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눈사람은 차가운 겨울 냉기와 동네 꼬마 괴물의 마법이 합쳐져 탄생한 생명이었다.
눈사람이 눈을 떴을 때 동네 아이들은 하나같이 놀라며 기뻐해주었고 눈사람은 처음에는 어리둥절했지만 곧 스노우딘에 익숙해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은 뛸 수도 없고, 걸을 수도 없는 눈사람에게 흥미를 잃어갔고 대신 사슴 괴물 뿔에 장식을 다는데 재미를 들였다.
결국 홀로 남은 눈사람이 볼 수 있는건 새하얀 눈 밖에 없었다. 그나마 멀리서 보이는 희미한 불빛은 밤이 되면 사라졌고 눈사람은 스노우딘의 추운 날씨 덕분에 녹지 않을 수 있었지만 그 누구보다도 외로웠다.
혼자서 보내는 시간이 계속 되어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몇년이라는 세월이 지나고.
그 순간 지하세계에서 인간 아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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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로 나타난 아이는 귀여운 리본을 머리에 묶고 장난감 칼을 손에 든 아이였다. 그 아이는 지상으로 올라가기 위해 '세계 끝' 으로 향하고 있다고 말했고, 눈사람은 세상을 탐험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저기, 내가 움직일 수 없어서 그런데 혹시 내 조각을 가져다줄 수 있겠어?"
눈사람이 조심스럽게 꺼내는 부탁을 그 아이는 인내 깊게 들어주었다. 눈사람이 조각을 통해 본 하늘색 꼬마 아이는 착하고 인내심이 깊어 장난꾸러기 괴물들이 이유 없이 공격해도 꾹 참을줄 아는 아이였다. 하지만 아이는 어느날 체력 회복하는 걸 까먹었고 결국 스노우 드레이크가 던진 눈덩이에 맞아 죽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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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로 나타난 아이는 튼튼한 장갑 착용하고 남자다운 반다나를 머리에 두르고 있는 아이였다. 그 아이는 자신을 애타게 찾고 있을 가족들한테 돌아가기 위해 여행을 떠나고 있다고 말했다.
"저기, 혹시 내 조각도 네 모험에 끼워주지 않을래?"
주황색 머리카락을 가진 그 아이는 용기 넘치게 웃으며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그 아이는 잠시 후 마을 입구를 막고있는 키 작은 해골과 마주치게 되었고, 해골은 슬픔이 느껴지는 텅 빈 눈으로 다짜고짜 아이를 공격했다. 아이는 용기있게 덤볐지만 결국 온 몸이 뼈에 관통되어 죽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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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로 나타난 아이는 공책을 손에 들고 똑똑해 보이는 안경을 쓴 아이였다. 그 아이는 악명 깊은 에봇 산을 호기심으로 조사하러 올라왔다가 실수로 떨어지고 말았다고 말했다.
"혹시, 지상으로 올라갈거면 나랑 같이 가주지 않을래?"
보라색 머리카락을 가진 소년은 눈사람 조각을 흥미롭게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도 그 아이는 자신의 한계를 알고있었고 무엇보다 머리가 좋아서 퍼즐을 간단하게 풀고 스노우딘 마을을 떠나는데 성공했다. 그 날 눈사람은 처음으로 희미하게 들리는 물소리와 축축한 습기를 태어나서 느껴볼 수 있었다. 말로만 듣던 워터폴에 도착한 눈사람은 자신의 심장이 흥분감에 두근거리는걸 느꼈다.
하지만 얼마 안 가서 보라색 아이는 영웅이라고 불리는 자한테 공격 당하고 말았다. 아이는 끈기있게 버텼지만 결국 심장에 창을 맞고 마지막까지 고통의 신음을 흘리며 숨을 거두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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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번째로 나타난 아이는 오래된 발레 슈즈와 발레복을 착용한 꼬마 발레리나였다. 그 아이는 곧 있을 대회를 놓치고 싶지 않다고 꼭 지상으로 올라가야 한다고 말했다.
"......"
눈사람은 아무것도 부탁하지 않았다. 자신의 조각을 떼어줄때마다 그의 몸은 눈에 띄게 작아지고 있었고 무엇보다 죄 없는 아이들이 하나 둘씩 죽어가는 모습을 도저히 보고싶지 않았다. 눈사람은 고통과 아픔이라는 감정을 더는 격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손을 흔들면서 떠나는 고결한 아이를 보며 눈사람은 속으로 행운을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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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번째로 나타난 아이는 얼룩진 앞치마와 탄 프라이팬을 손에 쥐고있는 아이였다. 그 아이는 무척 상냥하고 친절하여 반사적으로 괴로운 표정을 지은 눈사람을 다정하게 달래주었다. 괴로움과 슬픔으로 가득찬 눈사람의 이야기를 들은 아이는 자발적으로 입을 열었다.
"내가 너의 조각을 가지고 가줄게. 걱정 마. 나는 포기하지 않아."
연두색 머리카락을 가진 아이의 미소에 눈사람은 혹하고 넘어가 자기 조각을 건네주었다. 아이는 강하지 않았지만 신기하게도 공격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있었고 괴물들을 피해 핫랜드까지 도착하는데 성공했다. 처음으로 느껴보는 뜨거운 열기에 눈사람은 '어쩌면 이번엔' 이라는 생각을 품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친절했던 아이는 거미 때에게 공격 당해 죽고 말았다. 그 사유는 거미들이 파는 물건을 구입하지 않아서. 아후후하고 웃는 거미의 여왕을 보며 아이는 마지막으로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숨을 끊었다. 눈사람은 슬픔의 눈물을 흘렸다.
*
여섯번째로 나타난 아이는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손에 권총을 들고있는 아이였다. 그 아이는 정의감이 넘치는 아이로 에봇 산에서 사라진 자신의 친구를 찾기 위해 내려왔다고 말했다.
"그 친구가 누군데?"
"진짜 상냥하고 요리를 잘하는 내 소꿉친구야."
씨익 웃으면서 모자를 고쳐쓰는 아이를 보면서 눈사람은 차마 입을 열 수 없었다. 그때 뭐라고 했어야 했을까? 그 아이는 이미 죽었어. 포기해, 라고 말했어야 했을까. 아니면 그 아이는 이미 나가고 없어. 너도 빨리 이곳에서 나가, 라고 말했어야 했을까.
"혹시 네 친구를 찾으면 나의 조각을 가져다 주지 않을래?"
정의감 넘치는 아이는 잠시 의문 어린 표정이었지만 곧 알겠다고 답했다. 자신만의 정의를 관찰하면서 뛰어난 명중력을 가진 그 아이는 손쉽게 핫랜드까지 도착했고 머펫을 만난 순간 초록색 아이의 죽음에 대해 알게되었다. 진심으로 아끼던 친구의 죽음에 이성을 잃은 노란색의 아이는 단 한번도 괴물들을 상처 입힌 적 없던 권총을 난발하기 시작했고 결국 뒷수습하러 온 아스고어 대왕의 손에 숨을 거두고 말았다.
이제 눈사람은 처음과 비교하면 1/4도 안될 정도로 작아져 버렸다. 크기가 너무 작아져버려서 이제는 저 멀리 마을의 희미한 불빛도 보이지 않는다.
눈사람은 이제 너무 지쳤다. 간신히 희망을 가졌다 싶으면, 괴물들은 언제나 아이들을 손쉽게 죽여버리고 말았다. 왜. 왜 우리는 인간을 죽여야 하는걸까.
아무 것도 모르는 눈사람은 그저 외로움을 속으로 삼켰다.
*
특이하게 그 날은 하늘이 뿌옇고 안개가 끼는 날이었다. 저 멀리 한 아이의 그림자가 다가오는 모습에 눈사람은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저 아이도 분명 '지상' 으로 올려갈려다가 죽고 말겠지. 지금까지 한두번 겪어던 패턴이 아니기 때문에 결과가 머릿속에 절로 그려졌다.
이번에는 누구한테 죽을까?
스노우 드레이크? 해골? 영웅? 짜증나는 개? 아니면 왕?
"...... 안녕?"
그 순간 고개를 든 눈사람은 차마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 아이의 눈동자는 붉은 잉크가 물든 것처럼 새빨간 색이었고 손에는 하얀 눈 위로 우수수 떨어지는 먼지가 묻어있었다.
눈사람은 태어나서 단 한번도 '먼지' 를 본 적이 없었지만 본능적으로 무언가가 위험하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저... 저기......."
"너의 눈사람 조각 꽤 쓸모 있더라? HP를 무려 45씩이나 올려주더라고."
"어......?"
"이번에도 잘 사용할게."
붉은 색의 아이는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장난감 칼을 허공으로 높이 치켜들었다. 그 순간 자신의 온몸을 가르는 끔찍한 고통을 느끼며 눈사람은 공포의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아이는 멈추지 않고 눈사람을 가르고, 가르고, 조각내고, 모양내고, 칼을 깊게 쑤셔넣어 몸을 자르고, 가르고, 가르고, 낄낄 웃으며 자신의 몸을 맛있다는 듯이 입에 넣고, 가르고......
눈사람은 그 순간 자신이 지켜봐온 6명의 아이들을 생각해냈다. 아. 그 아이들도 이런 고통을 겪었겠구나.
만약 다음 생이란게 있다면, 너희들에게.
사과하고 싶은 마음이다.
광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