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갑다.

바람이 귀를 간지럽힌다.

 

자극적인 감각에 의해, 암흑 속에서 의식이 꿈틀꿈틀 하며 서서히 정체성을 찾아간다. 곧 의식이 가볍게 일으켜졌다.

 

내가 아직 사고 할 수 있음을 깨닫자마자 혹시 영혼만 남은 사후세계는 아닌가 싶어, 눈이 있었던 곳에 감각을 집중한다.

 

그러자 묵직한 눈꺼풀이 꾹 감겼다.

 

근육이 부르르 떨리는 감각을 느끼고, 서서히 눈을 떴다.

……….”

 

어두운 천장...돌로된 배경.

 

곧 내가 천장을 보며 누워있었단 것을 깨닫고 그대로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희미한 빛 속에서 내 시야에 들어온 공간은 비록 그리 넓지 않았지만 나를 상념에 차게 하기 엔 충분했다.

  

전체적인 외견은 마치 이야기 속 고대문명의 건물 같아, 투박하고 거친 외벽에 드문드문 서 있는 기둥에만 묘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고, 거기에 하나씩 꽂힌 횃불이 유일한 광원의 역할을 하며 타오른다.

  

그런데.......또 이상한 것이.

  

손에 간지럽게 느껴지는 촉감.....꽃이.

풀 한포기 보이지 않는 이곳에서, 나는 노랗게 빛나는 꽃 침대에 둘러 쌓여 있었다.

기묘한 위화감의 연속은 길게 이어지진 않았다.

천장은 꽉 막혀 있으니까 적어도 이곳이 내가 떨어진 그 구멍은 아닐 것이다. 사후세계가 아니라면, 누군가가 추락한 나를 옮겼을 거라는 결론.

  

문제는 그게 누구냐는 점이지만, 개그 치는 스켈레튼 이든 말하는 물고기든 딱히 상관없다.

어차피 나는 죽으려고 했으니까. 앞으로 무슨 일이 있든 절대 놀라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최악의 선택지로 떨어진 인간들이 있다든가, 이곳이 인간의 지옥이라면, 나는 다시 한 번 자살할 필요가 있겠지만.

 

꽃 침대를 손으로 받쳐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바람이다.”

  

가정이 파탄나기 전에는 동생과 항상 함께 놀았던 동굴, 언젠가 그곳에서 길을 잃어버린 것이 기억난다.

  

어린이들의 놀이터라고 치기엔 엄청난 넓이여서 한때는 길을 자주 잃어버리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동생은 귀신같이 출구를 찾아냈다.

  

내가 신기해 할 때마다 그 녀석은 오히려 내가 이상하다는 듯 그 작은 눈으로 빤히 바라보며 바람을 찾으면 된다고 말했었다.

 

그림자 속에 숨어있는 문.


그리고 이미, 내 발은 홀린 듯 그 문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뒤돌아본 꽃 침대와 10미터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문인데, 한참 올려다보는데다 섬세한 조각이 새겨져 있는 게 주변의 투박한 인테리어에 비해 꽤나 웅장하게 지어졌다.

 

감상은 짧게 마치고, 양 팔로 문을 밀어붙였다. 설계를 잘한 것이 이유일까. 무거워 보이는 돌문은 의외로 쉽게 열렸다.

가벼운 소리를 내며 문이 열렸지만, 이윽고 얼굴이 찌푸려졌다.

어두운 이곳과는 대조적으로 문 사이로 강한 빛이 너무 강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분위기도 확연히 달랐다.

벽의 채색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취향이었다. 벽은 온통 핑크색으로...아니, 벽뿐만이 아니었다. 벽돌이건 바닥이건, 심지어 어느새 알아챈 카펫도 이상한 검은 문양을 제외하곤 전부 핑크색으로 물들여져 있었다.

 

기묘함이 몸을 훑어 타고 올라오는 듯, 기분 나빠 견들 수 없는 느낌이 들어서 정면의 문 없는 통로를 통해 달려나가 보았지만.

 

다시 한 번 기대를 배신하듯 시야가 검은색의 보색으로 가득 찼다.

 

저절로 멍한 표정이 지어졌다. 이 곳은, 대체 뭘 하는 곳일까.

 

....다행이랄까, 무언가 변화는 주어졌다. 이 방에선 가장 눈에 띄는것들.

 

다섯 개의 돌 판.

   

그것들이 바닥에 꽂혀있었다.

자세를 낮춰 살펴보자, 단순히 꽂힌 게 아니라 버튼 형태로 누를 수 있게 되었다 는걸 알수있었다.

내 머리하나 보다도 더 넓은 판인데 이것도 힘을 별로 쓰지 않아도 조작이 가능했다. 약간의 저항은 느껴졌지만 손가락으로 누르자마자 가볍게 들어간 것이다.

장치는 단순했고, 더 볼 것은 없었다. 그러자, 또 다른 회판에 눈이 갔다.

 

벽에 달려있는 석고판.

나는 일어서 반바지의 먼지를 털고 그것에 가까이 다가갔다.

부패까지는 아니지만 꽤나 먼지가 쌓여있어, 손으로 슥 문질러 왠지 모르게 소리내어 읽었다.

 

두려움 없는 자 앞으로 나아가라. 용기있는 자, 어리석은 자 둘 다 가운데 길로 가지 말라.”

 

망상증 환자나 웅얼거릴...시라고할까, 괴상한 중얼거림이 적혀있다.

잠시 무슨 뜻인가 생각해봤지만 이내 지워버렸다. 헛소리를 해석하면 바보를 만드는 확대해석이 될 뿐이다.

 

애초에 단서도 증거도 없는데 무슨 수수께끼가 된다는 말인가?

 

후우

 

저절로 한숨이 나오고 무심코 바닥에 주저앉았다.

   

몸 상태도 최상은 아니었다. 조금 진이 빠진 것 같기도 하고, 추락 할 때의 충격이 없진 않은 듯 했다. 몸이 여기저기 지끈지끈하다.

  

자살까지 시도한 포기한 정신인데, 완전히 처음 보는 풍경에 조금 흥분한 걸까?

  

움직이지 않는 편이 나았을 지도 모른다. 사실 그 꽃밭은 거기서 벗어나지 말라는 무언의 압박은 아니었을까. 뭘 믿고 이렇게 돌아다닌 거지?

  

그리고 몸이 편해지니 작은 기억이 스쳐지나갔다.

  

그래....막상, 살아남고 보니, 혼자 남은 동생이 그립다.

  

결정에 후회가 없는 건 마찬가지다. 실제로 이제까지 견뎌올 수 있었던 건 그 녀석 때문이기도 했지만, 이제 한계였던 것도 맞았다.

 


그래도, 앵무새같이 내 이름을 지저귀는 그 어린 목소리는, 분명 그립다.


나를 받고 있던 할머니가 얼굴을 걷어차여 분노하며 지은 이름.

  

사랑스러운 동생이 매일 불러준 이름.

  

내 이름은, ‘차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