함꼐 한숨을 내뿜었다. 굉음이 치스크의 귀 속으로 들어가 그/그녀의 고막을 울렸다. 큰 소리는 언제나 좋지 않았다. 언제나.
영리함이라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치스크의 약이자 방어구이자 무기가 되어주었지만, 가끔씩 독도 되어주었다.
치스크는 굉음이 들려오는 자신이 지금까지 지나쳐왔던 길 너머를 바라보았다. 그 곳에는 정말 대체 어떻게 거기 있는지는 이해는 되지 않았지만, 100m 남짓한 곳에 거대한 철구가 아주 빠른 속도로 굴러오고 있었다.
머리보다 몸이 먼저 움직여야만 할 때 였다. 치스크는 바로 뒤를 돌아보고선 그/그녀가 언제나 그랬듯이 죽어라 뛰기 시작했다. 그 것은 치스크의 경험에 산물이었다.
이 것을 저주라고 해야만 하는지, 아니면 축복이라고 해야만 하는지는 치스크조차도 판단하기를 포기해 버린지 오래였다. 치스크는 본능적으로 함정들을 필사적으로 달리며 피해나가기 시작했다.
갑자기 땅이 푹 꺼지는 곳에서는 본능적으로 그의 갈색 외투를 휘날리며 그 것을 뛰어넘었다. 작살이 튀어나오는 곳에서는 작살이 튀어나오기도 전에 그 구간을 통과해 버렸다.
화살이 자신의 눈을 노리고 올 때는 마치 미래를 보는 것 처럼 자신의 손에 든 낡은 단검으로 그 것들을 쳐 내었다. 수 없는 도주 끝에 익혀버린 치스크의 감은 미래를 읽는 듯 하였다.
함정은 살고자 하는 의지에 불편한 표정으로 도망치고 있는 치스크를 막기에는 역 부족이었고, 치스크는 곧 자신의 한계에 빠르게 도달하게 되었다.
빠져나갈 수 있는 탈출구를 찾고 있던 치스크의 눈에 보인 이 길의 끝은 역겨운 보라색 벽으로 막혀있었다. 치스크는 그 것을 보며 불편함으로 가득찼다.
어짜피 언제나 그렇듯이 치스크에게 선택지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다. 치스크는 죽는 방식만 다를 뿐이지 어디로 가든 죽음을 맞이하게 되어있었다. 그렇다면 치스크는 조금 더 가능성이 있는 곳에 걸어보리라.
다리를 움직일 수록 벽에 가까워졌지만 치스크는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속도를 늦추기는 커녕 오히려 더욱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벽이 치스크가 넘어지면 코 끝에 닿을 것만 같은 가까운 거리에 있을 때,
치스크는 품 속에서 검은색 파리 모양의 무언가를 꺼내 벽을 향해 던졌다. 자신의 몸을 틀고선 벽을 향해 자신의 몸을 날렸다. 파리 모양의 무언가는 벽에 닿자마자 갑자기 붉은 불똥을 몇개 뱉어내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굉음과 함께 검붉은 불꽃을 피워내었다.
검붉은 불꽃이 치스크를 먹어치우기 전에 치스크는 외투의 달린 모자를 뒤집어 쓰고 몸을 웅크렸다.
***
"허억...허억...허억...허억...허억..."
치스크의 가슴이 빠르게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하면서 강제로 치스크의 폐에 공기를 집어넣는다. 그 것은 지금 치스크가 반 쯤 죽을 것 같이 힘들다는 상징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아직 치스크가
지옥으로 떨어지지 않았다는 생생한 증거이기도 했다. 치스크는 기둥에 기대 숨을 돌리고 있는 몸을 비틀어 자신이 기댄 기둥 너머를 바라보았다.
그 곳에는 방금 전까지 자신을 죽일 듯이 쫓아오던 거대한 철구와 아무래도 운이 다했는지, 불운하게도 그 철구가 굴러오던 곳에 멀뚱히 서 있었던 남자가 온 몸이 으스러진채로 벽에 박혀있었다.
숨소리나 동공을 확인 할 것도 없었다. 그는 공에 맞은 즉시 사망했을 것이다. 두개골이 박살나서 뇌수가 줄줄 흐르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치스크는 자신이 완전히 살아있음을 제대로 확인하고선 다시 기둥에 자신의 몸을 기댔다. 거친 숨소리를 내는 치스크의 얼굴은 불편함으로 가득 물들어 있었다.
"허억...허억...지랄 맞네..."
*당신은 그렇기에 이 세상은 심판당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 것은 니가 결정하는게 아니야.
도망치고 있을 때는 잠잠하던 치스크 머리 속에 있는 목소리들이 한 숨을 돌리자 또 다시 그/그녀의 머리 속에서 난동을 피우기 시작한다.
치스크는 그 목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지만 슬프게도 그 목소리들은 귀를 손으로 틀어막아도, 그 목소리를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들리는 그런 악질적인 종류의 목소리였기에, 치스크는 또 다시 불편해졌다.
*당신은 당신이 뭐만하면 불편해 한다고 불평했다.
*너는 그냥 세상 모든게 불편하지?
"어이...거기 자네 꿀꺽꿀꺽...아무래도 이 폐허에 처음 온 것 같구만?"
치스크는 본능적으로 머리가 움직이기 전에 낡은 단검을 빼들고 목소리가 들려오는 쪽을 바라보았다. 그 곳에 있던 것은 얼굴에 익숙한 문신이 새겨져 있는 남성이었다.
그는 멀찍히 떨어져 있는 폐허에 벽에 기대어 유리병의 든 무언가를 계속해서 마시고 있었다.치스크는 그 중년의 남성의 얼굴에 새겨져 있는 문신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치스크는 품 속에서 그들과 자신이 애용하는 무기인 검은 파리처럼 생긴 폭탄을 꺼내들었다.
"진정하는게 조금 어떤가. 내가 프로깃이기 때문에 나에게 적대감이 자연스럽게 드는 그 마음은 이해하네만, 나는 이미 프로깃이 아니라네. 그리고 나는 지금 감사를 표하려고 하는 걸세."
감사? 그 단어에서 연상되는 기억들 중에서 불편한 기억이 얼마나 많았던가, 치스크는 다시 한번 에봇의 사는 생물들의 열에 아홉은 사람을 등쳐먹으려 한다는 교훈을 기억하고 폭탄을 내려놓지 않았다.
그러나 치스크는 그를 죽이려 들지 않았다. 방금 전 말로 추론하건데 분명히 이 프로깃은 어느 정도 이 폐허에서 있어본 존재이며, 분명히 이 폐허에 대한 정보를 꽤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치스크에게 상당히 중요한 정보를 말이다. 무엇보다 치스크는 쾌락 살인마가 아니었다. 분명 살인에 있어서 쾌락을 위해서 죽였든, 필요의 의해서 죽였든, 그 죄의 크기는 별 차이가 없겠지만.
치스크에게 있어선 죽일 필요가 없는 상대는 안 죽인다는 것은 에봇에 존재하는 다른 정신병자들과 차이점을 만들어주는 몇 가지 안 되는 요소였다.
"죄송합니다만, 당신을 신뢰할 수가 없네요. 그러니 용건이 있으시다면 거기서 말씀해주시겠습니까?"
공손한 말투였으나, 치스크의 목소리에서는 자연스럽게 불편함과 적대감이 묻어져나오고 있었다.
프로깃은 그 것을 보고 살짝 무안하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이며, 프로깃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에봇에 있어서 민폐였는지 다시 기억해내었다.
"뭐, 어쩔 수 없는 것 같구만. 일단 내 소개를 먼저 하지. 알다시피 프로깃들은 프로깃에 가입할 때부터 원래의 이름을 버린다네. 그래서 꿀꺽꿀꺽...이름은 없다네. 자네는 이름이 무엇인가?"
치스크는 대답하지 않았다. 프로깃은 그 것을 보면서 살짝 쓸쓸한 감정과 함께, 자신 앞에 있는 이 소년/소녀의 영리함에 마음 속으로 감탄사를 내뱉었다.
"역사에 대해서 조금 아는 모양이군? 분명히 괴물들 중에서 상대방의 이름만 알면 상대방을 손쉽게 조종하거나 죽일 수 있는 능력을 부리는 존재들이 몇몇 있지.
믿어주지는 않겠지만, 난 일단 그런 부류가 아닐세. 애초에 이렇게 꿀꺽꿀꺽...테미플레이크를 이런 식으로 들이키는 것을 보면 모르겠나?"
프로깃은 그렇게 말하며 입에서 흘러내리는 무지개색 용액을 소매로 훔쳤다. 확실히 설득력 있는 말이었다. 왜냐하면 테미플레이크라는 마약은...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치명적인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치스크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경계를 늦추지는 않았다.
"뭐, 당신이 약쟁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겠네요. 그건 그렇고 프로깃 중에서 마약을 즐기는 사람은 살가죽이 벗겨진 다음에, 고기 젓갈이 되어 다른 프로깃들의 식사가 된다고 들었는데 말이죠."
프로깃은 그 말에 보란 듯이 코 웃음치며, 다시 한번 테미 플레이크를 들이켰다.
"하! 자네, 내가 프로깃이라는 집단에서 떠나온지 대체 얼마나 됬다고 생각하나? 10년? 30년? 미안하지만 나는 이 곳 폐허에 갇힌지 100년이 넘었다네. 그들이 나를 기억이나 할 것 같나?
그리고 무엇보다 그 때 당시에도 그런 법률은 있었지만, 윗대가리 새끼들이나 파이널 프로깃 같은 녀석들은 대놓고 테미 플레이크를 하루에 3병씩 하곤 했는데 무슨...아마 프로깃 상위층 인사들은 전부 다
나보다 심한 약쟁이들일 걸세."
치스크는 이 프로깃이 여기에 꽤 오래 있었다는 것은 이미 옛날에 예측하고 있었으나, 프로깃의 입에서 나온 숫자는 치스크의 예상치를 훌쩍 뛰어넘은 것이었다.
치스크는 상상 이상으로 큰 숫자에 살짝 놀랐다. 표정은 변하지 않았지만.
"아...내 이야기를 하느라 까먹고 있었군. 자 여기 내 감사의 표시일세."
프로깃을 그렇게 말하며 품 속에서 무언가 가득 들어있는 것처럼 보이는 그의 얼굴만한 가죽 주머니를 치스크의 앞에 던졌다.
"사실, 내가 말일세 방금 전에 자네가 저 거대한 철구로 벽에 박아버린 윔선에게 위협을 받고 있었단 말일세. 음식을 달라고 협박을 하는데. 내가 음식이 있을리가 있나.
그래서 하마터면 죽을 뻔했는데. 자네가 철구로 저 놈을 죽여버려서 살았네. 이 것은 그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일세."
에봇에서는 감사의 표시를 감사의 표시라고 읽고 함정이라고 쓰는게 원칙이었다. 치스크는 그렇게 생각하며 경계를 늦추지 않은채 말했다.
"죄송하지만, 함정 때문에 개죽음 당하기는 정말 싫습니다. 그러니 당신의 감사의 표시를 조금 거절해도 될까요?"
프로깃은 이제는 질린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참, 젊은이가 조심성이 이렇게 많아서야...확실히 나도 이런 상황에 있다면 나를 안 믿을 것이지만 말일세. 그럼 어쩔 수 없지...그래서 이 폐허에 대해서 무엇을 알고 싶은가?"
예상치 못한 기습이었다. 정곡을 찔린 치스크는 순간 말문이 막혔고, 프로깃은 그 것을 놓칠만큼 멍청하지 않았다.
"자네 같은 젊은이가 얼마나 여기를 지나쳤다고 생각하나? 예측 못 할수가 없지. 그래서 나가는 방법을 알고 싶은가?"
치스크는 지금 대화의 주도권이 자신에게가 아닌, 저 프로깃한테 넘어갔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불가능하네. 내가 꽤나 강하다고 자부하는 것은 아니지만, 파이널 프로깃을 목전에 둔 프로깃 한명이 100년간 폐허에서 아무것도 안했을 것이라 생각하나?
그리고 지금 약을 빨면서 가만히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면 꽤나 간단하게 답이 도출되지, 그렇지 않나?"
"어쩌피 이래 죽나, 저래 죽나, 거지 같이 뒤지는 것은 똑같습니다. 시도 정도는 해보고 죽죠."
치스크는 불편하게 프로깃의 말에 대꾸했다. 프로깃은 얼마나 많은 젊은이가 그 말을 하고 변사체로 발견됬는지 기억하며 코 웃음을 쳤다.
"그래, 시도 정도는 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그럼 내가 지금까지 폐허에 있으면서 알게 된 모든 것들을 말해주지."
프로깃은 긴 이야기를 시작했다.
***
"...뭐,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데 아닌가?"
프로깃은 이제는 얼마 남지 않은 테미 플레이크를 들이키며 말했다. 치스크는 마음 속으로 충분한 정도가 아니라 차고 넘칠 정도의 정보를 얻었다고 생각했지만 입 밖으로 내진 않았다.
프로깃이 제시한 정보는 정말 치스크에게 있어서 정말 유용한 정보였다. 함정이 자주 설치되는 장소, 그리고 여기서 가끔씩 모습을 드러내는 위험한 생명체들과 그에 대한 대응법까지
만약 이 프로깃한테 듣지 못했다면 그냥 영문을 모른 채 당했을 함정들도 많았다.
"네. 그러니까 저는 토리엘을 일단 찾아가야 된다는 말씀이시군요. 여기서 빠져나가기 위해선."
치스크는 꽤나 일이 편해진 것에 대해 기쁜 내색을 전혀 내지 않았다. 그는 기쁜 내색을 낼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이렇게나 많은 정보가 있음에도 치스크가 이 폐허를 빠져나가는 것은 반쯤 불가능해보였기 때문이다. 운도 따라주어야 했고, 실수를 하나라도 한다면 그 순간부터 치스크는 이 세상과 작별인사를 해야만 했다.
"그렇지. 아, 그리고 사실 염치 없지만 부탁이 하나 있네."
프로깃은 마지막 테미 플레이크 한 모금을 들이키며 말했다.
"말씀하시죠."
그렇게 말한 치스크였지만 그는 만약 그 부탁이 어려운 부탁이라면 들어줄 생각이 발톱의 때만큼도 없었다.
"자네도 알겠지만...프로깃이란 존재들은 계속해서 폭력과 살육을 일삼는 존재들이라네. 나도 옛날에는 사실 그런 것들을 마치 본능과 같이 휘둘렀지만...
여기와서 와보니 이상하게 회의감이라는게 들더군. 이 세상에 대해서도 나 자신이 일삼았던 짓에 대해서도. 그리고 결국 몇십년을 그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본 결과.
내가 행하던 짓은 잘못된 것이라는 결론이 나오더군. 그러니까 사람을 죽이거나...아니면 사람을 노예로 만드는 것과 같은 짓 말이야.
그러니까. 젊은이 내가 부탁 하나만 하겠네. 나와 같은 길을 걷지 말아주게. 만약 자네의 앞길을 막고 자네를 방해하던 존재들이 더 이상 싸우지 않고 투지를 꺾었을 때,
나 처럼 그들의 목을 베지 말고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줄 수 있겠는가? 그리고, 언젠가 상대방의 투지가 꺾이지 않고 자네에게 계속 덤벼들 때에도 이 나의 얼굴을 봐서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줄 수 있겠는가?
부탁하네, 이 가련한 약쟁이의 얼굴을 봐서라도 나의 부탁을 들어주었으면 좋겠네. 그리고 내가 방금 전에 자네에게 준 주머니를 가져 가줄 수 있는가? 거기 안에는 내가 지금까지 모든 모든 패물과 금은 보화가 있다네.
분명 자네의 여정에 도움이 될 걸세."
프로깃의 말투는 애절했다. 그 것은 부탁이 아니었다. 그 것은 애원이었다. 제발 자신과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말라는 애원이었다. 그리고 진심 어린 조언이었다.
그러나, 치스크의 반응은 매정했다.
"죄송하지만, 그 중 어느 하나도 지킬 수가 없겠군요."
프로깃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져가기 시작했다.
"애초에 저는 투지가 꺾인 상대는 죽이지 않습니다. 저는 저에게 계속해서 투지를 가진 상대는 애초에 상대 자체를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는 산 사람의 물건은 뺏지 않습니다.
당신의 부탁은 이미 옛날에 제가 다 이루어오고 있었는데. 제가 어떻게 당신의 부탁을 들어드립니까?"
프로깃은 치스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치스크의 표정은 불편한 그대로였다. 처음 만났을 때와 전혀 다름이 없이 그저 자신이 불편하다는 것을 얼굴 가득 표현하고 있었다.
하지만 프로깃의 눈에만 그렇게 보인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 얼굴은 분명 꽤나 부드럽고 온유해 보였다.
"자네가 이 폐허를 탈출 할 수 있기를 간절히 빌어주겠네."
프로깃은 그렇게 말하며 입에 넣어두고 있었던 검은 파리 모양의 폭탄을 깨물었다.
***
퇴고 따위는 하지 않았다아!!! 그러니이이이!!!
전편 찾으러 가야해서 개추준다
다음부턴 링크걸어라
전편 없잖아
갤로그 가서 봐 - dc app
퇴고 하나도 안했는데 나보다 오타가 안나와서 추천준다
별 거지 같은 이유로 주네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