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드코어한 한때 나의 룸메이트에 관하여.
그리고 나와 나의 룸메이트가 서로 공유했던 나의 공간에 관하여.
당시 나는 천장과 바닥이 오각형인 집에서 살고 있었다.
사방의 벽을 상식적인 방의 형태로 생각하며 살던 내게
건축학에 존재할법한 어떠한 불문율을 깨버리고 보통보다 한 개 더 많은 벽을 지닌 이 방이란
의외로 정신이상이나 불안 증세를 일으키는 일 없이 내게 퍽 아늑한 공간이었다.
다다익선이라는 말대로 벽이 하나 더 많은 방이라면 사각의 방보다 보다 특별한 게
적어도 하나 이상인 게 당연한 이치가 아닌가 싶다.
대개의 생활공간은 사각형이지 않은가.
사각형인 까닭은 뭐 공간의 경제라던가 그런 이유 때문이겠지.
어쨌든 난 기하학이나 건축에 관해서는 아는 게 전혀 없다.
네모의 꿈처럼 육방체라는 건 흔히 볼 수 있는 형태이니 말이다.
이 보편의 형태가 지닌 약속이란 게 어떠한 터부인지 관습인지 나야 모르지만
아무튼 난 그 집에 살기 전까진
일반적인 방의 모양이 삼각도 오각도 아닌 하필 사각인지에 관해 깊은 의문을 가진 적은 없었다.
물론 공대생인 S가 내게 여러 차례 말한 적 있는
본인의 진로선택 이야기 속에 이와 비스무리한 의심이 담겨있긴 했다.
S가 말하기론 고등학교를 다니던 당시 자신이 속한 교실이 사각형으로 둘러싸여있었기에
학교에 머무르던 시간이 너무도 답답했으며 그 탓에 한때 건축학도를 꿈꾸었던 적이 있었다고 했다.
뭐 나야 저 말을 듣고 머리가 좋은 놈은 뭔가 다르구나 싶었다.
이젠 저 스토리를 너무 여러 번 들어서 조금 질리긴 했지만 적어도 처음 들었을 때 오 쩌는구만 했으니 말이다.
나야 그냥 주어진 환경대로 딱히 생각 없이 숨이나 쉬고 그럴 뿐이다.
나를 둘러싼 전경에 의문이나 고찰을 가지는 법 없이 그냥 멍하게 사는 사람이니까 말이다.
아무튼 마주치기 전까지는 존재의 여부에 관하여 딱히 생각조차 해본 적 없었던
정말이지 의외에 해당하는 이 방의 형태는 길게 짜부라진 벌집의 구멍 같은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다시 설명하자면 즉 드라큘라가 자다 깰 것 같은 길쭉한 관짝같은 모양의 방이었다는 말이다.
인터넷에서 본 어느 외국의 비싼 별장의 사진이나 모델하우스라면 뭐 이럴 수도 있을 것 같긴 하다.
일단 이러한 기묘한 방의 형태로 인해 이 집에 머물며 내가 겪은 딱 한 가지 불편했던 점을 말하자면
다섯 개의 벽 중에서 바닥과 90도의 각도를 지닌 벽은 단 두 개밖에 없었기에
나머지 세 개의 벽 어느 곳인가에 책장을 두게 되면
책장과 벽이 맞닿는 공간에 벌어진 틈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었다.
더욱 자세히 말하자면 바닥과 천장 사이를 메운 다섯 개의 벽은 천장을 향해 수직으로 뻗은 게 아니라
비스듬히 뻗어있어서 어떤 벽은 천장으로 갈수록 바깥공간으로 기울어져 있었고
어떤 벽은 묘하게 안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도대체 그 집은 애초에 무슨 측량과 생각으로 지어진건지 지금 생각해도 모르겠다.
적어도 그 집을 지은 사람은 S랑 말이 좀 심하게 통했으려나 싶다.
어쨌든 묘사하다보니 도깨비 언덕 혹은 고흐의 아를의 방 같이 설명하게 되어버린 그 집은
의외로 멀미나 현기증을 일으킬 만큼 무시무시한 곳도 아니었다.
그 공간에 속해있는 것만으로도 속이 메슥거릴 것 같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전혀 안 그랬다 이 말이다.
어쨌든 그 집은 엄청나게 넓었기에 나와 나의 룸메이트의 거처이기 이전에
과 동기들이며 동아리 동기들의 공공재로 여겨질 때가 많았다.
내가 그 집을 살기 전까지에 한해 본래 우리의 아지트는
나보다 두 살 많은 동아리 동기였던 K 누나의 집이었다.
K는 한 살 터울의 여동생과 방음이 짱짱한 50평짜리 원룸에서 살았던 탓에
우린 연습이 끝나 기진맥진해진 밤이면 당연하게 K네 집으로 모였고
각자 삼천원씩 모아 매일같이 치킨을 시켜먹었다.
말이 50평이지 K와 K의 동생의 짐이 어찌나 많은지 의외로 방은 좁아 터졌고
남자 셋 여자 둘 거기다 K의 동생까지 총 여섯 명이 거기에 들어있다보니
50평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자주 부대낄 수밖에 없었고
이 탓에 K의 집이란 입장객 서로가 좀 심할 정도로 친밀해지기 쉬운 공간일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K의 동생은 K와 달리 좀 재미없는 스타일이긴 했는데
처음 만났던 한 달간은 인사정도만 나누고 대개 이층침대 위로 올라가 우릴 내려다보거나 하는 정도였다.
K의 동생은 어쨌든 우리가 있는 시간에 한해서 딱히 불평 없이 이층침대 위에 가만히 있을 뿐이었지만
우리가 돌아간 후면 빈번히 찾아오는 우리 다섯 명 탓에 편히 쉬질 못한다며
K와 빈번히 다투었던 걸 우리 모두가 알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 존재는 당연히 민폐였다.
K 누나와 K의 동생이 서로 공유하였던 닮은 점은 그 무한한 참을성이 아니었나 싶다.
그런 까닭에 내가 나의 오각형 집에 보증금을 걸었다는 소식을 듣고
적어도 다섯 명의 인간은 조만간 벌어질 나의 이사소식을
그리고 그 오각형의 집이 곧 가져다줄 모두의 안식에 관하여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었다.
당시 우리 다섯 중에서 유일하게 기숙사에 살던 나는 K의 집에서 놀다 통행금지시간을 지키기 위해
혼자 터벅터벅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이 너무 귀찮고 쓸쓸했었다.
나와 K를 제외한 셋은 제각기 다른 하숙집에 살았고 그러니 뭐 다들 비슷한 입장이긴 했다.
차라리 엄청나게 큰 집을 하나 잡아서 우리 다섯이 함께 살았으면 좀 좋겠다는 말도 나왔었지만
하숙집이란 건 일 년 단위로 돈을 걸어두는 곳이었다.
심지어 중간에 나오더라도 돈은 못 돌려받는다니 기가 막혔다.
나야 대학생이 되기 전까지 그런 건 전혀 몰랐지.
아무튼 기숙사 외박이 가능한 주말이면 K네 집에서 놀다 통키네 하숙집에서 잤던 적도 많았다.
통키는 자기네 하숙집 식단에 콩나물국이 너무 빈번히 나온다며 평소 자주 짜증을 냈지만
솔직히 말해 술 마신 다음날이면 통키는 그런 불평도 안하고 잘만 국을 퍼먹고는 했다.
하숙집 이야기는 차치하고 어쨌든 이러한 자질구레한 연유로 나의 오각형 집은 두 번째 아지트가 되었다.
내 룸메이트는 이를 어떻게 생각했을라나 글쎄 그건 잘 모르겠다.
K의 동생처럼 내 룸메이트도 내 친구들이 귀찮았으려나 싶기도 하다.
아무튼 내 룸메는 말수가 없는 편이었으니 말이다.
일단은 룸메가 통키를 엄청나게 싫어하는 것만은 확실했다.
둘의 사이가 좋든 나쁘든 사실 통키가 아니었다면 난 나의 소중한 룸메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그 오각형 방을 처음 계약했던 날에 관하여.
그 방은 자취방을 찾던 내가 그날 세 번째로 구경한 방이었다.
업자가 먼저 보여준 두 개의 방은 실망 이상의 것이라 나는 풀이 죽어있었고
그탓에 나는 부동산업자의 마티즈 조수석에 탄 채 내게 보여줄 세 번째 방 또한
마찬가지로 별 볼일 없을 것이라는 예견된 작은 실망 그리고 지루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냥 다음 방을 마지막 순회로 마무리하고 죄송하다고 말하며 대충 빠져나가자 그런 생각과 함께.
아 그런데 정말 예상과 달리 세 번째 집은 환상적이었다.
나는 부동산업자가 열쇠꾸러미를 뒤적여 방문을 따줘 문을 활짝 연 순간
민트색 나무 창틀을 꽉 메운 한낮의 밝은 빛이 온 방안을 비추는 모습에 넋을 잃었고
화장실 입구 앞에 마른 바퀴벌레 시체가 하나 굴러다닌다는
그저 휴지 한 장으로 가뿐히 해결 가능한 사소한 문제점을 압도하는
세 번째 방이 내게 주는 매력에 관해 업자에게 신이 나 입바른 소리를 하였고
결국 난 바로 그 자리에서 그 집을 계약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잠깐 드는 생각인데 그게 일종의 세일즈 기교였던 것 같다.
병신 같은걸 연속으로 두 번 보면 세 번째는 뭘 가져다 대더라도 완벽해 보이는 그런 마법 말이다.
어쨌든 빛이 잘 드는 이층집이었고 정말 작은 운동장이 있는 초등학교 근처 였다.
소풍 철이면 아이들이 두 줄로 서서 내방 창문 아래를 소란스럽게 지나쳤고
나보다 먼저 자다 깬 나의 룸메가 창문턱에 먼저 앉아 그걸 내려다보았고
나더러 어서 일어나서 곧 이리 오라는 듯 퍼질러 자던 날 깨워 불러내고는 했다.
말수가 없는 녀석이었지만 이따금 필요성을 느낄 때에는 말을 먼저 할 줄 안다는 느낌이었다.
방충망만을 닫아둔 채 창문을 활짝 열고 자고 일어난 아침이면
방 허리께에 있던 그 커다란 창문에 달아둔 커튼 자락이 쳐자던 내 얼굴을 스칠 정도로 바람이 잘 불고는 했다.
방 한가운데에 매트리스를 갖다둔 이유는 다 그 아침햇살과 바람과 룸메의 모닝콜을 위한 것이었다.
풍수지리상으로 썩 좋지 않은 침대배치라며 방사진을 보여줬을 때 엄마에게 핀잔을 듣긴 했지만 말이다.
어쨌든 룸메가 나를 깨우는 아침이면 나 또한 창문가로 다가가 아이들 정수리를 내려다보며
어디 쌍가마인 꼬맹이는 없으려나 그런 생각을 하며 귀여운 어린애들 머리통을 구경하였다.
콩나물국이 너무 자주 나오는 하숙집에서 살며 50cc 택트를 끌고 다니던 통키는 가끔은 주황색 가끔은 금색
그리고 대개의 상황엔 머리털을 새빨갛게 염색하고 다녔기에 우리사이에서 통키라고 불렸다.
통키는 피어싱을 엄청나게 좋아해 입술이며 눈썹이며 귀며 금속막대기며 쇠구슬이 달려있지 않은 곳이 없었고
그게 또 그녀석이랑 꽤 잘 어울려서 확장인지 뭔지를 하러간다던 날
나도 한번 피어싱을 해볼까 싶어 따라간 적도 있었다.
결국 그날 무슨 변덕이었나 별 생각 없이 뚫은 피어싱이 금방 막혀버려서
이젠 귀를 만져 봐도 희미하게 도드라진 흉터를 빼면
내가 피어싱을 했었다는 사실은 흉터의 흔적대로 내 기억속에서도 희미하다.
통키는 당시 내가 타고 다니던 줌머를 보고 나를 부러워했었다.
애초에 내가 타던 건 레플리카였고 솔직히 짭소리를 워낙 많이 들어서 쪽팔린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지만
적어도 통키는 내 줌머가 오리지널인지 레플리카인지 정도의 문제에 대해 지적하지 않는 유일한 놈이었다.
통키는 돈을 좀 모은 다음에 택트를 팔아버린 돈을 합쳐
자기도 반년 안에 같은 걸 살 거라며 내게 호언장담을 하고는 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우리 집 앞 전신주 아래에 세워두었던 택트를 도둑맞으며 통키의 그 계획은 흐지부지 되었다.
도난당한 50cc 택트의 이야기가 나온 갑자기 나온 연유는
나의 룸메와 통키의 사라진 택트가 서로 앙심을 품은 관계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동네에 세워진 하고 많은 오토바이 중에서 제일 싸구려인 택트가 도둑맞은 이유 중의 하나는
평소에도 덜렁거리던 통키가 cctv가 없는 곳에 무방비하게 주차를 해둔 탓도 있었지만
그보다 더 큰 원인은 바로 나의 룸메이트의 저주 때문이라며 우리끼리 그런 농담을 자주 하고는 했었다.
그니깐 즉 나의 룸메이트를 내게 소개시켜준 건 다름 아닌 바로 통키였다.
나의 오각형 집에 살게 된 지 이주도 채 안되었을 무렵
통키는 내게 줄 집들이 선물이 있으니 건물 아래로 내려오라며 창문 밑에서 큰소리를 쳤다.
우리 집에 먼저 모여 있던 나를 포함한 세 명은 그날 상당히 놀랬으니 말이다.
건물 입구에 내려온 우리더러 이리로 오라던 통키가 의기양양한 표정을 한 채
내게 줄 선물이 담긴 오토바이 안장의 락커를 열었을 때
찌그러진 담배곽이며 다 써버린 라이터와 함께
거기 웅크려 들어있던 고양이 한 마리를 보고 내가 어찌나 놀랐던지.
그리고 룸메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온난한 하루를 보낼 때 흔히 보이던 비취색 눈이 온통 새까맣게 보일 정도로
홍채가 활짝 벌어져 깜짝 놀란 표정이었으니 서로 놀랐다고 말하는 게 오히려 적합할거다.
애초에 택트 배기음이 얼마나 시끄러운데 거기에 동물을 담아 올 줄이야.
또라이가 따로 없다. 통키는 자유분방한데다 좀 독특한 놈이고 사실 그래서 난 통키가 좋다.
하긴 이후 통키가 욕을 엄청 먹기는 했다.
당시 유일하게 우리 동아리에서 고양이를 키우던 선배 누나는 엄청난 고양이 애호가였고
그 탓에 통키는 나의 룸메이트의 입성식을 뒤늦게 들은 누나에게 엄청나게 깨졌다.
동물학대라며 장난으로 머리채를 한번 잡혔었나 했다.
통키의 설명에 따르면 본래는 내 룸메를 양파망에 담아
그걸 등에 매고 운전하려했는데 발톱이 무서워서 그랬다나 뭐라나.
누나네 고양이는 엄청나게 못생기고 대가리가 커다란 노란색 수컷 고양이였다.
흔히 그 고양이를 헤메 헤메라고 불렀기에 난 뭐 헤르메스인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고 헤비메탈을 줄인 말이랜다.
그래서 헤메였다. 이 이름을 머릿속으로 소리 내어 말하고 그걸 글자로 옮기고 있으려니
이 고양이는 무슨 길치가 아니려나 그런 아재개그 같은 게 떠오른다.
쨌든 누나네 헤메는 좀 식탐이 넘치고 멍청한데다 못생겼던 걸로 기억한다.
당시 나는 이 집들이 선물 소식이 누나에게 전해지기까지 나의 새 룸메에게 이름조차 지어주지 않은 상황이었고
누나네 고양이의 이러한 작명기를 들은 난 그럼 얘는 하코로 할게요. 하드코어 줄여서 하코.
그런 식으로 나의 룸메이트에게 건성 아닌 진심을 담아 이름을 지어주었다.
우습게도 하드코어한 나의 룸메이트는 성품이 아닌 그 이름만 하드코어했다.
어쨌든 누나의 말에 의하면 하코는 머리도 성격도 좋고 심지어 예쁘게 생긴데다
시끄럽게 말이 많은 헤메와 달리 정말이지 과묵한 편이라는 칭찬을 자주 듣고는 했다.
그런 하코가 목소리를 내는 상황은 딱 세 번 뿐이었다.
한번은 사료가 든 캐비닛 근처로 다가갔을 때
한번은 초등학생들이 등교하는 이름과 늦음의 중간쯤의 시간대인 아침 날
한번은 내가 티비를 꺼버리던가 채널을 돌려버려 심슨 올나잇을 못 보게 되는 상황
티비를 하루 종일 켜두면 하코는 그걸 하루 종일 바라보는 것 같았다.
하코가 가장 좋아하는 방송은 심야 투니버스 채널 중 심슨 올나잇이라는 채널이었다.
기가 막힌 건 채널을 돌릴라치면 그러지 말라는 듯 애처롭게 울면서 나를 쳐다보는 점이었다.
짐승이 티비를 본다니. 고양이 눈에는 세상이 어찌 보이나 도무지 모르겠다.
적어도 어떠한 짐승을 키우며 저 작은 뇌에 무엇이 들어있으려나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걸까 궁금했던 때는 살면서 그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더 웃긴 건 하코가 나의 룸메이트가 된 후 시간이 상당히 흐른 시점임에도
통키가 우리 집에 올 때마다 하코가 기분 나쁜 소리를 내며 옷장 위나 냉장고 위로 도망가게 된 점이다.
통키는 그게 재밌었던지 하코가 도망친 가구며 냉장고 근처에 다가가서 요란한 장난을 쳤고
뭐 그래서 고양이 펀치 같은 걸 수도 없이 맞고 그랬다.
고양이 발톱이 만든 상처는 흉이 잘 진다는 걸 알게 된 통키는 이후 비교적 덜 깝죽거리다
다시 더욱 깝죽거리는 교묘한 상승하락 곡선 패턴으로 하코를 귀찮게 하였고
어느 순간이 되니 뭐 이제 하코도 통키를 어떤 스트레스 해소용 펀치기계로 생각하게 된 것 같았다.
그냥 오늘 지나친 어떤 건물의 입구가 나의 그 추억의 집과 비슷해 보였다.
나는 기원 입구처럼 널찍했던 그 건물 입구도 마음에 들었고
난간 손잡이가 매끄럽게 닳아 반질거리는 윤이 나는 낡은 나무였던 점도 좋았다.
어차피 그 집에 머무르며 내가 받을만한 편지야 수도세와 전기세 고지서뿐이었지만
넓은 건물입구 한편에 캐비닛처럼 가지런히 정돈된 우체통은 빈티지 그 자체였다.
어렸을 적 보던 디즈니 비디오테이프 모양을 한 그 우체통이 어찌나 마음에 들던지.
통째로 떼어다 어느 카페 장식품으로 써도 될 정도로 운치 있게 녹이 슬고 페인트가 벗겨진 우체통이었다.
그러했던 나의 공간에 대하여. 그리고 이름만 하드코어한 나의 룸메이트에 대하여.
이후로도 나는 이러한 저러한 과정을 거치며 새로운 룸메이트를 얻게 되었지만 그중 최고는 단연 하코였다.
선배가 군대에 가며 내게 맡기고 간 거미 여덟 마리와 자개가 박힌 60만원 짜리 통기타
그리고 내게 미리 주는 생일 선물 겸 집들이 선물이라며 유기동물 센터에서 주워온 고양이 한 마리.
성품에 관한 평이 아닌 그저 이름에 관한 평이었다. 나의 룸메이트의 이름은 하드코어였다.
그냥 오늘 잠시 그런 것들이 그리웠다.
비슷한 방조차 본 적 없지만 읽고 나니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