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순간부터인가 그랬다. 세상은 온통 먼지, 먼지였다. 천장은 잿빛이었고 바닥은 잿더미였으며 음식에선 재 맛이 났고 꽃에서는 먼지 냄새가 났다. 손가락뼈, 팔꿈치, 무릎, 척추 관절들 사이사이마다 먼지들이 들어차 움직일 때마다 까득거리며 틈새를 마모시켰다. 양말 안에는 수북하게 차오른 먼지가 폭신하게 밟혔다.

리셋을 반복할수록 그의 불편함은 한 가지씩 늘어갔다. 초반에는 신경 쓰지 않았던 것들이지만 점차 학살에 적응하며 깨닫게 되는 문제들이었다. 그래도 리셋이 되고 나면 모든 것이 다시 잠깐은 처음으로 돌아갔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그는 약간의 불편함 정도는 참아넘기며 오로지 빠르고 효율적인 리셋을 위해 움직이게 되었다. 허나 그러면 그럴수록 세상이 잿빛이 되어가는 속도만 점점 더 빨라질 뿐이니 이제 샌즈는 잿빛 이외의 색을 느껴본 게 언제인지조차도 흐릿했다. 단 한 가지 색을 빼고 말이다.

손을 한 번 휘두르자 또 한 마리 먼지 덩어리가 얼굴로 훅 끼얹어졌다.


폐허 앞으로 가기 전 잠시 워터폴에 들러 레벨을 조금 올렸을 뿐인데 문이 열려있는 폐허 안에는 다량의 먼지만 가득 쌓여 풀풀 날리고 있었다. 요 며칠 상당히 느릿느릿하게, 심지어 괴물들을 몇 마리 살려주기까지 하며 편하게 어슬렁거리던 인간의 행동은 아무래도 자신을 방심하게 하려는 책략이었던 것 같다. 샌즈는 혀를 쯧 차며 애꿎게 발치에 쌓인 먼지를 한 차례 걷어찼다. 좋은 친구였던 그녀가 샌즈의 발 뼈 틈 사이에 회색 흔적을 남기며 풀썩 흩날리고는 가라앉았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바닥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어깨의 먼지를 탁 털어낸 샌즈가 중얼거리며 방향을 돌렸다. 멀리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정도 시간이면 아무리 빨리 가도 이제 겨우 스노우딘일 테니까.



스노우딘을 지나온 후 샌즈는 숨을 돌리며 자신의 레벨을 확인했다. 어라? 조금 모자란다. 그러고 보면 몇 마리 보이던 친구들이 보이지 않던 것이 아무래도 인간이 먼저 와 EXP를 몇 마리 훔쳐간 모양이다. 개 같은 새끼... 이 레벨로는 인간을 상대하기엔 벅차니 다시 한 번 워터폴까지 진입해 레벨을 올려 둬야 했다. 귀찮지만 어쩔 수 없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샌즈는 몸이 달아 견딜 수가 없었다. 한시라도 빨리 인간을 만나야 했다. 보이는 괴물들을 죄다 잡아 죽이며 온 탓에 먼지로 목 안이 텁텁했다. 왜 그래, 형? 이라고 말한 괴물의 목소리가 잠시 점멸했다. 아니, 먼지였던가.


걷고 있자니 몸에 붙은 먼지들이 파르르 날리더니 이내 파피의 형상을 한다. 지독하게도 빛바랜 스카프가 정수리로 늘어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어깨에 묵직한 감각이 느껴졌다. 죄책감의 시체가 어깨를 꾹꾹 누르며 어서 가야지, 형! 이러다간 인간한테 전부 빼앗길 거야! 쿨한 해골은 그런 거 참을 수 없어! 녴! 하며 시끄럽게 고함을 질러댔다. 재촉받은 걸음이 빨라졌다.

걱정하지 마... 팝. 재촉하지 않아도 충분히 빨리하고 있어.

동굴 입구에서 어슬렁대며 청소할 것을 찾던 괴물의 영혼을 세상으로부터 씻어주며 샌즈가 낄낄 웃었다. 환영도 따라 웃었다.




인간은 쿨럭거리며 피를 토했다. 몇 개나 되는 뼈가 바닥에서 솟아 나와 교차하고 있었으며 인간은 그 교차점 정 가운데에 화려하게도 박제되어 있었다. 끈적하고 뭉글한 핏덩이들이 후두두 떨어져 바닥으로 스며들어 갔다. 먼지 융단이 깔린 바닥에 붉은 자국이 새겨지는 것을 보며 샌즈는 주머니 안에 집어넣고 있던 한쪽 손을 꾹 움켜쥐었다. 자연스레 입꼬리가 올라갔다.

인간의 배를 관통해 등을 뚫고 나온 뼈 위쪽은 붉게 꽃이 잔뜩 피어 있었다. 꽃잎이 뚝뚝 떨어져 뼈를 타고 흘러내리는 것이 샌즈는 참을 수 없이 기뻤다. 온통 먼지만 풀풀 날려대는 이 미친 시간 속에서 샌즈가 인지할 수 있는 잿빛 이외의 유일한 색이었다. 살아 있다는 실감이 들었다. 자신이 무엇을 위해 이 끔찍함을 버티고 있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끝없이 싸워야 하는 투우장의 소처럼. 붉은빛으로 흥분하는.

넌 미친놈이야. 아주 미쳤다고. 피 가래가 끓는 음성으로 그렇게 말하며 실웃음을 흘리는 인간에게 다가간 샌즈는 입가에 흘러나오는 피를 손가락뼈로 살짝 훑어보았다. 인간은 흠칫했으나 별다른 반응은 없었다. 잿빛으로 바랜 뼈끝에 붉은색이 묻은 것이 그의 마음에 들었다.


그래. 이제 샌즈는 먼지만 가득한 지하에서 오로지 핏빛만을 똑바로 인지할 수 있었다. 다른 모든 것은 그의 마음에 와 닿지 못했다. 인간의 의지의 색. 인간이 망가져 가는 색. 드러나는 영혼의 색. 자신의 짓인지 인간의 짓인지 구분조차 못 할 똑같은 잿빛 먼지 더미 안에서 인간을 막고 있다는 유일한 증명이자 표식이다. 미친 시간 속에서 샌즈의 유일한 마음의 좌표가 되어주는 색. 내장과 피를 줄줄 흘리는 인간을 거칠게 뼈에서 뽑아내 번쩍 들어 올리자 옆에서 동생의 재촉이 들려온다. 샌즈는 세상에서 가장 보람찬 얼굴로 직접 손을 쑤셔 넣어 인간의 심장을 터트렸다. 머리 위로 피가 폭포처럼 쏟아져 샌즈의 머리 위에 수북하게 쌓인 먼지를 쓸어내려 갔다. 절망으로 가득 찬 인간의 표정은 그 선명한 폭포에 그저 가려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