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걱"
나는 몸에 먼지를 잔뜩 묻힌 채 또 한 마리의 괴물을 아무렇지도 베어넘기고 다시 걷기 시작한다. 분명 처음에는 이들을 죽이는 것에 죄책감과 괴로움을 가지고 있었을 텐데도 이제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마치, 놀이터에서 장난을 치고 있는 아이가 개미를 함부러 죽이는 것에 대해 어떠한 감정도 느끼지 못하는 듯이.
언제부터 이것들을 베고, 찔렀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그래도 기억나는 것이 있다면 맨 처음에는 나도 이들을 굳이 죽이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내가 이 정체불명의 땅으로 떨어졌을 때부터 이미 엇갈리기 시작했을 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마치 어머니처럼 자애로웠던 토리엘과 헤어졌을 때부터.
맨 처음 토리엘과 만났을 때는 이렇게 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괴물과 조우하고, 그들의 공격을 피하고 있으면 어느새 토리엘이 와서 괴물들을 몰아내줬다. 하지만 그것도 문 밖으로 나가기 전까지만 해당되는 일이였다.
내가 문 밖으로 나가자 헌신적인 보호자는 사라졌고, 나는 혼자서 길을 개척했어야 했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현재의 내가 만들어졌다.
맨 처음에는 나도 평화적으로 해결하려고 여러 번 시도했었다. 하지만 대화로도 통하지 않는 상대들이 나타나자 나는 공포에 질렸고, 그리고 공포에 질린 나는 언제 손에 들렸는지 모를 이 칼로 그들을 겨누고서는 모든 죄책감과 괴로움을 무시하며 하나 둘 씩 베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종장에 이르러서는 온몸에 먼지투성이가 되버린 이런 모습이다. 언제 달라붙었는지 모를 자칭 나의 파트너인 유령은 지금까지 내가 그들을 살해하는데 정당성을 부여다가 지금에서는
"이제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출구가 눈 앞에 머지 않았어! 우린 해낸 거야!" 같은 달콤한 말들로 내 귀를 간지럽힌다.
…확실히 끝이라면 끝일지도 모르겠다. 나의 몸과 지나온 거리는 괴물들의 시체라고 볼 수 있는 먼지투성이로 얼룩져 있었고, 샌즈는 그런 먼지투성이가 되버린 나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까. 자신의 이웃, 친구 그리고 마지막으로 동생마져 죽인 나의 모습이 샌즈에게는 어떻게 비춰지고 있을까. 감정없는 냉혈한 학살자? 아니면 단순한 괴물?
──괴물의 시점에서 불리게 되는 괴물이라니, 정말 웃기지도 않는 농담이다. 어쩌면 괴물이라는 말보다는 악마라는 표현이 어울릴 지도 모르는 일이다.
악마라고 하니 상당히 낯간지로운 호칭이다. 이 표현은 그만두도록 하자. 애초에 적이 될 것을 앞에 두고 시시껄렁한 농담을 하고 있는 것도 이상하기도 하니까, 이런 아무런 의미도 찾을 수 없는 잡생각은 그만두도록 하자.
지금은 내 눈 앞의 복수심에 표정이 일그러진 채 자신의 무기와 같이 서있는 저 뼈다귀를 해치워야할 때다.
괴물이 잘못했네
몰살루트 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