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스크는 처음엔 아무도 죽이지 않았다. 토리엘이나 프로깃의 당부도 있었거니와, 본인이 누군가의 생명을 빼앗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저 피하고, 손을 내밀고, 자비를 베풀었다. 수십번을. 프리스크는 자신에게 고통의 시작과 끝을 선사한 아이에게도 마지막 자비를 베푼 후 결계를 나갔다. 그리고 토리엘과 함께 살게 되었다. 그녀가 운영하는 학교를 다니면서 프리스크는 행복했다.

하지만 어느날 갑자기 프리스크는 자신이 침대가 아니라 꽃밭에 누워있는 걸 발견했다. 당황스러웠다. 어째서... 어째서 내가 여기에 있는거지? 프리스크는 꽃밭에 한참동안 앉아있다가 볼을 꼬집어도 아플 뿐 바뀌는 것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할 수 없이 걸어간 복도의 끝 방에는 당연한듯이 플라위가 있었다. 처음 본다는 얼굴로 익숙한 대사를 내뱉는 꽃. 리셋이구나. 눈물이 앞을 가려 느리게 날아오는 총알도 미처 피하지 못했다. 상관없었다. 이제 곧 토리엘이 구하러 올 테니.

3,2,1, 땡. 시간도 정확히 토리엘이 도착했다. 이후는... 뻔하다. 토리엘이 프리스크를 구해서 치료해주고, 폐허를 안내해주고, 독립심을 시험해본다며 먼저 달려가고. 그 후엔 기다리라며 돌아오지 않는 토리엘을 찾아가야겠지. 도를 닦는 마음으로 프리스크는 한 번 왔던 길을 전부 다 차근차근 되짚어갔다. 제리를 한 번 더 봤을 땐 화가 울컥 치밀기도 했지만 참았다. 그렇게 다시 모두와 친구가 되고, 아스리엘을 용서해주고-이번에는 안아주진 않았다-, 밖으로 나가고...

다시 눈을 떴을 땐 꽃밭 위.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애꿏은 꽃을 잡아뜯으며 화풀이를 했다. 노란 꽃밭이 초록 풀밭이 되고 나서야 프리스크는 조금 진정했다. 그래. 또 할 수 있어. 어떻게 보면 즐거웠던 일이니 잘됐지 뭐.

아무리 즐거운 일이라도 그게 계속해서 반복되면 죽을 맛이다. 이번엔 혹시나 해서 갈 곳이 있다고 말하고 토리엘과 눈물을 머금고 헤어졌건만, 프리스크는 또다시 노란 꽃밭 위에 있었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악!!!!!!!아아아아아악!!!!!!!!! 이번엔 꽃잎을 뜯는 정도가 아니라 꽃밭을 완전히 흙밭으로 만들어버린 뒤 배째라는 마음으로 바닥에 누워버렸다. 하지만 시간만 흘러갈 뿐 아무것도 변하는 게 없었다. 프리스크는 한숨을 쉬고는 다시 플라위에게 뉴비 취급을 받기 위해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