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오늘 이 곳을 다섯 번 지나쳤다. 나는 네가 이 세상을 너무 사랑할까 두렵다. 말간 눈동자 속의 빈 구멍 속으로 풍경을 잔뜩 들이마시더니 제 몸뚱아리 하나만이 세상 유일한 구심점이 되어 두 팔을 벌린 채 제자리를 빙빙 돌기 시작했다. 입을 벌리고 하늘을 들여다보며 신이나 웃음을 터트린다. 눈 내린 숲속의 솔로 댄스. 아이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나만이 기억하고 있다. 오늘 하루 만 다섯 번째의 파 투르낭. 그럼에도 나는 이 풍경이 참 좋았다. 좋았지만 온통 무력에 젖어 이 부감의 풍경을 그저 나른히 바라보고 있다. 삶은 지겹고 충동적이며 남모르게 구토를 일으키게 만들기에 입을 틀어막고 타자의 시선을 피하며 숨죽일 적마다 홀로 홀로이 괴로웁기만 하다. 기분 좋게 간지럽히듯 목울대를 울리는 네 웃음소리에 나는 더 슬퍼지기만 한다. 네게 더는 아무 일도 생기지 않겠지. 눈길 위로 아이의 고운 흔적만이 남아돈다. 나는 저 흔적이 사라지지 않기를 항상 고대하는데. 이게 기억이던가 꿈이던가 환상이던가 그러한 구분이 불필요하다는 걸 깨달아야 하는데. 나는 눈을 감아버렸다. 아마 깨달음이 온 시점은 더 이후였던 것 같다. 똑 또독 언제부터 내 눈을 감고 있었는지 어둔 방 한 가운데 서서 손바닥 안에 감싼 전구에 불이 들어오며 마른 손바닥에 따뜻한 온기가 맑게 피어오른다. 아이는 섭씨 이만도가 넘는 용수철 고리 위를 달리고 있다. 새카맣게 타버린 발끝을 헛디딜 적마다 불똥이며 가루빛이 마구 튀겨나간다. 안 돼. 손을 들어 얼굴을 감싸 곧 떨어져나갈 아이의 슬픈 얼굴을 보지 않으려하지만 전구를 놓쳐버린다면 너는 더욱 세차게 깨어져버릴 것이다. 나는 보아야만 한다. 너를 믿고 있으니 의지를 가지렴. 추락한다. 유리관 너머 너를 향해 서투른 팔매질을 하며 나는 주저앉아 울고만 싶어졌다. 어째서인지 나로부터 지독한 기침이 나왔다. 기침을 하니 끈끈한 것이 엉긴 듯 매캐한 연기가 토해져 나왔다. 이상하다. 진공에 갇힌 아이와 나 사이엔 견고한 유리벽이 있는데. 또다시 아늑한 어둠이다. 각진 어둠이나 부드러운 담요 아래의 어둠, 사방이 분간되지 않는 서린 공기의 어둠 같은 것 말이다. 아직 시작하지 말아줘. 혼곤히 잠에 취해 웅크린 아이가 보인다. 가볍게 쥔 보드라운 손가락이 움찔거린다. 곱게 매듭지어진 눈매와 따스한 호흡을 토해내는 입술이 잠결에 노곤해진 뺨을 데운다. 아이는 필시 꿈도 없이 깊은 잠에 취해있을 것이다. 다섯 번째 무대. 작별을 고하듯 앙증맞은 동작으로 너는 내게 인사한다. 관객이 있었는지 네가 안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가장 아픈 건 필시 너일 터인데 너를 본 내가 이다지도 아프다 말을 전하면 너는 화를 낼까 걱정을 할까 아님 그냥 다 지난일이라며 곱게 웃어버릴까. 나는 어째서 이 아픔을 알고 있는 것인지. 두터운 딱지가 앉은 상처로부터 껍질을 떼어내는 느낌이다. 아이는 고름 낀 입술을 벗은 상처에 가져다 대어 부드럽게 핥아낸다. 그리고 고개를 든 너는 보조개를 드러내며 화창하고 명랑하게 씽긋 웃는다. 나는 네 그 미소를 보고 널 생각하는 내 가슴 속 깊이가 한 뼘도 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사실을 알고 나니 주먹으로 두들겨 맞은 새하얀 짧은 순간처럼 끔뻑 정신을 잃고 머리를 바닥에 쳐내어 나도 죽어버리고만 싶어졌다. 깨어나. 이 몽유병자야. 몽중몽은 현실이 아니라 더 깊고 아득한 꿈이며 포기해야할 이 다음의 순간이며 그리고, 그리고 너는 희망이다. 일어나. 너무 이르지 않아도 좋으니 고운 눈을 뜨고 돌아와, 꼬맹아. 미동도 않는 네 손목을 뒤 흔들며 나는 울컥 울컥 뜨건 것만을 내어놓더니 갤기장을 념념 냠냠하기 시작했다.
갤기장
브루키애껴욧(birzabith)
2016-05-09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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