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모는 원래 윙딩체임. 기를 쓰고 윙딩체로 대사를 다 썼으나 디씨는 출력이 안 되네.
***
“-특히 이 신호의 변화는 시공간의 반복이 아닌 다른 이유로는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이유는 아직 저도 잘 모르겠지만 어떤 특정한 시점에서 시간이 반복되었던 것 만은 확실합니다.
특이한 점은 인간이 있을 때만 이 현상이 일어났다는 거죠.”
“그럼 자네가 말하는 단절이 인간이 나타나서 생기는 이상 현상일 수도 있지 않은가? 꼭 시공간의 반복으로 인한 것은 아닐 수도 있지.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네.”
“다른 이유 때문일 수도 있지만 시공간의 반복 때문인 건 정말, 확실-“
“그래. 자네 심정 이해하네. 사실 반증이 불가능한 문제니. 이 정도면 사실 훌륭하네. 심사할 때 대꾸할 말 정도는 더 완벽하게 생각한 필요는 있다만-“
“(교수님!)”
가스터 박사와 샌즈의 뒤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윙딩이 헐레벌떡 뛰어오고 있었다. 윙딩은 좋게 말하면 느긋하고, 나쁘게 말하면 의욕 없고 게으른 박사과정 학생이었다.
매번 가스터를 피하기에 바쁜 윙딩이 가스터를 찾는다는 건 무언가 큰 일이 일어났다는 뜻이었다.
“윙딩, 무슨 일인가?”
“"
("인간이…여기 떨어졌어요…그냥 나타난 것이 아니라 모두를 죽이고 있었습니다… 빨리 왕실 근위대에 연락을 해야 됩니다....")
가스터가 입을 열기도 전에 샌즈는 문을 뛰쳐나가버렸다.
***
샌즈가 숨을 헐떡이며 도착한 곳은 스노우딘 한 가운데에 있는 초소 앞이었다. 근위대장 조지는 갑옷을 입고 나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샌즈는 근위대장 갑옷을 싫어했다.
조지가 갑옷을 입으며 창백해 보인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등을 감싸는 검붉은 벨벳 망토는 피를 흘리는 것 같다며 더욱 싫어했다. 사실 다 핑계였다.
샌즈는 옷차림엔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저 조지가 근위대 일을 하는 것이 싫을 뿐이었다. 조지는 고지식하고 고집이 센 괴물이었다.
동생의 걱정 때문에 안전한 직업을 바꿀 괴물은 아니었다. 그는 항상 옳은 길을 가고자 했고 괴물 모두가 그를 동경하고 존중했다. 동생 샌즈만 빼고 말이다.
“형, 인간이 여기 떨어졌어.”
“아, 샌즈. 그렇잖아도 폐허 입구에 있는 초소에서 다급하게 연락이 와서 가보려던 참이야.”
조지는 동생의 말에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즐거운 표정은 아니었지만 여유롭고 자신만만한 표정이었다. 조지는 아직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이번에 떨어진 인간은 괴물들을 전부 죽이고 다니고 있었어.”
조지는 잠깐 뜸을 들인 후 다시 말을 꺼냈다. 더 이상 자신만만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샌즈는 굳은 형제의 표정에서 작은 결의만 엿볼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가야지.”
“형,”
샌즈는 조지의 손을 붙잡았다. 불길하다. 매우 불길하다. 그저 감일 뿐이다. 감은, 논리적 추론이 불가능한 동물이 만들어낸 본능적인 추측일 뿐이다.
하지만. 놓고 싶지 않다. 그 손을.
“내 일이야, 샌즈.”
샌즈는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고 근위대장의 손을 놓았다. 아, 나는 여기 왜 이리 다급하게 온 걸까. 형은 이렇게 바로 인간 앞으로 가잖아. 모르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살인마 앞을 가로막을 일은 없었을 텐데. 하지만 형은 다른 괴물이 하나라도 죽으면 슬퍼하겠지. 평생 자책할지도 몰라. 형은 그런 괴물이니까.
근데 나는 왜 이렇게 불안한 걸까. 형은 강한데.
인간은 모자를 쓰고 있었다. 낙타의 등을 닮은 갈색 모자. 빨간 체크무늬 셔츠. 멜빵 바지. 어린 아이였다. 겁에 질린 표정으로 총을 쏘고 있었다.
손이 바들바들 떨려서 제대로 맞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조지는 주저하지 않고 인간을 죽였다.
***
샌즈는 시끄러운 알람 소리에 잠에서 깼다. 더 자고 싶었지만 할 일이 많다. 시계를 내려쳐 알람을 끄고 샌즈는 늘 하던 대로 연구실로 향했다.
컴퓨터는 간밤에 이상현상을 하나 더 관측했다.
“인간이 없는데 이상현상이라니. 이상한 일이군!”
샌즈는 자신의 말장난이 마음에 들었는지 낄낄대며 커피를 들이켰다. 드디어 가스터 박사에게 시공간이 반복된다는 증거를 보여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문득, 그 동안 한번도 궁금해하지 않았던, ‘시간을 되돌리는 바람에 사라져 버린 시간’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길래 과거로 다시 돌아가게 된 걸까?
“윙딩!’ 맨날 ‘딩’가딩가 놀지 말라고.”
““
("설마 그거 말장난이라고 한 거에요? 오늘 건 좀 아니다. 그리고 저 노는 거 아니에요.”)
윙딩은 샌즈는 쳐다보지도 않고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었다. 특별할 것 없는 화면이었다. 눈 쌓인 스노우딘. 뜨거운 핫랜드. 복잡한 코어. 이젠 아무도 찾지 않는 폐허.
샌즈가 봐왔고 알고 있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뭐하냐?”
“(“가스터 교수님이 의지의 흔적을 좀 더 찾아보라고 하셔서 찾고 있었어요. 혹시 조금 빛나는 거 없나 해서요.”)
“의지 추출기는 예전에 다 완성된 거 같던데. 왜 흔적을 더 찾으시는 거지? 데이터도 많은데.”
“”
(“샌즈 형 연구에 도움이 될 거라고 하시던데요?”)
“당사자한테 말도 안 하고 시키셨다고? 교수님도 참.”
샌즈는 가스터의 연구실로 향했다. 연구 결과도 이야기할 겸 가스터의 의중도 떠볼 참이었다. 이야기가 끝나면 형 조지를 만나러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오랫동안 조지를 보지 못했다. 유일한 가족이자 사랑하는 형, 조지. 샌즈는 잘 부르지도 못하는 휘파람을 불어대며 가스터의 연구실로 향했다.
***
가스터는 말 없이 샌즈가 건넨 보고서를 뒤적였다. 보고서는 흠 잡을 데 없이 완벽했다. 조금만 더 다듬는다면 훌륭한 졸업 논문이 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큰 구멍이 하나 있다는 것만 제외하면 말이다.
“샌즈. 자네 말대로라면 지금 인간이 있어야 자네 이론이 성립되는 거네. 하지만 지금 인간은 없지 않는가?”
“
혹시 모르죠. 지금 인간이 폐허 어디를 돌아다니고 있을 지도.”
샌즈는 여유로운 듯 빙긋 웃으며 대꾸했다. 겉모습과는 달리 속으로는 벌벌 떨고 있었지만. 학위 취득이 예상보다 길어지고 있었다.
이러다 평생 조지가 벌어다 주는 돈으로 살아야 되는 건 아닌가 걱정도 되었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하게. 인간이 우리보다 의지의 힘을 잘 조정하는 건 맞지만 그걸로 정체를 숨기거나 할 수 있는 건 아냐.”
젊은 교수는 책상을 두들겼다. 교수라고 해서 이 문제에 대한 대안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 동안은 샌즈의 커리어를 위해 샌즈의 이른 졸업을 막았지만,
이제는 가스터도 샌즈가 스스로 연구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다만 학위 논문에 이렇게 큰 문제가 생기는 것은 가스터도 예상하지 못한 바였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찾아보는 건 좋겠지. 윙딩에게-“
““ (“박사님, 인간이, 스노우딘에, 인간이 나타났습니다!”
윙딩이 다급하게 뛰어들어왔다. 샌즈는 다시 한 번 스노우딘을 향해 뛰어갔다.
***
스노우딘은 조용했다. 바람 소리 외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스노우딘은 군부대에 의존해서 살아가는 한적한 시골 동네였지만 이렇게까지 조용하진 않았다.
길에 드문드문 위치한 초소는 마치 짜기라도 한 것처럼 전부 비어있었다.
불길한 느낌이 샌즈의 등줄기를 타고 올라왔다. 신경 쓰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
바람이 한 차례 더 불었다. 샌즈는 옷깃을 여몄다. 손에 무언가 묻어나는 것 같다. 샌즈는 손가락으로 반대쪽 손등을 훑었다. 손 끝으로 회백색 먼지가 묻어났다.
샌즈는 뛰었다. 조지, 조지가 아직 왕궁에 있길 바랐다.
하지만 샌즈의 눈 앞에는 붉은 망또만이 보일 뿐이었다.
샌즈는 무릎을 꿇었다. 망토 위에 하얀 먼지가 소복히 담겨있다. 샌즈는 먼지를 망토 위로 모았다. 이미 바람에 많이 날렸지만, 남은 것이라도 모아야 했다.
정신 없이 먼지를 망토로 둘둘 말고 샌즈는 망토를 끌어안았다. 아직 조지의 냄새가 망토에 남아있었다. 샌즈는 한참 동안이나 망토를 끌어안고 눈 위에 가만히 앉아있었다.
망토에 눈물이 떨어지면 냄새가 사라질까 울지도 못하고 하염없이 앉아있었다.
***
인간은 강했다. 근위대장을 이긴 인간은 거침없이 왕궁을 향해갔다. 아직 죽지 않은 괴물들은 연구소로 피신을 왔다.
이전보다 이상현상이 더 자주 관찰됐지만 샌즈는 연구를 할 수 없었다. 윙딩도, 가스터도 마찬가지였다. 윙딩은 매일 모니터 앞에서 인간을 지켜봤다.
멍하니 이웃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가스터 박사의 걱정에도 윙딩은 쉬지도 않고 모니터만 쳐다봤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윙딩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샌즈도 자기 책상에서 일어나질 않았다. 논문을 하나 보고 있었지만,
그 논문의 페이지수는 며칠 째 그대로였다. 가스터 박사만이 분주히 다른 괴물들을 돌보기 위해 뛰어다녔을 뿐이다.
인간은 마주치는 모든 괴물을 죽였다. 자신이 죽일 수 있는 괴물은 다 죽이고 다닐 심산이었다. 인간은 이제 더 이상 겁먹은 표정도 짓지 않았다.
가만히 괴물을 보면 총구를 겨눌 뿐이었다. 때때로 웃기도 하였다. 바보 같아, 빨리 집에 가고 싶어 따위의 이야기도 들려왔다.
“샌즈, 이제 일어나게. 밥은 먹어야 하지 않겠나.”
인간이 핫랜드에 도착한 날 가스터 박사는 샌즈에게 핫도그를 건냈다. 인간이 도착한 지 일주일이 흘렀다. 아마 관측된 ‘사라진 시간’까지 합치면 일주일을 훨씬 넘겼을 것이다.
그게 얼마나 됐는지는 아무도 확인하지 않았다.
샌즈는 멍하니 핫도그를 집어 들었다. 아니다, 이건 핫캣이다. 아직 샌즈가 학부생이었던 시절, 조지는 종종 샌즈에게 핫캣을 사주곤 했다.
사실 그게 그거지만 난 개보단 고양이가 좋거든. 어휴, 같이 일하는 개가 날 너무 좋아해서 힘들어. 샌즈는 핫캣을 오물거리면서 조지의 이야기를 듣곤 했다.
사실 형이 맨날 하는 일 이야기는 재미없지만, 공짜 점심은 중요하다. 그때 조금이라도 이야기를 잘 들어주었으면 어땠을까, 샌즈는 생각했다.
가스터는 샌즈가 쥔 빵이 짓이겨지고 젖어가는 것을 보았다. 하려던 말을 삼키고 가스터는 조용히 방을 나갔다. 아마, 마지막 인사는 힘들 것 같다.
가스터는 의자에 기대 앉아 실험일지를 펼쳤다. 연구는 반복적인 확인 작업이다. 그래서 연구일지의 내용은 대부분 그게 그거인 실패담이다.
쓸모 없는 것, 쓸모 없는 것, 쓸모 없는 것, 그리고 그날의 기록.
***
가스터는 과학자에 대한 나쁜 스테레오타입만 골라 모아 만든 괴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코어를 완성하고 나서 그는 “열심히 식히세요.”란 말만 남기고
다시 연구실로 돌아가버렸다. 그는 유명했지만 아무것도 알려져 있지 않은 것으로도 굉장히 유명했다.
그런 가스터가 강의를 연 것은 단순히 ‘의지’의 신호를 기록해줄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대학원생들은 가스터를 존경했지만 의지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가스터는 최소한 자신의 말은 알아들을 수 있는 학생을 원했다. 사실 테미 하나가 매우 똑똑했지만 테미와 하루 종일 있고 싶진 않았다.
괴물 세계에 있는 천체물리학 연구자라곤 자신밖에 없었다. 학부생이라도 찾아봐야 했다. 물론 이는 가스터가 후학을 양성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결과이기도 했다.
천체물리학입문 수업 첫날. 가스터는 학생들을 보자마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딜 봐도 테미, 테미뿐이었다.
테미들이 공과대학 수업이 부족해 가끔 이과 수업을 듣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가스터는 호이, 호이, 하며 부들부들 떠는 테미들에게 적응이 되지 않았다.
“안녕하십니까. 이번 학기에 천체물리학입문 수업을 연 W.D.가스터라고 합니다.”
“겨수님!!!!!!가스터 교수님이ㄹㅐ!!!!!!!!”
“안뇽하ㅅㅔ염!!!!!!!!!!!”
가스터는 테미를 무시하고 말을 이어나갔다.
“의지는, 천체물리학이란 학문이 발달한 목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의지의 힘이 무엇이고, 이를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해 연구하는 것이 이 학문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목표입니다.
우리는 워터폴과 같은 곳에서 의지를 관측할 수 있는 신호를 탐지할 수 있으며…”
강의가 시작된 지 10분이 지나자 모든 테미들이 사라졌다. 자리에 앉아있는 건 해골 하나와 투박하게 생긴 괴물이었다. 해골은 빙긋 웃고 있었고 다른 괴물은 졸고 있었다.
가스터는 해골 앞으로 조용히 다가갔다.
“자네는 왜 나가지 않았나?”
“헤, 별을 보는 걸 좋아하거든요.”
가스터는 한쪽 눈을 찡그리고 다시 질문을 던졌다.
“이 수업은 별이랑은 사실 별 관계가 없어. 물리학에 더 가깝지.”
“하지만 듣다 보면 진짜 별을 볼 수 있을 것 같아서요.”
해골도 한쪽 눈을 찡그렸다. 가스터와는 달리 미소를 날리기 위해서였지만.
가스터는 저 해골이 특출난 줄은 모르겠지만 최소한 자신의 말에 적당한 대답은 해줄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구석에서 조는 학생. 하나로는 부족하니 같이 데려가야겠다. 해골이 어떻게든 잘 수습해주겠지.
그렇게 샌즈와 윙딩은 가스터의 랩에 들어가게 되었다.
가스터는 샌즈와 윙딩에게 자신이 아는 모든 것을 알려주었다. 정확히는 귀찮은 잡무를 전부 샌즈와 윙딩에게 떠넘기는 바람에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려줄 수밖에 없었다.
샌즈는 가끔 시답잖은 농담을 던져대는 것을 빼면 재능 있고 유능한 학생이었다. 반면 윙딩은 끔찍했다. 가스터는 그들과 함께하며 샌즈는 훌륭한 과학자로,
윙딩은 괴물구실 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아스고어가 들으면 기겁할 일이었다. W.D.가스터는 자신의 연구를 제외한 다른 것에 관심을
가진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학부를 마치고, 석사과정에 들어서면서 샌즈와 윙딩은 가스터의 연구에도 직접 참여하게 되었다. 일을 잘하는 샌즈는 주로 가스터를 돕고, 윙딩은 뒤에서 기록을 담당했다.
윙딩은 매번 가스터의 말을 옮겨적기 바빴다. 그날도 윙딩은 뒤에서 뭔가를 바삐 적고 있었다. 늘 가스터의 뒤를 쫓아다니느라 바빴던 샌즈는 넋을 놓고 기괴하게 생긴 기계를
쳐다보고 있었다. 매일 보는 기계였지만, 오늘은 그 안이 가득 차있었다.
“교수님 이게…”
“그래. 이게 저번에 온 인간에게서 추출한 의지를 조정할 수 있는 힘이라네. 의지력이라고 해야 되나. 그리고 난 꽤 신기한 걸 발견했지.”
가스터는 기계 아래로 쥐를 한 마리 넣었다. 그리고 패널에 몇가지 수치를 입력하기 시작했다. ‘힘’이 소용돌이쳤다. 그리고 점점 아래로 번져나갔다. 그리고 쥐를 옥죄었다.
쥐는 서서히 힘에 잠식되어갔다. 어느 순간 쥐는 사라지고 어둠만이 그곳에 존재했다. 가스터는 패널을 다시 조작했다. 기계 안에서 빛이 몇 가닥 새어 나왔다. 기계로부터
‘광자 신호 미검출’이라는 음성이 흘러나왔다.
“아직 우리는 의지의 힘을 조절할 수 없다네. 이젠 그걸 해야지. 다음 실험은 그걸 거고, 그 동안 한 것과는 다르니 더 재미있을 거네.”
“교수님, 그 쥐는 어떻게 된 건가요?”
“자네 둘은 어떻게 생각하나?”
“과도한 의지 때문에 녹아내리다 못해 사라진 것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윙딩은 대답은커녕 둘의 말을 받아 적기에도 바빠 보였다. 가스터는 익숙하다는 듯 샌즈를 보고 말을 이어나갔다.
“맞아. 정확하네. 이제, 얻은 힘을 잘 조절하는 일만 남았겠지. 며칠 후부터는 다시 매일 밤을 새야 될지도 모르니 자네 둘은 며칠 집에서 쉬고 오게.”
***
가스터는 다시 의지 추출기 앞에 서있다. ‘의지 조종기’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하겠지만 크게 상관은 없다. 마지막 실험은 혼자서도 충분한 일이다.
다만, 샌즈와 윙딩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오지 못한 것이 미안하다.
이번 피실험체는 자기 자신이다.
언젠가는 했어야 했다. 적당한 피실험체는 자신뿐이다. 이 실험의 결과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지금이 적기라는 생각은 든다. 연구를 위해 산 삶이다.
두 꼬맹이가 마음에 걸리기는 하지만, 그것뿐이다. 언젠간 미안한 일을 할 거라고 예상했다.
가스터는 패널을 조작했다. 그리고 기계 아래로 들어갔다. 어둡다, 어두워진다. 하지만 아직 다 어두워지진 않았다. 두렵지 않다면 거짓이다. 하지만…
“” (“가스터 교수님!”)
의지 추출기의 문이 열린다. 윙딩이 보인다. 왜 여기있지? 모니터 앞에 있던 거 아니었어? 왜 하필 지금 나를 찾지?
“” (“교수님, 당장 여길 나가야 돼요! 잡아요, 어서!”)
안 된다는 말이 나와야 되는데, 목소리가 나오질 않는다.
윙딩이 내 손을 잡는다. 어떻게 잡았지? 자세히 보니 윙딩이 녹아내리고 있다. 의지 때문이었구나. 왜 나를 소중히 여기는 거니. 난 그저 까다로운 지도 교수일 뿐인데.
날 놔줘, 놔, 놔.
윙딩의 뒤로 문이 닫힌다. 모든 것이 어두워졌다.
(실패했다. 우린 모든 걸 알 수 있게 되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다.)
***
샌즈는 멍하니 왕궁으로 향했다. 인간은 결국 잡혔다고 했다. 왕은 가스터의 행방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눈치였다. 샌즈는 그가 어떻게 되었는지 몰랐다.
그 자리에는 의지 추출기만이 있을 뿐이었다. 가스터가 쥐처럼 녹아 내렸겠거니, 샌즈는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자네가 그 가스터의 제자로군.”
왕은 차를 내왔다. 테이블 아래로는 황금색 꽃이 만개해있었다. 샌즈는 살짝 발을 들어 꽃을 짓밟지 않도록 노력하는 중이었다.
“가스터 박사의 일은 나도 참 애석하게 생각하네. 지금 어디서 뭘 하는지 알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 힘 너머에 뭐가 있는 지는 교수님도 모르셨습니다.”
“흠, 좋은 곳에 있으면 좋으련만.”
거대한 염소는 수염을 잠시 쓰다듬더니 샌즈를 바라보고 말을 이었다.
“지금 왕실 과학자 자리가 공석이지. 해볼 생각이 있나?”
샌즈는 고개를 들어 왕의 두 눈을 응시했다. 계속 애매하게 나이가 들어있는 왕. 샌즈가 태어나기도 전에 왕이 아이를 잃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의지의 힘에 계속 미련을 가지는 것도 그 때문일지도 모른다. 모두 ‘의지’가 모든 것을 해결해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으니까.
샌즈는 잠시 뜸을 들였다.
“…좋습니다. 단 몇가지 부탁드릴 것이 있습니다.”
“말해보게.”
“조용히 연구에 매진하고 싶습니다. 제가 왕실 과학자라는 걸 공포하지 말아주세요. 전 그냥 조용히 연구를 하고 싶습니다.”
“왜인가.”
샌즈는 왕의 말을 무시하고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꽃이 밟혀 짓이겨졌다. 왕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둘째, 저는 의지의 힘에 대해서 연구할 거지만 제가 연구하고 싶은 것을 할 것입니다. 결과에 대해서도 폐하께 따로 말씀드리지 않을 겁니다.
셋째, 전 후임이 있을 때까지만 연구를 계속 할 겁니다. 후임이 들어오지 않아도, 제 연구가 끝나는 그 순간 저는 연구소를 나갈 겁니다.”
“조금 과한 요구라 생각하지 않는가? 가스터도 정기적인 보고를 했다네. 도대체 이런 요구를 하는 이유가 뭔가? 이래서는 나도 왕실 과학자를 둘 필요가 없네.”
“그럼 거절하겠습니다. 왕실 과학자 자리는 저도 필요 없습니다.”
“…이유에 대해 말하기 싫은가?”
샌즈는 말없이 끄덕인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연구실로 향했다. 문 밖에 ‘폐쇄’라는 팻말을 붙였다. 안으로 들어간 후 문을 잠갔다.
그 후로 샌즈를 본 괴물은 아무도 없었다.
***
***
첫 번째 기록.
우선 몸이 될만한 것을 찾아야 한다. 다행히도 형은 내 형제다. 내 몸을 이용해도 될 것이다.
***
열두 번째 기록
형의 몸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형의 유해를 뿌려보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유해를 모을 수 있는 만큼 다시 모았지만 다 모으지는 못한 것 같다. 신중해야 한다.
***
일흔세 번째 기록.
왕이 왔다. 왕의 부탁을 거절했다.
***
삼백일 번째 기록
가스터 박사의 공식을 완성시켰다. 실패다. ‘나’를 포기하지 않고 의지의 힘을 쓸 수는 없다.
***
삼백이 번째 기록
다만, 유사한 걸 할 수는 있을 거 같다.
***
사백 번째 기록
진척이 없다. ‘그’ 방법을 써야 하는 걸까?
***
사백오십육 번째 기록
위험한 도박을 하기로 했다. 마지막 기회다.
***
오백칠십사 번째 기록.
실험은 성공적이었다. 다만 형이 형이 아닐 뿐. 조지는 돌아올 리 없다. 새로 이름을 지어주어야겠다. 이번에는 내가 형이 되어 지켜주고 싶다.
***
오백팔십육 번째 기록.
파피루스의 몸이 불안정하다. 일단 단단한 물 속에 가뒀다.
***
칠백오십 번째 기록.
조금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기다리는 동안 심심해서 이것 저것 만들고 있다. 새 발명품에 가스터 박사의 이름을 붙여야겠다. 멋있는 이름이 뭐가 있지?
***
팔백사십 번째 기록.
조금만, 조금만 더.
***
알피스는 왕궁에서 나오자마자 주저앉았다. 부, 권력 이런 것 따위와는 영원히 인연이 없을 줄 알았다. 그런 자신이 왕을 독대하다니,
알피스는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다시 내쉬었다. 후, 하, 후, 하. 왕은 폐쇄된 연구소에 가서 일하면 된다고 말했다. 무엇이든 해도 괜찮았지만,
의지에 힘에 신경 써주면 좋겠다는 말을 덧붙인 채. 알피스는 물리학자가 아닌 공학도에 가까웠지만, 왕의 말을 거스를 자신은 없었다.
알피스는 문패를 뜯어내고 연구소 안으로 발을 디뎠다. 기묘했다. 어둡고 먼지가 쌓여 있어야 할 공간에 쓰레기가 잔뜩 있었다.
양말, 감자칩 봉투, 책, 그리고 뼈다귀. 해골 하나가 책을 머리에 덮고 곤히 잠들어있었다.
“저..저기요. 여기서 주무시면 안 돼요..”
“ZZZ…”
“저, 저기요..”
알피스는 조심스럽게 해골을 흔들었다. 해골은 잠시 머리를 짚은 후 바닥에서 일어났다. 멍하니 알피스를 바라보더니 해골은 싱긋 웃었다.
“헤, 왕이 드디어 왕실 과학자를 임명한 모양이군.”
“저, 뭐 하시는 분이신지..?”
“헤, 임금은 전혀 받지 못한 전임 과학자라고 해두죠. 맥이 끊겨버린 천체물리학을 독학하셨다니 대단하네요.”
알피스는 다시 왕의 부탁이 생각나 다시 표정이 어두워졌다.
“사실..전 물리학은 잘 몰라요. 그냥 폐하께서 제 발명품에 관심을 가지셨고 의지의 힘을 연구해주시길 바라셨어요…”
해골은 실실 웃으며 눈을 다시 감았다.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 눈치였다.
“이렇게 하죠. 저는 당장 여기를 떠나기 힘들어요. 마지막으로 해야 될 것이 있거든요. 제가 백골이 되도록 골 빠지게 노력했는데 할 일을 시간 내에 끝내지를 못했네요.
대신 물리학이니 하는 것들은 좀 알죠. 그쪽에게 그걸 가르쳐주고 나는 잠시 여기 있고. 그거 어때요?”
“네?”
“싫으면 어쩔 수 없고요. 전 그쪽의 선택을 존중해요.”
“아, 아니에요. 괜찮아요. 좋아요.”
알피스는 허겁지겁 샌즈를 따라 내려갔다. 연구소 지하는 훨씬 어둡고 더러웠다. 이곳 저곳 잡동사니가 늘어져있었다. 방 가운데엔 큰 수조와 안에 담겨있는 하얀 해골이 보였다.
“이건…뭐에요? 아 곤란하시면 얘기 안 하셔도 돼요. 그냥 궁금해서..”
“아, 이건 제 동생이에요.”
“아..어쩌다, 이런 곳에..”
“다들 저마다의 사정이 있는 법이죠. 걔가 조금만 더 자라면 전 이곳을 떠날 거에요.”
샌즈는 책 한 권을 알피스에게 던졌다. 알피스는 잡지 못하고 책을 떨어뜨렸다. 주섬주섬 책을 집어 들어 펼쳐보니 ‘천체물리학입문’이라고 적혀있는 공책이었다.
“읽어보고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봐요.”
샌즈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사라졌다. 정말로, 눈 앞에서 사라졌다.
***
비교적 짧은 시간이 흘렀다. 알피스는 천재는 아니었지만 노력파였다. 그리고 그 노력하는 정도가 굉장했다.
고등학교도 나오지 못한 괴물이 반년 만에 대학교 학사 과정 내용을 소화해냈다. 굉장한 성과였다. 알피스가 학사 과정을 끝내고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을 무렵 거대한
해골이 수조에서 나오게 되었다. 큰 해골은 아직 잠만 자고 있었다. 대신 작은 해골이 주섬주섬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알피스도 조용히 샌즈를 도왔다. 짐이 다 정리되어갈
무렵 샌즈는 조용히 알피스에게 인사를 건넸다.
“알피스, 저는 이제 여기를 떠날 거에요. 골 빠지게 절 기다리지 말아요, 헤.”
“…그 동안 고마웠어요, 샌즈.”
샌즈는 눈을 감았다. 처음 만났던 그 때처럼 무언가를 생각하는 눈치였다.
“하나만 부탁할게요. 저와 제 동생을 봤다는 이야기를 아무에게도 하지 말아요.”
알피스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주저하다, 결국에는 알피스는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왜죠?”
“조용히 살고 싶거든요. 부탁해요.”
알피스가 다시 말을 걸기도 전에 샌즈는 사라져버렸다. 첫날처럼, 눈 앞에서 사라져버렸다.
훗날 알피스는 다시 샌즈를 만나기는 했지만, ‘그런’ 샌즈는 다시 볼 수 없었다. 그렇게 똑똑한 사람이 매번 땡떙이나 치는 게으른 보초가 되다니,
알피스는 언다인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샌즈를 떠올리곤 했다. 물론 언다인에게는 맞아, 그렇게 게으른 사람과 함께 일하다니 힘들겠구나, 라는 이야기밖에 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
스노우딘은 여전히 눈이 내리고 있었다. 샌즈는 동생의 손을 꽉 잡고 앞으로 나아갔다. 커다란 해골은 녜헤, 하고 웃었다. 금방 걷는 것을 배웠으니 말도 금방 할 것이다.
샌즈는 파피루스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해골은 녜헤, 파피루스, 녜헤헤 하고 웃었다. 샌즈는 자신을 가리키며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샌즈, 샌즈.
조용한 마을을 경쾌한 웃음소리가 가득 채웠다. 샌즈도 헤헤, 같이 웃었다.
마을로 가는 길에는 두 해골이 남긴 발자국만이 남아있다. 곧 흰 눈이 내려 사라질 것이다.
??뭔가 글이 칸을 빠져나와 있는 거 같은건 나만 그런거냐? 조지는 또 누구고? 미안한데 좀 고쳐줄 수 있을까?
읽다보면 나옴 원래 샌즈 형이었는데 죽었는데 샌즈가 어찌저찌 살렸다는 설정. 574번째 기록이랑 586번째 기록 참고하면 됨.
글이 칸을 빠져나와잇음? 아 고쳐봄 그건
재밌다 - dc App
재밌게 읽었음. 지하에서 천체물리학을 연구한다는 게 좀 이해가 안가는데 혹시 양자물리학 오타?
노력한 문학은 개추야! 재밌게 읽었다
물이챨챨//오타는 아님. 사실 내가 과학이랑 담 쌓은지 오래 돼서 뭐가 크게 차이나는 지는 잘 몰라. 샌즈가 별을 보고, 물리학이랑 하는 게 비슷한 거 같아서 천체물리학이라고 했음. 영화 같은 거 보면 대형 팬? 이용해서
무슨 신호 잡잖아. 걔들이 하는 게 그런 거 비슷하지 않을까 싶어서 그렇게 썼음..
그냥 물리학이라 쓰는 게 나을 뻔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