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설정


플레이어: 플레이어

플라위: 플레이어의 조력자

샌즈: 글리치






178번째 장면:




"차라, 그게 무슨 말이야?"


나는 '차라'와는 이제 별개의 인물이며 그것은 두 번째 장면에서 '차라'에게 전해 들은 사실이다. 하지만 아직도 이 꽃은 나를 차라로 알고 있다. 아무래도 플라위는 '차라'가 부수고 재건한 세계의 진실까지는 모르는 모양이다. 뭐, 아무래도 좋은 일이다. 그 사실이 의미하는건 아마도 이 꽃이 '진정한 내 아군'이 될 수는 없다는 얘기니까.


'뒤틀린 의지'가 이 세계를 바꾸기 시작한 것은 101번째 장면부터이다. 본래는 심판의 복도에 있어야 할 해골 모양 괴물이 이제 폐허에서 스노딘 숲으로 나아가는 오솔길에 버티고 앉아있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이 괴물은 어떤 버그의 영향을 받은 것인지, 심판의 복도의 샌즈와는 전혀 달랐다. 대사도 약간 달랐고("미친 시간을 보내고 싶어?" 였던가?), 이 샌즈는 23패턴에서 필살기를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계속 무한히 패턴이 이어지고 있었다. 사실 제일 인상적인 것은 그 샌즈가 '상상의 친구'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정말 기이한 모습이었다. 그 샌즈는 시종일관 자신의 동생이라고 여기는 '팝'에게 말을 걸듯이 중얼거리고 있었지만, 정작 그 이름의 주인일 터인 파피루스는 단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다. 101번째 장면 이후로 스노딘 숲 오솔길의 샌즈를 넘어가 본 적이 없기 때문에 파피루스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는 나로서는 알 수 없었다. 내가 101번째 이후의 세계를 '뒤틀린 의지'라 부르는 것은 바로 이 부분 때문이다. 아마도 세상 사람들에겐 '크리피파스타'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하지 않을까.


그래서 이 세계는 토리엘을 죽인 다음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마치 데모판 같은 세계가 되었다.




그것밖에 없었다면 정말 끔찍하게 지루한 세계가 되었겠지만(다행히도 샌즈의 대화 패턴은 여러 가지가 있어서 '그렇게까지' 지루하진 않았지만), 101번째 장면 이후로는 나도 '외부 인물의 조작으로서만 가능한 극히 제한적인 행동' 외의 다른 행동들, 예컨대 내 의사를 타인에게 전달한다든가, 타인을 내 전략대로 조종한다든가, 그런 걸 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이것을 깨달은 것은 161번째 장면에서이다. 깨닫고 나서도 샌즈의 '무한 패턴'을 격파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몇 번 더 도전해 봤지만 역시 샌즈에는 '버그'가 걸려 있어서 23패턴 필살기가 나오지 않았다. 결국 나는 스노딘 샌즈를 '정공법'으로는 돌파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내게 생긴 다른 수단을 써 보기로 했다.


내가 지금 플라위에게서 '단 한 번도 보인 적 없는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것도 이 능력 덕택이다. 비록 플라위에게 내가 아스고어를 죽인 다음에 일어난 일에 대해 설명하더라도 플라위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 밖의 일들은 대체로 다 기억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즉 말하자면, 플라위는 이제 나의 주요한 동반자이다.


"그러니까, 지금 밖에 파피루스의 그 증오스러운 형제가 버티고 있다고? 그리고 나오려고 하고 있다고? 하하, 정말 웃기는 농담이었어, 차라. 내가 그 형제를 대신 상대해 주고, 너는 그 틈을 타서 앞길로 가시겠다?"


아니, 그게 될 리가 없지. 플라위는 일전에 '절대로 파피루스의 형제를 정면에서 상대하지 말라'라고 조언한 적이 있다.


"잘 아네, 차라. 난 그 괴물은 상대할 수 없어. 특히 네가 말한 대로라면 아마 내 기억보다도 훨씬 강해져 있겠지."


플라위를 미끼로 시간을 끄는 건 바보 같은 짓이다. 차라리 토리엘을 미끼로 쓴다면... 그래, 토리엘.




사실 나는 아직도 괴물들을 '죽일 것인지 살릴 것인지' 선택할 수 있었다. 지난 100번의 장면에서 거의 모든 괴물을 죽였지만, 아주 가끔씩은 괴물들을 놓아 주거나 혹은 모든 괴물들을 살린 적도 있었다. 지난 177번의 장면에서 토리엘을 거의 내 손으로 죽였지만 토리엘은 이전 장면의 일들을 기억하지 않았다. 그래서 내 손이 닿는 괴물들이라면 여전히 '이용'할 수 있었다.


토리엘이라는 자에 대해서도 물론 알고 있다. 뒤틀리기 이전의 샌즈가 매일 밤 폐허에서 의지하던 여인이다(샌즈가 나에게 직접 말해 주었다). 초죽음의 파괴신 아스리엘이 나오지 않는 장면에서 토리엘과 샌즈는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특히 101번째 장면 이후로는 그럴 기회조차 없었다. 이번에 토리엘을 바깥으로 끌고 가는 데 성공한다면 아마도 새로운 양상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늙은 여자를 방패로 쓰겠다고...? 방금 그 말, 정말로 너다운 말이었어!"


플라위는 칭찬인지 욕인지 알 수 없는 말을 기분 좋게 내뱉으며 나의 의견에 동조해 주었다.




"뭐...? 아가야, 한 번도 밖에 나가 본 적이 없잖니, 그걸 어떻게 알아...?"


역시 쉽사리 믿어 주지 않는다. 토리엘에겐 이전 장면들의 기억이 없다. 당연히 바깥에 샌즈가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믿어 줄 리도 없다. 아마 그게 매일 밤 자신과 농담을 나누던 사이의 괴물이라고 말하면 더 이상한 눈으로 볼 것이다. 그것은 아마 토리엘의 사생활일 테니까. 나는 토리엘을 바깥으로 끌어내는 난관에 부딪쳤다. 나는 고민에 빠졌다. 그 때, 플라위가 한 마디 거들었다.


"아주머니, 얘 말은 사실이에요. 제가 바깥에서 보고 왔다고요."


"어머, 너는 항상 보이는 못된 꽃이구나. 집에서 썩 나가렴."


보고 왔다는 말은 아마도 사실이다. 플라위는 아마도 땅 속으로 이동하고 있을 테니까, 적당한 위치에서 샌즈를 염탐하고 왔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오기 전에 도대체 얼마나 못된 짓을 하고 있었기에 토리엘에게 안 좋은 인상을 남긴 거야.


"아주머니, 진짜라고요. 제가 맨날 애들한테 장난을 치지만, 얘가 하는 말은 진짜에요. 인간 아이는 거짓말을 안 하잖아요? 아주머니, 제발 한 번만 믿어 보세요."


플라위는 본성을 최대한 숨기면서 토리엘에게 열심히 말을 했다. 역시 가식적인 자식이다. 토리엘은 내 눈을 응시했다. 물론 나 역시 내 진짜 의도를 숨기려고 노력하면서 토리엘의 눈을 보았다. 토리엘의 눈이 살짝 흔들렸다. 무엇을 보았을까. 내 진짜 의도를?


"흐음...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나가 보지 않을 수 없구나. 내 아가야, 저 밖에 괴물들이 너를 죽이기 위해 버티고 있다면 네 수호자인 내가 그들을 물리치지 않으면 안되겠구나."


속이기 쉬운 여자였다. 플라위가 뒤에서 "속이기 쉬운 여자야." 라고 말하는 것을 얼핏 들었다.




"헤... 팝, 왜 저기서 괴물이 나타나는 거지...?"


나는 토리엘의 뒤를 몰래 따라갔다. 역시나 이번에도 스노딘 샌즈는 거기에 있었다. 팝이라는 이름을 부르기 시작한 건 111번째 장면부터였던 것 같다. 정말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모양이어서 보기에 안쓰럽기 그지없었다. 토리엘은 우리 말대로 거기에 괴물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에 약간 놀란 눈치였다. 그러나 토리엘은 침착하게 마음을 다잡고 괴물에게 말을 걸었다.


"당신은 누구죠?"


"어, 당신은..."


"어, 그 목소리는...!"


토리엘과 샌즈가 서로를 응시했다. 역시 내 예상대로, 이들은 실제 얼굴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자, 저 '버그 걸린' 샌즈는 토리엘에게 어떻게 반응할까.


"......"


"우리 아는 사이죠? 저 당신 알아요. 매일 밤 폐허의 문 너머에서 농담을 나누던 그 분이요! 전 토리엘이라고 해요. 그런데... 저... 당신..."


"......"


"설마, 당신이 지금 내 아가를 노리고 있는 건가요?"


토리엘의 기쁜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토리엘은 나와 플라위가 한 말과 눈 앞의 괴물을 매치하려 노력하고 있었다. 설마 매일 밤 농담을 나눌 정도로 친밀했던, 인간을 절대 해치지 않겠다고 약속했던 괴물이 지금 인간을 노리려고 눈 앞에서 버티고 서 있는 꼴이라! 이것도 이 뒤틀린 세계의 즐거운 가능성 중 하나일 것이다. 샌즈 역시 당황한 표정으로 토리엘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늙은 여자가 벙찐 모습을 봐! 어떻게 이렇게 재미있는 상상을 할 수가 있지? 정말 너다워! 내가 기대했던 그 이상을 보여주는 걸!"


플라위는 여전히 칭찬인지 욕인지 알 수 없는 말로 환호했다.


"......"


"하, 설마요, 우리 아가가 아마 그 못된 꽃의 꾀임에 넘어가 짓궂은 장난을 친 게 분명해요. 당신이 설마, 우리 아가를 해치는 괴물일 리가 없잖아요? 그렇다고 말해 줘요. 그건 거짓말이죠? 거짓말이어야 해요."


그 다음 순간,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샌즈가 뼈다귀 하나를 직격으로 날린 것이다. 토리엘은 그 뼈에 맞아 뒤로 밀려나며 쓰러졌다. 물론 내가 아는 토리엘은 괴물들의 왕 아스고어와 비슷한 수준으로 강한 괴물이므로 이 정도로 죽진 않는다. 토리엘은 즉시 일어나 전투 태세를 취했다. 손에 화염의 마법을 둘렀다.


"유감이지만 사실입니다."


"......!"


"그 인간을 가만히 놔 두면 당신도 죽고, 아스고어 대왕도 죽고, 모든 괴물들이 다 죽었을 겁니다. 그러니 인간을 순순히 넘기세요. 나도 왠만하면 당신을 죽이고 싶지 않으니까."


"당신도 지금 날 놀리는 거죠...? 어떻게 저 불쌍한 아가가 모두를 죽인다고... 그렇게 험한 말을... 당장 그 말 취소하세요. 난 정말 당신에게 실망했어요. 이게 농담이라면 당신은 괴물이에요."


"그 농담, 별로 재미 없는데."


토리엘이 언성을 높이면서 샌즈를 몰아붙였다. 토리엘의 불 마법이 샌즈를 고속으로 덮치고, 샌즈는 그것을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스노딘 샌즈가 저렇게 동요하는 것은 처음 본다. 내가 알기로 토리엘은 샌즈의 여러 버팀목 중 하나였으니 토리엘이 저런 반응을 보인다면 샌즈에겐 무언가 무너져 내리는 듯한 기분이 들 것이다. 물론 저 샌즈가 여전히 토리엘을 버팀목으로 여기고 있었던 것인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농담이요...? 내가 마지막 이성의 끈을 놓기 전에 다시 생각하세요. 당신이 지금 한 말은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끔찍한 말이에요. 내가 당신 같은 괴물과 약속을 하고, 그걸 곧이곧대로 믿었을 줄이야... 당신이 저 역겨운 아스고어와 다른 게 뭐죠?"


"진실을 안다는게 다르지."


"닥쳐... 이 괴물아!"


토리엘은 완전히 분노하여 그에게 달려들었다.




"하아, 하아..."


토리엘이 눈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샌즈는 완전히 지친 기색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이건 약간 예상외였다. 샌즈의 '숨겨진 강함'은 백수십번의 장면에서 체감한 것이니 나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괴물들의 왕과 거의 비슷한 힘을 가진 그녀를 힘들게나마 쓰러뜨렸다는 건... 내 직감에 따르면, 이건 '지하세계의 모든 괴물이 그의 손에서 안전하지 않음'을 의미했다. 그러나 나는 샌즈와 눈이 마주쳤고, 그것을 이번 장면에서는 검증할 수 없게 되었다. 내 몸이 미지의 힘에 들려 빠르게 그의 곁으로 날아갔다.


"아가야... 아가야!"


"여기 있었네, 인간."


샌즈가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토리엘은 완전히 넋이 나간 표정으로 나를 불렀다. 토리엘은 이제 완전히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몇 번인가 나를 부르더니, 갑자기 샌즈에게 호소하기 시작했다.


"아가를 죽이지 말아요... 제발... 아가를 죽이지 말아요... 차라리 날 죽이고 아가는 살려 주세요... 또 다시 눈 앞에서 아가를 잃을 수는 없어... 제발... 당신에게도 소중한 사람이 있잖아요...? 그건 내 유일한 희망이야..."


"......."


샌즈는 한순간 흔들린 듯이 보였다. 그러나 곧 망설임을 떨치고, 나에게 뼈다귀를 박아 넣었다.


"아가야!"






178번째 장면 뒷이야기:




"아가야... 제발 눈 좀 떠보렴... 내게 살아 있다고 말해 줘... 제발... 아가야! 이런 식으로 죽어선 안 돼..."


토리엘은 한참을 그렇게 되뇌이며 인간의 시체를 끌어안고 울부짖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슬픔과 분노가 뒤섞인 표정으로 샌즈를 원망했다.


"당신은... 괴물이야... 어떻게... 아가를... 죽일 수가... 있어... 나는 당신에게 실망했어... 당신과 약속한 내게도 실망했어... 썩 꺼져... 다신 내 눈 앞에... 나타나지 마..."


"......"


그러나 샌즈는 토리엘이 슬퍼하는 모습을 보고 어떤 연민도 갖지 않았다. 어차피 인간이 죽었으니 세상은 다시 리셋될 것이고...


"어차피 EXP잖아. 리셋되기 전에 챙겨야지."


샌즈는 토리엘의 마지막 숨을 빼앗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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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가 나올지는 모름. 아이디어가 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