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가 한창일 8월의 어느 날 저녁, 농촌의 몇 안 되는 10대인 숙구와 초롱이, 안승리가 한 자리에 모여있다.


"자, 그럼 시작할까?"

가장 활동적인 초롱이가 먼저 판을 열었다.

"나는 이런 거, 아직은 안 된다고 보는데……. 그리고 왜 하필 우리집이야?"

승리가 초롱이를 향해 조심스레 말을 했다.

"그야 네가 제일 만만하니까."

"히잉……."

꿈무룩.

이들이 모인 이유는 수능 D-100일을 기념하기 위해 100일주를 마시기 위해서다. 물론 시작부터 지금까지 품행이 가장 안 좋은 초롱이가 준비했다.

"숙구도 오늘 부모님 안 계시잖아……."

오늘 이곳 에보리의 어른들은 휴가를 겸해서 2박3일짜리 여행을 갔다. 초롱이가 오늘을 100일주날로 잡은 것도 이것을 노리고 잡은 것이다. 마침 방학이라서 학교도 일찍 끝난 상태기도 하고 말이다.

"아앙?"

"힉!"

결국 승리는 초롱이에게 기가 눌려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해보지도 못했다.

"숙구는 꼭대기 집 살잖아. 이왕이면 모이기 편한 너희 집이 좋잖아? 됐지? 자, 그럼 한 잔씩 받으시고~."

어느새 뚜껑을 딴 에보리 특산품 미나리아재비 막걸리를 승리의 스뎅그릇에 따르고 있는 초롱이. 너무 많이 따른 것 같아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지만, 초롱이가 무서워서 승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기, 기득이는 왜 안 와?"

승리가 셋과 동갑내기인 기득이가 이 자리에 없는 것에 의문이 생겼다.

"갸는 팔이 없잖어."

너무한 것 같지만 사실이라서 승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숙구도 반, 자신의 잔에도 반을 따른 초롱이 한 손으로 잔을 들었다. 승리만 가득 찬 막걸릿잔을 두 손으로 들었다.

"너는 열심히 하라고 많이 준 거야."

가득 찬 막걸릿잔은 서울을 바라보며 공부하고 있는 안승리를 평소 눈여겨 본 초롱이 나름의 응원이었다.

"저, 정말?"

"아니. 니 먼저 보내고 네 모습 찍어서 써먹으려고."

초롱이가 반바지 주머니에서 폰을 슬쩍 꺼내서 보란듯이 흔들었다.

-꿀꺽

안승리는 잘못하다가는 유튜브 스타가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긴장이 됐다.

"자, 첫 잔은 원샷이랬어. 마시자, 마셔!"

갑작스러운 초롱이의 선창. 동시에 초롱이의 잔에 담겨있던 막걸리가 초롱이의 목을 타고 시원하게 넘어갔다.

뒤이어 숙구가, 그리고 안승리도 잠시 망설이고는 원샷.

냉장고에 미리 넣어놔 기분좋게 시원한 막걸리가 셋의 목을 타고 넘어갔다.

"파하!"

익숙한 듯 호쾌하게 한 잔을 비운 스뎅그릇을 머리 위에 엎은 초롱이.

"콜록……."

급하게 마셔서 살짝 사례를 들은 숙구도 이내 입을 닦으며 바닥에 그릇을 내려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안승리는,

"이거, 생각보다 맛있어!"

미나리아재비 막걸리의 맛에 절로 감탄을 했다.

살짝 술의 냄새가 나긴 했지만, 뒤이어 느껴지는 꽃의 은은한 향기와 단맛. 괜히 이 마을의 특산품이 아닌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에 첫 음주지만 안승리의 술에 대한 인상은 나쁘지 않은 듯했다.

"맛있지? 내가 술 처음 먹는 너희를 위해 특별히 준비한 거다."

승리는 이런 맛에 어른들이 막걸리를 좋아하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숙구는 어뗘?"

"맛있네."

담백한 시음평. 평소 숙구의 성격이 그대로 드러난 시음평이었다.

"그럼 이거 다 마시고, 다음은 이거, 그리고 소주도 마시자."

코스음주를 준비한 초롱이. 사실 이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준비했지만 말하지는 않았다.

"막 그렇게 마시면 내일 숙취오고 그런 거 아녀?"

살짝 내일이 걱정되는 안승리다. 내일이 토요일이라 학교에 대한 걱정은 없겠지만, TV에서 묘사되는 숙취를 본 적이 있기에 살짝 걱정이 됐다.

"오는 사람은 안 오고, 안 오는 사람은 안 오니께 걱정 말어. 네가 알아서 마시면 되지."

"그래도……."

"자, 일단 마시고 걱정해."

조용히 초롱이가 술을 까고, 숙구가 징징대는 안승리의 잔을 채우는 콤비플레이를 하면서 입을 막았다.

"그럼 달려보자고!"

"짠."

"짜, 짠……."   

잔을 들고 힘차게 외치는 초롱이. 그리고 숙구와 안승리도 잔을 들어, 서로 잔을 부딪치는 것으로 본격적인 술판이 시작됐다.


.


.


.


본격적으로 시작된 100일주 파티. 미나리아재비 막걸리의 은은한 맛으로 시작해서 맥주의 시원함도, 소주의 소독약 냄새도, 식도를 데우면서 내려가는 것만 같은 앵두술의 화끈함도 느껴가면서 진행된 술파티는, 쌓여있는 술병들과 널부러진 술잔들, 그리고 안승리로 그 격렬함이 느껴졌다. 

"야, 승리야, 안승…… 아이쿠."

결국 쓰러져버린 안승리를 깨우기 위해 손을 뻗는 초롱이. 하지만 잔뜩 올라온 술기운에 균형을 잃고, 그대로 승리의 뒤에 누워버렸다.

"으아아, 어지러……."

그 말을 한 직후 눈을 감고는 그대로 잠에 들어버린 것 같았다.

"자?"

그리고 마지막으로 혼자 남은 숙구. 하지만 그도 상태가 썩 좋지는 않기에 벽에 기대어 앉아있다.

역시 굉장히 어지럽지만, 그래도 어느정도는 움직일만했기 때문에 네 발로 기어가서 둘을 살폈다.

"자네……."    
나란히 누워서 자고 있는 둘을 보니, 자신도 그대로 누워서 자고 싶어졌다.

"아구, 아구구구……."

하지만 어지간해서는 잠은 자신의 방에서 자야 한다는 생각에, 벽을 잡고 간신히 몸을 일으켜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갔다.

   
잔뜩 취해서 몽롱한 정신. 몸의 감각들도 어딘가가 이상해진 느낌이지만, 의지를 가지고 앞으로 나아갔다.

개구리들이 우는 소리.

매미가 자그만하게 우는 소리.

풀벌레들이 찌르르대는 소리.

그리고 살짝 불어오는 여름밤의 바람이 나뭇잎들을 비비는 소리.

평소에도 매일 듣다보니, 이제 무감각해져버린 소리들.

하지만 지금 이렇게 몽롱한 상태에서 듣다보니 색다른 기분이 들었다.

"무서워……."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가로등 불빛마저 드문드문 보이는 어두컴컴한 논두렁길을 혼자서 비틀거리며 걷다보니 공포가 등줄기를 타고 올라오는 것만 같았다.

거기다가 몽롱해진 정신속에서, 예전에 누가 논두렁에 떨어져 죽어서 밤마다 귀신이 돼서 나타난다는 괴담이 떠올라버려서 무서움이 더해졌다.

돌아갈까, 라는 생각에 뒤를 돌아봤지만 뒤는 더욱 어두웠다. 

"어, 엄마……."

이미 돌아가기엔 꽤 많이 왔다. 쓸 데 없는 의지를 가지고 움직인 게 후회가 됐지만, 돌아가기도, 그대로 가기도 애매한 거리에 분위기였다.

무서움에 눈물이 나왔지만 숙구는 앞으로 나아갔다.


"우욱!"

이제 헛구역질까지 나왔다.

울렁거리는 속, 흔들거리는 시야, 바로 옆에는 논두렁, 거기다가 이제는 집까지는 얼마나 가야 하는지 생각도 나지 않는 머리. 숙구는 그만 길바닥에 주저앉아버렸다.

"아, 시벌! 거기서 번트를 대면 어쩌자는겨!"

그때, 어디선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하, 감독 대가리에 돌만 찼나……. 다음 타자 거를 건 다 아는 건디!"

숙구와 아는 사이인 28세 새준이다.

대부분의 어른들은 여행을 갔지만, 새준만 귀찮다고 오늘 여행에 따라가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집에 있는 것이다.

새준이네 집에서 숙구의 집까지는 그렇게 멀지 않은 거리다. 뛰어서 가면 20초면 될 거리. 하지만 숙구는 도저히 집까지 갈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무섭고, 어지럽고, 몸까지 안 좋은 지금 상황에 숙구는 일단 새준의 집에 들렀다가 가기로 결심했다.

"으으……."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결국 기다시피 돌담으로 가서야 담을 잡고 간신히 일어나 새준이네로 향할 수 있었다.


"아, 아저씨……."

열려있는 문을 두드리며 새준을 부르자 곧 야구를 보고 있던 새준이 모기장을 열고 나왔다.

"아, 숙구…… 아우, 술냄시! 니 고등학생 아녀? 뭔 술을 이렇게 많이……."

"아저씨, 잠깐 쉬었다 가도 돼?"

이제 쉴 수 있다는 생각에 육체적 한계가 오기 시작한 숙구는 새준의 말을 끊었다. 울렁거리는 속 때문에 말을 길게 하기도 어려웠다.

"……그, 그래 일단 와라. 그리고 아저씨가 아니고 오빠라니께."

그런 건 됐다. 그저 시원한 방바닥에 누울 수 있다는 생각만이 숙구의 머릿속에 가득했다.

"비개 꺼내줘?"

숙구가 들어오자마자 새준이 조용히 TV소리를 줄이고는 농장으로 향했다.

"됐어."

적당히 바닥에 있는 베개 하나를 베고 눕고는 눈을 감았다. 

"필수 오빠는?"

"같이 갔지 뭐."

'녜헥! 이런 여행에 내가 빠지면 섭하지!' 하면서 버스에 올랐을 박필수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100일주?"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머리 위에서 새준이 한숨을 쉬는 소리가 들렸다.

"초롱이하고 승리는? 갸들이랑 마신 거 아녀."

살살 오는 잠기운에 말을 할 의욕도 없어진 숙구는 손가락으로 승리의 집 쪽을 가리켰다.

"나는 밖에서 학교 아들이랑 해가지고 안 그랬는디……. 딱 봐도 초롱이가 시작했겠구만. 그치?"

하지만 이제 숙구는 반응마저 하지 않았다.

"하우~ 요즘 고딩 아들은 이렇게 되도록 마셔대나? 아님 네가 약한겨?"

이번에도 숙구는 잠잠했다.

예전에 뉴스에서 신입 여대생이 급성알콜중독으로 사망하는 뉴스를 본 기억에 뭔가 섬찟해진 새준이 숙구를 슥 들여다봤다.

잔뜩 취해 새빨개진 얼굴이지만, 긴 속눈썹이 돋보이는 고운 얼굴의 숙구가 평온한 얼굴로 잠에 들어 있었다.

"어릴 적에 그리도 나 따라댕겼던 거, 기억햐? 갸가 이래 커서 술이나 퍼마시고……. 다 컸구만."

새준은 조용히 혼잣말을 했다. 숙구의 어린 시절부터 봐왔던 새준은 조용히 추억에 잠겼다.

"오늘따라 날도 시원하니, 나도 막걸리나 마셔볼까?"

새준은 숙구를 뒤로 하고, 조용히 마루에 앉아 미나리아재비 막걸리 하나를 까서 스뎅그릇에 따라 마시며 모기장 너머 밖을 바라봤다.   

"아~ 좋다."

오늘따라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엔 별이 한가득. 이렇게 있으니, 늘 시끄럽던 개구리 소리도 오늘은 기분좋게 배경음을 깔아준다. 시원한 바람도 불어오니, 오늘은 이렇게 밤을 보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욱."

분위기를 깨는 숙구.

"……."

어디선가 요강을 가져와서 숙구의 옆에 조용히 두고는 바깥감상을 계속했다.

오늘따라 별이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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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취미로 글을 쓰기는 하지만 메모장으로 써보기는 처음이네.


공간적인 배경은 실제 내 외갓집 생각하면서 썼어. 실제로 외갓집 올라가는 길이 밤에 어둡기도 하고, 바로 옆에 논두렁도 있고. 거리만 늘려놨을 뿐. 


사실 중간에 끊어서 쓰려고 생각했지만, 이게 대회에 내는 거다 보니 나눠도 되나 싶더라고. 그래서 한 번에 쓰긴 썼는데, 너무 긴 것 같다. 미안해..ㅠ 


내가 충청도 인구수 5만 조금 넘어가는 군에서만 평생을 살다보니 사투리를 많이 써서 여기도 써봤어. 근데 충청방언이라는 게 단어나 어미의 변화가 그렇게 심하지 않아서 억양이 더 중요한데, 글로는 그 억양을 표현하기가 힘들어서 살짝 아쉽다.


메모장에 쓸 때는, 이 긴 글 그나마 읽기 좋으라고 엔터 두 번씩 쳐가면서 썼는데, 복붙하니 엔터가 다 소멸. 컴퓨터로는 디씨 처음 해보는데, 줄 간격이라는 게 있어서 건드려봤지만 꿈쩍도 안 하더라고. 그래서 다시 엔터 다 하나씩 쳐보니 이게 더 보기 안 좋더라. 미리보기라도 있음 좀 나았을 텐데.. 내가 이렇게 붙어있는 글 읽기가 더 좋아서 그런 것도 좀 있기는 한데, 혹시 너무 붙어있어서 읽기 불편했다면 사과할게.


여기 나오는 미나리아재비라는 꽃은 버터컵이야. 버터컵이 한국에도 있을까 싶어서 검색해보니 그런 이름으로 있더라고. 이왕 농촌 배경인데, 버터컵 막걸리보다는 좀 길지만 미나리아

재비가 더 나을 것 같아서 그렇게 해봤어. 실제로 설사와 복통을 유발하는 풀이기는 하지만 약으로도 쓴다고 하더라고. 


요즘 정신적으로 좀 상태가 안 좋아서 심하게 의욕저하를 겪느라 글이 좀 늘어진 부분이 있을지도 몰라. 그래도 가능한 힘 내서 써봤고, 가능하면 즐겁게 시골 밤하늘을 생각하면서 읽어주면 좋겠어.


긴 글 읽어줘서 고마워, 정말로!


그럼 언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