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들한들 흔들리는 푸른빛의 꽃들. 꽃들은 소란스레 제각기 다른 목소리로 누군가의 말들을 되풀이했다.
이 꽃들의 이름은 메아리꽃. 오래 전부터 내려온 지상의 이야기. 아름다운 요정을 끔찍이도 사랑했지만 자신에게 걸린 저주로 인해 끝내 그에게 사랑을 고백하지 못하고 그의 말만 되풀이하다 죽어 메아리가 되었다는 요정. 그 이야기에서 이름을 따 왔을까. 마지막 들은 이의 말만 계속해서 되풀이하는 메아리꽃.
그 위에 누군가 새로운 말을 덧씌우지 않는 이상은, 오래오래 그 말만을 반복하고 있으리라.
그런 시끄러운 메아리꽃 숲에, 보기 드물게 네가 나타났다.
너는 묵직한 갑옷 차림이 아니라 간단한 평상복을 걸치고 저벅저벅 걸어왔다. 하나로 묶어 늘어뜨린 길고 붉은 머리카락이 걸음걸음 박자에 따라 좌우로 흔들렸다.
너는 입을 열지 않았다. 재잘대는 푸른 메아리꽃들을 헤치며 너는 그저 걷기만 했다. 너는 이곳에서 함부로 말하고 싶지 않았다.
답지 않은 소녀 감성일까. 너는 모든 것을 눌러 담은 한 줄을, 오직 한 줄을 메아리꽃에 담아 두고 싶었다.
애초부터 왜 이런 곳에 갑자기 오고 싶었을까. 너는 입 꼬리를 비틀어 웃었다. 너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천장을 보았다. 수십 수백 개의 보석들이 천장에 박혀 반짝였다.
언제였던가, 너와 그녀가 함께 보았던 애니. 그 애니 속에서 인간들은 별을 함께 바라보며 사랑을 속삭였다.
그래 어쩌면, 너는 그녀와 함께 여기에 오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애니에 나왔던 인간들처럼, 실제 별은 아니지만 별처럼 반짝이는 저 보석들을 바라보며 그녀와의 변치 않을 사랑을 메아리꽃에 담아 두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너는 천장을 바라보던 눈을 감았다 떴다. 부질없는 꿈일 뿐이다. 너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랑해
환청이 들리나. 너는 너 자신에게 조소를 흘렸다. 그녀 생각을 했더니, 그녀의 환청마저 들리는 모양이다.
사랑해
한 번 더 들려왔다. 너는 그 자리에서 멈추고 뒤를 돌아봤다.
사랑해. 너를 정말 사랑해
가장 구석진 곳에 피어난 메아리꽃이 그녀의 목소리로 지극히 달콤한 말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너는 그녀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꽃 앞에 풀썩 주저앉았다.
사랑해. 너를 정말 사랑해
이토록 달콤한 말이 너 자신을 향한 것이 아니란 사실은 너를 얼마나 괴롭게 할까.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저 옆에서 지켜볼 수만 있어도 좋았는데.
그걸로 됐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확인사살 당해버리면, 너는 어떻게 해야 좋을까.
그녀의 마음을 가져간 이가 참을 수 없이 부러웠다. 부럽고 질투가 나서 미칠 듯이 괴로웠다.
실험에 몰두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늘어놓는 그녀를 사랑한다.
긴장이 풀려 축 늘어진 채로 탄산음료를 마시며 애니를 보던 그녀를 사랑한다.
그녀가 어떤 모습이던 간에 너는 그녀를 사랑하는데.
너는 너의 집 냉장고에 들어 있는 탄산음료를 떠올렸다. 사 놓고 한 번도 마시지 않았다.
그녀가 좋아하던 것. 너는 그녀가 문득문득 보고 싶어질 때마다 냉장고를 열었더랬다.
너의 부릅뜬 눈에서 한 방울 눈물이 떨어졌다. 한 번 흘러나온 눈물은 그치지 않고 줄줄이 비집고 흘렀다. 너는 입술을 깨물었다. 입술이 하얗게 될 정도로 꽉 깨물고서 너는 꽃 앞에 주먹을 쥐고 엎드려 어깨를 잘게 떨기 시작했다.
사랑해. 너를 정말 사랑해
너무 달아서 녹아내릴 것 같은 말이 귀를 파고들었다. 귀를 파고든 말은 곧 뇌를 헤집어 생각조차 흐물텅하게 만들었다. 너는 눈물과 침으로 범벅이 된 얼굴을 들었다. 아직도 그 말을 반복하고 있는 메아리꽃 바로 옆에 핀 꽃을 조심스레 두 손으로 붙잡았다.
나도 사랑해, 널 사랑해 알피스
꾹꾹 눌러 담은 말이 터져 나오며 목구멍을 막았다. 갈라지고 울먹이는 흉한 목소리를 쥐어짜내 너는 이 한 줄의 말을 메아리꽃에 담았다.
사랑해. 너를 정말 사랑해
나도 사랑해, 널 사랑해 알피스
두 꽃이 번갈아 흔들리며 고백을 반복했다. 너는 그 앞에서 이미 짓씹혀 퉁퉁 부은 입술 사이로 밀어 넣은 손가락을 있는 힘을 다해 깨물며 소리 없이 오열했다.
시간이, 꽤 흘렀다.
너는 그녀의 마음도 알아채지 못한 채 너의 마음만을 품고 그렇게 녹아내렸다.
녹아내리며 너는 울부짖었다.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메아리꽃이 한들한들 흔들렸다.
제각기 다른 목소리로, 다른 이야기를. 시끄럽게 반복하고 있었다.
소중한 이와 했던 대화, 혼잣말. 가지각색의 말들이 계속해서 반복되었다.
구석진 자리 피어난 두 송이 메아리꽃.
끝내 서로에게 닿지 못한 두 여자의 고백.
이제 아무도 이 한 쌍의 메아리꽃에 새로운 말을 덮어씌울 이가 없기에.
언제까지나 한들한들 흔들리며 애절한 사랑을 고백하리라.
개인적으로 2인칭 시점을 좋아해서 한 번 도전해 봤어.
써 놓긴 좀 된 글인데 묵혀놓기 좀 그래서 감성대회 제출해본다.
야 이렇게 잘 쓴 문학에 댓글이랑 개추가 하나 없냐..? 슆펄 내 개추라도 받아가라
아니 쉬벌 이런 명작이 왜 묻힌??
미췬 재업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