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재분 보기


1화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undertale&no=368494



인물 설정


플레이어: 플레이어

플라위: 플레이어의 조력자

샌즈: 크리피파스타(괴담)




179번째 장면:




"브라보, 브라보! 정말 멋진 극이었어. 기립박수! 짝짝짝."


플라위가 유달리 유난을 떨며 호응해 주었다. 플라위가 좋아할 시나리오가 제대로 된 시나리오인지는 모르겠지만. 지난 장면에서 나는 토리엘을 바깥으로 끌고 나갔었다. 토리엘은 필사적으로 날 지키기 위해 싸웠지만 결국 샌즈에게 졌다. 그리고 샌즈가 날 찾아내고, 토리엘이 보는 앞에서 날 죽였다. 내가 확인할 수 있었던 건 거기까지였다. 아마 토리엘은 깊은 슬픔에 잠겼겠지만, 샌즈가 그걸 보고 어떤 심정적인 변화가 왔는지는 모르는 일이다. 가 봐야 알겠지.


"차라, 네가 죽은 다음에 그 늙은 여자가 네 시체를 들고 오열했어. 그리고 파피루스의 형제에게 원망과 저주를 퍼부었지. 하지만 그 형제는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그 여자를 죽였어! 히히히..."


아, 그렇게 된 거로군. 플라위는 인간과 괴물들의 추한 밑바닥까지 파헤치는 것을 좋아했다. 이제부터 플라위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조금 조심할 필요가 있을 지도 모른다. 플라위는 신이 난 듯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네가 죽은 뒤 그 이야기를 자랑하려고 파피루스를 찾아서 가까운 스노딘 마을까지 내려가 봤는데..."


플라위가 표정을 섬뜩하게 바꾸었다.


"아무도 없었어. 아무도 없었다고! 네가 죽이지도 않았는데 말이야! 분명 파피루스의 형제가 몽땅 죽인 거겠지. '널 가만히 놔 두면 모든 괴물이 죽는다'고? 그는 이제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 지도 몰라!"




사실 '버그'가 일어났다면 대부분의 인과는 붕괴한다. 마을에서 아무도 찾아볼 수 없게 되는 것이 반드시 '샌즈가 모두를 죽였음'을 의미하진 않는다. 그냥 단순히 마을 사람들에게도 버그가 걸려서 나타나지 않게 된 것일 뿐일 수도 있으니까. 그러나 샌즈의 그 추레한 몰골과 말이 아닌 정신상태는 살인의 인과를 지지하고 있었다. 재투성이 신데렐라 같은 그 모습은 아마도 괴물들을 죽인 시체일 것이고, 상상의 친구를 찾아다닐 정도로 완전히 망가진 정신은 심각한 스트레스성 장애의 징후일 것이다.


물론 '괴물들을 지켜내기 위해 괴물들을 죽인다는' 모순된 이 행동이 어떤 부분에서 도덕적 당위를 갖는가는 사실 내겐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샌즈가 괴물들을 모두 죽이는 것이 사실이라면, 샌즈가 누군가를 죽임으로 인해 나는 초죽음의 절대신을 만날 수 없으며, 내가 죽여야 할 몫을 샌즈가 죽임으로 인해 나는 이름을 부르면 찾아오는 악마도 더 이상 만날 수 없게 되는 것이었다.


그럼 저걸 죽인다면, 다음엔 누가 나타날까?


"어, 글쎄, 어떻게 죽일건데?"


물론 지금의 내 능력으론 저걸 죽일 수 없다. 나는 저것을 죽이기 위해 몇 번이나 도전했고, 번번이 실패했다. 내가 얻은 새로운 권한, '나의 의사'를 타인에게 전달하는 것, 내가 걸 수 있는건 오히려 그 쪽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퀸이고 내가 직접 컨트롤할 수 있는 기물은 기껏해야 하나 둘 뿐이다. 무한히 무를 수 있다는 점에서는 내 승리의 가능성이 있는 한 여전히 이 쪽에 유리하지만, 과연 나는 그 승리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문제이다.


일단은 정찰이다. 저 새로운 괴물이 과연 스노딘 마을의 괴물들만 죽였을까.


"뭐? 정찰? 이봐 차라, 날 설마 뼈받이 정도로 여기고 있는 건 아니겠지?"

 

장면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나의 힘을 아는 플라위가 짐짓 능청을 떨며 말했다. 나는 플라위에게 약간 불쾌한 기색을 내비쳤다.


"이런 이런, 차라. 나도 알아 안다고. 나는 짐작조차 할 수 없는 네 위대한 계획의 일부지! 그리고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우리의 힘. 저 괴물이 '모두를 죽이기 전에', 혹은 저 괴물이 모두를 죽이는 것만이라도 보고 오는 거지?"


플라위가 사라졌다. 저 앞에서 토리엘이 또 다시 나를 맞으러 온다.




샌즈는 내 대부분의 '몰살'을 기억하고 있었다. 100번째 장면 이전까진 그저 짐작하는 정도로만 말했지만 101번째 이후로는 거의 확신, 아니 '알고 있다'는 투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지난 장면에서도 '저 인간이 모든 괴물을 죽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정작 나는 그 때 토리엘을 죽이지 않았는데 말이다. 샌즈는 내가 무슨 짓을 하든 내가 모두를 죽일 거라고 생각할 것이다. 아마 내가 모든 괴물에게 자비를 베풀고 나서도 "시공간을 뒤틀 수 있는 힘을 가진 너를 나는 신용할 수 없다" 같은 말을 하면서 또 죽이려고 들 것이다. 아니면 그냥 죽일 수도 있고.


그렇다면 아마도 지난 장면에서 내가 토리엘을 미끼로 쓴 것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처음 보았을 땐 옛 정에 휩쓸려 토리엘을 죽이는 것을 망설였지만, 이제 한 번 자신의 손을 더럽힌 이상 거리낄 것은 없어졌을 것이다. 토리엘은 더 이상 유효한 미끼가 아니라는 뜻이다. 토리엘을 죽였다는 사실 자체가 샌즈에게 얼마나 정신적 충격이 되었을 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샌즈는 예전에 농담을 나누던 인생의 새로운 동반자를 죽이는 데에도 느끼는 것이 아무 것도 없을 것이다.


이번부터는 토리엘과 괴물들을 살려 두기로 했다. 어차피 스노딘의 샌즈는 내 LV가 몇이든 정공법으로 돌파할 수 없는 상대이고, 차라리 내가 '아무도 죽이지 않았다'는 도덕적 알리바이로 무장해 있다면 최소한 저 살인자가 날 죽이는 데에 양심의 가책이라도 느낄 지 모르는 일이었다. 토리엘을 죽인 시점에서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 같지만.




폐허의 문을 열어젖히자 눈 앞에 또 샌즈가 나타났다. 그렇다면 플라위는...


"인간, 설마 내가 토리엘을 죽이게 할 줄이야. 아주 영악하고 잔인해. 네가 절대로 지상에 나가지 못하게 막아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었는데."


플라위는 어쨌지.


"헤, 그걸 내가 네게 말해야 할 의무라도 있나? 항상 내 동생에게 접근하다가 내게 들켜서 꽁무니가 빠지게 도망가던 그 꽃을 말하나 본데, 어차피 그 꽃도 너와 한패일 거 아냐."


어쩔 수 없다. 그건 새로운 장면에서 듣는 수밖에 없다. 샌즈는 주변에 그의 살인을 막을 것이 아무 것도 없음을 고개를 돌려 확인한 다음, 내 쪽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혹시 플라위가 살아 있다면, 나는 최대한 시간을 끌어 보기로 했다.


"네가 누군가를 죽이든 안 죽이든 이제 그게 무슨 상관이지? 이봐 인간, 그런 건 이제 아무래도 상관없어. 괴물들을 살리는 것? 바깥 세계에 나가는 것? 난 그 모든 것에 흥미를 잃었어. 난 오히려 이 상황을 즐기기로 했어. 네가 계속 처음으로 돌아가기만 해 준다면 나는 이렇게 미친 시간을 보낼 수 있잖아."


토리엘에 대해 신경을 쓰고 있는 괴물이 이런 식으로 말해도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지만, 아무튼 정신상태가 내 생각보다 훨씬 말이 아닌 것 같았다. 나는 그의 말에 '차라'를 떠올렸다. '매번 숫자들이 늘어날 때마다 느껴지는 그 느낌'. 첫 번째 장면에서 그가 했던 말이다. 이름을 부르면 나타나는 악마는 이제 저것에 가서 붙은 것일까?


"인간, 이게 모두 다 네 탓이야. 네가 모든 것을 망쳐 버렸어. 이제 그 죄악의 무게를 심판받을 시간이야. 미친 시간을 보내게 될 거야."


샌즈는 게임 괴담에서 나올 법한 소리를 했다. 우우웅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180번째 장면:




"내가 새로운 집까지 다 둘러보고 왔는데 말이야. 역시 모든 괴물들이 다 죽어 있었어. 그 늙은 왕도. 몇몇은 살아있었는데, 곧 그가 와서 전부 죽여버렸어. 지름길을 쓰고 있어서 발은 나보다 빨랐지만 죽이는 데 시간이 걸리더라."


새로운 장면은 역시 플라위의 전언으로 시작되었다. 아마도 플라위가 확인할 수 있는 모든 괴물들이 죽었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샌즈가 죽였다는 것도 확인했고, 리셋할때마다 다시 괴물들이 살아나기 때문에 내가 폐허에서 나올 때까지 발빠르게 움직여 모두를 죽이고 문 앞에서 기다리는 것이 분명했다. 토리엘을 죽였을 때 짐작했지만 역시 아스고어 대왕도 죽이고 있었다. 아스고어 대왕은 영혼을 가지고 있는데도 매번 죽이는 것을 보면, 아마도 결계 밖으로 나가는 것에 흥미를 잃었다는 말은 사실인 것 같다.


그렇다면 시간이 없다. 토리엘에게 실례를 해서라도 최대한 빨리 앞으로 나아간다면 약간의 시간을 단축할 수 있겠지만, 스노딘의 오솔길에 샌즈가 도착하기 전에 폐허를 나올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차라리 플라위를 이용해서 발을 묶는 편이 나을 것이다.


"뭐? 이게 진짜, 이제 대놓고 날 뼈받이로 쓰겠다는 얘기야?"


나는 여태까지 만났던 괴물들의 이야기를 떠올리면서 샌즈의 '약점'을 생각해내려 애썼다. 파피루스. 샌즈는 항상 아무 것도 안 하는 파피루스를 보살피기 위해서 돈이 필요했다. 하지만 파피루스를 가지고 뭘 할 수 있지? 플라위가 파피루스와 '친분'을 쌓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고, 그건 샌즈가 모두를 죽이는 시간에 비하면 턱없이 짧다. 게다가 파피루스는 별 특별한 것 없는 약해빠진 괴물이다.  더욱이 토리엘마저 죽인 샌즈에게 파피루스를 인질로 삼아 거래를 요구한다고 뭔가 달라질 것 같진 않다.


아스고어 대왕이 가진 여섯 영혼. 시간을 맨 처음으로 되돌릴 수도 있고, 아무 때나 '세이브/로드'를 할 수도 있는 권능을 준다. 가질 수만 있다면 샌즈고 뭐고 다 박살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얻으러 갈 수 없다. 아스고어 대왕이 영혼을 꺼내기 위해선 내가 아스고어 대왕에게 가야 하는데, 폐스노딘 마을에서 새로운 집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폐허를 지나는 데 걸리는 시간의 몇 배나 된다. 플라위나 샌즈가 가 봤자 아스고어 대왕은 괴물을 상대로 영혼을 꺼내지도 않을 테니, 사실상 이건 사용할 수 없는 방법이다.


메타톤. 여태 난 단 한 번도 그 '금속 몸체'에 상처를 낸 적이 없다. 메타톤을 이 쪽으로 포섭할 수만 있다면. 하지만 메타톤의 성격으로 봐선 또 그 '새로운 몸체'를 꺼내고 당하는 모양이다. 냅스타블룩. 유령은 상처를 입지 않는다. 하지만 유령이 싸울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도 않는다.


언다인. 의지의 힘으로 되살아나는 영웅. 알피스. 의지 실험의 책임자.


"알피스...?"


플라위는 '인간도 괴물도 아닌 존재'에 '의지'를 주입하여 알피스가 만들어낸 '생명체'이다. 그 결과 플라위는 한동안 세계를 되돌리는 '신의 권능'을 얻었고, 그것을 나에게 빼앗긴 지금도 여전히 시간이 되돌아가는 것을 지켜볼 수 있었다. 그것은 우리가 샌즈에게 가진 절대적인 우위 중 하나이기도 했다.


"알피스... 알피스... 아, 이거 기억날 듯 하면서도 기억 안 나는 이름이네. 분명 예전에 들어 본 이름이었는데."


하지만 그 힘을 어떻게 사용하지?








179번째 장면 뒷이야기:




"다... 당신은 누구시죠?"


토리엘의 앞에 뼈다귀 괴물이 나타났다.


"이건 진짜 내 마지막 양심이었는데. 설마 내가 모든 괴물을 죽이고 압도적인 전력으로 인간을 제압해도, 인간이 내 머리 위에서 놀면서 날 철저히 농락할 줄은 전혀 몰랐는데."


우우웅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자력으로 부유하는 괴물 머리 모양 기계가 빛과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혹시 이 목소리는... 당신은 문 너머에서..."


"더 이상 생각하지 마세요, 부인. 차라리 편하게 가시는 게 좋을 겁니다."





------

'크리피파스타'나 게임 괴담이 종종 언급되는데 여기서는 더스트테일 세계관 자체가 일종의 익사한 벤 같은 괴담이라고 설정하고 쓰고 있음.

익사한 벤은 무주라의 가면 괴담인데 게임팩에 영혼이 씌여서 게임 진행을 방해한다는 괴담임.

물론 그렇다고 샌즈에게 차라가 씌였다든가 그런건 아니고 일단 더스트테일 설정을 따라가고는 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