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럼프인지 뭔지 알 수는 없지만 한 일주일전부터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게임을 봐도 재미가없다. 사실 언더테일을 실제로 해본적은 없다. 너무 할일이 많기도 하고 이미 유투브 실황 보고 줄거리를 다 알고 있어서 다시 하기엔 좀 시간 낭비인 기분이었다. 그래도 한참 좋아하기 시작했을 때라서 게임을 샀다. 처음 스팀도 가입하고 설 이벤트로 할인도 해주더라고. 그때는 참 즐거웠었는데.


피시방가서 롤하는 고등학생들 옆에 앉아 언더테일 돌려보긴 했었다. 한글패치 따로 받아야되서 그냥 영어보면서 했다. 그런데 게임 안에 세이브하면 알아서 되겠거니 했는데 다음날 다시 피시방 가보니까 처음부터 다시 해야되더라고. 그야말로 트루리셋. 그 이후로 다시 게임을 켠적은 없었다. 다시 하려면 할 수도 있었는데 왜그랬는지 모르겠다. 시간이 없어서, 이미 내용 알고 있어서 뭐 이런저런 핑계를 댈 수 있겠으나 진실은 따로 있었다. 지금와서 생각해 보면 그 정도만큼의 애정밖에 없었던 게 아닌가 싶다.


내 상황은 별로 좋지 못했고 그것은 현재까지 이어졌다. 겨울에 빠졌던 게임을 여름 직전까지 놓지 못하고 있게될 줄은 정말 예상하지 못했다. 인생은 정말 알 수 없는 것 투성이다. 그건 아마 내 예상의 범위가 그만큼 한계에 있다는 말과 같을 것이다. 이런 사실이 불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훌륭했다. 좀 더 즐거운 일이 생긴다면 반드시 삶에 활력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가장 처음으로 돌아가, 나는 불면증이 심해서 자기 전에 뭔가 정신을 빼놓을 걸 하지 않으면 결코 잠들 수 없었다. 가령 티비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화면을 멍하게 들여다보고 있으면 상념이 깔끔하게 제거된다. 그리고 잠으로 빠져든다. 그 즈음 구독해보는 비제이가 있었는데 게임실황을 전문으로 했다. 그렇게 언더테일을 알게 됐다. 빨리 잠들기 위해 최신 업데이트 중 가장 끌리는 제목을 눌렀고 그게 언더테일실황이었다. '명작...' 다들 한번쯤 봤을 미사여구.


감동은 물처럼, 밤처럼 흡수되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해가 뜨고 있었다. 그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정말 신기한 경험이었다. 밤새는 거 끔찍하다고, 그렇게 늘 말했었는데. 언더테일 마지막화 영상이 끝나고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 지점의 느낌이 아직도 손에 잡힐 듯이 선명하다. 창밖으로 해가 떠오르고 이불 속에서 눈만 동그랗게 뜬 채 미동도 하지 않던 나의 모습.


창작활동에 대해. 그것은 매우 즐거우면서 동시에 고통을 주었다. 나는, 자세하게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책을 많이 읽어야하는 분야에 관련되어 있다. 공부하고 책읽는 게 내 일이다. 이걸 왜 굳이 설명하고 있냐면 글짓기에 관해서 좀더 내밀히 말해보고자 함이다. 나는 고등학생때 이미 내가 글짓기에 재능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지만 문학이 주는 희열을 결코 놓칠 수 없기에 나는 좀 다른방향을 선택했다.


언더테일을 좋아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무언가 생산하는 것에 주의를 기울였다. 이전에 단 한번도 이런 시도를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굳이 왜 언더테일이냐? 간단하다. 나의 모든 예상을 조롱했기 때문이다. 나는 극심한 허무주의에 빠져있으면서 동시에 언제나 신선하고 창의적인 것을 바랐다. 그것이 일종의 구원이 되어 주길 원했다. 그렇기에 결코 놓칠 수 없었다. 언더테일은 나의 맞춤형 마스터피스였다.


그런 줄 몰랐지만 나는 내 글을 다시 읽으며 한 가지 사실에 도달했다. 나는 아마도 '글짓기'를 동경하고 있었던 것 같다. 좋은 작품을 만나 열정적으로 만들고 보니 창작이라는 걸 조금 알 것 같았다. 누군가 이런 이야기를 했었지. 창작은 고통스럽고 평가는 빛처럼 잔혹하다. 뭐, 이런거. 빛이 잔혹한 이유는 감추고 싶은 걸 드러내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것도 경험이 쌓이니 가능한 일이다. 무슨 말이냐? 좀 더 어렸을 땐 충동이 들어도 핑계나 체면때문에 나서기를 포기했었다. 그것은 다른 표현으로 '겁쟁이'라고 일축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의 나는 적절한 시기는 결코 다시 돌아오지 않으며 기회가 왔을 때 최대한 더 많이 더 크게 표현해내어야 한다는 괜찮은 진리를 이미 알고 있었다. 이것은 나에게 위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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