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 꽃이 한 무더기로 피어난 정원의 풍경은 아름답다. 이 집의 주인들이 정성 들여 꾸며낸 덕분이었다. 토리엘과 프리스크는 지상으로 올라온 이후 매일같이 정원의 아름다운 풍경을 지켜왔다. 집 앞쪽의 크고 화려한 꽃밭은 토리엘이, 뒤편의 작고 소박한 꽃밭은 프리스크가. 아이에게 꽃을 책임지는 방법을 가리킨 사람은 토리엘이었다. 여리고 작은 손을 꼭 잡고서 맨 흙 땅에 앉아 토리엘은 아이에게 씨앗을 심는 방법을 가르쳤다. 예쁜 물뿌리개로 물을 주는 방법을 가르쳤다. 꽃이 시들어 버렸음에도 절망하지는 않는 법을 가르쳤다. 꽃망울이 터지고 아름다운 꽃잎이 얼굴을 드러냈을 때 기뻐하는 법을 가르쳤다.


샌즈는 언제나 몇 발짝 떨어진 자리에서 그들을 보고 있었다. 씨앗을 심고 물을 주는 모습을 나무 위에서 구경했다. 아이가 물뿌리개를 들고 뛰다가 넘어졌을 때는 다가가 대신 물뿌리개를 들어주었다. 다리에서 피가 흘러 멈추지 않아도 아이는 울지 않고 그의 옷자락을 세게 쥐었다. 아프냐고 묻는 물음에 배시시 웃기만 했지 울지는 않았다. 그러면 토리엘은 아이의 피딱지 진 무릎에 반창고를 부쳐 주며 칭찬을 했다. 착하구나, 우리 아가.


아이가 숨기는 데에 능숙해진 것은 그때부터 일까. 처참하게 변한 꽃밭의 앞에 서서 샌즈는 프리스크의 방 창문을 바라보았다. 두껍게 커튼이 처진 창문으로는 어느 것도 볼 수가 없다. 아이가 창문을 열고 그를 내려다보지 않는 한. 샌즈는 무거운 고개를 돌렸다. 꽃밭에는 죽은 꽃들의 시체가 늘어져 있었다. 토리엘은 하얀 털 손을 들어 병에 걸린 꽃의 잎을 매만졌다. 시체의 싸늘한 피부를 건드리는 것만 같다.


“꽃이 죽었어요. 아직 살아있는 애들이 남아있긴 하지만……. 이대로라면 전부다. “


하나가 병에 걸리면 곧 전체에 병이 퍼져 버리고 만다. 어릴 적 토리엘이 프리스크에게 직접 가르쳐 준 내용이었다. 샌즈 역시 기억하고 있었다.


“헤, 처음에 대처를 잘 해야 했는데. ‘골’ 때리네요.”


“그렇죠. 언제나, 처음부터 대처를 잘 해야 했는데.”


다시 한 번 고개를 들어 샌즈는 굳게 닫힌 창문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어릴 적부터 가꾸던 꽃밭이 엉망이 되었음에도 프리스크는 반응이 없었다. 슬퍼하지도, 어떤 병인지 알아보지도, 하다못해 죽은 꽃들을 돌아보지도 않았다. 아이는 그저 평소와 같이 행동을 했다. 웃고 떠들며 별 의미 없지만 행복하게 하루를 보낸다. 방학을 맞이한 여느 평범한 대학생들처럼.


“샌즈.”


토리엘의 목소리가 샌즈를 부른다. 하지만 샌즈는 그녀와 시선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오늘 만날 수 있겠냐는 물음을 들었을 때부터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또다시 토리엘은 그에게 약속을 말할 것이다.


“아가가 힘들어하는 이유를 저는 몰라요. 제가 부족한 엄마라서. 그 애는 항상 제게 숨기려고 하고, 감추려고만 하니까.”


“토리엘.”


“친구에게는. 샌즈, 당신이라면 다를지 몰라요.”


친구. 그 말에 샌즈의 안광이 흔들렸다. 토리엘은 모른다. 아이와 그는 이제 더 친구라 부를 수 있는 사이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작은 꽃밭에 황금색 꽃이 만발하던 날, 프리스크의 왼손에 뼈를 박아넣은 이후 그들은 친구 아닌 타인으로 돌아섰다. 감시하는 사람과 감시당하는 사람. 그들 사이에 온전히 남은 이름은 그 정도밖에 없다.


창문은 여전히 열릴 기세가 보이지 않는다. 샌즈는 꽃밭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토리엘을 돌아보았다. 생명이 빠져나간 꽃들을 모으는 모습이 어딘가 서글프다. 거절을 말하려던 입이 도저히 열리지 않았다.


“그 애는 가끔 이상할 정도로 샌즈를 따랐어요.”


죽은 꽃들을 품에 안은 토리엘이 그를 돌아보았다. 얼떨결에 토리엘과 마주친 샌즈의 몸이 굳었다. 토리엘의 붉은 눈은 젖어 있지 않았다. 망가진 프리스크의 작은 꽃밭같이 메말라 있는 붉은 홍채가 샌즈의 시선을 옭아맸다. 그 안에 담긴 걱정. 그리고 믿음이 그의 숨을 틀어막았다.


그 날. 아이의 손이 뼈에 꿰뚫린 날이 거짓말처럼 생생히 떠오른다. 샌즈는 그 날 프리스크를 죽이기 위해 마법을 꺼내 들었다. 뼈가 쏟아져 내린다. 폭격을 미처 피하지 못한 아이가 뼈에 손이 꿰뚫린 채로 그를 올려다본다. 무자비하게 짓밟힌 눈동자가 그를 보고 있다.


“부탁해요. 샌즈. “


아가를 구해주시겠어요?

고개를 숙이고 마는 토리엘을 보면서 샌즈는 끝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흔들리는 시야를 돌려 저편의 창문을 본다. 언젠가부터 커튼이 쳐져 있기 시작한 창문이 거기에 있었다.


2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영화는 그들의 이야기였다. 지상에서 떨어진 어린아이가 지하를 모험하는 애니메이션. 프리스크는 멍하니 소파에 몸을 파묻은 채 스크린 안의 인간을 구경했다. 때마침 인간은 언다인 같은 괴물에게서 도망가는 중이었다. 그 흥미 넘치는 광경에 그녀 옆의 친구들이 괴성을 질렀다. 언다인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기까지 했다.


“좋았어! 뛰어, 뛰어라!”


“힘내라 인간!”


흥분한 언다인이 팔을 들썩이자 팝콘이 여기저기로 튀었다. 프리스크는 제 머리카락에 달라붙은 팝콘 하나를 집어 입에 넣었다. 달큼한 캐러멜이 입안에 끈적하게 녹아들었다. 혀로 굴리던 팝콘이 사라지자 스크린이 변했다. 워터폴을 벗어난 것이다.


온통 붉은 계열 색깔의 뜨거운 땅. 핫랜드가 모습을 드러내자 이번엔 알피스가 외쳤다.


“내가 나올 차례야!”


“메타톤도 나온다!”


그렇겠지. 고개를 끄덕끄덕한 후에 프리스크는 다리에 떨어진 팝콘을 주웠다. 입에 넣자 캐러멜 향이 가득 퍼졌다. 메타톤의 퀴즈쇼를 보며 친구들은 왁자지껄 떠들었다. 그녀 역시 그들을 따라 웃는 얼굴을 지어냈다. 기나 긴 연습의 결과로 제법 진짜처럼 보이는 웃음이었다.


23번째로 보는 영화는 그다지 재미가 없었다. 너무 재탕을 많이 한 탓일지도 모른다. 감흥도 느껴지지 않고 추억도 되살라 지지 않는다. 저 영화를 보면서 추억을 떠올리기에는 각색과 미화가 너무 심했다. 세이브와 로드가 존재하지 않는 이야기는 결코 온전히 그녀의 이야기가 되지 못한다. 복잡한 문제 따윈 없는 세계 안에서 환하게 웃는 인간을 보는 일은 오히려 프리스크의 마음속에 불을 질렀다. 분노와 절망감, 원망이 자책이 되어 활활 타오른다. 그녀의 안을 전부 다 태워버리기라도 할 것처럼.


화를 내며 불을 지르려 난리를 치는 대신 프리스크는 웃는 얼굴을 꾸며냈다. 소중한 일상을 지키기 위하여. 웃는 얼굴 연기 정도는 이제 나름대로 적응이 되었다. 한바탕 웃음이 끝나고 프리스크는 멍하니 스크린을 눈에 가득 담았다. 텔레비전이 화려하게 빛을 뿜는다. 번쩍, 번쩍, 번쩍. 눈 아플 정도의 빛이 지나가자 그녀도 모르게 눈이 찌푸려졌다.


일그러진 시야 사이로 이상한 형체가 눈에 띄었다. 찌푸린 눈을 다시 피고 보아도 사라지지 않는다. 프리스크는 스크린 앞에서 꿈틀거리는 그것에 시선을 집중했다. 그것이 머리를 들었다. 얼떨결에 눈이 마주친다. 무의식적으로 프리스크가 입을 움직여 그것의 이름을 읊었다.


파피루스.

그녀의 절친한 친구가 지금 이쪽으로 기어오고 있다.


진짜 파피루스는 지금 그녀의 곁에 있다.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시선이 떨어지지 않는다. 등에 길고 커다란 뼈를 잔뜩 꽂고서 상처가 다 벌어지도록 그녀에게로 다가오는 친구에게 홀린 듯이 시선을 뺏겼다. 파피루스의 입이 벌어진다. 프리스크. 그녀를 불렀다. 그럴 리가 없는데. 배가 칼로 쑤셔진 인간처럼 파피루스가 기어온 자국이 붉게 남았다. 희미하게 비린 피냄새가 난다.


마침내 프리스크의 발밑까지 당도한 파피루스가 그녀를 올려다본다. 텅 빈 눈구멍에서는 잿가루가 흘렀다. 또다시 그녀의 이름을 부른다. 프리스크. 프리스크. 프리스크! 억센 악력으로 그녀의 발목을 움켜잡았다. 놀라서 발을 빼려 해도 움직이지 않았다. 프리스크의 입에서 억눌린 비명이 흘렀다.


파피루스는 한 손으로 그녀의 발목을 붙잡고 잿가루를 흩날리면서 외쳤다. 턱이 프리스크의 머리를 집어삼키기라도 할 것처럼 커졌다. 텅 빈 안이 미치도록 검었다.


프리스크! 도망가!


심장이 빠르게 멎는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프리스크는 잿가루를 흘리는 파피루스의 눈을 보았다. 그녀의 친구가 울부짖는다.


어서 도망가!


“프리스크!”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프리스크의 고개가 돌아갔다. 알피스를 비롯한 모두가 그녀를 보고 있었다. 파피루스가 잿가루를 흘리지 않는 눈으로 그녀를 보고 있었다. 아. 그제야 프리스크는 숨을 내뱉었다. 현실로 돌아온 것이다. 슬며시 내려다본 그녀의 발밑에는 아무것도 있지 않았다. 아무것도. 


“네가 말한 약속 시각 말이야. 얼마 안 남은 것 같아서.”


“아, 정말이네. “


몰랐어. 뒤늦게 벽에 걸린 시계를 올려다본 프리스크가 허망하게 말을 흘렸다. 인제 그만 일어나야 할 시간이다. 손에 힘을 주어 꽉 주먹을 쥐고 난 뒤 프리스크가 소파에서 일어났다. 언다인과 알피스가 앉은 쪽으로 소파의 무게중심이 쏠렸다.


친구들의 시선이 우르르 그녀를 따라 움직였다.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던 가방을 챙겨 매고 프리스크는 친구들을 돌아보았다. 손을 흔들어 평범하게 인사를 한다.


“안녕. 다음에 또 보자.”


스크린에서는 여전히 평범하게 영화가 진행 중이었다. 한창 클라이맥스로 달려가고 있을 뿐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 조금 전 그녀에게 있었던 일은 모두 환상이라는 듯이.




통합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