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D가스터 박사는 자신의 창조물에게 푹 빠져 있었다.
그날밤도 어김없이 작고 깜깜한 비밀의 작업실에 살금살금 기어들어갔다. 기도실마냥 엄숙한 방,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인 침대에는 그의 피조물인 인간 꼬마아이가 누워 있다.
마술쇼를 펼치듯 휙 이불을 치워버린 가스터는 아이의 뺨을 쓰다듬고 입맞춘다. 아이는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오,아가.. 왜 깨어나지 않니?
어서 눈을 뜨렴. 세상이 네게는 어떻게 보이는지 나에게 말해다오.\" 가스터가 말했다.
아이의 배는 살짝씩 부풀었다 꺼지길 잔복하고 있었다. 가스터가 아이의 코 주변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자 미약한 숨결이 느껴진다.
그는 아이의 몸을 천천히 관찰한다.
머리카락과 피부,경악스러울만큼 섬세하게 세겨진 손금과 지문까지,모두 그의 손끝에서 탄생한 것이다. 이 얼마나 잘 만들어진 몸인가. 그는 다시한번 제 손씨에 감탄했다.
그가 처음으로 만들어낸 인간인 이 어린아이는 분명 그의 최고 걸작일 터였다. 이 아이가 눈을 뜨고 움직이기만 한다면.
아이는 온전한 신체기능을 갖추고 있었고, 생명을 가지고 있기에 몸속엔 피가 흐르고 심장이 뛰고 있다.
그가 측정해본 결과에 따르면 아이는 생각도 감각도 할 수 있다.
이렇듯 살아나기위한 모든 조건이 충족되었음에도,
아이는 죽은듯이 잠만 자고 있었다. 생명을 가졌을 뿐인 인형처럼. 가스터가 아이의 손목을 잡아 들다 힘없이 들린다. 다리도 마찬가지이다. 움직이는데로 움직여지는 꼭두각시와 같다.
\"이래서야 식물과 다를바가 없겠군.\" 그는 탄식했다.
걷어치웠던 이불을 다시 아이에게 덮어준 가스터는 구석에 놓인 의자에 앉아 컴컴한 벽을 주시했다.
그가 사랑하는 고독감이 그를 반긴다. 주변의 모든 것이 차단되었을때만 비로소 스스로에게 몰입할 수 있다.
\"영혼.\"
그것이 나의 사랑스러운 피조물이 작동하지 않는 결정적인 이유이리라. 가스터는 생각했다.
인간의 신체를 만들어내는 것은 생각보다도 쉬웠다. 완벽한 제작을 위해 표본이 필요했던 그는 아스고어와 토리엘의 양자녀인 인간 아이를 몇번이나 찾아갔고,마음같아선 그 아이를 해부해보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었기에 그를 싫어하는 아이를 몇번이나 억지로 앉혀두고 시선에 따라 눈이 움직이는 방향을 관찰하거나 입 속에 손을 넣어 치아를 만져보거나(깨물기 일쑤였다) 해야했던것은 곤욕이었지만 결국 간단한 구성과 작업을 통해 손쉽게 몸은 완성되었다. 가스터는 탐미자가 아니었기에 외모는 평범했으나 기능은 훌륭한 신체였다.
그 다음 작업인 생명을 불어넣는것은 꽤나 어려웠다.
모든 일이 그러하듯 부수거나 없애는 일은 너무도 쉽다. 가스터는 이미 끔찍한 무기를 손쉽게 만들어왔다.
하지만 그 반대로 무언갈 살리거나 되돌리는 일은 어렵다. 확률이 낮고 복잡하며 까다롭다.
완성된 직후의 아이의 몸은 인형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생명을 갖게되기까지 수많은 실험과 연구가 필요했다.
그럼에도 그는 해냈다.
아이가 첫 숨을 들이키던 그 경이로운 순간,가스터는 자신에게 불가능과 한계는 없다고 확신했었다.
한동안은 생명 유지를 위한 장치가 필요했었지만 곧 모두 떼어버릴 수 있었고 영양을 주입하거나 몸을 씻는든의 최소한의 관리만 해주면 되었다.
사물이었던 것을 살아있게까지 하였는데,자연 법칙을 거스르는 기적을 일으켰는데도,그는 여전히 자신이 바라는 경지에 오르지 못했다. 아이는 축 늘어진 채 잠만 자고 있을 뿐이었으니 말이다.
이 세 번째 난관은 그에게 특히나 많은 절망감을 주었다.
아이가 깨어나지 않는 이유는 아이에게 살아가려는 마음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아이는 아무 것도 바라지 않으며 아무 충동도 없다. 아이가 깨어나려면, 영혼이 필요했다.
그것이 없다면 이제까지의 모든 과정은 물거품이 되어버린다.
영혼은 반지에 박힌 다이아몬드. 그것이 없다면 처량한 고리만이 남을지니.
*
이제껏 누구도 가스터 박사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하루는 놀라운 발명품일 선보여 모두를 놀래키는가 하면 다음날은 섬뜩한 기행으로 모두를 기겁시키곤 했다.
그가 코어를 만들어냈을때는 모두 그에게 존경을 표했지만 그가 과거에 벌였던 음침하고 끔찍한 실험이 발각되었을때는 모두 그에게 진저리쳤다.
누군가는 그를 신 마냥 추앙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그가 정신이상자일 뿐이라 비난했다.
병적으로 틀어박히길 좋아하는데다 누구보다 혼자 있는것을 좋아하는 가스터는 성 같은 매일 자신의 연구소에 틀어박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그러는 동안
그에 대한 뜬 소문들은 춤추는 연기처럼 지하를 떠돌아 다닌다. 그가 악마와 거래를 하고 있다든가,그가 괴물을 말살시킬 계획을 품고 있다든가,심지어 누군가는 그가 밤마다 워터폴을 뛰어다니며 소리를 질러 신에게 기도하는 장면을 보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를 싫어하든 좋아하든 어쨌든 지하의 모든 괴물이 비밀을 장식마냥 달고 다니는 가스터 박사에게 관심이 많았다. 누구도 그보다 탁월한 능력을 가지지는 못했으니.
그는 지하의 왕 아스고어에게 신뢰와 지지를 받는 왕실 과학자 였고 해방을 간절히 원하는 괴물들에게는 희망의 열쇠였다.
지상에서부터 함께했던 조수가 있었고 그를 추종하는 집단이 있었지만 그 중에 누구도 가스터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을 알지는 못했다.
그는 태어나던 순간부터,지상에서 보낸 시간에도,지하에 감금당한 이후에도 한가지 충동에만 죽도록 시달리며 생의 대부분을 반쯤 미친 채 보내고 있었다.
지하의 괴물들과 달리 지상으로 나가는 것에도 관심이 던 그는 고작 지하에서의 해방 따위를 자유라 부르는 그들을 우둔하다고 여겼고,그의 추종자들처럼 인간을 뛰어넘기를 바라지도 않았다. 그의 맹목적인 열정은 좀 더 순수하고 단순한,그러나 가장 추상적이고 불확실한 것이었다.
수시로 그의 목을 졸라대고 그를 말려 죽여가는 그 욕구,불길처럼 솟아올라 하나의 정점으로 향하던 그 열망.
그것은 바로 창조였다.
모든 것이 자신으로부터 탄생된 무언가가 숨을 쉬고 말을 하며 무언가를 원하거나 바꾸어 놓는다.
피조물들의 의도적인 행동 하나하나와 무의식적인 습관 모두 그에게 무한한 기쁨을 안겨주는 것이었다.
그는 훌륭한 과학자나 뛰어난 마법사로 불리곤 하였으나 과학도 마법도 창조의 수단에 불과했다. 그에게 없던 것을 만들어내는 그 위대하며 초월적인 작업 외의 것은 모두 무의미했다.
그런 그가 특히나 집착을 보이던것은 인간이었다.
그는 딱히 인간이 괴물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으나 더 완전하다고 느꼈다.
그가 인간을 만들려다가 실수했을 때,그 실패작이 괴물이 되어 버린 일도 있었다. 인간에게는 괴물에게 없는 무언가가 있다. 그들에게 내재된 기묘한 힘. 눈에 보이지도 않고 물리적인 힘을 가지지도 않았으나 때때로 그를 깜짝 놀래키던 그 무언가.
때로는 너무도 절대적인 것으로 여겨져 그를 두렵게 하던 그것.
그 신비로운 힘에 매료된 가스터는 그것의 원리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그것에 접근하겠다고 다짐했고, 영혼을 가진 인간을 직접 탄생시키기로 결심했었던 것이다.
가스터가 만들어낸 인간은 그 영혼이 직접 하늘을 쳐다보며 그의 무한한 능력을 증명해낼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야망이 최후에,그 결정적인 영혼 때문에 앞길이 가로막혀 버렸다.
가스터는 인간의 영혼이 무엇인지 몰랐다. 감조차 잡을 수 없었다. 눈에 보이지도,만질 수도 없는 데다 자신이 가지고 있지도 않은 그것을 어떻게 연구할수가 있을까? 그것은 마치 다른 세계를 이해하는 것과 같다.
해답을 찾지 못했을때의 막연함과 불안함이 그를 태워 죽이고 있었다. 가는 완벽에 대한 갈망과 열정,광적인 집착과 충동만이 회오리치는 세계에 갇혔다.
그러나 결코 포기하지는 마세요 가스터. 어디까지나 자신을 밀어붙여 버리는 거예요. 완벽하지 못할 바에야 죽는 편이 낫지요. 모른다는 건 수치이고 할 수 없다는 건 굴욕 입니다.
원하는 일이라면 세상의 모든 우연이 당신을 도울 것이고,원하지 않는 일이라면 운명도 손을 내려버릴테니.
공중을 떠도는 작은 악마와 천사들이 그에게 속삭였다.
*
W.D가스터 박사는 꿈의 실현을 고작 한발짝 앞에 두고선 천천히 미쳐가고 있었다. 위대한 광기와 천박한 집착이 그를 물로 늘어졌고 초조함과 절박함마저 느껴졌으나
어떻게 하면 아이가 영혼일 가지게 될지 알 수 없었다.
신체조직도,생명도 그 나름의 원리가 있었는데. 영혼,영혼이라니. 너무나 비이성적이고 투명하다.
그러니까 아이는 살아있는 사람과 다를 바가 없었으나 살아가려는 마음 자체가 없는 상태인 것이었다.
식물인간이나 영원히 잠에 빠진 공주처럼.
영혼이란 한낱 신의 피조물인 가스터 박사가 도달할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의 것일까? 하지만 가스터 박사에게 절대적인 불가능이란 사형 선고나 마찬가지였다.
\"네가 깨어나 내게 말을 건다면,네 모든 동작이,습관이,내게는 무한한 기쁨이 될 것이란다.\"
아무리 아이에게 속삭여보아도 반응은 없었다.
과학자임에도 신과 사후세계를 믿고 예술에 심취하곤 하던 가스터 박사는 온갖 미신적인 방법들까지 적용해보았으나,진전은 없었다.
그는 날이 갈수록 피폐해져갔고 곧이어 연구소에 찾아오던 모든 사람이 그를 걱정하게 되어버렸다.
그가 만들어낸 인간 아이에 대해 알고있는 사람은 지하에서 그의 조수와 추종자들과 괴물들의 왕 아스고어가 전부였는데, 인간에게 지극한 관심을 갖고 아내에게 일부러 부탁해 양자녀의 것과 비슷하게 만들었다는 옷 까지 선물로 전해주던 아스고어는
처음에는 이 인간이 자신의 아이들과 뛰노는 걸을 보고 싶다며,차라도 같은 인간 친구가 생기면 기뻐할것 같으니 뭐니 하며 만들어진 아이가 하루빨리 깨어나길 바라곤 했으나 이후 가스터가 나날이 초췌한 몰골이 되어가자 이 실험은 이만 중단하는것이 어떻겠냐 말해오기까지 했다.
실제로 그때쯤 가스터는 당장 쓰러져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였다. 그의 추종자들이 아무리 화려한 식사를 차려내어도 죽지 않을 만큼만 먹었고,그의 조수가 휴식을 권해와도 전혀 자지 않았다.
해답이 보이지 않는 꽉 막힌 상태에서 잠을 자거나 쉬는 것은 그를 고문하는 짓일 뿐이었다.
그가 정말 가망이 없다고 생각하고 자살마저 결심했을 때쯤, 지하에서는 아주 끔찍한 비극이 벌어졌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것은 그에게 아주 색다른 방향을 제시하는 구원이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