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피곤할 시간이 되었음에도, 핫랜드 연구소에서는 불이 꺼지지 않은 곳이 있었다.
모두가 퇴근하고 연구소에 아무도 남지 않게 되었을 때, 연구소에 남아서 기계에 한참 열중하고 있는 가스터만이 홀로 있었다.
야근을 하기엔 너무 지친 나머지 모두가 내일을 기약하고 돌아갔지만, 평소엔 정시 퇴근을 그렇게 부르짖던 가스터가 웬일인지 늦게까지 일하고 있었다.
* 젠장, 제발 좀 나와라... 내일은 그릴비네 가서 쉬어야 돼... 내일만은, 기필코...
퀭한 눈을 하고서 그렇게 말하는 가스터의 말투는 흡사 내일의 달콤한 휴식에 굶주린 하이에나와도 같았다.
보아하니, 이번 주 내로 일을 끝맺고 그릴비네에서 쉬고야 말겠다는 다짐은 실험 결과가 좀처럼 나오지 않아 무너진 모양이었다.
실험 결과가 원하는 대로 나오지 않았더라도 그냥 연구원들에게 보고하면 끝날 일을 가스터는 어째서인지 오기가 생겨서 붙잡고 있었다.
* 찝찝한 뒷맛을... 남겨둔 채로는... 햄버거도 라면도 제대로 음미할 수 없다...
아무래도, 연구원들이 이 문제를 덮어두고 그릴비네로 직행한다 하더라도, 자신의 기분이 찝찝해서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기계가 그런 가스터의 마음을 읽어줄 리가 없었다.
* 틀렸다, 뭘 해도 안 돼... 오늘 새벽부터 쭉 이것만 붙잡고 있었건만...
가스터는 아까보다도 더 피곤해진 표정으로 의자의 등받이에 쓰러지다시피 기댔다.
이 때, 카드 식별음이 들리더니 연구실의 문이 열리며 하나는 땅딸막하고 하나는 홀쭉한 형상 둘이 나타났다. 샌즈와 파피루스였다.
* 아버지, 왜 안 오시나 했더니 아직도 이걸 붙잡고 있었어요?
* 세에상에!! 아빠, 지금 꼴이 말이 아니잖아!
가스터는 힘겹게 고개를 돌리며,
* 오, 왔냐, 꼬맹이들아...
그러고는 고개를 앞으로 푹 숙이며 반쯤 넋나간 얼굴로 앉아있었다.
파피루스가 눈이 휘둥그레지며 한달음에 달려나가더니, 연구소가 떠나가라 큰 목소리로 가스터를 붙잡고는 소리쳤다.
* 으아아아아!! 아빠! 저번에 그렇게 나한테 들러붙더니 결국 병 걸려서 쓰러진 거야?! 세에상에! 샌즈! 약 좀 가져와봐! 약! 녜에에엑!!
연구소에 해골 부자 말고는 아무도 없어서 망정이었지, 다른 인원이 있었으면 소란스럽다고 화를 냈을 크기였다.
샌즈가 그런 파피루스에게 다가가 어깨를 몇 번 토닥여 파피루스를 말리고는 말했다.
* 야, 야, 그렇게 흔들지 마. 그리고 걱정할 필요 없어, 아버지는 그냥 오늘 반복 작업을 좀 많이 했을 뿐이거든.
* 반... 뭐?
샌즈는 눈을 찡긋 감는다.
* 골백 번도 더.
두둥, 탁. 샌즈의 뼈 농담에 반사적으로 파피루스의 머릿속에서 경쾌한 드럼 반주가 연주되기 시작한다.
* 샌즈!!
파피루스는 눈을 휘둥그레 뜨면서 가스터에게서 떨어지며 비명을 질렀다.
샌즈는 실실 웃으며 그런 파피루스를 뒤로 하고, 그가 내뱉는 녜에엑 하는 비명 소리를 배경 삼은 채 가스터에게 다가간다.
* 그래서, 어떤 연유로 왕실 과학자 W. D. 가스터는 야근도 불사하고 일을 하고 있던 건가요?
그렇게 말하고는 자신도 크게 하품을 하는 샌즈의 모습을 보아하니, 샌즈는 자다가 일어나서 가스터가 없는 걸 알았거나, 가스터가 올 생각을 하지 않자 졸음을 참고 여기로 온 모양이었다.
가스터는 원하는 결과를 뱉어낼 생각을 하지 않던 야속한 기계를 바라보며 말했다.
* 그냥, 여러 가지 오기가 생겨서.
* 헤, 구체적으로 어떤 거요?
가스터는 피곤한 와중에도 힘없이 어깨를 으쓱이며 샌즈에게 말했다.
* 그냥, 네 가설로 결과는 꼭 내고 만다는 오기랑, 내일 그릴비네는 꼭 가고 만다는 오기랑, 그 외에 기타 등등...
샌즈는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오른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가볍게 웃었다.
샌즈의 그 웃음의 뜻을 알아챈 가스터는, 시선을 살짝 돌리고는 자신도 가볍게 웃어보였다. 이 때 가스터의 표정이 자신을 한심해하는 듯한 표정으로 바뀐 것을 눈치채고 샌즈가 말했다.
* 그 표정, 자기 자신이 한심하다는 듯한 표정이네요?
가스터는 입은 여전히 웃고 있었지만, 약간은 씁쓸한 눈을 하고는 샌즈에게 말했다.
* 한심하지. 결과는 제대로 못 내고, 아들이 하는 말을 안 들었다가 이런 꼴이나 나고...
가스터와 샌즈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파피루스도 그 사이 뼈 농담의 충격에서 벗어나 말이 없었다.
먼저 이 기나긴 정적을 깬 건 샌즈의 한 마디였다.
* 뭐, 그렇게 자책하진 마세요. 아버지가 왜 그랬는지는 잘 아니까요.
* ...미안하구나, 샌즈. 폐나 끼치고... 그리고 와줘서 고맙다.
가스터는 자신을 위해 굳이 연구소로 돌아와준 샌즈에게 사과하고 또 감사했다. 그 목소리에선 어느새 웃음기가 사라져있었다.
샌즈는 어느새 연구소 바닥에 편히 앉아서 가스터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말했다.
* 뭐, 괜찮아요, 신경쓰지 마요. 그나저나, 그릴비네는 굳이 이런 거 안 해도 갈 수 있는데, 왜 그랬어요?
* ...그냥, 포기해버리면 여러모로 뒷맛이 안 좋을 것 같았거든.
가스터는 여전히 시선을 샌즈에게서 돌린 채로 말을 이어갔다.
* 뒷맛이 찝찝한데 음식 맛이 좋을 리는 없으니까. 그렇지?
그렇게 말을 마치는 가스터가 매우 복잡한 표정을 하고 있는 것을 샌즈는 보았다.
결국 결과를 이끌어내지 못한 자신에 대한 자책, 자신의 호언장담에 대한 책임감, 그 말을 들어준 연구원들에 대한 미안함, 그리고...
* 아버지, 저한테 미안함 느낄 필요는 없어요. 제 가설을 증명할 수단이 설마 그거 하나뿐이겠어요?
샌즈는 그런 말을 하고는, 파피루스를 잠깐 돌아보더니, 가스터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 저희가 모른다뿐이지 증명할 방법은 찾아보면 1톤 트럭으로도 부족할걸요. 스켈레톤쯤 가야 할걸요?
가스터는 그 농담에 복잡한 표정을 풀고 피식 웃었다. 눈빛은 씁쓸한 눈빛 그대로였지만, 입모양이나마 웃는 모양이 되니 조금은 나은 모습이었다.
샌즈는 말을 이어나갔다.
* 그리고, 아버지, 그렇게까지 결과 내는 데 책임감 느끼실 필요 없어요.
* 하지만, 샌즈... 그런 건 좀 무책임하지 않겠냐. 이번 주 내로 끝내버리겠다고 그렇게 말을 했는데...
샌즈는 가볍게 가스터의 어깨를 두드려주고 말했다.
* 그렇게 얽매일 필요 없잖아요. 이렇게까지 최선을 다했다면 말이에요, 아버지.
샌즈는 잠시 말을 끊고는 기계에 다시 시동을 걸고 말했다.
* 비록 그 장담을 지키지 못했더라도 이해받을 수 있을 거에요.
* 헤, 그렇게 생각하는 거냐...
가스터가 샌즈를 바라보며 말했고, 샌즈는 그런 가스터에게 눈을 맞추고는 눈을 찡긋 감아보이며 말했다.
* 뭐, 적어도 남들 기만하고 손 놓지는 않았잖아요?
가스터는 그 말에, 고개를 돌려 등받이에 완전히 기댔다. 표정은, 아까보다는 좀 편안해져있었다.
샌즈는 기계를 바라보며 뭔가 생각하더니, 파피루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 팝, 가서 내 실험용 가운 좀 가져다줄래?
* 엥? 아빠 데리고 가는 거 아니었어?
* 그냥 오늘은 여기서 자는 게 좋을 것 같다.
샌즈는 그러고는 가스터의 가운을 벗긴 뒤, 의자에 기대어 탈진해있는 가스터를 부축했다.
* 아무리 그래도, 의자에 그렇게 쓰러져있으면 불편하죠. 어디 편한 데 좀 누워계세요.
그 말을 듣는 가스터는 긴장이 풀려서 이미 고맙다고 말할 기운도 없었다. 샌즈에게 부축받으며 곯아떨어져있었다.
가스터를 편안해보이는 자리에 눕힌 후, 샌즈는 파피루스가 가져온 가운을 입고는 그에게 가스터의 가운을 건네며 말했다.
* 그러면 팝, 관찰 기록 출력하는 것 좀 도와줘.
* 알았어.
가스터의 가운을 입은 파피루스가 출력기 앞에 섰다.
가스터는 잠시 자신이 짊어진 무게를 던져버리고 편한 잠을 만끽하고 있었다.
가스터를 대신하여 그의 실험을 계속하는 샌즈와 파피루스에게도 그러한 무게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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념글간 아빠가스터 문학에 영향을 좀 많이 받았음...
다시 읽어보니 뭔가 심하게 닮았네. 문학쓴 갤럼한테는 미안하고, 부탁하면 바로 지울게.
캐시캐시 오버타임인줄 - dc App
좋다 퍄 잘읽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