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저귀는 파랑새의 울음소리에, 눈을 비비며 아침을 맞는 일상.

비몽사몽한 몸으로 비틀비틀 내려가 간단하게 양치질과 세안을 하고나면 나를 부르는 소리가 문 밖에서 희미하게 들려왔다.



" 프리스크, 아침 먹어야지! "



그 소리를 듣고나면, 급하게 수건으로 얼굴을 닦아내고선 주방으로 달려가 테이블의 의자에 앉으면 이내 접시에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는 달걀과 베이컨이 앞에 놓여졌다.

싱긋 웃는 엄마의 미소에 나 또한 방긋 웃으며 답해주고, 서툰 포크질로 맛있게 아침을 먹고나면 주섬주섬 외투를 챙기고서는 외출준비를 한다.



에봇 산의 결계가 사라진지 얼마나 지났을까, 처음에는 사람들도 당황했지만 어느새 친구들 (그들은 괴물이라고 하였지만)과의 생활이 익숙해질 무렵이였다.

어느 새, 날씨는 차가운 바람이 몰아칠 때가 되어서 단단히 입고 나가지 않으면 감기에 걸리고 말 정도가 되었다.


하얗게 눈에 덮인 거리를 보고나면, 스노우 딘이 떠오르곤 한다. 샌즈와 파피루스를 처음 만난 바로 그 곳.

후우, 하고 의미없이 숨을 내쉬어보면 새하얀 연기가 되어 올라가다 서서히 흩어져간다.


에봇 산을 떠난 이후 그토록 그리던, 가족과 다시 만났고. 친구들 또한 원하던 것들을 이뤄가며 기뻐하고 있었지만

마음 속 한 구석은 여전히, 여전히 돌이 자리잡고 있는 듯 무거웠다.


이유는 모르겠다, 자신이 무얼 하고 싶은건지. 대체 무엇 때문에 그런 것인지, 답답한 마음에 친구들에게 물어보면 



" 잘 모르겠는걸 "



이라는 대답만이 들려올 뿐이였다.



그저 이 답답한 마음을 풀고자,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다리가 아파진 탓에 벤치에 앉아 쉬기로 했다.

벤치에는 사람들이 자주 앉지 않았는지 눈이 엷게 쌓여있었지만 그냥 털썩 하고 주저 앉았다.


그냥 앉아있기도 무료한 탓에 양 다리를 박자에 맞춰 앞 뒤로 흔들고 있을 무렵 시야에 흰 무언가가 떨어졌다.

고갤 들어보니, 어느 새 하늘에는 눈 송이들이 하나, 둘 씩 떨어지고 있었다.


그 눈송이를 받고자, 양 손을 모아 내뻗어 보았지만 닿는 족족 녹아 자그마한 웅덩이를 만들 뿐이였다.

뻗은 손을 거두어 그 웅덩이를 보고 있자니 어디선가 말 소리가 들려왔다



" 눈이 물이 된 걸 '본' 적이 없나? 뭘 그리 열심히 들여다봐 꼬맹아 "



소리 쪽으로 고갤 돌려다보면 익숙한 친구가 장난끼 가득한 얼굴로 특유의 제스쳐를 취하고선 으쓱했다.

그리고 내 옆에 앉아선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만나서 반갑긴 하지만, 샌즈가 이렇게 조용히 있다는 사실이 뭔가 부자연 스러워 움찔거리며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자 뭐가 그리 신기하냐는 듯한 표정으로 씨익 웃어보였다.



" 좀 걷는게 좋겠는걸? "



찬 바람이 한 번 얼굴을 훑고 지나갔다. 냉기가 볼을 마구 부빈 듯이 볼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외투의 모자를 뒤집어 쓰자 조금 차가운게 나아져 그나마 버틸 만 했다.


셋이서 나란히 걷기 좁은 길에, 나와 샌즈가 나란히 서서 걷고 있었다.

계절이 계절인 탓일까 길 양 옆에 빼곡히 나있는 나무들은 벌거벗은 채로 가지만 드러놓고 있어 조금 안쓰러운 기분이 들었다.


나와 샌즈는 지금 에봇 산을 오르고 있었다, 익숙한 길을 걷는 걸 보아하면 아마도 그 구덩이쪽으로 가는 듯 했다.

샌즈에게 왜 구덩이 쪽으로 가는지 궁금해서, 올려다 보면 장난스런 미소를 한 번 지은다음 말해주었다.



" 우린 결계가 깨지기 까지의 기억이 남아있지 않아 "



그리고, 갑자기 그렇게 답해주었다. 다행히도 샌즈의 말은 여기에서 끝이 아니였다.



" 분명 넌 그토록 원하던 지상에 나왔잖아, 그 누구의 피 값도 치르지 않고 말이야, 기적을 이뤄냈다고 "



계속해서, 산길을 오르며 샌즈는 말을 이어나갔다.



" 하지만, 네 얼굴은 뭔가 찜찜해보였어. 그래 뭐라도 두고 온 사람같이 말이야, 내 예상이 맞다면... "



대화하는 도중, 어느새 구덩이 앞까지 도착했다. 여전히, 끝이 보이지 않는 깊은 구덩이였다.

샌즈는 씨익 웃고서는, 내게 말해나갔다.



" 못 다한 일을 끝내고 오라고. 꼬맹이 "



그리고 샌즈는, 투욱 하고 나를 밀었다. 그 힘에 나는 뒷 걸음 질 치다가. 덩쿨에 걸려 구덩이 속으로 떨어졌다.

조금의 시간 뒤에, 푹신 하고 떨어진 곳은 황금색이 가득한 꽃밭이였다.


그리고, 그제서야 샌즈가 한 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떴다.



" ...오래간만이네, 플라위 "



나는 익숙치 않은 몸을 이리 저리 움직여 가며, 그렇게 말했다.

그 말에 놀란 듯, 어안이 벙벙한 듯한 목소리가 꽃 밭에서 들려왔다.



" 너... 너야? 진짜... 너야? "


" 그럼 내가 아니고 누구겠어 "



한 바퀴 빙그르르, 돈다. 그리고 이제서야 조금 익숙해진 몸을 이끌고 목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갔다.

그 곳에는 할 말을 잃은 듯한 자그마하고 여린 꽃 하나가 이 쪽을 보고 있었다.



" 어, 어떻게... "


" 그 녀석이 잠깐 빌려준거야 "



지금도, 이 몸 속에 강한 의지가 느껴진다. 당장이라도 삼켜질 듯한 의지.

그렇게라도 내가 못 미더우면 빌려주지 않아도 될 것을.



" 참... 약해빠진 녀석이라니까 "



나는 그렇게 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안다, 그 녀석은 적어도 나보다는 강하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지만, 사실이다. 그리고 녀석이 지금 몸을 빌려준 이유도, 그 힘에서 비롯된 결과라는 사실도 말이다.


한 동안 플라위와 이야기를 했다. 우습게도, 아스리엘이 옆에 앉아 함께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처음 만났던 날, 달팽이 파이의 쟤료를 알고 화장실로 달려간 날, 이 황금 꽃밭에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한 날.


한 때는 정말 미워했던 세상이지만, 재미있게도 이런 시간들이 즐겁다고 생각했다.

즐겁게 웃었다, 플라위를 위협하면 덜덜 떠는 모습도 귀엽다고 느꼈다.


한참을 이야기 하다가, 문득 구덩이에서 새어 나온 빛이 나를 비춰주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누워서 그 빛을 바라보고 있으면, 참 별의 별 생각이 다 드는 기분이였다.



" ...야 플라위 "


" 응? "



플라위도 마치 누워 있는 듯한 모습으로, 줄기를 늘어뜨려 놓으며 대답해주었다.

한참을 뜸을 들이다, 무언가를 말하려다 목 끝에서 막히는 느낌에 어물거렸다, 그러다가 이내 입을 다물고나선 말을 이어갔다.



" 나 간다 "



그 말에 플라위 또한 침묵했다, 무거운 침묵이 지하를 맴돌았다. 그 침묵을 먼저 깬 것은 플라위였다



" 그래 "



그 말에 가슴이 미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내심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표정으로 일어나 말했다.



" 야, 걱정마. 그래도 살 만했으니까. "



뒤는 돌아보기 싫다, 왠지 뒤를 돌아보면 나를 유지할 수 없을 것 같다. 뭔가 막히는 듯한 목소리로 말해나갔다.



" 나 다시 태어날테니까, 그럴테니까 "



젠장, 울음이 터질 것 같다. 억지로 고개를 들어 흐르는 눈물을 막아보려고 했다.



" 다시 한 번 여기 떨어질테니까, 그 때는... 다시 한 번... 놀아 줘야해? "



목소리에는 울음기가 조금 섞여들어갔다. 제기랄, 이게 무슨 꼴이람. 울보 아스리엘도 안 우는데.

그렇게 말하자, 뒤에서 다시 한 번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응, 꼭 놀아줄게. 내가 놀아줄테니까, 그러니까. "



보지 않아도 녀석이 울고 있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말도 제대로 못 잇고 꺽꺽 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 울면서도 녀석은 강인하게 녀석답지 않게 한 자, 한 자 말해나갔다.



" 잘 가...., 차,라 "



그 말에 괜시리 안도감이 들었다, 아스리엘 주제에 날 안도시킬줄은 꿈에도 몰랐다.

천천히, 눈을 감았다. 마치 세상이 사라지는 듯이 위 아래가 천천히 어둠에 뒤 덮혀져 갔다. 마침내 전부 어둠에 뒤 덮혔다.


완전히 눈을 감자 눈물 한 줄기가 볼을 따라 흘러 내려갔다. 그러나 슬프지만은 않았다.


다시 태어나는 거다, 다시 태어나서. 엄마 말 안듣고 장난치러 에봇산에 올라갔다, 덩쿨에 발이 걸려 구덩이 속으로 빠지는 거다.


나중에 정신을 차려 보면, 어둡고 축축한 곳이라 많이 당황하겠지. 그럼 아마도 엄마를 찾으며 울부짖을지도 모른다.

그 때 아스리엘이, 나를 위로해 주겠지. 그리고 다시 한 번 노는거야. 그래, 다시 한 번.



눈을 떴다. 플라위가, 고개를 숙인 채 그저 무언갈 중얼거리고 있었다.



" 고마워... 고마워... "



그 모습에, 나는 플라위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나 플라위는 여전히 같은 말을 반복 하고 있을 뿐이였다.



" 고마워... 고마워... 프리스크... "



이렇게까지 감사 받을 일은 하지 않았다, 그저 해야할 일을 했을 뿐. 하고 싶은 일을 했을 뿐이다.

말 재주가, 없어. 사람을 위로하는 법을 모른다. 그저 플라위를 안고, 전처럼 다독여줄 뿐이였다.



에봇산, 그 깊은 구덩이 밑 지하. 황금 꽃이 아름답게 만발한 그 곳에서, 무엇보다 아름다운 울음소리가 자그마하게 들려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