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날때부터 그랬으면 좋겠다. 책 보고 학습해서 대충 웃고 우는 건 구별하는데 그 이상의 복잡한 심정은 구분하지 못했으면 좋겠다. 목소리의 뉘앙스도 구분하지 못했으면 좋겠다. 분위기 파악 못해서 쟤는 좀 이상하다는 말을 들으며 왕따당했으면 좋겠다. 그래도 친구 한명쯤은 있었으면 좋겠다. 솔직하고 항상 웃는. 타인과의 감정 공감은 못해도 외로움은 타서, 먼저 다가와준 친구가 고마워 그 아이에게 헌신적이었으면 좋겠다.
어느날 다른 애가 그 친구에게 심한 장난을 쳐서 친구가 울었으면 좋겠다. 쟤가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울며 소리치는 친구의 말을 듣고 진심인 줄 알았으면 좋겠다. 차라가 네가 원하니 이뤄주겠다며 커터칼로 장난친 애를 찔렀으면 좋겠다. 삽시간에 반은 난리가 나고 친구가 미쳤냐고 어떻게 사람을 찌르냐고 차라에게 소리질렀으면 좋겠다. 네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했잖아. 그거야 당연히 화나서 그냥 해본 말이지! 넌 미쳤어 제정신이 아니야 정신적으로 붕괴되어있어 넌 진짜 이상해. 차라가 매도당하다가 학교를 뛰쳐나왔으면 좋겠다.
집으로 돌아갔다가 부모가 학교에서 온 연락을 받고 대화하는 걸 들었으면 좋겠다. 언젠간 그럴 줄 알았어. 차라는 너무 이상해. 어쩌다 그런 아이를 낳았을까. 그래도 일단은 우리 아이니까 어쩔 수 없잖아요. 버릴 수도 없고! 차라가 듣다가 문을 밀어서 끼익 소리를 냈으면 좋겠다. 부모들이 대화하다가 깜짝 놀라 문 쪽을 보고 차라를 발견하고는 언제왔니, 몸은 괜찮니? 그 아이는 생명에 지장은 없다고 하더라, 무서웠지? 괜찮아. 엄마아빠가 도와줄게. 너는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렴. 하고 차라를 달랬으면 좋겠다. 아까까지만 해도 한숨을 쉬다가 자신을 발견하자 웃는 얼굴로 말을 건네는 부모의 얼굴을 보다가 차라가 저것도 거짓일까 공포를 느껴 뒷걸음질쳐서 집에서 도망나왔으면 좋겠다. 길거리를 정처없이 헤매며 더이상 이런 거짓된 세상에서 살기 싫다고 생각하다 문득 에봇산의 전설을 떠올렸으면 좋겠다. 그 길로 에봇산에 들어갔다가 발을 헛디뎌 떨어졌으면 좋겠다.
떨어진 차라를 당연히 아스리엘이 발견하고 데리고 가 치료해주고 같이 살면 좋겠다. 차라가 처음에는 다른 생김새에 놀랐다가 곧 이들도 사람과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한동안 경계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차라가 새벽에 잠이 깨 물을 마시러 부엌으로 가다가 토리엘과 아스고어가 자신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 걸 들었으면 좋겠다. 아직 그 아이는 우리를 믿지 않는 것 같아요. 종족이 다르니까 당연하지 않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최선을 다해 친절하게 대해주는 것 뿐이지. 언젠가는 우리의 진심을 알아줄거요. 당연하죠. 괴물들이 사실은 자기가 알던 사람들이랑은 좀 다르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입에 발린 말을 하지 않고 순수하게 생각하는 그대로를 표현한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최소한 염소 가족은.
차라가 경계를 풀고 아스리엘과 토리엘과 아스고어와 행복하게 지냈으면 좋겠다. 생김새가 달라 외웠던 인간 얼굴 표정 구분법으로는 구분할 수 없지만 괴물들은 좋을 때는 좋다고, 슬플 때는 슬프다고 거짓없이 말해서 별로 상관 없었으면 좋겠다. 인간 세상보다 여기가 훨씬 더 좋다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어느 날 아스고어와 토리엘을 위해 차라와 아스리엘이 파이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버터 대신 버터컵 꽃을 넣었으면 좋겠다. 아스고어가 먹고 아팠으면 좋겠다. 아프지만 괜찮다고 침대에 누워 웃어보이는 아스고어를 보고 차라가 진짜 괜찮은 줄 알고 같이 웃었으면 좋겠다.
차라가 아스리엘과 함께 놀다가 거슨을 만났으면 좋겠다. 거슨에게 과거와 전설과 결계에 대한 얘기를 듣고 화를 냈으면 좋겠다. 인간들은 정말 이기적이야. 아 원작에 있는 얘기를 뭐하러 써. 어쨌든 차라가 아스리엘이랑 짜고 버터컵 먹고 죽어서 아스리엘이 차라 영혼을 먹고 올라갔으면 좋겠다. 아스리엘이 차라가 살던 마을로 가서 꽃밭에 차라의 몸을 뉘어놓는데 사람들이 보고 괴물이 나타났다며 비명 지르고 공격했으면 좋겠다. 차라가 아스리엘 안에서 아스리엘이 느끼는 생각과 감정들을 같이 느꼈으면 좋겠다. 아스리엘을 보는 사람들의 시선과 표정이 경멸 혐오 공포 증오 온갖 부정적인 감정을 쏟아내는 걸 차라도 생생하게 느꼈으면 좋겠다. 처음 느끼는 타인의 끔찍한 감정에 괴로워하다가 과거에 자신을 쳐다보던 얼굴이 꼭 저랬다는 걸 기억해냈으면 좋겠다. 나는 처음 본 괴물과도 같았나? 아니, 괴물이 어때서? 나야 사람을 찔렀으니 끔찍해 할 수도 있겠지. 그런데 아스리엘은? 그저 괴물이라는 것 만으로? 아무 짓도 안했는데 왜? 온갖 생각이 영혼을 맴돌았으면 좋겠다. 그러는 와중에 당장 죽이겠다며 날뛰는 사람들과, 죽이는건 너무하지 않아요? 라고 입으로는 말하면서도 팔짱끼고 구경하는 사람들이 시야에 들어왔으면 좋겠다. 인간은 다 쓰레기야. 차라가 폭주해서 사람들을 죽이려 날뛰었으면 좋겠다. 아스리엘이 겨우 제어해서 지하로 돌아왔으면 좋겠다. 아스리엘이 먼지로 날릴 때 차라의 영혼도 먼지처럼 산산히 분해되었으면 좋겠다.
먼 훗날 알피스가 의지를 부어 황금꽃에 아스리엘을 되살릴 때 차라도 파편이나마 되살아났으면 좋겠다. 살아있다는 자각도 없이 있다가 어느 날 프리스크가 지하로 떨어졌을 때 프리스크에게 붙었으면 좋겠다.
으 끔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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