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씨. 당신의 편지를 읽으며 저는 회한에 가득 찼습니다. 이 이야기는 당신을 부인이라 말하라하지만 저는 당신을 아가씨라고 불러도 될까요. 너무도 애절한 제 이야기의 색채에 나 스스로도 너무도 화가 나 있었으며 그렇기에 저는 어떤 명랑한 이야기를 해보려 다짐했습니다. 그래요, 사나웁게도 명랑한 이야기 말입니다.

  제게 있어 당신을 포함한 모든 것들은 온통 햇살이며 노래입니다. 실로 이 마음을 새카맣게 뒤덮어 버리는 것은 분명 잘못된 일입니다. 그러니 오히려 저는 숙녀 분에게 장밋빛 시와 사랑 이야기로 가득한 바구니를 보내야 할 텐데요. 그런데 뒤늦게 당신의 편지를 읽고 난 후 제 마음엔 도무지 그러한 흥이 남아있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아가씨. 제가 당신께 전하려고 마음먹었던 어여쁘고 유쾌한 이야기 대신에 오늘도 마찬가지로 우수에 젖은 이야기를 들려드려야 할 것 같네요.

  한때 황금 뇌를 가졌던 사내가 있었습니다. 그래요, 아가씨. 황금 뇌 말입니다. 그가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의사는 아이가 얼마 못 살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아이의 머리는 너무 무거웠는데다 터무니없이 뇌가 커다랬거든요. 그런데 아이는 기어코 살아났습니다. 햇살 속에 자라난 고운 올리브 나무처럼 말이에요. 하지만 그 커다란 머리 탓에 아이는 항상 비틀거렸습니다. 걸어 다닐 적마다 온통 가구에 부딪치는 모습이 어찌나 애처롭게 가슴 찢어지게 하던지요. 아이는 몇 번이고 넘어지고는 했습니다. 어느 날 아이는 계단 꼭대기로부터 층계참 사이로 굴러 떨어져 대리석 계단에 이마를 찧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계단에 부딪친 아이의 골통에서 쇠붙이 한토막이 텅 하고 울렸습니다. 사람들은 아이가 죽었다고만 생각했지요. 하지만 일으켜보니 그저 작은 상처만 입었는데다 아이의 금발머리 사이에 두어 개의 황금 조각이 붙어있더랍니다. 그제 서야 아이의 부모는 아이가 황금 뇌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이는 비밀리에 부쳐졌지요. 이 가여운 어린 것은 저 스스로도 아무 것도 알지 못했죠. 때때로 아이는 자신이 동네 아이들과 함께 바깥을 방방 뛰어다니며 놀기를 제 어미 아비가 금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묻고는 했습니다.

  ‘* 그건 누가 너를 훔쳐 갈까봐서란다, 내 사랑스러운 보물아!’

  아이의 어머니는 그렇게 답하고는 했죠. 그 이후로 이 어린 것은 저 자신을 도둑맞는 게 끔찍하게도 두려워졌습니다.
아이는 그저 홀로 틀어박혀 놀 뿐이었습니다. 대화 하나 나눌 일 없이 이방 저방 사이를 잔뜩 심하게 넘어지며 말입니다.

  아이가 열여덟 살이 채 되지 않았을 때 부모는 운명에 저당 잡힌 그 기적 같은 자질에 대해 아이에게 털어놓았습니다. 그리고 그 제까지 저를 가르치고 키워준 보답으로서 약간의 금을 나누어 달라 말했습니다. 아이는 망설임 없이 즉각 그리 했어요. 어떻게요?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그리 했냐구요? 이야기는 안타깝게도 거기까진 말해주지 않았네요. 아이는 호두 한 톨 만한 딱딱한 금 덩어리를 머리로부터 떼어내어 보란 듯이 어머니의 무릎 위에 던져주었습니다. 제 머리에 품고 있는 재보에 황홀해진 아이는 욕망에 미쳐버린 채 그저 저 자신의 권능에 취해 있었죠. 아이는 부모의 집을 떠나 바깥세상으로 나가 자신이 지닌 보물을 흥청망청 써버리는 겁니다.

  남자가 하는 행태를 보니 저 자신이 마치 귀인이라도 된 듯 셈도 없이 무턱대고 황금을 수확해대기 일쑤였죠. 이 모습에 어느 이는 남자의 뇌가 화수분 단지 같다며 읊조렸습니다. 하지만 실은 바닥을 보이는 중 이었어요. 사람들은 점차 남자의 눈빛이 희끄무레해지고 그 뺨이 더욱 핼쑥해지는 것을 눈치 챌 수 있었습니다. 결국 한바탕 유흥을 즐긴 후 어수선하게 남겨진 파티 흔적과 수그러드는 촛대 사이에 파묻혀있던 이 운도 지지리 없는 젊은이는 어느 날 아침 제 머리통 속에 든 금괴에 뚫린 커다란 구멍에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이제 이 짓거리도 멈춰야만 하는 때가 온 겁니다.

  그 후로 남자는 새 삶을 살았습니다. 황금 뇌를 가진 사내는 제 힘으로 벌어먹기 위해 남들로부터 떨어져 살게 되었습니다. 어쩐지 의심도 많아진데다 수더분한 구두쇠 마냥 굴게 되었습니다. 유혹으로부터 피하려 노력하고 다시는 손을 대지 않으리라 마음먹은 그 치명적인 보물을 저 스스로도 잊어버리도록 애를 쓰며 말입니다. 불운하게도 남자의 비밀을 모두 알고는 고독하게 지내던 남자의 뒤를 밟은 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밤 이 가엾은 남자는 머리에서 느껴지는 끔찍한 고통에 잠이 깼습니다. 생을 앗아갈 듯한 고통스러운 일깨움에 침대로부터 벌떡 뛰쳐나온 남자는 망토자락 아래로 무언가 숨겨 달아나는 친구의 모습을 달빛 사이로 지켜보았습니다.

  또 한 덩어리 뇌를 빼앗긴 겁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 뇌를 도둑맞은 남자는 사랑에 빠졌고 이는 파멸이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남자는 온 마음을 다하여 가녀린 금발의 여인을 사랑하였고 여자 또한 마찬가지로 그럭저럭 남자를 사랑하긴 하였지만 그런 그녀는 리본이며 새하얀 깃털장식과 작고 예쁜 구리 장식 술이 달랑이는 구두와 같은 것을 더욱 사랑하였죠.

  새와 인형을 반씩 닮은 이 앙증맞은 피조물의 손아귀 안에서 황금 조각들은 앞일 두려운 줄 모르고 그저 무념히 녹아 사라져갔습니다. 변덕이 죽 끓는 듯 하는 여인이었지만 남자는 그에 거절하는 법을 몰랐죠. 실로 남자는 여인이 속상해 하는 게 두려웠던 겁니다. 남자는 마지막까지 저 자신이 지닌 재력의 슬픈 비밀에 대해 그녀에게 알리지 않았습니다.

  ‘* 우린 부자 맞죠?’ 여인은 이렇게 말하고는 했고 가엾은 남자는 그저 대답할 뿐이었습니다.
  ‘* 물론이지! 아주 엄청난 부자야.’

  천진난만하게 뇌를 갉아먹는 이 귀여운 파랑새에게 남자는 애틋한 미소를 만연 지어보이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따금 두려움이 남자를 뒤 흔들었습니다. 그리고는 또다시 이전처럼 인색하게 굴 수 있기를 애타게 갈망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이 작은 여인은 남자에게 깡충깡충 다가와서는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 이봐요, 여보. 당신 정말 돈 많잖아요, 비싼 걸 뭔가 사줘 봐요.’

  남잔 그리고는 또다시 여인에게 비싼 무언 갈 사주고는 했습니다.

  이런 식의 자잘한 일들이 두 해 동안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아침 이 어여쁜 여인은 죽고 말았습니다. 어째서인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그저 작은 새처럼 죽어버렸습니다. 황금은 거의 다 써버린 상황이었죠. 홀아비가 되어버린 남자에게는 그저 가엾게도 죽어버린 아내를 위해 성대한 장례식을 치를 만큼의 황금만이 남아있었습니다. 조종이 울리우고 육중한 장례 마차엔 새까만 관 덮개가 씌워졌죠. 깃털 장식으로 치장한 말이며 벨벳 위로 어룽진 은빛 눈물 그런 것 말입니다. 실은 남자의 눈에는 이도 성에 차지 않았습니다. 이젠 황금이 그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남자는 가진 것 전부를 교회며 상여꾼이며 빈소를 장식할 조화를 팔던 여인들에게 줘버렸습니다. 흥정도 없이 그저 사방팔방 가진 것이라면 모두 온통 줘버렸습니다. 그리하여 남자가 묘지를 떠날 즈음에는 그 휘황찬란하던 골통에 남은 것은 거의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두개골 안쪽에 조금 남겨진 금 부스러기를 제외하면 말이죠.

  사람들은 술에 취한 사람처럼 이리저리 고꾸라지며 험상궂은 표정으로 손을 앞으로 쭉 뻗은 채 남자가 거리를 배회하는 모습을 보고는 했습니다. 모든 상점들이 등불을 밝히는 밤이면 밤마다 남자는 눈을 호리는 반짝이는 장신구와 보석들이 불빛 아래로 번쩍이는 빛을 토해내는 커다란 진열창 앞에 멈춰 서서 발이 묶이고는 했죠. 그리고 그는 그 자리에 멈춰 서서 백조 솜털로 장식하여 푸른 공단으로 만든 한 켤레의 구두를 아주 한참 동안 바라보았습니다. ‘* 저 구두를 가져다주면 분명 뛸 듯이 기뻐할 테지.’ 남자는 미소를 머금고 홀로이 지껄였습니다. 그래요. 작은 여인이 죽어버린 걸 이미 잊고 말았습니다. 남자는 구두를 사기 위해 상점으로 들어갔습니다.

  상점 뒤쪽 저 깊숙한 곳에 있던 상점 여주인은 커다란 외침소리를 듣고 가게로 달려갔죠. 그리고는 창문에 기대어 몽롱해진 얼굴을 한 채 슬픈 눈매로 저를 바라보는 남자를 발견하고는 두려움에 흠칫 놀랐습니다. 남자는 가장자리에 백조 솜털을 두른 푸른 구두를 한 손에 쥐고 있었습니다. 여주인에게 내밀어진 다른 한 손은 온통 피투성이였고 그 손톱 밑에는 긁어모아낸 금가루가 달라붙어 있었구요.

  아가씨. 이게 바로 황금 뇌를 가졌던 어떤 사내의 이야기입니다.

  비록 다소 환상 이야기 같이 느껴지겠지만 이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이 진실인걸요. 이 세상엔 저들이 지닌 뇌에 기꺼이 만족하며 살아가는 너무도 많은 가여운 이들이 있잖습니까. 이들은 하나같이 삶에 있어 별 볼일 없는 사소한 것을 위해 저 자신의 곱게 제련된 황금을, 저들의 골수며 본질을 지불해버립니다. 이들에게 있어서 고통이란 매일과도 같이 반복되는 그러한 것이죠. 그리고 바로 그 순간마다 우린 이토록 시달리며 고통 받는 일에 너무도 지쳐버리게 되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