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쁜 일이 있을때에만 술을 먹는데 그게 참 다행스러운 습관 뭐 버릇 그런것같다
나쁜 일이 있을때는 술을 마시지 않는데 딱 한번 귀국하고 잤던 친구네 집에서
심하게 마시고 울면서 주정을 했던적이 있긴 하다
소리도 안내고 눈물만 죽죽 내더라고 말도 잘 안하고 조용히 쉬엄쉬엄
의미심장하고 자기가 도울 수 없는게 확실한 말만 해서 절망적이었다고 미안했다고
그때 너 너무 애처로웠다고 그런 말을 나중에 메로나 먹으면서 했지
당시에 무슨 말을 했는지는 대체로 까먹었다
기억해내려고 하면 무슨 말을 했는지 다 써낼수있지만
그리고 당장 카톡이라도 하면 무슨 내용이었는지 알려줄게 뻔하지만
오늘이 되니 별로 떠올릴 필요도 없어진 이야기가 되어서 이렇게 글로 쓰는것도 우스운 뭐 그런것들
목요일 이래로 삼일 연속 술이다 여태 혼자 마시다
어제밤만은 여럿이 술을 마셨고 그 느낌이 평소보다 더 좋았다
그냥 이번은 오랜만에 한명도 빠짐없이 모인 날이라서 그 어느때보다 웃긴 일도 많고 즐거웠다
이십사일날 문득 안본지 꽤 오래된 친구가 자처하면서 우리 만나자 이러길래
니가 왠일이냐고 애초에 약속을 주도하는 친구는 따로 있었어서 무슨 안좋은 일이 있나
내심 걱정도 했었는데 뭔가했더니 그냥 여행다녀올 예정인데 돌아오는 날 기념품 주고싶댄다
더 안본지 오래된 친구까지 오게되서 저녁 내내 야 우리 그냥 다같이 살자 너무 좋다 그런 얘기나 하고 헤어졌지
우리 요새 자주 안보는것같다고 그런 말이 나오는데도 사실 헤아려보면 여태 거의 한달에 한번꼴로 만나긴 했다
그냥 몇명이 빠지고 항상 나오던 친구들만 나왔었던거고 아무튼 어제 밤 만큼은 그래서 더 좋았다
밥을 먹으며 오랜만에 본 친구가 조금 어색하다 밥도 다 먹어가고
자리를 옮겨 술을 마시다보니 점점 그런것도 없어져
항상 가던 똑같은 술집인데 평소엔 소리를 한참 질러야 뭐라고 말하는지 들릴 정도로 떠들썩한 가게가
어제만큼은 우리 오던 그 어느때보다도 조용해서 야 여기도 망하려나보다
이화주막도 망했는데 여기도 망하면 우리 이제 어디서 마시냐 그런 얘기나 했지
그래서 이날은 우리가 제일 시끄럽게 술을 마셨다
술집을 나오는 길에 가로등이며 간판불이며 사진이 제법 잘 받길래 우린 사진을 엄청 찍었다
기념품중 하나로 나눠준 과자를 씹어먹다 친구가 그러더라
그리고 여행은 별로였다고 유적지며 절이며 아주 짜증나는 경험이었다고
절만 다섯개를 봤는데 당장 귀국하고싶었다며 부산이나 제주도가 훨씬 낫다고
그런 얘기를 듣는데 마지막으로 여행 갔던 내 기억이 떠올라서 그냥 씁쓸했다
그렇게 열한시쯤 헤어져 나 재워준다는 친구랑 택시를 탔다
얼마전에 이사했다던 동네가 어디쯤인지
택시 안에서 주변 두리번거리고 아 어디 사는지 대충 알겠다 그런 얘기나 하다 오분도 안되서 내렸다
이렇게 가까워졌냐며 그런 얘기도 하고 편의점에 들렀다 집앞에 있는 놀이터에서
날씨가 너무 선선해서 들어가지 않고 가로등 밑에서 꽃가루 날아다니는걸 구경하며
사귄지 이백십팔일된 새 애인이랑 여기서 뭘 했는지 이런저런 얘기 들으면서 한잔 마시고
너 헤어지던 날 진짜 볼만했는데 시간 빠르다고 나랑 Y랑 너랑 그 날 종각에서 드라마 찍었잖아
둘이 잘될줄 진작 알았는데 뭐 그게 벌써 작년 일이네 그런 얘기하다 술식겠다고 집으로 들어갔다
나노블럭이며 장난감이며 그런게 잔뜩 방에 있더라 방이 좁아져서 둘중 하나는 바닥에서 자던가
한침대에서 자던가 해야한다고 하길래 뭔가 했더니 상자도 안뜯은게 서른개는 되고
진열한것만 해도 수두룩해서 방이 왜 좁다고 한건지 이해가 됬다
전에 살던 집에 자러 갔을땐 이런 취미가 없었는데 며칠전 한창 재밌게 한다더니
이렇게 잘하는 줄은 몰랐었지 아무튼 그날 나중에 술이 모자라서 밖에 나온 김에 또 친구가 뽑는걸 구경하고
나는 뭐 이런걸 애초에 잘 못하니까 이천원 정도 날렸지 친구는 엄청 잘해서 내가 시끄럽게 방정을 떨었었다
아무튼 장식장 하나 살까 생각중이라고 그러길래 싸구려 물건인데 그냥 버리라고 하려했더니
의외로 괜찮은거 엄청 많다고 이것저것 보여줬다
흔드는 동안만 불이 들어오는 젤리 요요같은거나 토토로 모양 무드등같은건데 무드등 그건 되게 괜찮았다
의외로 웃긴것도 많고 클럽노래 틀어두고 그거 휘두르며 장난치다 뭐 야한 얘기가 떠올라서
나는 나중에 애인이랑 성인용품점에 가보는게 소원이라고 그런 얘기도 진지하게 했다
그 젤리요요 감촉이 오나홀같은 느낌이었다 사실 만져본적 없지만 아마 이런 감촉 아닐까 이런 얘기를 하다보니
성인용품점은 왜이렇게 간판이 촌스럽지 나는 고속도로에서 파는것도 봤다 근데 그걸 누가사지
뭔지 알겠다 그거 트렁크 열어놓고 현수막 걸려있는 그거지 응 그거
차 세우면 다 쳐다볼텐데 너 생각해봐 거기다 차 세운다고 경기12 가5678이네 이런걸 일일히 누가 기억하겠어
맞네 난 그럼 거기로 가야겠다 그런 식으로 구체적인 계획들
그런데 난 그런 곳 말고 그 촌스러운 간판에 창문 스티커로 안이 하나도 안보이는
게다가 꼭 뜬금없는 장소에 있는 그런 종류의 성인용품점으로 가고싶다고 말했다
내 생각엔 둘중 하나일것같다고 내가 항상 생각하던 이미지를 떠올려 가게의 내부를 설명했다
트리 조명등같이 색깔알맹이가 달린 전기줄을 천장 모서리마다 빼곡하게 둘러서
정육점처럼 시뻘건 조명인데 어두컴컴한 와중에 정신없이 물건이 그득그득하고
요만한 딜도부터 이따만한 딜도까지 주루룩 사이즈별로 한쪽 벽에 진열했을거라고
니꺼 내껄 가리키며 말하니까 요요로 한대 맞았다
혹은 아주 깔끔한 오피스처럼 되있을것같다고 들어가면 새하얀 조명에
선반마다 같은 제품들이 나란히 차곡차곡 쌓여있을것같다고
둘중 하나일것같다고 아무튼 난 항상 그렇게 생각했다고
그런데 혼자 가거나 너랑 가는게 아니고 왠지 몰라도 애인이랑 딱 가보고 싶다고
섹스박물관 가듯 마트에서 장을 보듯 한번 가보고싶다고
당장 인터넷에 검색하면 어떤 곳인지 뻔하게 알 수 있지만 그게 싫다고
그니까 우리 둘중 누가 먼저 가는 일이 생기더라도 절대 서로 스포일러하지 말고
나 갔다왔다 정도만 말하자고 맹세주도 마셨다 커플샷하려했는데 택배상하차 알바갔다가 멍이 들었댄다
평소에도 잘 넘어지고 다같이 어디 먼곳 놀러가서는 취해서 통조림 따다 손가락을 크게 베여서
그때 진짜 난리가 났었다 아무튼 그런 맹한 친구다
거기 갔다온 후로 오른손 약지가 이상하게 경련한다고 자 보라면서 바닥에 손바닥을 펼쳤다
움직이려고 하는게 아닌데 피곤한 다음날 눈 경련하듯 혼자 저절로 움직인다고
정말로 손가락이 혼자 움찔거리면서 까딱까딱 들어졌다 놓아졌다 했다
이거 그거 아니냐고 인터스텔라 모스부호 그거 미래의 너로부터 뭔가 오는거라고 스테이 하라고 했다
왜냐면 나도 그렇고 친구도 그렇고 요즘 참 행복했기 때문이었다 그래 스테이 하자 그러면서 또 웃었다
침대가 하나밖에 없어서 둘이 나란히 누워서 이런저런 얘기나 하다 얘가 먼저 곯아떨어지고
잠기운은 보통인데 술기운이 가득해서 뭐 곧 잠들것같았다 그러다 잤다 친구 코고는 소리가 마지막 기억
일어났는데 새들이 시끄럽게 난리다 친구는 고삼때 처음 만났던 그때부터도 이미 새를 키우고있었다
십자매라는 새인데 초등학생때 시집에서 본 그 단어가 예뻐서 찾아보았던 백과사전의 사진같은것보다
실물이 훨씬 귀엽고 괜찮았다 제법 똑똑하고 애교있었다
쟤네 밥달라고 저러는거야 중얼거리더니 친구는 얼굴까지 이불 덮고 자버린다
화장실이나 갔다가 새 구경하다 그렇게 있었다 친구네 거실에는 오랫동안 기르다 죽은 강아지 제단이 있다
가족이나 다름없는 애완견이어 우리 대부분이 친구네 개에 대해 자세히 알고있었다
어느날 많이 아파서 병원에 있다고 그랬고 그러다 어느날은 결국 죽었다고 그랬다
상태가 좋아졌길래 병원에 온가족이 들렀다 귀가중이었는데 갑자기 죽어버렸다고
귀가하는게 아니었다며 마지막 순간을 못봤다며 많이 힘들어 했었다
어젠 이거 보라며 장난감이랑 좋아하던 간식이랑 사료 담겨있는 밥그릇 그런걸
사진이랑 뼈가루로 만든 자갈같은것과 같이 둔걸 내게 보여줬었다
집 도착해서 편한 옷으로 갈아입다 이리 오라며 보여주더니 친구가 그립다며 그냥 그런 말을 했다
핸드폰을 보니 열한시 십육분이다 어젠 몇시에 잤나 했더니 갤로그 보니까 네시쯤이다
기억이 끊어진게 아니라 친구 방에는 시계가 없었고 손목시계는 풀어서 어디 던져두었기에 어젠 그걸 몰랐다
그저께였던것같다 혼자 마시다 너무 취해 술마시는 동안 한 일이 다음날 기억이 안났다
그날도 역시 기분이 좋아서 마시기 시작한거였는데 막판 하이라이트가 전혀 기억 안나서
약속장소로 가던 지하철에서도 한참 생각하다 결국 도착할때까지 떠올리지 못했다
잊어버린게 뭔지 모르겠지만 좋았던 기억인게 확실해서 더 짜증이 났었다
근데 신경이 쓰였다 어제만큼은 근래 삼일간 마신것 중에서 가장 많이 마신 날이었는데
이런 세세하고 자잘한 모든 기억이 전부 생생했다
그렇게 많이 마셨지만 말을 많이하고 계속 웃고 혀와 머리와 얼굴근육을 여럿 사용해야해서 그랬나
아무튼 다섯시간 정도를 잔이 빌 틈도 없이 마셨는데 뭘 잊어버리거나 필름이 끊기는 일이 없었다
피쳐 두개에 캔맥주 두개 이슬톡톡 두개 막걸리 하나 소주 네병
술이 모자라서 새벽에 몇번 나갔다 와야만 했었다
첫번째에는 손님대접이라며 친구가 혼자 갔다 그리고 두번째 세번째는 나도 함께
막걸리는 사온게 아니라 냉장고에 있던거지만 아무튼 편의점 알바가 우리 동네 알바랑 달리
붙임성있어서 너네동네 살만하다 좋겠다 그런 얘기나 하면서 집에 왔다
사실 막걸리 한잔은 친구 어머니가 드셨다 난 원래 안주를 잘 안먹는다
그런데 어제 어머님이 골뱅이무침 해둔걸 주시는데 그게 얼마나 맛있던지 아무튼
그래서 어제만큼은 안주를 잔뜩 먹었다 그저께는 안주없이 소주만 마셨는데
안주없이 먹는 습관 때문에 그날 그렇게 취한거고 그래서 기억이 나간건가 그걸 잘 모르겠다
좋은 추억이나 우리 다짐과 계획같은 뭐 호감적인 내용을 잊어버린게 아니라 다행이긴 한데
그렇다고 해서 나쁜 기억 위주로 필름이 끊기는것도 아니라서 원리를 잘 이해할 수 없었다
나쁜 일이 있을때는 술을 마시지 않는 이유가 이것 때문인것같기도 했다
친구는 너무 많이 마셔서 머리가 아프다 좀만 더 자자 하면서 이불에서 굴러다닌다
오히려 난 술먹은 다음날이면 심장이 뛰어서 아침에 잘 일어나게 되던데
자기 전에 술 마시면 잠도 잘오고 아침에도 잘 일어나지고 간에는 안좋다지만 뭐 그렇다
솔직히 문제는 가끔 필름이 끊기는것 뿐이지 그밖엔 다 좋았다
난 대학교 신입생때 처음 술을 마셔본 이래로도 술을 먹고 머리가 아팠던적이 한번도 없었다
술 마신 다음날이면 머리가 너무 아프다 우리 얼마나 마셨지 그런 얘기를 하면
어 그치 그런가보다 맞장구나 치다가 말았지
두통도 겪어본 일이 드물고 편두통을 앓는 친구며 전 애인이며 그런 사람들은 많이 봤지만
아무튼 나는 술을 먹든 잠이 오지 않든 걱정거리가 있든간에 머리가 아파본적이 없었다
입맛도 없고 물만 마시다 스크랩 해둔 글을 읽는다 너 내버려두고 먼저 나가도 되냐고 물어봤다
친구네 집에서 밤새 마시고 자는 날이면 다음날이 항상 심심하다
술만 먹으면 눈이 일찍 떠지는데 적어도 날 재워주던 친구들은 다 늦게 일어난다
그나마 오늘은 나도 늦게 일어나서 덜 심심했다 십자매 사진이나 잔뜩 찍었다
나 오늘 서점에 간다니 친구도 같이 간다며 애인이 연락 안되는데 늦게 만날것 같다고 같이 가잰다
두시간 후에 신세계에서 데이트하기로 했는데 마침 서점도 거기있다 점심먹고 같이 나가자고
술자리에서 다같이 가지고 놀던 어플이 있는데 그걸 우리 둘다 누워서 빈둥거리며 만지고 놀았다
얼굴을 바꿔주는 어플이었는데 자고 일어나니 그게 어제보다 더 웃겨서
나랑 친구는 너무 웃어서 나는 눈물이 찔끔 나왔다 그걸 안일어나는 지 애인 보내주었는데도
여전히 답장도 전화도 없어서 그러다 전화를 했더니 머리가 너무 아파서 조금만 더 잔다고 그랬다
나는 빨리 나가자고 보채고 친구는 한시간만 이따 나가자고 그냥 그렇게 계속 누워서 놀다 앉아서 놀다 했다
삼각김밥으로 볶음밥 비슷한걸 해줬는데 밥먹고 다 씻고나니까 여자친구가 일어났다며 전화가 왔다
친구가 나더러 사과좀 먹으라며 칼이랑 접시를 가져다놓았고
사과를 보니까 아버지 생각도 나고 아무튼 과도를 내가 받았다
난 꽤 오랫동안 병원에 있었는데 병원을 나올 무렵엔 사과를 깎는 기술이 아주 발전해있었다
그땐 아직 조금 추웠는데 이젠 이렇게 따뜻해졌다
병원에 있는 동안 정말 사과를 한참 먹었다 애초에 사과를 좋아하지도 않는데
그냥 사과를 많이 깎았다 내가 먹으려고하기보다 그저 과일 깎는게 재밌었던것같다
누가 오면 부지런히 깎아서 주고 그랬지 한줄로 깎아내서 놀러온 친구를 철썩 철썩 때리고
그냥 재밌는 장난같은거였다 병원에 오래있으면 머리가 나빠지는 느낌이라서 그냥 뭐라도 했다
손을 놀리는거니까 왠지 치매에 좋을것 같다고 지금 생각해보니 그런 생각도 든다
과일을 깎아본적이 있어야지 너무 못나게 깎으니 처음은 같은 병실에 계시던 할머님이 깎아주셨다
나중되니까 요령이 생겨서 너 왜 이렇게 잘깎냐고 사촌누나가 그런 말도 했었지
나 어렸을적부터 아버지 성격은 워낙 엄하셔서 물론 요새는 오히려 순하시다
하루는 고모댁에 갔다가 고모가 깎아주신 사과에 사과씨가 붙어서 먹기 싫다고 투정을 부렸더니
아버지가 고함을 버럭 지르면서 집에 있는 사과 다 가져와라 하시고 그 자리에서 사과를 다 쪼개어 내더니
사과 씨앗만 잔뜩 뽑아다 내가 그 씨앗 다 먹지않으면 가만 안두신다고 무섭게 화내셨었다
통화내용이 다 들린다 목소리가 큰건지 그냥 동네며 집안이 조용해서 그런건지
친구 여친도 전날밤에 술을 마셨는데 다음날 머리가 아파서 계속 잤더니 자면 잘수록 머리가 아프댄다
나만 빼고 다 머리가 아프다 차라리 나도 머리가 아프고 기억이 안끊기면 좋으련만
얜 기억력만큼은 엄청 좋은 친구고 어제 술자리에서도 감탄할정도로 기억력이 좋아서
우리 생일을 줄줄 읇길래 역시나 했다 차라리 너랑 니 여친처럼 머리가 아픈거였음 좋겠다고 그런 소리를 했다
밖으로 나왔다 친구 어머님이랑 동생 인상이 참 좋다 어제 잤던 친구네 집은 이제보니 보건소 앞에 있었다
초등학생때 반 애들이랑 다같이 두줄 서서 걸어가 예방접종을 맞았던 보건소
너 그런건 기억하는데 왜 술먹으면 가끔 치매가 오냐고 친구가 뭐라 그런다
날 알콜성 치매라고 놀리길래 난 우리 저기 음주클리닉이나 들렀다 갈까 이러고
집근처에 병원은 왜이리 많은지 니 스테이 그거 병원 꼭 가보라고 뭐 그런 얘기나 했다
날씨가 좋아서 신세계있는 역까지 걸어서 갔다 날씨가 정말 너무 좋았다 전날 술마시다 부르던 유치한 노래에
친구 이름을 넣고 불렀더니 좀 웃겼다 친구는 그걸 녹음해서 여친한테도 보내고 단톡방에도 보낸다
그렇게 역까지 친구랑 한참 장난치면서 걸어오다 에스컬레이터를 탔다
몰랐는데 역 뒤에 떡하니 성인용품점이 생겼다 세련된 바나나 그림이 그려진 그런 간판이라서
나도 친구도 어이가 없다고 섹스의 도시 다됬다고 그런 얘기나 했지
친구는 덥다며 반팔입을걸 그랬다고 그랬는데 서점 안은 제법 서늘해서 벗어뒀던 가디건을 다시 입었다
친구가 이거 너 기억나냐며 난쏘공을 집어왔다
고등학생때 전교 국어 수행평가로 저 소설을 읽고 시험을 봤었다 전교생이 아마 다 기억할거다
사십문제가 넘는 짤막한 질문들이었는데 난 그중에서 딱 한문제만큼은 답을 모르겠어서 억울했었다
자이가닉 효과라고 다음날 위장이 쑤실정도로 술을 퍼먹어서 알콜성 치매가 올정도인데도
몇년이고 더 된 저런 기억이 생생한게 아무튼 이해가 안간다 박쥐라는 단어만으로는
영화던가 배트맨이라던가 황새만한 박쥐날개를 두팔벌려 들고있는 외국인 사진같은게 떠오르는데
거기에 난쟁이라는 단어만 추가하면 교실 냄새며 일렬로 맞춘 시험대형이랑 시험지 넘기자마
문항수에 탄식하는 가장 큰 목소리가 누구였는지 내 앞자리에 누가 앉았던가까지 전부 기억이 난다
답은 박쥐였고 그때 내 짝이었던 전교 1등하던 친구는 전교에서 유일하게였나 세명이었던가
그 문제를 맞춘 학생이라서 옆반애들이고 선생님이며 역시 그애답다라고 말했고 뭐 그랬다
추천받은 책을 몇 페이지씩 읽다 뭘 살지 고민됬다 사고싶은게 너무 많지만
가방도 무겁고 애초에 책은 빌려서 본 다음에 마음에 드는 것만 사는 스타일이라서
한꺼번에 막 사자니 마지막으로 소설을 샀던 때 아마존 1위 도서라며 추천서가에 홍보하던걸 샀다가
좀 실망했던 기억이 나서 한참 이것저것 비교해서 읽어보다 두권만 샀다
저번에 딱 한번 만난적 있는 친구 새 애인 얼굴이나 한번 더 보고 나는 집에 간다
지하철 타서 샀던 책중에서 얇은 책을 먼저 읽었다 생각보다 얇아서 살까말까 고민했는데
몇페이지 안읽었는데도 흥미진진해서 결국 샀다 살땐 몰랐는데 이제 보니 표지가 좀 별로였다
아무튼 도봉산을 지나니까 등산객들이 한참 타더니 내 앞에 등산복 입은 부부가 서로 물을 나눠먹더라
밤새 술마신 다음날이면 물을 한두통씩 꾸역꾸역 잘 마시는 나라서 그걸 보고있자니 갈증이 심했다
초록색 투명한 물통에 담긴 물이 차가워서 통에 물방울이 맺힌 모양이 너무 시원해보였다
그러다 부부가 말하며 물을 나누어먹는 모양새가 정다워서 잠깐 멍하게 있다가 다시 책을 봤다
노래는 켜두지 않았지만 이어폰이 귀에 꽂혀있었던 탓에
무슨 대화였는지는 또박또박하게 정확히 듣지는 못했다
애초에 남이 얘기하는거에 관심을 안 들이는데 그냥 그런게 단편적으로 귀에 들렸다 정다운 대화 그런것
분명 무언가 들었었고 거기에 대한 이런저런생각을 했는데 지금은 또 기억이 안나고 인상만 남았다
이렇게 뭔가 조금씩 까먹게 되는데 멍하니 핸드폰이나 보다가 노래나 조금 듣다가 하는게 아니라
머리 속으로든 글씨로든 가리지않고 기록을 남겨볼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일기장이란건 새해마다 잠시 시작했었다 애초에 열장도 못쓰고 버리고 그런 일이었는데
경험했던것등 경험한것들을 조금씩 글로 남겨두면 어떨까
경험이 부족한것은 아닐까 여행이라도 혼자 떠날까 그런 생각이나 조금 들고 그만두려나
내 자신이 더 조금씩 우월하고 나아져야한다는 강박감이나 습관이 있는데
글 쓰는 동안은 그런 것에 신경쓸 필요가 없는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눈치를 챘던 어쨌던 다들 그렇게 사는거니까 아무튼 조금씩 써보자
그저 내 자신 지금까지 생겨온 나 자신을 절로 기억하고 기록하는 방법인게 좋다
더 나아질 필요도 없고 내 안에 있는 것들을 그대로 끄집어내는게 좋아
더 잘써야한다 그런 부담같은건 없이 그저 생각을 손가락으로 하는거라고 그런 생각이다
오늘 문득 이렇게 나에 대해서 이것저것 써보는걸 처음 해보지만 손글씨로도 무언가 남겼던 때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내 생각을 글로 썼던게 비행기에서였던것같다
애인이랑 헤어지러 가는 길이었고 생각이 착잡하여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고 물도 마시지 않고
손바닥보다 작은 수첩이 마지막 페이지가 다 넘도록 내가 기억했던것들을 다 적었다
마지막엔 수첩 겉지의 안쪽까지도 점점 작아지는 글씨로 빼곡하게 채웠고
울고있는걸 혹여나 옆자리의 여자들이 신경쓸까 그게 거북해서
창밖을 쳐다보면서 아 죽어버리고싶다 그런 생각을 했지
비행기 옆자리엔 여자 두명이 앉아있었고 둘다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계속 얘기하는 폼이
가족이나 무엇같았는데 아무튼 그랬다 나중엔 영수증이며 티슈며 손에 잡힐적마다 그리고
그 순간에 떠오르던 애인 모습들을 사물과 하나씩 연결해서 적고 또 적었다 그게 작년 이맘때 일이었는데
지금이야 폰에다 쓰지만 그땐 무언가를 쓴다는건 종이에 손글씨로 하는거였으니까
머리속에 활자가 가득한데 놓치기 전에 써두어야하는데 하면서
잊어버리는걸 목표로 하고있지만 그냥 이런 생각도 경험도 기억도 있었다고
잊을 예정이지만 내가 잊더라도 어딘가 내용이 남겨졌음 좋겠다고 그런 애매한 의미의 행동같은것
쓰던 당시에는 그런 생각도 없이 왜 시작한건지도 모르는데 그냥 손 움직이는대로 쓴건데
언젠가는 무엇을 보아도 그 사람을 거기에 연관짓거나 떠올리게 되는 일이 없게 되더라도
혹시 고의로든 선의로든 수첩을 가져다 버리지 않는 한에서 언젠가 다시
언젠가 다 까먹었거나 혹은 부분적으로 기억하던 것들을 다시 들춰볼지도 모르니까 이러나보다
진짜 다행이다 의문이다 하면서 이 모든게 일년정도 걸렸구나 하며 지금와서 그런 생각이 든다
멍하니 있게 되는 날이 좀 줄어드는것같고 환승하러 한참 통로를 걷고있거나 버스에 앉아있거나
그런 동안에도 귀가하는 내 머리속으로는 글자를 계속 썼다
샤워하다 기막힌 생각이 들어서 글로 남겨두자 했더니 막상 욕실을 나오고나니
완벽했던 생각들이 어렴풋하게 기억나고 써서 남길 정도의 생각은 아니었나 그런 생각도 하다
생각하는걸 전부 저절로 활자로 바꾸어 그걸 저절로 기록을 남길수 있으면 정말 편리할텐데 그런 생각도 해보고
엄격 진지 갤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