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지널.


 그가 말했다. 다신 열리지 않을 것만 같았던 말문을 트며, 낮게 말했다.

 "여기가 끝이야. 더 이상 갈 곳이 없어."

 소녀가 굳은 표정으로 칼을 다잡았다. 칼을 쥔 손에 힘을 더하자 마주선 뼈다귀는 그저 평소처럼 헤헤 웃을뿐 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너무 무게잡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군, 그래, 맞아."

 분위기를 풀어보려는 듯, 그가 고개를 까딱거렸다. 소녀는 당황한 티를 내지 않으려 애썼다. 

 "팔 없는 꼬마를 죽인 것도 너였지. 내 동생의 우상인 언다인을 죽인 것도 너야."

 소녀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녀가 그러든 말든 그는 말을 이었다.

 "최고는 아니었지만, 항상 최선은 다했던 국왕, 아스고어를 죽인 것도 너지."

 말을 마친 그가 작은 한숨과 함께 눈을 감았다.

 주변이 검게 물들어갔다. 회색 뿐인 방 안의 풍경이 사라져가며 알 수 없는 오한이 등을 타고 흐르는 것을 느꼈다. 소녀는 몸을 떨었다.

 "하지만 왜 내 동생을 죽였지? 난 납득할 수 없어."

 눈을 뜬 그의 왼 눈이 푸른 빛을 일렁이며 혐오스럽게 뒤틀렸다. 언뜻 눈물로 보이는 무언가가 새고 있는 것도 같았다.

 "넌 그를 죽여선 안됐어. 여리고 착한 내 동생은 죽으면서까지 널 걱정해주었지. 정말 분에 넘치는 관심 아니야?"

 그가 한 쪽 손을 들었다. 이어 그의 뒤로 무언가가 형태를 이루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끊임 없는 두려움에 소녀는 그만 칼을 놓치고 말았다.

 "어, 그러면 안되지. 포기는 반칙이라고."

 푸른색 구체가 칼을 감싸고는 칼을 띄워, 소녀의 손에 다시 쥐어주었다. 소녀의 손에 쥐어진 칼이 작게 떨리다, 이내 고요해졌다.

 "자, 시작해볼까."

 '너는 끔찍한 시간을 보낼 것만 같은 기분을 느낀다.'


언더펠.


 쌕쌕 숨소리를 제했다면, 방 안은 침묵 뿐이었을 것이다. 계속되는 그의 거친 숨소리에 소녀가 언짢은 듯,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는 멈출 생각이 없어보였다.

 "여...여기가 끝이지... 더 이상 갈 곳은... 없어..."

 침이 살짝 튀었다. 그는 약한 신음과 함께 혀를 내밀어 입술, 입 부근의 뼈를 핥았다. 홍조를 띈 그의 얼굴에 자칫 위험해보인 상황에 소녀가 고개를 저었다.

 "난... 인간, 너를 소중히 다뤄줬었어... 그런데..."

 말을 더듬던 그가 손을 들어 소녀를 가리켰다. 비장해보일 법도 한 자세였건만, 그의 표정 탓에 역시나 소녀의 표정은 찌푸려졌다.

 "내 동생도... 그랬지... 말로는 거칠게 내뱉었지만... 널 소중히 여기고 있었어... 왜 내 동생을 죽였지...?"

 이어진 그의 말에 소녀가 헉 소리를 내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깊고 검은 눈구멍과 시선을 마주치자 소녀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버렸다. 형용할 수 없는 죄책감에 몸 여기저기가 시큰거리기 시작했다.

 "헤에... 아픔을 느끼는 거야...? 네가?"

 천천히, 한 걸음씩, 그가 소녀를 향해 발을 내딛었다. 그와 동시에 소녀는 한 걸음씩, 그로부터 뒷걸음질을 쳤다.

 "도망가는 건... 좋지 않아..."

 쿠웅-

 거대한 무언가가 땅에 박혀 길을 막아버렸다. 당황한 소녀가 뒤돌아 무엇인지 알아보려 할 때 즈음, 소녀의 귓가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시작해보자고..."

 '너는 끔찍한 시간을 보낼 것만 같은 기분을 느낀다.'


언더스왑.


 "아... 인간..."

 방에 들어서자 담배를 막 입에 물던 그가 소녀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이내 불을 붙여 깊게 들이마신 후, 한 차례 내쉬며 말했다.

 "담배 냄새를 싫어한다 했던가?"

 위해주는 듯한 말이었지만, 말과는 다르게 계속해서 담배를 피는 그였다. 그리고 이어 무성의하게 담배를 이로 물고는 입을 열었다.

 "뭐, 너도 이해할 순 있겠지. 내가 네 기분 따위를 맞춰줄 수 있는 심정은 아니니 말이야."

 주황빛 후드에 약간의 재가 떨어지자 그가 인상을 찌푸리며 후드를 털었다.

 "제기랄, 이게 뭐야."

 스릉-

 소녀가 쥐고 있던 칼을 들어 그를 향해 겨냥했다. 두 손을 맞잡아 꽉 쥔 칼은 아주 작게 떨리고 있었지만, 소녀는 애써 모른 체 하며 그를 노려보았다.

 "...정말 뻔뻔하기 그지없군."

 더러운 것을 보듯, 그가 소녀를 보며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었다.

 "이게 뭔진 알겠지."

 그의 손에서 나풀거리는 푸른색 스카프를 보자, 소녀는 적잖이 놀랐지만 아무렇지 않은 체 하려 노력했다. 식은땀이 조금씩 흘러내리는 소녀의 모습을 보며 그가 피식 웃고는 스카프를 다시 주머니에 접어 넣었다.

 "분명 우리 형은, 티 없이 착할 뿐이잖아? 모두가 알고 있어. 철이 없긴 하지만, 그게 죄가 될 순 없지."

 담배를 들이마시려는 것이었는지 그가 말을 끊었다.

 "그런데 넌 왜 형을 죽인거지? 죽어가는 형의 모습을 보며 어떤 생각을 했던거지?"

 파삭-

 담뱃잎이 타며 부서진 재가 땅에 떨어졌다. 다 태운 담배의 필터를 익숙하게 뱉어대며 그가 후드에서 두 손을 꺼냈다.

 "충분히 긴 이야기였지. 그럼 시작하자고."

 '너는 끔찍한 시간을 보낼 것만 같은 기분을 느낀다.'


귀농테일.


 "여어- 꼬맹이. 왔는가."

 익숙한 사투리의 그가 손을 흔들며 소녀를 향해 외쳤다. 소녀는 손으로 잡고 있던 과도를 더욱 꽉 쥐며 그에게 다가섰다. 논밭의 흙내음이 가득 퍼지며 둘은 잠시 말 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활기 넘치던 기득이 고 놈아가 말 수가 적어졌더만. 윤다인 선생은 쌀을 한 가마니도 제대로 못 들고."

 진지한 어조로 그가 계속 말을 이었다.

 "안승고 고 양반은 이젠 소를 구하러 댕긴담서."

 어깨에 걸쳤던 쟁기를 바닥에 박아넣으며 그가 말했다.

 "분명 다들 뭔 일이 생긴게지."

 땅에 박아넣었던 쟁기를 뽑아 소녀를 향해 겨누며 그가 섬뜩하게 물었다.

 "뭔 짓을 한거여? 저 만치로 죽어가는 사람들이 아니었는데말여."

 소녀는 그저 과도를 다 잡을뿐, 입을 열지 않았다.

 "후... 그려... 여기까지는 뭐, 내 참을 수 있어. 그런데 말이여."

 한숨을 내쉬던 그가 눈을 뜨며 별안간 큰 소리로 외치기 시작했다.

 "필수가 반상회에 안 나오는 건 당최 뭔 일이제? 그건 도저히 있을 수가 없는 일인데말여!"

 이글이글 타오르는 그가 손을 뻗자, 웅장하고 두터운 흰 소 두 마리가 그의 뒤에 나타났다. 그 위용에 소녀는 몸을 떨기 시작했다.

 "후회해도 늦었제."

 한 걸음 다가서며 그가 쓰고 있던 밀짚모자를 벗었다.

 "자, 퍼뜩 시작해보자고."

 '너는 허벌나게 끔찍한 시간을 보낼 것만 같은 기분을 느낀다.'


사실 다른 AU들 잘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