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가 나누어진다.

작은 테이블 위에서는 그 흐름을 따라 하루에도 몇 번이고 갈림길이 새로 나곤 한다. 그리고 갈림길의 절대적인 진리는 이것. 누군가는 잃고, 누군가는 얻는다. 절대로 여기 앉은 모두가 만족하는 결말은, 존재하지 않는다.

재미있지 않아-?

작은 뼈다귀는 이미 뼈에 굳어버린 그대로 웃으며 중얼거렸지만, 대답은 전혀 없다. 축제 분위기에 들떠 흥성대는 소리, 아니 낡은 주크박스에서 새어나오는 늘어지는 재즈 가수의 목소리, 아니. 푸른 테이블을 스치는 카드의 속삭임에 묻혀 그들의 귀에 닿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안 그런 척, 서로를 훔쳐보며 재는 눈빛들. 아주 작은 흠을 파고들어 살을 갈라내겠다는 날 같은 눈빛들 사이로 음울한 눈빛의 한 사내가 보인다. 손바닥 아래에 깔아 둔 자기 몫의 카드를 희고 딱딱한 손끝으로 만질 거리며 뼈다귀는 그를 재어보았다. 문지기가 속삭여준 오늘의 만찬은 너무도 찾기 쉬웠고, 맛도 좋아 보였다.

정말 XX게 잘 먹고 잘 사는 XX겠지-.

한 눈에 들어온다. 토실토실한 몸집과 깔끔한 옷의 모양새. 이런 꾀죄죄한 곳에 어울리는 사람은 아닌 것 같지만, 먹이가 되어준다면 언제 어디서나 두 팔 벌려 환영할 것이다. 사내보다 더 눈에 띄는 것은 발치에 놓여 있는 가방. 주인의 몸과 마찬가지로 한껏 부풀어 올라 퉁퉁한 금화가 탐스럽다. 다만 이렇게 많은 금화가 도대체 얼마일지 가늠조차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남자의 계산을 꼬아 놓는다.

이기기 위해서 필요한 건 돈, 실력, 그리고 운-.

적어도 한 가지에서 그는 상대도 되지 않는다. 잘못하다가는, 오히려 한 방에 벗겨 먹힐 수 있다. 신중해야 했다.

딜러는 두 장의 카드를 모두에게 건넸다. 이제 첫 번째 운명이 결정된 것이다. 물론 운명 한 조각쯤은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남자, 딱딱하고 얇은 플라스틱의 감촉을 재는 그는. 지금까지 거침없이 내달린 생각과 달리, 운명을 확인하기를 주저한다. 뼈다귀의 망설임을 바라보는 이들의 눈빛도 그 흐름을 따라 느리게 번들거린다.

XX, 벌써 다 안다는 눈치로-.

사실 그의 마음도, 그러하다. 처음이라는 것과 그는 태생적으로 무언가 맞지 않았다.

벌써 수 천 판. 한 입 거리도 안 될 빵 조각을 걸었던 야바위로부터 시작되는 아슬아슬하고도 긴 역사에서 그는, 첫 번째 판에서 이겨 본 기억이 없었다.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본격적으로 기술을 익히고 난 뒤엔 징크스를 깨보고자 한동안 온갖 짓을 해봤지만, 그럴 때마다. 그에겐 더 크고 아픈 패배가 돌아왔다.

아니 그뿐만 아니다. 달리던 입을 틀어막고 얕은 숨 쉬는 한 순간마저 지옥 같았던 어린 시절. 조금만 마음을 놓았다 하면 언제나 목숨이 한번, 뎅겅 잘렸다 도로 붙는 새벽. 죄 많은 세상에 살아 있음의 속전, 내리는 적 한 번 없는 세금이 목을 조르는 월초. 하필이면 무능력하면서 쓸 데 없이 강하기만 한 동생을 뒤에 두고 첫째. 이제야 조금, 그나마 조금 밥은 덜 굶고 사는 지금에야 슬쩍, 돌아본 인생의 모든 것이 자신과 처음 사이의 악연을 증명하는 것 같다고 본능적으로 느꼈다.

아니 무능력하면서 강하다니-.

순간 갈라진 두골 사이로 아찔하고 뜨겁고 역겨운 것이 흐르고. 그는 곧바로 있지도 않은 혀를 찬다. 정말로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근위대장과 호각이라는 소리를 듣는 동생은, 그 덕분에 무엇을 누리고 있던가. , 정의, 존경, 안전. 무엇보다 돈. .

XX XX, 생각이 어디로 튄 거야-.

푸른 늪을 헤매던 그의 의식이 황금빛 환상에 이끌려 테이블로 돌아 왔고, 자신은 목숨을 위해 돈을 버는 중이었다는 걸 상기했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어차피 첫 판에는 욕심이 없었다. 마음을 접으면 몸은 더 가볍게 움직인다. 오랜 습관대로 그는 한 눈을 감았다. 결국 이 짓까지 손대면서 날이 갈수록 더해가는 동생의 요구를 들어줘야 했을 때부터 시작된 버릇이었다. 그는 언제나 마음의 창이라는 눈은, 때로 하나쯤 닫아두는 것이 유용하다고 생각했다.

무미건조하게 한 번 튕겼다 내려온 손가락. 그리고 잔상.

뭐야, 잘못 본 건가-?

다시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빌미. 남자의 이성보다는 본능이 가까스로, 다시 한 번 손가락을 움직이고픈 충동을 억제했다. 동시에 열어 둔 눈이 두려워, 뼈다귀는 식은땀이 땀샘도 없는 갈비뼈를 가로지르는 것을 느꼈다. 그는 드러내는 것보다 감추는데 편리한 몸에, 그 몸이 날선 정신에게 별 반응하지 않은 천운에 감사했다.

K 원 페어, 다이아몬드와 스페이드-.

별개로, 상황이 너무나도 생경하였기에 그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낀다. 첫 판에 이렇게 좋은 패를 쥔 적이 있던가. 아무리 빈 골통을 뒤집어 봐도 나오지 않는 것은, 나오지 않았다. 태어나서 처음 겪는 일이 주는 묘한 흥분과 긴장감. 그리고 불안. 그는 웃음을 터뜨리고 싶어졌지만, 자리가 자리기에 빈 목구멍 아래로 간신히 찍어 눌렀다.

역양이 없고 두껍기만 한 목소리.

네 차례야.”

딜러의 물음에 남자의 정신은 제 자리로 돌아왔다. 낯선 상황이라 하여도 해야 할 말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머리에 떠올린 그는, 차갑게 얼어붙었다. 원 페어를 쥐었다고 해서 이기란 법은 없지만, 그냥 죽어버리기에는 너무 좋은 패를 쥐었기에.

, 일단은 이대로 갈래.”

잠시 지켜보기, 최선이었다. 그러나 그가 손을 놓은 사이, 판돈의 수위는 거침없이 올라갔다. 이러다 사람 한 둘 쯤 휩쓸어 가는 탁류가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추위를 타지 않는 온 몸에 짧은 오한이 스치고 지나갈 정도로. 그는 이대로라면 핫도그 노점의 빈약한 수입, 빈약한 주머니는 네 번의 차례를 채 버티지 못할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씁쓸한 계산이다.

XX. XX XX, 왜 이렇게들 달리는 거야-?

사실, 남자의 머릿속에서 가장 쉽게 만들어낸 이유는 바로 그 자신. 저 머저리들이 첫 판에 말려 죽이겠다는 심보가 뻔해, 우습다. 운이 좋아 묵직한 주머니를 털어 온 날이 아니면 도는 것은 어차피 거기서 거기인 푼돈이었다. 숫자가 아닌 금화의 무게가 주는 압박감을 자기만큼 저들도 느끼고 있을 거라고, 남자는 확신 하였다. 이미 마음을 읽었다면 쉬운 상대. 다만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저 사내는.

지금 판 위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음울한 표정이다. 자기 차례가 되면 조용히 금액을 올릴 뿐인 그는 자기가 내뱉는 숫자에 어떤 고민 한 자락 얹지 않으니, 테이블의 무게가 별 것 아니라 생각하고 있을 것은 확실하지만 도저히. 행동의 맥이 짚이지 않았다. 대책도 세울 수 없는 남자, 하릴 없이 큰손이 아무 생각 없는 호구이기를 빌 뿐이었다.

저기, 이 쯤 해 두죠?”

그의 바람을 가르는 목소리. 도화선이 짧아 보이는 주인의 성격을 닮은 듯, 높고 새되다. 더하여, 그 짧은 문장 안에서도 정신없이 오르내리며 제 주인이 핫랜드나 코어 출신이라는 걸 열심히 드러내고 있었다. 표적은 반쯤 감은 눈을 슬며시 위로 들어 올렸다 내릴 뿐. 별 반응이 없자 조금 더 열이 나는지 여자는 얼굴이 벌개져서는 입을 더 크게 벌린다.

그쪽 돈 많은 거 다 아니까. 이쯤 하자고요. 우리 쫄려서 XX게 만들려 하나 본데, 그러면 게임이 안 되잖아.”

짐작대로, 그녀는 어디서 들어먹은 이야기와 분위기에 휩쓸려 판을 키우다가 자기 목이 위험해진 모양이었다. 여자의 항의는 일견 온당해 보였지만

두 번째 호구가 여기 있네-.

잔뼈 굵은 뼈다귀의 눈에는 핫랜드에서 여기까지 미끄러져 내려 온 이유를 드러내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어차피 불공평하다, 이 세상과 이 판은. 그저 그 불공평을 어떻게 잘 참아내느냐가 그를 이기게, 아니 그가 하루 더 이어지게 할 뿐이었다.

다소 고압적인 말투로 비슷한 요지의 말을 일분 쯤 더 늘어놓는 여자는 굴러 떨어진 지 얼마 안 되었는지, 아직 핫랜드 물이 덜 빠진 것 같았다. 자기 주제도 파악을 하지 못하는 것을 보니. 결국 질린 표정의 딜러가 이 게임의 판돈은 제한이 없다고 미리 말하지 않았느냐고, 그녀의 말을 자르고는 게임을 이었다.

판돈 오르는 소리에 모여든 구경꾼의 것까지 합쳐서, 비웃음이 곳곳에 나뒹굴지만 그늘이 깊은 사내에겐 그런 궤변이 먹혀들었을지도 모른다. 곧 돌아온 자기 차례에 그는 판돈을 올리는 것을 포기했고, 그에 맞추어 치솟던 열기도 같이 식어 버렸는지. 아니면 이 이상 올리기가 부담스러웠는지. 더는 죽지도, 죽이려 하지도 않은 채 그들은 다음 운명, 다음 카드를 기다리게 되었다.

이 순간 떨지 않는 이들이 없다는 것을 모를 리 없기에 딜러는 군더더기 없는 동작으로 세 장을 테이블에 내려놓고는 지체 없이 열었다. 때때로 그의 모습은 집행인을 닮았다. 손에서 떨어진 카드에, 모인다. 눈과 호흡과 정신과, 돈이.

다이아몬드 4, 스페이드 6과 하트 K-.

주인 모를 환성과 안도가 교차하는 이제, 그는 K 트리플이다. 가능성들의 난잡한 가지가 하나하나 쳐지고, 이제 남은 외길. 계산이 훨씬 쉬워졌다. 있지도 않은 털들이, 거꾸로 솟아오르는 느낌이 그를 휘감아 돌린다. 그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첫 번째 판에서 이겼다. 얇은 손가락이 잠시, 아무도 알지 못할 만큼 잠시, 어두운 테이블 아래에서 춤을 추듯 흔들리지만. 몸 군데군데 위태롭게 갈라진 흔적에 새겨있듯 그는 더 이상 흥분에 잠식될 수 없는 종류가 되어 있었다. 패가 이겼어도 베팅에 지면 도박에선 진 것이라는 진리는 이미 오래 전에 배워둔 바였다. 수업료가 비쌌던 만큼 깊이 박힌 교훈이 그를 다음 생각으로 이끈다.

테이블 위에 올려 있는 금액은 충분히 탐스러웠고, 아까 그 여자의 반응으로 보아하니 판도 달궈졌다. 남자가 해야 하는 일은 저들을 더 달아오르게 하는 일. 언제나 그는 좋을 때에 조금이라도 더 긁어먹을 궁리를 한다. 머릿속을 소용돌이가 휩쓴다.



조금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