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서(序)

 내가 알P(ALP)의 전기를 써야겠다고 작정한 것은 한두 해 전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줄곧 망설였던 것은, 나 자신이 후세에 길이 전해 줄 만한 글을 쓸 위인이 못 되는 까닭도 있지만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첫째가 문장의 제목이다. 열전(列傳), 자전(自傳), 별전(別傳), 가전(家傳), 본전(本傳) 등 전기에는 수많은 종류가 있지만, 애석하게도 여기에 적합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알피가 역사에 기록될 만한 위인은 아니었으니 열전이라 할 수는 없다. 또 내가 알피 자신이 아니니 자전이랄 수도 없다. 또 내가 알피하고 종씨인지 아닌지도 모를 뿐더러 그녀의 자손에게서 부탁받은 일도 없으니 가전도 아니었다. 결국 이 문장은 ‘본전’으로밖에는 분류할 수 없겠지만, 내 문장을 생각해 보면 ‘손수레꾼이나 장돌뱅이 따위’가 쓰는 비천한 말씨여서 감히 ‘본전입네’ 하고 내세울 수도 없다. 그렇다면 소설가들이 흔히 쓰는 ‘잡담은 그만두고 정전(正傳)으로 돌아가서(본론으로 들어가서)’라는 말에서 ‘정전’ 두 자를 빌려다가 제목으로 삼는 것이 어떨까?

 둘째는 전기를 쓰자면 대체로 첫머리에 ‘이름은 무엇이며 어느 지방 사람이다.’라고 써야 하는데, 나는 알피의 성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셋째로, 나는 알피의 이름을 어떻게 써야 할지를 모른다. 그녀가 살아 있을 적에는 사람들이 그녀를 알피라고 불렀지만, 죽은 다음에는 두 번 다시 입에 올리지 않았다. 이전에 나는 코어를 개발한 가스터 박사에게 여쭈어 본 적도 있었지만, 그렇게 박학 다식한 사람조차 그녀의 이름을 제대로 알지는 못했다. 그래서 나는 알피의 이름을 쓰기 위해 ‘지상의 글자’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영국에서 유행하는 철자법을 따라 알Phy라 하고, 쓸 때는 줄여서 알P로 하려는 것이다.

 넷째로, 알피의 본적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녀가 비록 에봇산에서 오래 살았다고는 하지만, 이따금 다른 곳에서도 살았으니 반드시 에봇산 괴물이라고는 할 수 없다.

 


제2장 승리의 기록

 


 알피는 이름이나 본적만 모호한 게 아니라, 에봇산에 오기 전까지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았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게다가 마을 사람들은 일손이 필요할 때나 곯려 줄 때만 알피를 생각할 뿐 다른 때는 관심도 없었다. 알피는 집도 없이 핫랜드에 있는 쓰레기장 안에서 살았다. 게다가 고정된 일거리도 없이, 쓰레기장에서 먹을것을 주워먹고 허드렛일을 하며 하루하루를 살아 나갔다. 그래서 사람들은 바쁠 때면 알피를 생각하지만, 한가해지면 까맣게 잊어버리곤 하였다.

 그런데 알피 또한 자존심이 매우 강해서 에봇산 괴물들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심지어 에봇산에 딱 둘밖에 없는 보스몬스터(boss monster,  육체가 소멸해도 잠깐은 영혼이 남아있을만큼 강한 괴물)에게까지도 웃어 줄 가치조차 없다고 여기는 형편이었다. 알피의 말대로 하면, 옛날에 그녀는 ‘잘 살았고 학식도 높았으며 못 하는 게 없는’ 거의 완벽한 괴물이었다는 것이다.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어쨌든 지금 그녀에게는 체질상으로 약간의 흠이 있었다. 그녀의 키가 작단 것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작다’라는 말을 몹시 싫어했다. 뿐만 아니라 그것이 점점 확대되어 나중에는 ‘작가’라는 말도, ‘아티스트’라는 말도 싫어하게 되었다. 급기야는 ‘요구르트’나 '치즈’ 같은 말까지도 금기(꺼리어서 싫어하거나 금함)로 했다. 그리하여 그 금기를 어기는 자가 있으면, 알피는 그 작은 몸이 시뻘개지도록 화를 냈다. 상대에게 욕을 퍼부으며 때리려고 덤벼들었다. 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알피는 혼을 내주려고 덤벼들었다가 되레 당하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그래서 알피는 그에 대한 대응 방법을 바꾸기로 하였다.

 동네 건달들은 알피를 볼 때마다 “야아, 걸리버 여행기가 뭔지 체험하는 기분인걸! 우유회사에서 모델로 쓰면 딱이겠군.” 하고, 그녀의 머리를 쿵쿵 쥐어박곤 했다. 그들은 알피가 단단히 혼쭐이 났으리라고 생각했지만, 알피는 십 초도 안 되어서 승리감으로 의기 양양해졌다. 자신을 짐짓 제리처럼 하찮은 존재로 생각해 버리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건달들은 결국 제리를 곯려 준 꼴이 되는 것이니까.

 ‘네놈 따위가 뭐야. 나는 제리야, 제리라구.’

 알피는 자신을 경멸할 수 있는 첫 번째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했다. 거기에서 자신을 경멸한다는 말을 빼 버린다면 남는 것은 ‘첫 번째 사람’이라는 것뿐이었다. 어디에서든 ‘첫 번째’는 좋은 것이었다. 이렇게 묘한 방법으로 승리를 하고 나면 알피는 금방 기분이 좋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