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스크는 눈을 덮고 있던 눈꺼풀을 조용히 열었다.
자연스레 몸을 뉘어 놓고 있었던 프리스크의 눈에 굵고 살아있지 않은 것 같은 검은 나뭇가지와 생기도 색도 사라져버린 회색 나뭇잎 사이로 들어오는 딱딱하고 차가운 빛이 들어왔다.
숲에 가려진 하늘을 보면서 프리스크는 처음에는 잠시 자신이 깜빡 근처에 숲에서 잠이 들어버렸다고 생각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프리스크는 자신의 기억 속에는 생기 없는 검은색과 회색으로 도색된 나무들과 냉랭한 빛이 가득한 숲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프리스크는 마음 속에 소용돌이치는 위화감과 의문에 누워있었던 자신의 상체를 사뿐하게 일으켰다.
그를 뒤따라
프리스크의 몸에 짓눌려 짓이겨지고 있었던 몇몇에 가련한 노란 꽃 송이들이 부드러운 꽃잎으로 프리스크의 어깨와 팔에 매달리려 무의미하게 애쓰다,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며 땅에 떨어져 하나 둘 씩 죽어갔다.
그 불쌍한 꽃들의 노력이 마냥 무의미한 것은 아니었는지 한 간절한 꽃이 프리스크의 하얗고 가녀린 손에 매달려 아침 이슬의 냉랭함과 꽃잎의 보드라운 감촉을 남겼다.
프리스크는 손에 느껴지는 익숙한 감촉에 갈색 단발머리를 나부끼며 고개를 돌려 자신의 상체가 짓누르고 있었던 곳을 바라보았다.
한 가운데가 무언가의 눌린 듯이 뭉개진 노란 꽃밭이 프리스크의 눈에 보였다.
꽃밭이 뭉개진 모양은 프리스크의 상체의 모양과 크기와 일치한다는 것을 눈치 챈 프리스크는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입고 있었던 보라색 줄무늬 옷의 등 부분을 잡아당겨 자신의 등을 확인하였다.
불운하게도 짓이겨지고 뭉개진 노란색과 초록색의 여린 꽃들의 시체가 프리스크의 등 곳곳에 묻어있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불운하게도 사실 노란 꽃밭은 프리스크를 감싸며 만개해 있었고,
아직 일으키지 않은 프리스크의 하체에도 시시각각 으깨어 죽어가고 있는 꽃들은 비명을 지리고 있었다.
이 꽃밭의 주인과 꽃들에 대한 죄책감이 프리스크의 마음 한 가운데를 무겁게 짓눌렀다.
프리스크의 머리 속에 있던 이 곳이 어디인지에 대한 의문은, 대체 어떻게 사과를 해야지 용서받을 수 있을 까라는 고민의 의해서 압살 당한지 오래였다.
답이 한정되어 있는 고민은 금방 끝났고, 깊은 한숨이 프리스크의 붉은 입술에서 흘러나왔다. 프리스크의 손은 그나마 온전하게 남아있는 꽃의 시체를 집었다.
프리스크는 손에 담은 죄악감과 함께 곧 썩어문드러져 버릴 꽃을 바라보았다.
프리스크의 기억 속에 들어있는 따뜻한 생기를 머금은 빛이 아닌, 금방이라도 꺼질 것만 같은 형광등의 어두운 빛 아래에 선 꽃은 살아있다는 느낌을 주지 못하였다.
꽃잎의 발랄한 노란색과 줄기의 역동적인 초록색이 어두운 빛이 만들어진 회색에 섞여 그 활력과 아름다움을 담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며 프리스크는 얼굴을 찡그렸다.
처음에 이 숲을 봤을 때에 느껴졌던 괴이함이 다시 한번 일어나 휘몰아쳤다.
프리스크의 시선이 숨진 꽃에서 떠나가고 주변 풍경으로 옮겨갔다.
수많은 하얀 솜털들이 그 것을 보며 시체처럼 누워있던 저들의 몸을 일으켜 도망치려 들었다.
차라리 어둠의 장막이 포근하게 이 숲을 덮었으면 좋으련만.
어슴푸레한 새벽의 빛과 같은 빛은 잔인하게 어둠의 장막을 찢어놓고, 찣겨진 장막은 간신히 검은 나무와 나무 사이를 덮었다.
기분 나쁘도록 크고 높고 빽빽하게 자라있는 검은 나무들과 풀의 모습을 본따 만들어진 것 같은 생명이 사라진 검은 풀은 노란 꽃을 제외하면 프리스크의 오감에 들어온 모든 것이었다.
프리스크는 혹시 몰라 주변을 둘러보며 다른 것을 샅샅히 뒤져보았으나, 그 곳에는 죽어버린 식물 이외에는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미약한 바람 한 줄기 조차, 그 흔한 미물들이 이 숲을 돌아다니며 내는 작은 소리 조차
이 숲에는 존재 하지 않았다. 이 숲은 프리스크로 하여금 칼바람이 자신의 코와 귀 끝을 베어갔으면, 까마귀와 올빼미의 괴기한 소리가 자신의 마음에 공포를 심어넣었으면하는 생각마저 들게 하였다.
섬뜩한 고요가 프리스크의 다리를 타고 올라갔고, 움직이지 않는 기분 나쁜 공기가 프리스크의 팔을 핧아 내려갔다.
모든 게 죽어버린 숲에게 프리스크는 포위당해있었다.
기괴망측한 이 숲을 바라보며 프리스크는 그제서야 꽃밭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의식하였다.
생령이 담겨있지 않은 새볔녘에 빛을 띈 숲은 그런 프리스크에게 하나의 다리를 뱉어내었다.
나무와 나무 사이를 가리던 어둠의 장막은 뚫고 길고 얇은 다리 하나가 나타났다.
프리스크는 깜짝 놀라며 앉은 채로 뒷걸음 치다가, 처량한 노란 꽃 몇개를 손바닥으로 눌러 뭉개버렸다.
검은색 정장 바지와, 모든 것을 죽이던 빛을 반사하는 검은 구두에 싸여있는 그 다리는 가볍게
시들어 버린 것 같은 검은 풀들을 즈려밣으며, 다른 것을 뱉어내었다.
백골을 연상케 하는 새하얀 장갑을 뒤집어 쓴 두개의 손이 검은 나무들을 어루만지며 흑암 속에서 노정하였다. 아이다운 프리스크의 마음은 두려움과 흥미로 양분되어 프리스크로 하여금 그 장면을 바라보게했다.
조그마한 금색 별이 빛나며 잠시 찰랑거리는 소리를 냈고, 검은 천에 싸여있던 꽃은 고개를 들어 세상을 바라보았다.
프리스크가 찢어놓은 노란 꽃과 정확히 똑같이 생긴 노란 꽃이 어둠을 뚫고 나타났다.
다른 점이 있었다면 원래 암술과 수술이 위치해야 할 부분에는 하얀 바탕에 단순한 웃는 표정이 그려져 있었고, 프리스크의 머리 전체를 다 가리고도 공간이 남을 정도로 컸다는 점이었다.
프리스크는 그 것을 의아하고 신기하게 바라보다가 다음에 나타난 것을 보며 그 것이 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눈치 채었다.
마지막으로 어둠을 뚫고 나타난 것은 나머지 부분들이었다. 그 다리와 손에 빠진 부분들을 채워주는 것들.
나무 사이를 유유히 뚫고 죽은 빛 아래에 자신의 몸을 드러낸 것은 한 남자었다.
그 남자는 입고 있었던 검은색 연미복의 옷매무새를 정리하며 아직까지 빠져나오지 못한 다른 한쪽 다리를 어둠 속에서 빼내었다.
그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이루어질 때마다 백색의 와이셔츠를 가로지르는 금색의 쇠사슬이
빛을 반사하며 그 고급스러운 태를 내었다.
프리스크의 입이 그 남자의 주의를 끌기 위해 열렸다.
"저기요!"
폭포처럼 맑고 우렁찬 목소리가 숲을 감돌던 끈적한 정적을 박살내었다.
***
지금 쓰고 있는 마스크 테일 문학에 초반부인데 최대한 괴기스러운 분위기를 만들려고 해봤는데. 별로냐?
음...가독성이 좀 떨어지는 것 같음.
문장이 너무 긴가?
ㅇ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