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그락, 달그락. 쇠 붙이들이 어디엔가 부딪히는 소리가 야심한 밤에 울려퍼진다.

조금 섬뜩해질만한 소리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실상을 보면 당신의 긴장이 바람 빠지듯 사라질 것이다.


별로 크다고는 할 수 없는 주방에 모든 도구랑 도구는 다 꺼내 놓았다는 듯이 어질러져 있었다.

그리고 그 도구를 꺼내놓은 장본인은, 자기가 착용하기엔 좀 많이 커서 무릎까지 오는 앞치마를 맨 채로 기합이 들어가 있었다.


오늘은 2월 13일, 아마 그녀 자신이 기억하는 바로는 다음 날이 발렌타인 데이라는 초콜렛을 전해주는 날이였을 것이다.

사실 자기가 먹을 초콜렛도 부족해 투덜거리는 그녀지만, 아스리엘에게 준다는 명목 삼아 잔뜩 만들어 보겠다는 책략인 것이다.



" 좋아, 시작해 볼까? "



그녀는 토리엘이 적어준 레시피를 쭈욱 읽어내려갔다.



" 첫째, 초콜릿을 중탕한다... 중탕...? "



그녀는 생소한 단어에 의미를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 했다.

다행히도 옆에 친절히 그림으로 설명을 덧붙여 놓은 탓에 중탕의 의미를 대강 알아차린 것처럼 보였다.


냄비에 물을 가득 담아 끓인 뒤 다른 냄비에 초콜렛을 부어넣었다.

부어넣은 초콜릿의 일부를 먹는 것은 잊지 않고 말이다.


물이 끓기 시작하자, 초콜렛들도 천천히 형체를 잃고 녹아내려가기 시작했다.

주걱으로 동그라미를 그리며 살살 젓자, 어느 새 초콜렛이 전부 녹아 점성이 있는 검은 물 처럼 되어버렸다.


그녀는, 잊지 않고 주걱을 꺼내 한 입 물었다.

그리고 무언가에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 무지 달다!! '



마치 누군가 조종하는 듯이 그녀의 손이, 주걱이 저절로 냄비에 갔다.

푸욱 크게 담아, 한 입 가득 물고 단 맛에 행복을 느끼기를 몇 번 반복하자 주걱이 바닥을 긁는 소리가 났다.



" 어... "



식은 땀을 흘리며, 냄비 안을 쳐다보자 누가 이리 싹싹 잘 긁어 먹었나 칭찬해주고 싶을 정도로 냄비 안은 비어있었다.


준비한 초콜릿은 전부 부어넣은 것이여서, 더 넣을 초콜릿도 없다. 게다가 다른 가게 문도 지금쯤이면 닫았을 것이리라.

토리엘에게 레시피를 물어보았을 때 박수칠 정도로 좋아하면서 알려줬기에, 아무것도 안 만들었다는 것은 양심에 조금 찔린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 수 있는 건 주걱이라는 조리도구 특성상 전부 긁어 먹진 못했고 아주 조금씩, 남아있었다는 점이다.



" 흠, 흠 "



없는 것 있는 것 싹싹 긁어 모으니 숟가락 한 푼 정도의 양밖에 되지 않았다.

고심하던 끝에 그녀는, 냄비 안에 살짝 물을 부었다.


그러자 마법 같게도, 초콜렛의 양이 조금 증가한 것 처럼 보였다. 그래도 간신히 하나 만들 수준의 양이였지만.


이때가 기회라고 생각했는지, 그 물 먹은 초콜렛을 대충 틀에 넣고 굳혔다.

조금 기다리자, 자그마한 별 모양 초콜렛이 하나 만들어졌다. 그녀는 그 초콜렛을 검지와 엄지로 잡아 이리저리 훑어 봤다.



" 뭐, 이상해 보이진 않네 "



어떻게든 되겠지. 라고 덧붙이며 그 초콜렛을 포장한 후 냉장고에 넣은 후 간단하게 씻고 침대에 누웠다.



다음 날, 폐허 아스리엘과 처음 만난 곳에서 그녀와 아스리엘이 서있었다.

겁 많은 아스리엘, 울보 아스리엘은 그녀의 부름에 따라 황금 꽃이 그득한 벌판으로 갔다.


그 한 가운데에는, 가장 친한 친구인 그녀가 서 있었다.

콧 노래를 부르던 그녀는 아스리엘의 인기척을 느낀 탓인지 그 쪽으로 반 바퀴 돌고선 말했다.



" 줄 게 있어서 불렀어 "


" 그게 뭔데? 차라 "



아스리엘은 여느 때 처럼 헤헤, 하고 바보같은 웃음을 지어보이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녀가 주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좋다는 표정이다, 그 웃음에 그녀도 모르게 실소를 흘릴 수 밖에 없었다.


아스리엘이 가까이 오면 그녀는 숨겼던 두 손을 갑자기 내뻗으며 아스리엘의 손에 무언가를 쥐어줬다.

의아함과 함께 쥐어진 손을 펴보면, 그는 별 모양 포장이 된 무언가를 받았다는 사실에 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마치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과 같이 재미있다고 생각 하는 것 같았다.



" 우리 인간들은 오늘을 발렌타인데이라고 불러 "


" 발렌타인 데이? "



마치 양 손에 그 것을 꼭 쥐고 물어보는 모습이 아기 참새같아 쿡, 하고 웃으며 말해나갔다



" 소중한 사람에게 초콜렛을 주는 날이야 "


" 그렇구나, 우와... "



아스리엘은 고작 초콜렛일 뿐인데 뭔가 엄청난 것을 받은 듯이 눈을 반짝거렸다.

그리고 나서 그 시선을 초콜렛에서 나한테로 바꿔 말했다



" 자랑해도 돼? 차라? "


" ㅁ, 뭐? 하지마! "



반사적으로 꿀밤이 나갔다, 이유없이 맞은 아스리엘은 억울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 왜 때려, 차라! "


" 자랑하지마, 쪽팔리잖아! "


" 싫어! 차라가 내가 소중하다고 준 선물인걸! 나 때린 차라 말 안들을 거야! "



그리고선 아스리엘을 도망쳤다, 그녀도 아스리엘이 달리기 시작한 거의 동시에 달려나갔다.

아스리엘 이 녀석은 온 지하를 돌아다니면서 자랑해댔다. 꿀밤을 근 오십 번을 때려도, 울면서 자랑해대고 있었다.


어느 새 둘은 아스고어의 왕좌까지 도착했고, 아스리엘은 끝끝내 아스고어한테까지 자랑하고선 마지막으로 한 대 맞았다.

상황을 인지하지 못한 아스고어는 자초지종을 대충 듣고, 호탕하게 웃어제꼈다. 그리고 둘에게 차와 과자를 대접했다.


달콤한, 혀가 알알할 정도로 달콤한 시간들이였다.



" 그래, 달콤한 시간들이였지 "



지금, 그녀는 같은 장소에 서 있다. 그러나, 그 때와는 정 반대의 분위기라고 단언할 수 있다.

그녀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식칼을 굳게 쥔 채, 읊조리고 있었다.


눈 앞에는 걸레짝이 된 꽃 한 송이와, 한 괴물이 죽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하얀색 가루가 소복히 쌓여있었다.

생각에 잠겨있다가, 그녀는 칼을 한 번 휘둘러 핏 물을 털어 낸 다음 말했다.



" 초콜렛은, 초콜렛은 말야 달기만 하면 생각 외로 질리는 면이 있더라고 "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천천히 플라위였던 무언가를 지나치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 그래도 내가 초콜렛을 좋아하던 건 달콤함 안에 씁쓸함이 있었거든 "



마침내 고개를 든, 그녀의 표정에는 괴물과도 같은 표정이 자리잡고 있었다. 입꼬리는 귀까지 찢어질정도로 웃고 있었다.

마치 초콜렛과 같은 검은 색 눈물을 흘리고, 동공은 붉은 색이 되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