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나를 막다른 곳으로 하염없이 이끌었던 너의 진의는 무엇이었을까. 지금에 와서야 그 답을 알게 되었지만 해골은 이따금 자신이 그 때 다른 행동을 취했더라면 지금 쯤 좀 더 나은 결말을 맞이하지 않았을까 의문이 생길 때가 있었다. 글쎄. 아마 그랬었다면 아이는 영영 해골로부터 도망쳐버렸을 것이다. 쓴 웃음이 나왔다. 그래. 그 아인 분명 그럴 아이였다.
당시 아이는 이따금 알 수 없는 문자를 종이쪼가리에 끄적거리며 해골의 곁을 머무르고는 했다. 처음에야 낙서 정도로 치부했던 곡선과 직선이 만드는 흔적들에 규칙이 존재한다는 게 해골은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해골은 글자를 쓸 줄 몰랐다. 무심한 척 하였지만 해골은 어느 새인가부터 아이를 염탐하게 되었다. 해골은 아무렇지도 않은 척 이따금 이러저러한 의미를 지닌 소리들은 어떤 모양이냐며 어떻게 생겼느냐고 묻고는 했다. 해골은 작업을 방해할까 두려운 한편 아이의 작품을 가장 잘 이해하는 관람자가 되고 싶었다.
아이는 매번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고는 했다. 해골은 아이의 설명을 대부분 알아들을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이를 완벽히 이해했다고는 말할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그걸 묻는 것마저도 어리석다고 여겨질까 겁이 났다. 사실 아이가 가르쳐 주었던 말의 진정한 의미는 언제나 한 겹 싸여있었으니 말이다. 당시에 용기를 내어 문답을 나누었더라도 아이는 진실을 가르쳐주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해골은 마지막 순간까지 거짓말을 하던 아이를 이제야 용서하고 이해할 수 있었다.
두 다리를 절게 된 아이는 더욱 말수가 적어졌다. 무엇에 홀린 조각가처럼 틈만 나면 글씨를 새기었다. 그걸 훔쳐보던 해골의 눈에 가장 빈번히 눈에 띄었던 그 윤곽을 다시금 기억을 더듬어 써보다 뜨거운 것이 울컥했다. 뜨끈하던 것은 명치께를 찌르르 하게 데우더니 이내 가라앉았다.
두 개의 막대기가 서로 기대어 부둥켜안고 있는 것 같은 그 윤곽과 포개어진 입술처럼 흐느적거리는 곡선, 작은 동그라미와 구부러진 음표를 아이는 실타래 같은 직선으로 감쳐내어 차곡차곡 새겼다. 단 한 점의 흠 없이 새겨진 글자에 시선을 빼앗겼던 것은 필시 우연이 아니었을 것이다.
쓰는 행위를 마친 아이는 항상 글을 쓰기 전의 모습보다 더욱 침착해 보였다. 그 모습은 가장 올바른 답을 찾기 위해 냉정히 수식을 풀어내는 과정과 같았고 적는 일을 다 마친 후면 아이는 격앙된 감정을 다 가라앉힌 듯 더욱 철저히 뒤로 물러서고는 했다. 무엇이든 넘치면 독이 된다. 아이는 기대나 애정을 갈구하는 해골로부터 그 어떤 역할조차 부여받기를 꺼리는 듯 했다.
그럴 때마다 해골은 용기를 내어 아이의 어깨너머로 배운 그 글씨를 서투르게 흉내 내어 손바닥에 적어보였고 아이는 이상하리만치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럴 적마다 해골을 엄습하는 절망과 좌절이 매정하게 해골을 괴롭혔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약속을 깨려는 듯 방종하게 굴던 제 행동에 가책을 느끼는 것이었다. 서로에게 가장 안락한 거리를 두는 방식에 둘은 점차 적응하였다.
어느 날 밤은 아이의 상처가 그 어느 때보다도 심각했다. 아이는 열이 심했다. 달뜬 목소리로 아이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모국어로 잠도 없이 나란히 누운 해골의 얼굴을 바라보며 밤새 하염없이 지껄였다. 이따금은 열에 취해 의식조차 없는 아이가 누구에게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지독한 자괴감이 들었다. 애써 그러한 모호한 것엔 큰 의미를 두지 않으려 했다.
꿈속과 현실을 헤매던 아이가 내뱉는 말들은 해골에겐 항상 요원하게만 느껴졌다. 아이의 말은 어쩔 땐 제게 향하는 것이 아닌지 기대하게 만드는 단서가 들어있던 때도 있었고 그러다가도 질투해야하는 어떤 것이 아닐는지 경계하게도 만들었다. 다만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그 독백은 둘 사이의 근본적인 것을 건드리는 법이 없었다. 조바심이 나면서도 어떻게 접근해야할지 이해 할 수 없었다. 함부로 내딛는다면 깨어져버릴 무른 관계이기에 신중해야만했다.
어떠한 신호가 아닐는지 고민하게 만들었다가도 도통 속내를 알 수 없었기에 해골은 더욱 속이 탈 뿐이었다. 아이의 행동은 일관성이 부족하여 온통 모호한 것이기에 해골은 더욱 헤매었다. 부드럽게 손을 뿌리쳤다. 어느 날은 먼저 입을 맞추었다. 그 날 만큼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맞물릴 수 있는 방법을 원해. 품에 얌전히 안기어 두 팔을 두르고는 했다. 정작 알고 싶은 것을 둘 사이로부터 딱 집어내기엔 당시 해골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종착지가 없다. 어디로도 갈 수 없는 마음이 제자리로. 그저 제자리로. 보폭을 맞추어 느리게 발을 움직이다 어떤 신호를 감지하고 다가서면 세차게 외면해버린다.
해골은 저를 가지고 노는 아이의 부조리에 화를 내고 싶었다. 그저 최초의 상실이 당시엔 아직 오지 않았었다. 아이가 품고 있는 의미를 너무 늦기 전에 제게 풀어내어 주기를 그걸 어느 때든 알게 된 후에 확신을 가지더라도 늦지 않았기에 해골은 언젠간 서로가 한줄기로 합류하기를 반드시 그럴 수 있기를 고대했다. 그저 고요하게 거리를 둔 물줄기가 되어 서로 나란히 그러다 조금씩 멀리 그리고 더욱 멀리 갈라지는 것이 아니라 언젠간 길들여진 물바닥을 함께 구르기를 그러다 하나가 되어 더욱 희어지다 더 희어지기를 바랐다.
틀림없이 그 때가 온다면 아이가 전달한 입술의 모양이 그리던 그 의미가 제 안에 분명 울릴 터였다. 영영 초대받지도 속하지도 못한 에크리튀르 내부의 그 은밀한 의미를 이해하고 싶었다. 아이가 끝끝내 알려주지 않은 채 곡선과 직선 사이에 숨겨둔 진의를 샅샅이 이해하고 자랑스럽게 말대꾸하고 싶었다. 이방의 언어를 이해 할 수 없었던 해골을 사로잡던 그 신비로운 기호며 톡. 톡. 벌어진 입술 사이를 단 두 번 튕기던 혀끝과 호흡이 만들어내던 소리에 관한 기억을 떠올리려 하면 할수록 아이에 관한 모든 풍광이 애타게 가슴을 후비었다.
알 수 없었던 때가 있었다. 한 번 더 가르침을 받고 싶었다. 모르는 척 할 테니 다만 기회가 한 번 더 주어지길 바랐다. 아이가 그 말을 한 것은 그리고 동시에 그 낱말의 화살표의 시위가 저를 향했던 적은 적어도 해골이 기억하는 한 그 때가 최초이자 마지막이었기 때문이었다. 아이는 죽어가고 있었다. 온 몸을 뒤덮은 황금빛 꽃과 함께 아이는 완벽한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완연한 죽음의 기색을 아이는 진작 눈치를 채고 마지막으로 갈등했던 게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소리를 토해내려 할 적마다 두어 번 새까만 피거품을 꿀꺽 삼키며 아이는 드문드문 속삭였다. 용기를 내어 간신히 내뱉던 소리의 파편들이 해골의 귀엔 너무도 낯선 것이어서 해골은 이내 당황하고 말았다. 일그러진 입술에 힘을 주어 반복하던 그 소리에 해골이 허둥거리는 기색을 눈치채고 아이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해골은 깨달았다. 여느 때처럼의 울음인지 웃음인지 속내를 감춘 그 표정이 아니었기에 더욱 심장이 철렁하였다. 아이를 품에 꼭 끌어안았다. 성긴 소리의 조합이 해골의 어깨 우묵한 곳에 얼굴을 파묻은 아이의 입으로부터 튀어나오더니 쏘아진 소리가 해골의 골통 안을 가득 메아리쳤다.
해골은 서투르게 그 흉내를 내었다. 그래야만 했다. 아이는 열 손가락 모두를 부지런히 움직여 좀 전부터 인중뼈를 비갑개를 하악골을 힘겹게 더듬고 있었다. 해골이 그렇게 하길 너무도 진지하게 바란다는 듯이 아이는 이미 멀어버린 두 눈을 제게 향한 채 손끝으로부터 처절하게 어떠한 신호를 읽어내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해골의 앙상한 입이 의문부호가 달린 궤적을 만들며 소리를 내었다.
처음엔 멍하니 벌어져있던 입술이 그제 서야 파르르 떨리었고 가지런한 앞니를 드러내며 아이는 곧 활짝 웃었다. 한 번 더. 한번만 더 말해줘. 조금만 더 크게. 난생 처음 읽는 법을 배우는 농아처럼 해골은 어눌하고 부정확하게 아이가 다시금 견본으로 읊조린 소리를 흉내 내었다. 의미조차 알 수 없는 소리를 거듭 따라하며 해골은 소름이 끼쳤다. 알지 못하는 소리가 저를 일깨우는 감각에 서투르던 발성은 단호한 호흡이 되어 어느새 언어의 울타리를 뛰어넘었다.
제 말이 들리지 않길 원하듯 처음엔 약하게 말을 더듬던 아이는 응답하는 해골의 목소리로부터 깨어나듯 보다 열망을 띈 목소리로 미친 듯이, 더욱 더 큰 목소리로 더욱 또렷하게 환희에 차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겨우 세 마디의 음절이 숨기고 있던 해답. 그저 짧기만 한 그 음절이 품고 있던 것은 그제까지 전하지 못했던, 해골이 알기 위해 애써왔지만 얼버무려졌던 수많은 못 다한 말을 합친 것보다 열렬했다. 이윽고 둘은 오열하기 시작했다. 울음소리에 파묻힌 외침이 흐느낌보다 강렬하고 선명하게 아이와 해골 사이를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아이는 이제 꺽꺽 쉰 소리를 내고 있었다. 괜찮아. 아무 일도 없을 거야. 이제 괜찮아. 아이는 주머니에 손을 더듬어 작은 수첩을 꺼내더니 해골의 메마른 손에 그걸 꼭 쥐어주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서로 다른 층위에 존재하던 둘 사이의 언어는 그제 서야 하나로 합쳐져 풀어헤쳐질 솔기도 존재하지 않는 온전한 단어가 되었다. 이 단어가 둘 사이에서 사어가 되는 일은 앞으로 영영 없을 것이다.
시인은 오로지 자신의 모국어 안에서만 저 자신의 진실을 털어놓을 수 있다.
"Only in the mother tongue can one speak one’s own truth, in a foreign language the poet lies." - Paul Celan
와...쩐다
쉬불 광광ㅠㅠㅠㅠㅠㅠㅠ
어떡개 이러케 글을쓰지
진짜 몰입해서 읽었다. 감성터지는 글 고맙다. - dc app
잘 읽었다 ㅜㅜㅜㅜㅜㅜ
왜 나는 이래 쓰질 못하는가..
감성문학은 개추야
이걸 읽고 나니 나는 내 언어를 잃은 것 같았어
경이뿐만 아니라 경외마저 들더라. 두려움을 참으면서 읽어 갈수록 좋아 죽겠는데 표현할 말이 없어서 너무 답답하다. 언어. 언어. 언어.
문자에서 소리에서 말로 '언제나 한 겹 싸여있었던' 진정한 의미로.. 진짜 존나 감동적인데 그 이상으로 충격적이었음
눈팅러인데 이거 보고 처음 댓글 쓴다. 상대의 언어를 이해해 보려는 노력, 상대와 맞닿고 싶다는 소원이 문장 하나하나마다 정갈하게 담겨 있어서 읽다 울 것 같았다. 한 다섯 번 다시 읽고 나서 마지막은 음독하며 읽어봤네. '서로 다른 층위에 존재하던 둘 사이의 언어는 그제서야 하나로 합쳐져 풀어헤쳐질 솔기도 존재하지 않는 온전한 단어가 되었다. 이 단어가 둘 사이에서 사어가 되는 일은 앞으로 영영 없을 것이다.' 랑 마지막 시구 인용까지 완벽했어. 앞으로 플펠에서 '사랑해'라는 단어 보면 니 글부터 떠오를 것 같다. 명작 써줘서 고맙다.
미국에 사는 놈으로서 이 글 진짜 마음에 와닿았다. 명작 고맙다.
다들 댓글 고맙다. 오늘 읽은 너희 댓글은 아마 내 평생 못 잊을거야. 너희 댓글 읽고 나서 나 정말 많이 감동했단다. 겨우 몇 개밖에 글을 써보지 않았지만 그간 난 그게 항상 신경 쓰였어 혹시 내 이야기가 난해하진 않았을까 지루해서 읽을 만한 것이 못되어 그냥 스크롤을 내린 건 아닐까 내가 글을 쓰며 생각했던 그 모든 것이 글자와 문장을 통해 과연 제대로 전달이 된 걸까 그런 고민 말야. 겨우 이정도의 짧고 비루한 줄글을 가지고 타인 앞에서 창작이며 작품이라 말하기 정말 부끄럽지만 내겐 쓰는 과정이 줬던 만족감이 충분히 컸기 때문에 모든 글에 내 나름의 애착과 해석을 가지고 있기에 내 안에서만큼은 이 모든 게 하나의 작품이야.
그걸 가감 없이 그대로 이해하고 내 안에 들어있는 것과 똑같은 감동을 느낀 사람이 어딘가 있다니 그게 너무 기쁘다. 겨우 짧은 글 하나를 사이에 두고 타인이 나와 공감할 수 있다니 진짜 경이롭다는 생각밖에 안들어 나 지금 너무 행복하단다 혹여나 남들이 내 글을 읽고 이해하고 감동하지 못하더라도 난 이대로도 만족한다고 쓰는 것만으로도 즐겁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게 전부가 아니었어. 내 작품을 가장 잘 이해해주는 독자가 어딘가 존재한다는 거 정말 놀랍고 감동적인 경험이다 정말 다들 고마워 오늘은 진짜 내 인생 최고의 하루 중 하나야
글이 깊숙이 와닿는 느낌이란건 언제 경험해도 신기한것같다 덕질하면서 이런걸 읽게될줄은 몰랐어 네가 감각하는 세상은 어떨지 궁금하기도 하네 휴 말이 딸려서 표현은 못하겠지만 진정성 느껴지는 작품 정말 잘 읽었다 한동안 계속 생각날것같네
내 손으로 다듬고 짜낸 문장이 타인의 눈과 입을 통해 다시 한 번 음미되는 거만큼 글쟁이한테 뿌듯한 게 어딨겠나... 행복해하는 게 댓글에 다 담겨있어서 나까지 기분 좋네. 오늘이 최고의 하루라 했지? 넌 네 글로 누군가에게 최고의 순간을 선물해 줬어. 그러니 언젠가 네 마음이 동하는 날 또 글 갖고 와라. 혼자 보물 안고 있지 말고 나눠 먹어야제??
와아... 형용할수없이 대단하다.. 글을 이렇게 맛깔나게 쓸수있다니 능력 부럽다
와 진짜 부럽다 이런 걸 쓸수 있다는게. 정말 잘보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