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지럽다.
머릿속이 익숙한 목소리들로 가득차 웅웅댄다.

\"언다인이 우릴 지켜줄거야!\"

\"언다인처럼 강해지고 싶어요\"

\"언다인! 스파게티 만들러 왔어!\"

매일 지겹도록 듣는 친구들의 목소리인데, 왜일까, 지금은 알수없는 향수가 느껴진다. 미치도록 만드는 그리움이.
친구들 모두가 자신의 앞에 서있다. 하지만 모두의 모습이 한데 섞여 알아볼 수가 없을 정도로 어지럽다.
다들 이리저리 어지럽게 빙빙 돈다...아니, 자신이 돌고 있었다...

세상이 취한듯 비틀비틀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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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다인..\"

낯선 중저음이 그녀를 비틀대는 꿈에서 깨웠다. 하지만 반응 속도가 늦다. 온 몸이 마취가 된듯 감각이 더디고 붕 뜬 느낌. 그녀가 상황 파악을 하는데 꽤 시간이 필요해보인다. 그녀에겐 너무 더운 온도도 그녀의 판단을 방해한다. 말없이 낯선 이를 올려다본다.

\"약에서 깨려면 조금 걸리지?\"

\"...약?\"

그녀는 그제서야 조금씩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녀가 있는 곳은 밖이 전혀 보이지 않는 밀실이였다. 그녀는 여태껏 지하에서 이런 장소는 본적이 없다. 그렇다면 이곳은 지상인가? 그러나 그녀는 이내 지상이든 지하든 그녀가 할 수 있는것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약때문에 감각이 무뎌져 자신이 묶여있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그녀가 할 수 있는건 한쪽뿐인 눈으로 살기를 뿜으며 소리치는 것 뿐이었다.

\"어, 이래야 언다인이지. 상황파악이 잘 안되나봐?\"

낯선 이는 재밌다는 듯이 소리죽여 낄낄거렸다. 쇳소리 같은 웃음 소리가 그녀의 귀에 날카롭게 박힌다. 그녀는 묶여있는 것을 풀기 위해 애써보지만 소용이 없었다. 힘을 모으려 하면 먼지처럼 흩어져버렸다. 아마도, 아마도 온도 때문인걸까. 아니면 어떤 마법이라도 부린걸까.
낯선 이는 주변을 빙빙 돌며 거리를 유지했다.

\"기억나? 어제 어떤 꼬마를 구하러 핫랜드 근처까지 갔다가 쓰러진거? 나참, 아무리 급해도 약점을 보이면 어쩌자는거야? 덕분에 쉽게 잡긴 했지만.\"

그녀는 기억해내려 애써봤다. 분명히 어제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 한참 달렸던 것은 기억난다. 그이상은.. 약기운 때문인걸까. 아니면 열기때문일까.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근데.. 조금 덥지 않니? 물이라도 떠다 줄까?\"

그녀는 계속해서 묶은것을 풀라고 소리쳤다. 낯선 이는 들은 척도 안하더니 물 한잔을 떠와 그녀의 눈앞에 갖다 대자 한순간 그녀의 시선이 물컵에 꽂혔다. 하지만 이내 물에는 관심 없다는 듯이 낯선이의 눈을 노려본다. 어두워서 보지 못했던 낯선 이의 얼굴이 보인다. 본적 없는 인간 남자였다.
남자는 보란듯이 컵을 뒤집는다.

\"그렇게 노려보니까 무서워서 흘려버렸잖아..\"

일부러 흘린 것이 분명함에도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그러곤 다시 저 혼자 미친듯이 웃는다. 그녀는 분노로 얼굴이 일그러졌다. 마침내 그녀가 소리치지 않고 냉정하게 말한다.

\"나한테 원하는게 뭐야..\"

남자는 그녀가 재밌다는 듯이 그녀의 턱을 살짝 들어올리고 말한다.

\"글쎄.. 친구, 잘못물어본것 같은데,\"

숨을 크게 들이쉬고 말한다.

\" \'나한테\'는 빼고 말해야지. 내가 원하는건 네 그 자체니까.\"

그녀가 무어라 소리치려고 하자 남자는 손으로 그녀의 입을 막고서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간다.

\"뭐..그러니까, 쉽게 말하자면 너에게 \'모든 것\'을 해보고 싶은거지.조금 아플지도 모르겠지만, 난 취향이 꽤 독특해서 말이야.\"

잠시 말을 멈추고 이어나간다.

\"물론, 니가 싫다면.. 어쩔 수 없는거지. 난 힘들게 널 갖고싶지는 않아. 대신..\"

\"널 대신할 다른 아이를 구해야겠지. 네 친구들은 어떨까? 알피스? 그애가 적당할까?\"

알피스라는 이름이 나오자 그녀의 동공이 흔들렸다. 반응하는 그녀를 보며 남자는 알기 쉬워서 좋다고 생각한다.

\"친구들은 내버려둬. 안그러면..\"

안그러면..안그러면... 그녀는 그 다음 말을 생각하려 했지만 이런 상태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녀의 몸이 파르르 떨렸다. 아무런 힘도 쓸 수 없는 자신이 초라하고 비참해 견딜 수 없었다.

\"안그러면? 뭘 어쩌겠다는 거지? 이봐, 너도 안되고 친구들도 안되는건 너무하잖아? 난 지금 마음만 먹으면 널 죽일 수도 있다고. 내 친절을 무시하지마.\"

그녀는..그녀는, 죽을 수 없었다. 그녀가 죽으면, 지하의 모든 괴물들이 위험에 빠지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자칫하다간 모두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은 안봐도 뻔했다. 그녀의 일터, 그녀의 사랑, 그녀의 친구들, 그녀의 삶이 담긴 지하를 지키는 것.. 그것이 그녀의 사명이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남자에게 굴복할 수도 없었다. 굴복한다 하더라도 친구들을 건들지 않을거란 보장이 없을 뿐더러 수치심으로 얼룩진 굴복하느니 영광스럽게 죽겠다는 것이 그녀의 평소 신념이기도 했다.

물론, 지금은 그 무엇도 할 수 없었다.

\"이봐, 뭘 그렇게 고민하는거야? 내가 아는 언다인은..영웅이였던것 같은데. 설마 자기만 살 생각을 하는거야?\"

\"난 그렇게 비겁한 짓..\"

안해, 라는 말이 목구멍에서 잠겨버린다. 어째서? 그녀는 알 도리가 없었다. 영웅 언다인, 정의의 언다인.. 지금까진 명예로왔던 말들이 이젠 하나하나가 그녀의 목을 죄어오는 기분을 느낀다.

친구들이 그녀의 머릿속에서 웃고있다. 그녀에게 친절하게 손을 내밀어주며 이리오라고 한다. 그녀는 친구들의 웃음을 지켜내고 싶었다. 그래야만 하고, 그래야만 했다.
다시 묶인 손을 풀어보려 마지막 발버둥을 쳐보지만 당연하게도 역부족이였다. 조금더 시간을 끌면 온도와 약때문에, 아무것도 구하지 못한채 그녀 자신이 죽어버릴 것이였다.

\"..그런짓, 안해..\"

지쳐서 눈가가 어두워진 그녀의 눈에서 눈물 한방울이 흐른다. 그녀는 살면서 눈물 흘려본적이 거의 없었다. 아스고어에게서 처음 이겼을때, 그때는 기쁨에 넘쳐 흘렸었다. 그러나 지금 나오는 눈물은 정확히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잠깐이나마 고민한 자신에 대한 비열함? 친구들에 대한 걱정? 수치스러운 굴복? 그녀는 알 수 없었다. 고개를 들 수도 없었다.

눈물로 얼룩진 그녀의 얼굴을 보며 남자는 만족한 표정을 짓는다. 그녀의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며 소름끼치는 미소를 띈다.

\"네 친구들은 안건드리겠다고 약속해줄게.\"

그녀는 대답없이 기계처럼 고개를 끄덕인다. 끊임없이 새나오는 수치심을 막기 위해서, 그녀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영웅 언다인을, 그녀의 마음속에서, 죽여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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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숙인 언다인을 바라보며 남자는 소름돋는 행복감에 취한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

\"멋있는 별명이야. 영웅 언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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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런거 처음써서 이상할듯
그냥 언다인이 무너지는거 보고싶다는 글쓰려다가 어쩌다보니 대회에 내고싶어졌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