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말했다. 다신 열리지 않을 것만 같았던 말문을 트며, 낮게 말했다.

 "여기가 끝이야. 더 이상 갈 곳이 없어."

 소녀가 굳은 표정으로 칼을 다잡았다. 칼을 쥔 손에 힘을 더하자 마주선 뼈다귀는 그저 평소처럼 헤헤 웃을뿐 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너무 무게잡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군, 그래, 맞아."

 분위기를 풀어보려는 듯, 그가 고개를 까딱거렸다. 소녀는 당황한 티를 내지 않으려 애썼다. 

 "팔 없는 꼬마를 죽인 것도 너였지. 내 동생의 우상인 언다인을 죽인 것도 너야."

 소녀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녀가 그러든 말든 그는 말을 이었다.

 "최고는 아니었지만, 항상 최선은 다했던 국왕, 아스고어를 죽인 것도 너지."

 말을 마친 그가 작은 한숨과 함께 눈을 감았다.

 주변이 검게 물들어갔다. 회색 뿐인 방 안의 풍경이 사라져가며 알 수 없는 오한이 등을 타고 흐르는 것을 느꼈다. 소녀는 몸을 떨었다.

 "하지만 내 동생을 죽였지? 난 납득할 수 없어."

 눈을 뜬 그의 왼 눈이 푸른 빛을 일렁이며 혐오스럽게 뒤틀렸다. 언뜻 눈물로 보이는 무언가가 새고 있는 것도 같았다.

 "넌 그를 죽여선 안됐어. 여리고 착한 내 동생은 죽으면서까지 널 걱정해주었지. 정말 분에 넘치는 관심 아니야?"

 그가 한 쪽 손을 들었다. 이어 그의 뒤로 무언가가 형태를 이루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끊임 없는 두려움에 소녀는 그만 칼을 놓치고 말았다.

 "어, 그러면 안되지. 포기는 반칙이라고."

 푸른색 구체가 칼을 감싸고는 칼을 띄워, 소녀의 손에 다시 쥐어주었다. 소녀의 손에 쥐어진 칼이 작게 떨리다, 이내 고요해졌다.

 "자, 시작해볼까."

 '너는 끔찍한 시간을 보낼 것만 같은 기분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