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뒤를 돌아보니 아무도 없어 적막했다.워터폴에서 늘 들려오곤 했던 잔잔한 폭포의 노랫소리마저 지금은 이상하게도 침묵하고 있었다. 묵묵히 자신의 손을 들여다 보았다. 피는 묻어있지 않았다. 아무런 흔적도 없었다. 그렇겠지. 괴물들은 아무것도 남기지 않으니까. 아직도 귓가에서 맴도는 비명소리가 똑똑히 들리는 듯 한데 워터폴은 너무나도 조용했다. 너무나도 조용해서 자신이 한 짓조차도 없었던 일처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침묵을 깨뜨리고 싶기라도 한 듯 굳은 입을 살짝 벌려서 불러 보았다. 누구 없나요.
그러나 아무도 오지 않았다.
묵묵히 땅만 내려다보며 걷던 와중에 문득 노란 색 그림자가 눈에 띄었다. 그 꼬맹이로군. 그 괴물의 표피는 내가 좋아하는 꽃의 색깔과 닮았다. 모처럼 기분이 났으니 너만은 좀 더 좋은걸 많이 보여주려고 했는데... 왜 자꾸 귀찮게 하는거지? 찔러버릴지도 모른다고?
"요!"
말없이 계속 걸었다.
"요! 여기서 또 보게 되네? 이상하게 아무도 보이지 않아서 말이야! 같이 가자고!"
...
이 조그만 녀석은 내가 무시로 일관하여도 아랑곳 않고 자기 할말만 계속 한다. 짜증나는 녀석이지만 조금만 더 참아보기로 할까. 좋은 걸 보여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지겹도록 조용한 이 곳에 슬슬 질려갈때쯤 드디어 저 멀리 핫랜드로 올라가는 바위산이 보였다. 발걸음을 빨리 하려 할 때 노란색 녀석이 다다다 나를 앞질렀다. 좁은 다리의 입구를 막으며 나를 노려보고 선다. 이 녀석 무슨 생각이지.
"..."
뭔가 찡그린 얼굴로 계속 나를 쳐다본다. 할 말 있으면 빨리 말해 자식아
"요!..."
방해된다
"요! 하나만 물어보겠어. 핫랜드에 가면.. 뭘 할 생각이야?"
뭘 하기는, 더 많이 죽이러 가는거지
"언다인이 그랬어! 인간이 괴물들을 죽이고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고! 가까이 하지 말라고 그랬어."
곧 너도 친구들과 함께 하게 될 거야
"나는 믿을 수 없어! 가끔 보면 넌 그래도 좋은 인간 같았는데... 정말로 괴물들을 죽이고 있는 거야?"
입가의 미소가 일그러지는 걸 참을 수 없었다
"정말이라면 지금 당장 멈추는 게 좋을 거야! ...왜 나를 그렇게 쳐다보는 거야?"
대답 대신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걷기 시작했다. 살짝 감전된 듯이 척추를 타고 올라오는 쾌감을 참을 수가 없다. 핫랜드의 괴물들을 찌르고 또 찌르는 장면을 그 멍청한 눈에 새겨주고 싶었는데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다. 그래도 상냥히 대해 줄게. 너는 작고, 내 맘에 드는 색깔을 하고 있으니까. 일단은 달리지 못하게 그 다리부터 건드려 줄까.
"왜 그렇게 쳐다보는 거야? ... ...아아아악!! 오지 마!!"
그 놈이 비명을 질러대자 마음이 변했다. 역시 한 번에 끝내는게 낫겠다. 비명소리는 듣고 싶지 않다. 그 녀석은 누가 우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내 취향과는 반대되는 다정함이지만, 아직 이 몸은 그 녀석의 것이니까.
죽어라
푸욱
"...언다인?"
영웅 납셨군
"언다인!!! 왜!!"
"꼬마야. 내가 그 녀석은 멀리 하라고 했잖아."
"언다인... 나... 나는..."
"이 녀석은 내가 혼내줄 테니까 너는 안전한 곳으로 돌아가. 알겠지? 곧 따라갈 테니까."
"언다인... 하지만... 상처가..."
"이 정도쯤은 아무것도 아냐."
아무것도 아니긴, 이미 넌 끝났어
"그보다 네가 있으면 싸우기 방해된단 말야. 어서 가!"
울상을 지으며 뛰어가는 그 작은 괴물을 굳이 뒤쫓아가진 않았다. 여기 더 재미있는 녀석이 있었으니. 오래가진 않겠지만 마지막은 나름대로 기억해 줄게.
......
"하... 히히히"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인간..."
왠지 익숙한 무언가가 그녀의 눈에서 빛나기 시작했다.
"이 나를 꺾으려면..."
"그것보단 더 세게 쳐야 할 거다!"
영웅이 나타났다. 대지가 그녀의 죽음을 거부하는 듯 했다. 분명히 재가 되어 사라졌어야 할 그녀의 다리가 굳건히 땅을 밟으며 서 있었다.
바람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바람이라기보단 마치 폭풍이었다. 폭풍 속에서 영웅은 창을 들었다.
"나, 언다인이, 널 박살내주마!"
푸른 빛의 의지가 그녀의 창을 중심으로 휘몰아치고 있었다. 감당할 수 없을 만한 힘으로 창은 똑바로 날아왔다.
격전의 도중에 언다인은 문득 이상함을 느꼈다. 저 작은 꼬맹이는 자신이 온 힘을 다해 내지르는 창을 아무렇지 않게 피해내고 있었다. 그건 실력의 문제가 아니었다. 오랜 기간동안 수련해 온, 그리고 지금 의지의 힘으로 배가된 위력을 뽐내는 자신의 창은 제아무리 상대가 아스고어 같은 괴물이라도 이겨낼 자신이 있었다. 그 푸른 빛을 그리는 현란한 궤적은 자신이 보기에도 놀라운 것이었다. 자신은 이미 한계를 뛰어넘어 있었다.
그런데 저 꼬맹이는 그것을 매우 익숙한 듯 피하고 있었다. 마치 몇 번이고 보았던 공격을 피해내는 것처럼.
그러면서 틈이 날 때마다 손에 든 작은 칼로 자신을 공격해 왔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지금 이 녀석을 박살내야 모두를 지킬 수 있는데. 아스고어... 알피스... 모두들...
안된다.
지금 여기서 약한 맘을 먹으면 안된다.
나는 영웅이다. 모두를 지켜 낼.
언다인은 자신의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의지가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모두가 자신에게 기대하고 있었다. 아스고어도 지금의 자신을 보면 놀랄 것이다. 알피스에게도 멋진 모습을 보일 수 있겠지. 이런 꼬맹이에게 질 수는 없다. 터져나오는 웃음을 숨길 수 없었다.
"히... 히히히..."
그 꼬맹이가 의아한 듯이 쳐다보았다. 언다인은 자랑스럽게 말을 이었다.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
언제부턴가 레스토랑스에게 씽크빅을 기대하게 되버렸다
휘리리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