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만사가 자기 생각대로 굴러가지는 않지. 나는 이제 겨우 19살이지만 잘 알고 있어. 하지만 말이야, 잘 안다고 해서 그걸 또 자기 인생에 적용하기는 참 힘든 일이지. 안 그래?

내가 레지스탕스에 들어간 건 거기서라면 내가 어떤 특별한 존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였지. 딱히 불합리한 현실을 개혁해 보자는 거창한 이유는 아니었어. 그렇게 대의를 위해 목숨을 걸 만큼 대단한 괴물은 아니거든, 나는.

하지만 레지스탕스라는 집단도 그렇게 제대로 된 집단은 아니더라고. 대장인 아스리엘씨나 첩보부의 머펫씨는 강하고 좋은 괴물들이지만 당장 식량난에 시달리는 건 마찬가지거든. 그것 때문에 싸움도 나고. 감자 10개로 50인분을 준비한 적도 있다니까? 취사병 노릇도 못 해먹을 짓이야. 아, 그래. 이건 비밀인데, 나는 식사 담당도 겸하고 있어서 나름대로 굶지는 않고 살아. 하하하.

서두가 너무 길었던 것 같네. 그래, 그 날도 언제나와 같은 하루였지. 나는 점심 식사 준비를 끝내고 감시 카메라를 찾으러 다녔어. 레지스탕스라는게 언제나 인력난에 시달리기 때문에 한 괴물이 여러 일을 하는 건 흔한 일이야. 나는 식사 담당이랑 스노우딘의 감시 카메라를 찾아서 선을 잘라놓는 역할이라는 거지.

이게 또 상당히 지루한 작업이야. 치안 유지대 녀석들이 게으른 건지 멍청한 건지, 감시 카메라의 위치가 변하는 일은 없거든. 그래서 매일 같이 같은 곳을 돌면서 가위로 전선을 자르는 거야. 뭐, 사실상 산책이나 다름 없는 일이지. 그 산책을 하루 종일 해야 한다는게 문제긴 하지만 말이야.

그렇게 두 시간쯤 돌아다녔을까? 폐허 입구에서 시작해서 빙글빙글 돌아서 처음 나오는 초소에 닿았을 때였어. 이 초소는 샌즈라는 난쟁이 해골이 담당하는 곳인데 나는 한 번도 그 녀석이 보초를 서는 모습을 본 적이 없어. 그래서 아무런 긴장감도 없이 언제나처럼 근처까지 갔지.

그런데 웬걸 난생 처음 보는 어린 괴물이 있는 거야. 피부는 털 하나 없이 민둥민둥하지, 스노우딘에서는 보기도 힘든 노란꽃으로 만든 화관을 쓰고, 입고 있는 옷은 또 어찌나 큰지. 소매가 바닥에 질질 끌렸으니까.

아이는 초소 옆 가로등 뒤에 우두커니 서있었어. 두리번거리는게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 처럼 보이기도 했지. 하지만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어. 그 모습에 호기심히 동했지. 나는 발소리를 죽이고 천천히 다가갔어.

어느정도 가까이 다가가서 나는 알 수 있었어. 그 녀석은 괴물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걸. 물론 경험많은 늙은 괴물이라면 한 눈에 알아 봤겠지만 보다시피 나는 이제 막 성인이 된 괴물일 뿐이라고. 그 전까지 인간은 본적도 없어.

천재일우의 기회였지. 상상해봐. 인간만 있다면 이 지하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물론이고 나는 모든 괴물에게 칭송 받는 영웅이 되는 거야. 게다가 상대는 아주 어린 인간이니까 무서울 건 하나도 없었지. 오히려 귀엽기까지 했다니깐?

하지만 맨 처음에 말했지? 인생 만사는 자기 뜻대로 돌아가지 않는다고. 여기서 조차 내 인생은 내 생각대로 되지가 않더라고.

내가 인간 바로 뒤에 섰을 때, 아이가 눈치를 채고 뒤를 돌아봤어. 눈이 마주쳤지. 나는 당황해서 최대한 인간이 겁먹을 만한 표정을 지어 보였지. 그랬더니 그 앙큼한 꼬맹이가 뭐라고 했는지 알아?

엄청나게 재밌는 걸 보는 얼굴로 '고양이다!' 라는 거야.

나참.

그 이후로 내 인생은 완전히 꼬여버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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