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는 복수를 낳을 뿐이다.

- 마리오 콜리오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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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리엘은 독방에서 눈을 떳다.
단 하나밖에 없는 창문으로 바실리 성당의 붉은 별이 보이는 걸로 보아 모스크바의 좁은 뒷골목중 하나일 터였다. 일어나보려 했으나 넘어져 나동그라지고 말았다, 손이 철봉에 단단히 묶여 있었던 것이다. 입도 랩으로 싸여 있어 숨쉬기가 점점 힘들었다. 이대로 간다면 질식해 버리고 말 터였다.

손발에 감각이 사라지고 눈앞이 점점 흐려지던 그때, 한 무리의 남자들이 있는 줄도 몰랐던 문을 열고 들어왔다.

'뭐야, 새로 잡아온 자식인가? 어디 놈이지? 체투쉬카?'

'아니, 체투쉬카는 아니야, 가슴에 붉은 별이 있지 않잖아.'
세명 중 키가 크고 근육질인 사내가 단검을 들고 아스리엘 앞에 쪼그려 앉았다. 그는 아스리엘의 상처투성이 몸에 새겨진 문신들을 찬찬히 살펴보더니, 흥미롭다는 듯이 진한 체첸 억양으로 말을 걸었다.

'랴뱐캬 출신이군, 그렇지?'

'너 같은 체첸 새끼한테 말해줄거 같냐?'

그 순간 어깨죽지에 불이 스치고 지나가는 것 같은 통증이 느껴졌다. 그가 아스리엘의 어깨에 새겨진 별을 칼로 따라 후비고 있었다. 선명한 붉은색의 선혈이 아스리엘의 하얀 털을 붉게 물들였다.

'나쁜 버릇이 있구만, 친구?'

그가 거친 숨을 내쉬며 정신을 부여잡는 아스리엘의 턱을 붙잡고 말했다.

'나는 묻는 말에만 대답하는걸 좋아한다네.'

그는 그를 죽여버릴듯이 째려보는 아스리엘은 아랑곳 않고 말을 계속했다.

'자네는 랴뱐캬 식구야, 그렇지?'

아스리엘이 시선을 떨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곧바로 옆에 서있던 사내의 발차기가 배를 향해 날아들었다.

아스리엘이 피를 토하며 실신하자 근육질 사내는 그에게 까딱 하면서 술을 가져오라 지시했다.

'끄으으하아악!'

'이런 고급 보드카에 불을 붙이는건 아까운 일이지만, 자네를 깨울땐 예외야. 모드리치, 고맙네. 나는 이반이네.'

허벅지 안쪽을 지져버리며 자기소개를 하는 인간이 있다면, 그는 필시 미친놈일것이다.

'다시 한번 묻겠네, 대답하지 않으면 보드카를 한잔 마시게 해주지, 자네는 랴뱐캬 식구지?

아스리엘이 지쳐 말 없이 고개를 끄떡거리자. 그는 새 장난감을 받은 아이처럼 손가락을 딱 튕겼다.

'좋아, 이제 대답할 생각이 있는것 같구만. 그런 태도가 중요하지. 이제 하나 더 묻겠네, 자네 조직의 보스는 누구지?'

'보스? 그런 건 레드마피아에 없어, 병신같은 체첸 자식아. 레드마피아에는 모두가 평등하지, 체첸에서 살아서 대가리가 돌아버- 아아아아악!'

대답이 끊겼다. 모드리치가 그의 얼굴을 거칠게 부여잡고 송곳니에 치과에서나 쓸 법한 전동 드릴을 가져다대더니, 위이잉 소리를 내면서 치아 신경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이런 병신같은 로스케... 뒤져서 흑해에 잠기고 싶냐? 묻는 말에만 대답을 하라고!'

아스리엘은 정신이 아득해지기 시작했다. 버틸수가 없었다. 그러나 졸도할 때마다 허벅지를 지졌기 때문에 기절해도 별 소용이 없었다.
마치 삼일동안이나 고문이 계속된것 같았다.
이빨 세개를 뽑고 나서야 전동 드릴이 멈추었다.

'질문을 바꾸도록 하지, 네놈 조직을 이끄는 계집년, 이름이 뭐야, 어디에 살지?'

말하면 안돼, 말하면 안돼 라고 속으로 생각하면서도 입은 벌써 술술 말하고 있었다.

'... 차라... 드리무어...'

눈 위에 번쩍 하고 단검이 스치더니, 피가 물같이 흘렀다.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싶었으나 그는 그럴 힘도 없었다.

'이봐, 로스케. 나는 어디 사는지도 물었어.'

'붉은 광장 ... 끄흑... 굼 뒤 아파트 803호...'

이반은 그제서야 만족한듯 휴대전화를 꺼내 바쁘게 통화하고 있었다.

'어이, 이반! 이 자식은 이제 어떻게 할까?'

그는 고개를 까딱해 죽여버리라는 뜻을 밝혔다.
아스리엘의 의식이 점점 암전되고 있었다.

모드리치가 꺼낸 총이 보였다.

차라 생각이 났다. 내가 죽어버리면 어떻게 살까?

눈이 보이지 않았다, 모든 걸 내려놓았다.

총을 장전하는 소리, 이반의 웃음소리, 계단을 바쁘게 오르는 소리...

계단을 바쁘게 오르는 소리?





'움직이지 마라! FSB다!'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철제 문짝이 박살나 떨어져 나갔다. 문 조각들은 통화중인 이반의 머리를 덮쳤다.

아스리엘의 눈 앞에서 모드리치가 터져나갔다.

다른 체첸인들 역시 총을 들고 저항하기 시작했으나
스페츠나츠 앞에서는 그저 범죄자였다.

아스리엘의 마음속에서 살아야만 한다는 의지가 솟아올랐다. 그는 테이프를 억지로 뜯어내며 창가로 뛰쳐나갔다. 손목의 살이 찢어지고 총알이 빗발쳤으나 그는.... 창 밖으로 몸을 던졌다.


아스리엘은 쿵 소리를 내며 눈이 휘날리는 길거리에 떨어졌다. 추락의 충격으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그러나 곧 총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자, 황급히 달리기 시작했다. 윗옷도 없는데다가 고문당한 몸으로 도망치는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추위에 떨며 모스크바 뒷골목을 헤메던 그는 우선 널려있던 후드 집업 하나를 슬쩍해입기로 했다.

그러고는 후드를 눌러쓰고 붉은 광장으로 향했다.

싸늘한 바람이 아스리엘의 상처입은 몸을 휘감았다.
집업 후드 하나로 버티기엔 러시아의 겨울은 너무나 추웠다. 신발도 없이 벌벌 떨면서 붉은 광장, 차라의 집 쪽으로 걸어갔다.

아까 있었던 일이 전부 꿈만 같았다.
그러나 걸을때마다 느껴지는 허벅지의 쓰라림과 사라진 이빨들의 자리가 그건 현실이라고 지적해주고 있었다. 대체 무슨 조직이길래 우리에게 관심을 가지는거지?

아스리엘이 속한 조직은, 전국적으로는 모르겠지만 모스크바에서는 꽤나 큰 조직이었다. 다른 조직 놈들을 묻어도 보고 총격전도 벌여 봤지만, 체첸 마피아들은 처음 보았다.

아스리엘은 그들이 자신을 고문하던 기억이 떠올라 이젠 더 이상 없는 송곳니를 무심코 핥았다.

'새로 들어오는건가.'

체첸 자식들이 모스크바에 지점을 내려는게 분명했다. 모스크바에 새로 군림하려면, 먼저 군림하던 조직을 박살내야만 한다. 그러려면 거물들을 먼저 죽여야만 하겠지...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머리를 한대 맞은것처럼 화들짝 정신이 들었다. 그들이 왜 주소를 물어봤는지, 이반 그 개자식이 누구와 통화했는지 알았던 것이다.

아스리엘은 붉은 광장을 가로질러 뛰기 시작했다. 흩날리는 눈발이 거셌지만 추위도 잊고 아파트를 향해 최대한 뛰었다.

벌써 히트맨이 도착했을지도 몰라.

아니나다를까, 아파트 앞에는 하얀 봉고차가 서 있었다. 계단을 바쁘게 타고 올라가자 피투성이가 되어버린 키드가 자신을 반겨주었다.

'체첸 새끼가 왔어...'

몇년을 함께 지낸 친구 사이인데, 작별 인사 하나 못하는 자신을 원망하며 8층을 향해 달렸다.

방 안은 방금 전까지있었던 격투를 대변하듯이 온통 어질려져 어둠에 잠겨 있었다.

푸른색 안광이 어둠 속에서 빛나고 있었다.

차라는 그 앞에 피투성이인 채 누워서 거칠게 숨을 쉬고 있었다. 허벅지에 단검 하나가 꽂혀 피가 피어나고 있었다. 웬만한 남자 하나쯤은 골로 보내버리던 차라가 무참히 쓰러졌다. 아스리엘은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네가 뭐든 술술 불던 우리 정보통이구나?'

작달막한 해골이 낮은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아스리엘은 패닉에 빠져 말을 잇지도, 몸을 움직이지도 못했다.

'헤... 이반은 너를 죽여서 바다에 버릴꺼라 했거든, 이거 의왼데?'

그가 순식간에 총구를 아스리엘의 머리에 겨누었다. 말을 하려고 했으나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해골이 방아쇠를 당겼다.



찰깍


빈 소리가 났다.

해골은 움찔한 아스리엘이 재밌던지,
뼈밖에 없는 손가락에 총을 빙빙 돌리며 킥킥댔다.


'빈 총이야, 어때, 무서웠어?'

아스리엘이 무슨 표정을 짓던 간에 그 해골은 말을 계속했다.

'나는 샌즈야, 뼈다귀 샌즈.'

아무 말 않는 그를 바라보던 해골이, 차라의 허벅지에 꽂혀있던 단검을 꽈악 쥐었다.

'친구를 사귀는 법을 모르는 건가?'

그는 꽂혀있던 단검을 후비기 시작했다.
거친 숨을 내쉬던 차라가 비명을 지르며 빌고 있었다.
피가 분수처럼 흘러나왔다.

아스리엘이 그에게 덤벼들었다.
그러나 고문당한 몸은 잘 움직여지지 않았고, 히트맨은 프로였다. 한방 한방 머리에 꽂힐 때마다 기절할 정도로 아팠다. 순식간에 쓰러진 그는, 목을 졸리는 것을 허락하고 말았다.

목이 졸려 하얀 얼굴이 빨개지는것을 보며 해골은 비웃듯이 말했다.

'저 계집애도 너보단 오래 버텼다. 꽤나 반반하게 생겼던데... 니 여자친구냐?'

끄억거리면서 빠져나오려는 그의 목을 더욱 단단하게 죄기 시작했다.

'먼저 네 놈을 죽여버리고선, 저 년을 강간해 주지, 지옥에서 만나 한판 하라구! 하하하!'






'좆까!'



푸욱, 샌즈의 어깨에 칼이 꽂혔다.
키드가 그를 막아섰다.
해골은 분노로 가득차 그를 노려보았다.

'차라를 데리고 도망쳐! 책의 집에서 보자고!'


잠시 기침을 하면서 토하다가, 키드의 말이 떠올라
벌벌 떨고있는 차라를 업고 방 안을 뛰쳐나갔다.

아스리엘이 어깨 뒤로 마지막으로 본 것은, 칼로 난도질당하는 고향 친구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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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려달라길래 정리 좀 해서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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