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스크 패러블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7.5 18 19 20 21 특별편 22 23 24 25 ]
너는 괜히 손에 들고 있던 은색 열쇠를 뒤로 숨겼다. 샌즈가 있는 곳에 '몰래' 들어오려고 했다는 발상 자체가 잘못 된 것이었다는 사실을 그제서야 깨달았다. 너가 샌즈를 살펴보았을 때 그다지 기분 나빠하는 것 같진 않아서 다행이었다. 샌즈는 너에게 나름 환영 인사를 한 것 같았지만, 그저 손에 들고 있는 사진을 계속 보고 있을 뿐이었다. 딱히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사진을 보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너는 아빠가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서류 종이를 보고 있는 아빠의 표정을 생각해냈다. 샌즈의 표정은 그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샌즈는 손에 집고 있던 사진들을 가지런히 모아서 옆에 있던 책상 위에 덮어놓은 채로 던져놓았다. 그리고 다시 후드 주머니에 손을 꽂아 넣었다.
너는 다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왠지 모르게 차가운 공기와 기괴하게 생긴 기계, 그렇게 기분 나쁘지도, 좋지도 않은 채로 널 쳐다보는 샌즈. 너는 샌즈의 비밀 아지트라 하는 지하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살짝 으스스하다고 생각했다. 일단 미묘한 눈빛으로 널 쳐다보는 샌즈에게 말했다.
"죄송해요."
아니, 시작부터 왜 사과부터 하고 들어가는 거야.
"말 편하게 하라고 했잖아, 꼬마. 난 별로 상관없어. 오히려 여기 들어와주는 사람이 생겨서 기분이 좀 나은 걸. 파피는 이런 곳이 있다는 것도 모르거든."
"파피루스도 몰라?"
"글쎄, 보통은 이런 곳이 있다는 걸 알아내기는 생각보다 힘들거든. 일단, 지하실인데다가 이 기계가 끼치는 영향 때문에 기분이 좀 안 좋을 거야. 이해해둬."
확실히, 너는 스노우딘에 있었던 내내 느끼지 못 했던 한기를 이 지하실에서 느끼고 있었다. 바닥에서부터 올라오는 묘한 한기는 너의 등골에 소름이 끼치게 만들었고, 귀에 울리는 듯한 이상한 소리가 오싹한 기분을 들게 했다. 샌즈가 말한 영향이라는 것이, 아마 이 울리는 소리인 것 같았다. 굉장히 낮고 굵은 소리가 나는 듯 했고, 그 소리 때문인지 목덜미가 뻣뻣해지는 느낌이 들었으며, 왠지 오금이 저린 것 같기도 했다. 너는 슬슬 이 장소가 불편하게 느껴졌지만, 마음대로 열쇠를 따고 들어온 주제에 도망쳐버리는 건 굉장히 이상한 짓이라고 생각하여, 샌즈를 등지고 나올 수 는 없었다.
그렇게 불안해 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샌즈가 너에게 다가왔다.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차가운 뼈마디에 너의 머리카락이 스쳤고, 그것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촉감이었다. 샌즈가 몇 번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너는 기분이 좀 나아졌다.
"꼬마야. 집에 돌아갈 방법을 모르겠어서 고민이지?"
"아니야. 샌즈가 응원해줬으니까……."
"아니, 프리스크. 응원만으로는 부족해. 너, 정말로, 아무런 대책없이 아스고어에게까지 갈 수 있을까? 너가 결계를 통과할 방법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과연 결계까지 나아갈 수 있을까? 넌 확신할 수 있어?"
"뭘 해야할 진 모르겠지만, 아스고어라는 괴물에게 가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는 걸."
"정말 그게 답이 될 수 있다면, 난 당장 지금이라도 너를 아스고어 왕에게 데려다줄 수 있어."
틀린 말은 아니었다. 샌즈가 지금까지 너를 여기 저기로 옮겨주었듯이, 너와 샌즈가 원한다면 당장이라도 아스고어에게 갈 수 있었다. 너가 애초에 걸어다닐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샌즈는 너를 진심으로 돕고 싶어하고, 너가 만약 뭔가를 하는 데에 있어서 샌즈의 능력이 필요하다면, 샌즈는 자신의 힘을 아끼지 않을 자신이 있어보였다. 하지만, 샌즈는 지금 너를 아스고어에게 데려다주고 있지 않았다. 그저 너에게 말하고 있을 뿐이었다.
"아스고어는 널 보면, 널 죽이려고 할 거야. 그게 자신이 원하는 것이든 아니든 상관 없어. 아스고어는 괴물들의 왕이고, 너는 괴물들에게 자유를 안겨줄 하나의 영혼이니까. 아스고어는 널 죽일 수밖에 없지. 이건, 단순히 아스고어라는 괴물과 너의 문제가 아냐. 수많은 괴물들의 희망을 짊어지고 있는 왕과, 그 열쇠를 쥐고 있는 인간의 문제지. 넌 그 속에서 살아남을 수 없을 거야. 이해하겠어? 일단 아스고어 왕과 너가 만나는 순간, 나는 널 도와줄 수 없어. 아스고어를 만나는 건 무조건 마지막 선택이어야만 해."
"응……."
"나는 너가 그런 상황을 마주하게 할 순 없어. 다만, 너에게 조금이라도 나아가야할 이유를 만들어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 나도, 너도 지금 답을 알아낼 순 없어. 너가 죽는 것 이외에는 결계를 부술 방법이 없는 것인지, 또 다른 방법을 찾아낼 수 있는지 말야. 다만 너가 여기를 여행하면서 답을 알아내길 바랄 뿐이야. 너 같은 꼬마에게 그런 걸 바라는 건 무리지. 하지만, 너에겐 힘이 있어. 나아갈 수 있는 의지가. 난, 너희 두 명에게서 그걸 볼 수 있어."
나까지 언급하는 건가.
"지하 세계는 그 힘 때문에 엉망진창이 된 적이 있어. 나와 내 동료들은, 연구를 통해서 시간선을 마음대로 뒤집어버리는 그 힘이 있다는 걸 알아냈지. 연구를 통해서 그 사실을 알아내긴 했지만, 결국 해결할 방법은 없었어. 그 힘, 의지의 힘, 그걸 막으려는 연구를 하다가 말야……. 뭐, 다시는 만날 수 없게 됐다고만 말해줄게 꼬마야."
샌즈는 어깨를 으쓱 하면서 웃었다. 분명히 샌즈는 웃고 있었지만, 사실 샌즈는 웃고 있지 않은 적이 없었다. 샌즈의 표정은……, 그래, 여전히 웃고 있었다.
"그런 힘을 이제 너가 가지게 됐어. 착하고 순수한 어린 아이에게 말야. 너가 그 힘을 통해서 할 수 있는 게 뭐라고 생각해? 학살? 고약한 장난? 불사신이 되어 세상을 지배하는 것? 그런 것 따위는 네 관심 사항이 아냐. 그냥, 원래대로 지낼 뿐이지. 하나의 행운 같은 것일 뿐이야. 나는 오히려 너의 그런 점을 보고 희망을 찾는 거야. 무엇이든 할 수 있는 힘으로, 그 어떤 것도 하지 않는 것 말야."
"……."
"너 같은 어린애가 그런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어떻게 뭘 할 수 있냐고? 단순히 괴물들을 만나고 친해지는 거랑 나의 바람이랑 무슨 상관이냐고? 그래서 결국 너가 집에 갈 수는 있냐고? 그러니까 그건……."
샌즈는 눈을 감은채 수없이 말을 뱉어내고 있었다. 샌즈는 바로 앞에 있는 너도 제대로 보지 않으면서 말을 쏟아내고 있었다. 샌즈가 하는 말끝마다 그 음이 묘하게 떨리는 것 같았다. 너는 샌즈가 쏟아내는 말들을 제대로 듣지 않고 다른 것들을 생각했다. 이 비밀 아지트란 장소, 샌즈가 무표정하게 보고 있던 사진들, 책상 위에 올려둔 은색 열쇠, 눈을 감은 채로 말하고 있는 샌즈, 파피루스가 적응을 하지 못 할 정도로 바빠진 샌즈. 여러가지 정황이 너의 머릿 속을 스쳐지나갔다.
샌즈가 예전에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너가 있는 덕분에 더욱 안정적이 되었으며, 희망이 보이게 되었다고 했었다. 그릴비네에서도 너에게 말한 적이 있었다. 시간의 불연속성이 사라진 것만이라도 다행이지만,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있다고 말이다. 그건 사실 막연한 기대가 아니었다. 정말로 너에게 뭔가를 원하고 있었다. 샌즈가 원하리라는 것이 무엇일지 너는 생각해보았다. 샌즈 또한 괴물들의 자유를 원하고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샌즈는 너가 죽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걸 알고 있다. 너를 응원한다면서도, 제대로 된 답을 내놓지 못 하고 있었다.
너가 여기까지 생각하고 있는 와중에도 샌즈는 말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샌즈가 어떻게든 널 믿어줄 것이며 도와주겠다는 내용을 끊임없이 다른 말로 하고 있었다. 너는 샌즈의 두개골에서 흐르는 땀을 보면서 한 가지를 깨달았다. 이 힘, 의지라고 불리는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어차피 죽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샌즈도 알고 있다. 그러므로 샌즈는 너를 죽여서 영혼을 취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셈이었다. 그러므로 너를 통해서 결계를 부술 수는 없다. 결론적으로, 토리엘의 약속이나 도리를 떠나서, 샌즈는 너를 죽여서 애초에 의미가 없던 것이었다.
만약 너라는 작은 인간이, 플라위처럼 나쁜 마음을 먹고 지하 세계를 망가뜨리기 시작한다면, 그것은 최악의 결과다. 그 힘을 가진 자가 인간이라면, 예전과는 비할 바가 없는 끔찍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샌즈가 정말로 너가 학살이나 고약한 장난, 불사신이 되는 일 따위에 관심이 없을거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그럴 가능성이 인간이 괴물들에게 안 좋은 일을 저지르지 않게 하려면 샌즈는 어떻게 해야 했을까?
어떻게든 인간에게 좋은 인상을 남겨야만 할 것이다.
인간은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갈 방법은 없다. 그래서 결국 인간이 집으로 돌아가는 것에 대한 희망을 버리고 괴물 세계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또 다른 플라위가 나타나지 않을까? 그렇게 해서 샌즈는 너에게 어떻게든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비위를 맞출 수밖에 없었다. 조금이라도 정을 뗄 수 없게 만들어야 했다. 너를 항상 믿고 있다고 생각하게 만들어야 했다.
괴물들을 위해서.
"샌즈."
"응? 무슨 할 말 있어?? 꼬마야?"
너는 샌즈에게 다가갔다. 샌즈가 후드 주머니에 꽂고 있던 오른손을 억지로 꺼내어, 너의 작은 두 손으로 꼭 잡았다.
"난, 샌즈의 친구야. 그렇지?"
"당연하지."
"샌즈는 내 친구야. 그렇지?"
"응."
너는 샌즈의 손을 잡은 두 손에 더 힘을 주며 말했다.
"그러면 불안해 하지 마, 샌즈. 난, 샌즈가 좋아. 절대로 샌즈가 생각하는 이상한 거 안 할 거야."
"……."
샌즈가 입을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못 하고 있었다.
그렇게, 잠시 동안 너와 샌즈는 그렇게 가만히 있어야만 했다.
ㄴ?
내 글에 덧글 주작해주는 건 고맙지만 올삭제란다
샌즈가 프리스크를 믿지 않는다고 한 게 여기서 잘 나오네
퍄퍄 좋다. 이 소설의 약간 텁텁힌 분위기 진짜 마음에 든다
샌즈 그러면 지금까지 한게 다 환심사려고 그런거냐... 먹을것도 사주고 간호도 해준게 존나 불쌍하게 해놨네
로각좁도 삭제란다
뭔가 씁쓸하다
샌가놈이또
역시 차레이터.프리스크 생각인가.암튼 표현 잘되고 있어서 너무 좋다
그거 생각나네. 샌즈가 '아 ㅅㅂ 비위 맞춰주기 존나 어렵네' 라고 생각하는 대사였나 그런 짤이 있었는데
ㄴ 꼬맹아 난 널 믿어 짤이였음 그거 ㅋㅋㅋㅋㅋ
허억 불안해하는 샌즈 머꼴
오늘 내용이 제목을 그대로 투영해줬네ㅇㅇ 개추박고간댜
인간을 위해서 같은 것 따윈 없구나. 오직 괴물들을 위해서야? 그거 들키면 어떻게 될 진 생각해봤을까?
샌즈가 과대망상이었구나
믿지않는새끼 안심시켜주려는거 좋네
과댜망상증 이런의미였다니....
…
애껴본다 개추
물론 저거 다 차레이터 생각이겠지. 프리스크 저거 듣고 배신감 안 느낀게 대견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