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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의 지하실.

그곳은 본격적인 지하세계로 나가는 입구였다.

그리고 토리엘은 그 문의 앞을 막아선채 자신의 앞에 서있는 차라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떠나고 싶니?"


집에 나가고 싶다는 의사를 표한 차라를 향해 걱정을 담은 어조로 말을 건네었다.

밖은 위험했다. 아스고어는 여섯 인간을 죽이고 그들의 영혼을 취했으며, 차라가 밖으로 나간다면 차라의 영혼까지 취하리라.

그렇게 둘 수는 없었다.


"흠. 다른 이들과 똑같구나."


그녀는 이전에 자신을 지나친 다른 인간들을 생각하고는 씁쓸해하는 어조로 말했다.

그들도 나가려 했었지. 이곳을 지나려 했지.

그리고 자신은 믿었었다. 

그 결과는? 모두 아스고어를 지나가지 못했기에 영혼이 되어 지하에 오랫동안 갇혀있었다.


"한 가지 방법이 있지."


이 아이 역시 그렇게 되도록 둘 수는 없었다.

토리엘은 주먹을 꽉쥐며 자신의 눈 아래에 있는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증명해보렴… 살아남을 정도로 강하다는 걸 증명해보렴!"


토리엘은 이를 악 물고 아이를 바라본다.

자신은 이 아이를 공격할 것이었고, 그렇다면 이 아이 역시 자신을 공격하겠지.

토리엘은 목숨을 버릴 각오를 하며 아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그녀의 눈에 비친 차라의 모습은 어쩐지 기뻐보이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어쩐지 즐거워보이는구나. 마치 이 순간을 기다린것처럼."


하지만 토리엘은 곧 생각을 고쳤다.

아직 어린아이다.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을수도 있었다.


"아니… 잘못 본 거겠지."


애써 생각을 떨쳐낸 토리엘은 먼저 위협하기 위해 불을 만들어내려 했다.

그리고 그 순간, 차라는 단검을 빼어들고 토리엘이 자신이 움직였다는 것을 알아차리기도 전에 그녀의 앞에 다가와 칼을 휘둘렀다.

그 일격에 토리엘의 얼굴은 반쯤 잘려나가고, 그 상처에서는 먼지가 흘러내리기 시작한다.

겉보기에는 치명상이 아니라고도 말할 수 있겠지만, 차라의 공격에 담긴 살의는 토리엘이 버티기 힘든 수준.


"ㄴ…너… 그렇게나 날 싫어했니?"


그제야 토리엘은 자신이 잘못 본 것이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차라의 공격에 담긴 강한 살의, 그리고 히죽 웃고있는 차라의 얼굴을 통해 그녀는 차라가 이 순간을 기다려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차라는 상처입고 죽어가는 토리엘을 속으로 비웃는다.


"널 데리고 있으면서 뭘 지키려 했던건지 이제야 알겠구나."


가련한 여인. 언제나 자신을 생각하지 않고 남을 생각하지.

그것이 자신은 물론, 다른 괴물들의 목을 죌 것임도 알지 못하고.


"네가 아니라… 저들을 지키고 있었던 거야!"


이제 알아채도 늦었지.

차라는 마무리를 하기 위해 칼을 들어올렸다.

토리엘의 저 말은 이미 들은 말이었다. 굳이 다시 들을 필요는 없지.


"하하하……."


토리엘의 허탈해하는 웃음소리에 맞취 차라는 그녀를 향해 다시 걸어간다.

가만히 내버려둬도 죽겠지만, 그 죽음을 굳이 길게 끌 필요는 없었다.

차라는 여전히 비웃음을 띈채로 토리엘에게 접근한다.

하지만 그 순간, 토리엘은 체념이 아닌 의지에찬 표정을 지으며 자신과 차라 사이에 불길을 일으켜 차라를 물러나게 한다.


"아니."


토리엘은 자신이 죽게될 그 순간, 앞으로 차라에게 죽을 괴물들을 생각했다.

이대로 차라가 밖으로 나간다면 많은 괴물들이 죽겠지.

그 후에는 아스고어에 의해 차라가 죽던지. 아니면 다른 괴물들이 차라에게 모두 몰살당하던지 둘 중 하나였다.

그렇게 둘 수는 없었다.


"아가. 네가 이대로 나간다면 넌 다른 이들을 해치겠지."


아이와 괴물, 둘 중 어느쪽도 죽게 내버려둘수는 없었다.

그리고 토리엘이 그렇게 결심한 순간, 자신의 영혼의 깊은 곳에 무언가가 가득 차는 것이 느껴졌다.

자신을 죽게 두지 않을 강한 힘이 차오르는 것을.


"네가 누군가를 해친다면 다른 괴물들 역시 너를 죽이려 할거야."


토리엘은 차라의 적의에 의해 상처입은 자신의 영혼이 서서히 나아지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상처입은 자리에는 강한 의지가 들어와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힘을 자신에게 주었다.


"그렇게 두지는 않겠어."


이 예상외의 사태에 차라는 웃음을 멈추고 인상을 찌푸린채 토리엘을 바라봤다.

이런 말은 없었는데.

이런 힘이 남아있을리 없을텐데.


"네가 다른 이들을 해치지 못하도록."


토리엘은 자신과 차라 사이에 타오르는 화염을 거두어들였으나, 이 예상외의 사태에 당황한 차라는 섣불리 다가가지 않았다. 


"그리고 네가 다른 이들에게 죽지 않도록."


토리엘은 의지에 찬 눈으로 차라를 바라본다.

그리고 점차 붉어지는 토리엘의 눈을 통해 차라는 일이 어떻게 된건지 짐작했다.

알피스.


"그것이 내가 그동안 해왔던 일이니."


토리엘의 말은 이제 차라에게 잘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 차라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오직 알피스 뿐이었다.

의지를 가진 괴물. 이미 폐허에서 겪은적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토리엘에게까지 영향을 줄것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니… 내가 널 좀 더 막도록 하마."


토리엘은 어느새 다시 말끔해진 몸으로 차라를 내려다 보며 손의 주위에 공기를 끌어모으기 시작한다.

차라는 어느새 후끈해진 지하실의 온도를 느끼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생각만큼 쉬울 것 같지 않다.



"밖으로 나간다면 나보다도 강한 괴물들이 많을거야."


토리엘의 말은 차라를 설득하기 위함이었으나, 애석하게도 차라는 이미 지하를 한 번 멸망시킨 적이 있었다.

당연히 토리엘이 겁을 준다고 해서 수그라들리 없었다.

그리고 토리엘은 차라가 여전히 칼을 쥔채 자신에게 다가오자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고는 불을 일으킨다.

토리엘이 손을 휘저을때마다 그녀의 손이 지나간 궤적에는 불이 피어오르고, 그 불은 몇 개의 덩어리로 변해 차라를 향해 날아간다.

차라는 날아오는 화염을 피하면서 토리엘이 손을 휘두르는 방향을 통해, 날아올 공격을 예측하며 그녀에게 접근했다.

그렇게 토리엘이 양 팔로 각각 2번씩. 총 4번 팔을 휘두른 순간, 차라는 토리엘의 앞에 다가와 그녀의 얼굴을 칼로 베었다.

칼에 베인 토리엘의 얼굴은 잠시 갈라져 상처부위에서는 먼지가 흘렀으나, 곧 다시 아물었다.

하지만 아문 것은 어디까지나 겉모습뿐. 차라의 적의에 의해 손상된 영혼은 다친채로 남았다.


"그러니 네가 누군가를 해치려 한다면 너 역시 죽을거야."


토리엘은 차라가 칼로 베었을때 죽었을때 보다도 강한 고통을 느꼈으나, 그런것쯤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얼굴을 하며 차라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고,

차라가 다시 칼을 휘두르려 하자 자신의 주위에 불을 일으켜 차라가 강제로 뒤로 물러서게 했다.

뒤로 물러선 차라는 자신이 물러선 순간, 자신이 지금 서있는 자리에 토리엘이 공격이 날아올 것만 같은 직감을 받았다.

그 직감이 몰려옴과 동시에 토리엘은 불꽃을 던졌고, 차라는 직감에 미처 반응하지 못해 움직이는 것이 살짝 늦었다.

그리고 그것은 행운이었다.


토리엘이 던진 두 개의 불덩어리는 차라의 직감이 경고한 장소가 아닌, 그 양옆을 지나갔다.

만약 직감을 믿고 옆으로 피했다면 그대로 불길에 휩쓸렸을 상황.

잠시 생각하던 차라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날아간 불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차라의 예상대로, 차라를 스쳐지나간 두 불덩어리는 방향을 틀어 차라가 있는 곳을 향해 날아온다.


차라가 오판을 한 것이 아니었다.

토리엘은 고의적으로 차라가 있는 방향을 공격할 것이라는 의도를 강하게 표출했고, 그곳을 공격은 하되 방향을 틀어서 다른 곳을 먼저 공격하도록 했던 것이었다.

꽤나 치밀한 공격이었고, 그 목적이 토리엘이 자신을 공격하기 위함임을 안 차라는 나지막이 욕설을 내뱉었다.

애석하게도 이전에 토리엘을 죽였을때처럼 쉽게 끝낼 수는 없었다.

토리엘이 자신에게로 되돌아온 화염을 회수하는 사이 그녀에게 접근한 차라는 칼을 휘둘러 그녀의 가슴팍을 벤다.

토리엘은 다시 불을 피어오르게 하여 차라를 물러서게 하고 상처를 다시 메웠다.


"아가."


토리엘은 이를 악물고 고통을 인내하며 자신의 양 팔을 땅을 향해 축 늘어트렸고, 그녀의 주위를 불태우던 화염은 그녀의 양 손에 모이기 시작했다.


"이 세계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비를 베풀줄 알아야 한단다."


토리엘의 손에 모인 불꽃은 여러 줄기의 사슬마냥 얽혀 그녀의 팔을 타고 올라간다.

자신의 팔에 불꽃의 사슬이 완전히 엮이자 토리엘은 차라를 향해 팔을 휘둘렀고, 그녀의 팔에 휘감겼던 화염은 방 전체에 넓게 퍼져 차라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제약했다.

그와 동시에 화염 덩어리가 고여있던 벽에서는 폭발하는 화산마냥 불덩어리들이 튀어 사슬의 빈공간을 메우기 시작했다.

차라는 이미 벽을 주의깊게 보고 불덩어리들이 가장 적게 튈 것 같은 곳으로 이동했었기에 차라를 향해 날아오는 불덩어리들은 솟아오른 불덩어리들의 파편, 단검으로 충분히 쳐내거나 막아낼 수 있는 크기였기에 차라가 불에 직접적으로 휩싸이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직접 불꽃이 닿지 않는다 해도 이미 불꽃은 지하실 전체를 뒤덮은 상황. 그 열기섞인 공기를 들이마실 때마다 차라의 혀는 말라붙는다, 입안이 타들어간다. 목구멍은 소리없는 비명을 내지르고 폐는 고통으로 요동친다.

이미 토리엘이 발을 디디고 있는 바닥은 녹아내려 질척한 용암이 되어있었다.

그녀의 주위의 벽과 문은 시뻘겋게 달아올라 곧 녹아내릴것만 같았다.


"하아……."


차라는 폐부를 쥐어짜는 느낌으로 한숨을 내쉬고는 토리엘의 공격이 멎은틈을 타 앞으로 달려든다.

녹아내린 용암을 밟을때마다 치지직 거리는 소리와 함께 신발이 녹아내림과 동시에 고무와 살타는 냄새가 차라의 코를 찔렀다.

그리고 토리엘 역시 그 냄새를 맡자 차라의 고통을 느끼는듯 잠시 주저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무리 괴물들을 위해 차라를 막아선다고는 하였으나 지금 그녀를 죽이려고 하는 상대는 다른 사람도 아닌, 그녀가 그토록 잊지 못한 첫번째 아이였다.


비록, 그녀는 그 사실을 모르기는 했으나, 그녀의 본능은 차라에게 적극적으로 반격하는것을 주저하게 하였고, 차라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집요하게 달렸다.

토리엘이 본능적인 거부감을 떨쳐냈을때 차라의 칼은 이미 토리엘의 목덜미에 닿아있었다.

촤악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토리엘의 목이 절반쯤 뜯겨나가 떨어져나간 부분은 부스러져 가루가 되었다.

토리엘은 한 손으로는 불길을 휘둘러 차라를 떨쳐내고 다른 손으로는 잘려나간 목에 손을 얹었다.

비록 뜯겨나간 부위는 마법으로 메워졌을지언정 영혼에 남은 상처까지 지워지지는 않았기에 토리엘은 고통에 찬 신음을 잠시 내뱉고는 차라를 바라보았다.


"아직도?"


토리엘은 상처입은 순간 느낀 강한 적의를 통해 차라가 여전히 싸울 생각임을 알고 손에 옮겨붙은 불꽃을 더욱 거세게 타오르게 했다.


"싸움으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단다."


토리엘은 다시 양 손에 각각 한 개씩, 거대한 불덩어리를 만들어내었다.

그와 동시에 차라는 자신이 서있는 곳에 공격이 닥쳐올것이라는 직감을 느꼈으나, 아까전의 경험으로 인해 그 전에 그 불덩이들이 자신의 옆을 먼저 지나칠것을 알았다.


"어째서 이해해주지 않는거니?"


토리엘은 안타까워하는 눈으로 차라를 바라본다.

남이 다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토리엘로서는 자신의 상처보다 자신이 만들어낸 화염으로 인해 괴로워하는 차라를 보는 것이 훨씬 더 괴로웠다.

하지만 멈출수는 없었다.

자신이 막지 않는다면 차라는 다른 괴물을 죽일 것이었다.

토리엘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고는 만들어낸 화염구를 던졌다.

고의적으로 중심을 노린다는 생각을 강하게 하여 차라의 직감을 교란시켰으나, 차라는 직감보다는 경험을 믿고 그 자리에 멈춰선 상태.


차라의 예상대로 화염구는 자신의 옆을 지나쳤고, 차라가 옆으로 뛰어든 순간 그 화염은 방향을 틀어 차라가 서있던 자리를 향해 날아갔다.

화염이 자신을 피해가자 차라는 그대로 앞으로 달려나간다.

그 순간, 차라는 자신의 앞에 있는 공간에 공기가 몰리는 것을 느끼고 뒤로 뛰어올랐다.

차라가 뛰어오름과 동시에 차라의 앞에 몰려든 공기에 불이 옮겨붙어 차라가 서있던 곳 앞까지 불이 번져올랐다.

피하지 않았다면 불길에 휩쓸렸을 상황.


허나, 피했다고 안심할 틈은 없었다. 처음의 발화는 단순히 시작을 알리는 것에 불과했다.

지하의 공기는 불안정하게 움직이더니 곳곳에 뭉치기 시작했고, 충분히 뭉쳐진 공기에는 불이 붙어 지하실을 더욱 많은 화염으로 채워나갔다.

차라는 최대한 불길이 적게 퍼질만한 곳으로 신속하게 움직여 발화에 휩쓸리는 것을 막고, 자신의 길을 막는 조그만 화염은 칼을 휘둘러 불을 껐다.

그럼에도 바닥에 옮겨붙은 약간의 불꽃은 남아있었으나 이미 차라의 발은 이미 녹아내려 굳어버린 용암에 달라붙어 더이상 아무런 감각이 없었기에 그 정도 불꽃은 밟아도 아무런 느낌도 주지 않았다.

사실 그런 상태의 발이 움직인다는 것 자체가 이상했으나, 차라가 가진 의지의 힘은 그 이상한 일을 별것 아닌것 처럼 행하게 만들어줬다.

이미 보통 인간이라면 죽었어야 정상인 고열지대 였으나, 차라는 보통 인간이 치명상이라 부르는 부상을 입고도 1의 HP도 잃지 않은채 토리엘에게 달려들어 칼을 휘둘렀다.

차라의 칼은 그대로 토리엘을 베고 지나갔고, 토리엘은 뒤늦게 불꽃을 일으켜 차라를 물러나게 했으나, 이미 그녀의 영혼은 한계치에 달한 피해를 입은 상태였다.


"……."


토리엘은 밀려오는 고통을 억누르려는듯 잠시 두 눈을 꽉 감는다.

차라는 그 틈을 노리고 다시 한 번 토리엘을 베려 했으나, 토리엘의 주위에는 다시 화염이 둘러져 차라를 뒤로 물러서게 했다.


"내 생각보다 강하구나 아가."


그 순간, 고통으로 일그러졌던 토리엘은 의지를 다잡은 굳센 표정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토리엘이 감았던 눈을 뜨자 차라는 그녀의 눈에서 이전보다 훨씬 강력한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그 정도로는 부족해."


그녀는 자신의 두 눈을 의지로 번뜩이며 자신의 주위를 두른 화염을 한곳에 뭉쳤다.


"아가. 내 말을 들으렴. 네가 이곳에 남는다면 다른 이들을 죽일 일도 없어."


불길이 모두 모여들자 이번에는 지하의 공기가 불길을 향해 모여들어 불을 더욱 거세게 타오르게 만든다.


"네가 죽을 일도 없어."


지하에 남은 공기는 지독하게 뜨거웠으나, 이제는 그 뜨거운 공기 마저 토리엘의 불꽃을 타오르게하는데 사라졌다.

차라는 산소 없는 열기만을 흡입하며 토리엘의 공격을 대비했다.

산소가 차단된데다 이미 지하실의 온도는 핫랜드가 스노우딘마냥 느껴질 정도로 달아오른 상태였다.

이대로는 오래 버틸 수는 없다.


"하지만… 네가 여전히 누군갈 해치고자 한다면."


차라는 움직였다. 토리엘의 만들어낸 화염이 이전의 그 어떤 불꽃보다도 위협적이었으나,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좀 거친 방법을 써야겠구나."


말을 마친 토리엘은 자신이 만든 거대한 화염을 가공하여 구체로 만든다.

그 순간, 오랫동안 빛을 잃은 지하였으나, 토리엘이 화염을 가공하자 지하에는 작은 태양이 생겨났다.


"용서해주렴."


토리엘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토리엘이 만들어낸 작은 태양에서는 알을 깨고 나오는 뱀이라도 된마냥 붉은 화염이 비어져나와 차라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그리고 그 화염은 단순한 화염이 아니었다. 토리엘의 의지 그 자체가 담긴 마법이었다.

차라는 본능적으로 저 화염에 직접 맞을 경우 자신의 의지마저 태워버릴 것을 알고 급히 몸을 날렸다.

하지만 한 번 피한다고 끝이 아니었다. 토리엘이 만들어낸 붉은 화염은 벽에 부딫히자 평범한, 그러나 여전히 위협적인 불꽃이 되어 사방에 튀었고, 토리엘이 만들어낸 태양에서는 다시 붉은 화염이 비어져나와 차라를 노린다.

차라는 필사적으로 피하고, 또 피했지만 붉은 화염이 벽과 바닥에 충돌하면서 사방에 튀는 불꽃까지 모두 피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그 불꽃은 차라가 칼을 휘두른다 해서 꺼지는 작은 불꽃이 아니었다.


"흡……."


차라의 팔에 달라붙은 불꽃은 차라의 옷소매를 태우고 팔을 녹이기 시작한다.

말 그대로 피가 끓는것을 느끼며 차라는 잠시 주춤했고, 그것이 치명적인 실수였다.

차라가 잠시 주춤하고 다시 몸을 움직이려는 순간, 차라는 자신의 옆구리에 불이 붙었음을 깨달았다.

달라붙은 화염은 난폭하게 차라의 몸을 물어뜯으며 체액을 울부짖게 한다.

차라는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지르며 토리엘을 바라봤지만, 차라의 괴로운 모습에도 토리엘은 계속해서 붉은 화염을 뽑아내고 있었다.

토리엘은 괴물과 차라, 어느쪽이 죽는것도 원하지 않았기에 차라를 계속 설득했으나, 차라는 설득당하지 않았다.


그리고 차라는 토리엘이 그 고민을 다른 방법으로 해결하려 하길 마음먹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토리엘은 자신을 살릴것이다.

다만, 차라의 팔이 녹고 내장이 뒤틀려 불구가 되어 그 고통으로 인해 미쳐버린뒤에.

하지만 토리엘이 계산하지 못한 것이라면 차라의 의지가 그녀가 생각한 것보다도 훨씬 강했다는 것.


보통 인간이었다면 죽었어도 몇 번이나 죽었을 그 작렬을 버티면서 차라는 앞으로 달려나갔다.

이제 토리엘이 만들어낸 태양은 이제는 작은 태양이라고도 부를 수 없는 조그만 구체가 된 상태.

아마, 저것이 마지막 한 번일 것이다.

그리고 차라의 예상은 맞았다. 작아질대로 작아진 구체는 붉은 화염으로 변해 차라에게 날아든다.

차라는 그 붉은 화염을 피해냈으나, 피한곳에서는 다른 조그만 불꽃이 차라의 왼쪽 얼굴에 옮겨붙는다.


차라는 무심코 고통에 찬 신음을 흘리기 위해 숨을 내뱉으려 했고, 그 순간 차라의 얼굴에 옮겨붙은 화염은 차라의 입속으로 파고들어가 산소 대신 열기만을 흡입하여 메마를때로 메마른 차라의 폐를 불지르기 시작했다.

차라는 왼쪽눈이 녹아 사라지고 숨결대신 불꽃을 내뱉으며 뇌수가 끓고 뇌가 익는, 보통 인간이라면 겪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고통을 모두 느끼면서도 계속해서 움직였다.

이미 난폭한 불길에 의해 대부분이 뜯어먹힌 차라의 몸은 살아있는 인간의 것이라 볼 수 없어서 마치 죽은 육신을 영혼이 강제로 움직이는 모습이었지만, 그럼에도 차라는 머릿속으로 계속해서 의지를 다잡았다.

그리고 방금 그 공격으로 토리엘 역시 힘이 다한듯, 확연히 느려진 속도로 달려오는 차라를 막기위한 최소한의 방어조차 하지 못했다.

결국 차라의 검은 다시 한 번 토리엘을 그어버렸고, 이미 힘을 모두 소진한 토리엘은 자신을 강하게 만들어준 힘. 의지가 모두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으으윽… 안 돼… 안 돼 아가……."


결국 토리엘은 더 버티지 못하고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차라를 바라보았다.

차라의 몰골은 이미 인간이라고 부르기도 뭣한 끔찍한 몰골.

하지만 차라는 자신이 그런 상태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토리엘이 이 정도로 공격했음을 알았다.

토리엘이 자신을 진심으로 죽일 각오로 싸웠다면 이 싸움이 훨씬 힘들어졌을 것이라는 것 역시 알았다.


"네가 여길 나간다면… 그 자… 아스고어가 널 죽일거다……."


우스운 소리다. 이미 의지를 얻은 자신의 힘이 아스고어의 힘을 넘어섰다는 것은 토리엘 자신이 더 잘 알것이다.


"그리고 네가 다른 괴물들을 해친다면… 그 자는 자신의 마지막 양심마저 내려놓게 될거야……."


물론 자신을 걱정하는 마음 역시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이전 시간대에 차라만을 생각했어도 차라의 생각을 뒤바꾸기에는 부족했다.

차라는 완전히 탄화된 자신의 왼쪽눈을 살점이 완전히 검게 말라붙어 뼈만 보이는 왼팔을 들어 진득하게 녹은 살점이 달라붙은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렸다.

차라의 행위에 차라의 왼쪽눈은 눈구멍에서 떨어져 바닥을 굴렀다.


"죽지도, 죽이지도 말아야 한다……."


차라리 완전히 괴물을 지키는 것을 택했다면 지금과는 다른 결과였을텐데.

차라는 조소하며 자신과 괴물들을 동시에 걱정하는 토리엘을 비웃으며 그녀의 머리에 칼을 꽂는다.

점차 무너져내리던 토리엘의 몸은 그 공격으로 완전히 먼지가 되어 사라지고, 그녀가 쓰러진 자리에는 하얀 영혼 하나만이 남았다.


앞으로의 싸움에는 많은 힘이 필요하다. 보스 몬스터의 영혼을 흡수한다면 분명 많은 도움이 되겠지.

차라는 손을 뻗어 토리엘의 영혼을 흡수하려하였다.

하지만 그 순간, 차라의 몸에 깃든 프리스크의 영혼이 이를 거부하였고, 튕겨져나온 토리엘의 영혼은 맥없이 사라졌다.


역시 아직은 안되는건가. 차라는 안타까움 섞인 어조로 나지막이 중얼거리며 조용히 의지를 다잡는다.

차라가 마음속으로 몇차례 의지를 다잡자 자신의 영혼이 의지로 가득참을 느꼈다.

그리고, 영혼이 회복되자 살아있는 인간이라기 보다는 다 태워먹은 통구이에 가까웠던 차라의 몸은 영혼의 상태를 따라 원래대로 돌아오기 시작한다.

떨어져나간 왼쪽눈은 다시 돋아나고 시꺼멓게 타서 부스러진 뼈는 다시 생기를 되찾아 빈곳을 메운다.

뼈가 원래대로 돌아오자 살점이 뼈를 다시 덮고, 그 위에는 피부가 다시 살점을 감싼다.

차라의 몸이 원래대로 돌아오자 불에 타 실쪼리가 몇 개 만 남았던 옷도, 용암과 뒤섞인채 굳은 신발도 다시 원래의 모습을 되찾아 차라의 모습은 어느덧 토리엘과 싸우기 전의 모습으로 되돌아와 있었다.


원래대로 돌아온 차라는 잠시 몸을 풀더니 숨을 한껏 들이킨다.

지하실은 여전히 뜨거웠고, 매캐한 연기로 가득차있었으나, 방금전까지 공기 대신 불꽃을 흡입하던 차라에게는 지상의 공기보다도 청량하게 느껴지는 공기였다.

그렇게 한참을 숨을 내쉬고 들이마시는 것을 반복하던 차라는 앞으로 걸어나간다.

알피스의 방해 덕에 프리스크의 영혼을 받지 못했다.

지금은 프리스크의 영혼을 억누르고 자신이 몸을 차지했으나, 계속 차지하고 있을 수 있다는 보장은 없었다.

EXP. 더 많은 EXP가 필요하다. 프리스크의 영혼을 억누를 수 있을 정도의 많은 LOVE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만히 앉아있을 수는 없다.

더 많은 괴물들을 죽여야 했다.


인겜 연재로는 다루기 힘든 부분을 소설로 좀 써봤음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