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undertale&no=516257
편견은 독, 소리 없이 스미어 사고를 마비시키고. 마침내 죽음에 이르게 하면서 짓궂게, 돌이킬 수 없는 한 순간 눈을 뜨게 하여 자신의 ‘우’를 되짚어보게 만든다.
“....헤, 레이즈. 10G만.”
결국, 일단은 망설이기로 결정한 뼈다귀뿐인 남자. 패를 쓰다듬는 손짓과, 짧은 진폭으로 흔들리는 눈동자, 미묘하게 늦는 대답. 과대망상에 빠지기 쉬운 직업, 도박사들에게는 더 이상 매력적인 미끼는 없을 것이다. 거기에 ‘편견’이라는 독에 절어 해롱대는 그들이, 우습다. 남자는 흔들리는 눈에 비치어 울렁이는 저들의 생각을 가늠해 보았다. 언제나 그랬듯 완전히 망한 패를 가지고 벌이는 발악이라고, 끝으로 몰고 가면 그 멍청한 웃음과 함께 손을 내저을 거라고, 남아 있는 작은 조각이나마 건지기 위해서.
포기할 거라고-?
이 세상에서, 항상 웃는 남자가 누군가를 마음껏 비웃을 수 있을 때는 지금뿐. 다시 한 번 우습다.
딜러의 목소리를 따라 돈은 흘러, 스노우딘 언덕에서 굴러 내려가는 눈 덩이처럼 불어난다. 전처럼 급격하진 않지만 착실하다. 이미 심리적 상한선을 넘은 액수여서 그런 것일까, 단 10G, 20G가 어느 때보다 크게만 느껴져 지금의 느린 흐름이 오히려 팽팽한 긴장감을 돋우지만. 이내 흐름을 박살낼 수 있는 이의 차례가 다가왔다.
중년의 사내는 천천히 퀭한 두 눈을 들어 모두를, 아니. 정확히는 그들의 돈주머니를 찬찬히 훑어보았다. 그를 따르던 웃는 그의 두 눈이 자연스레 남자의 그것과 겹쳤다. 짧은 순간. 꺼림칙하면서도 왠지 그의 눈빛이 먹이를 노리는 맹수의 것은 아니라는 생각, 아니 직감에. 기묘한 한기를 느낀다.
“저기, 딜러님. 베팅에 제한이 없다 하셨죠?”
“네.”
사내가 이렇게 긴 말을 내뱉은 것은 처음이었다. 스노우딘 토박이의 말씨이지만 목소리가 단정하고 중후하다. 어디에서든 쉽게 시선을 끌어낼 울림의 힘이, 지금은 더하다.
“올인.”
조금의 여유도 없이 터뜨리는 폭탄.
순간. 지하 중의 지하에는 환호와 야유, 탄성과 한숨이 교차한다. 여유로운 척이라도 할 수 있었던 건 입을 벌린 채 어지러운 숨을 숨기지 못한 뼈다귀 뿐. 창백하게 질려버린 입만 산 여자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흥분한 구경꾼들이 제각기 질러대는 소리에 녹아 사라져 버린다.
“어, 음. 그러니까. 무슨 말인지 알겠지만, 올인 하려면 지금 다른 X.. 아니 참가자 중 가장 돈이 적은 사람의 금액까지만 걸 수 있어.. 요.”
마찬가지로 놀란 딜러가 용케도 소란이 가라앉은 틈을 찾아 흔치 않은 존댓말로 대답하자 다시 한 번 소음이 산란하게 터져.
너무 한 번에 끝나면 재미없다는, 말 그래도 좀 더 스릴 있을 수도 있었다는, 말 그래도 내가 딸 거라는, 말 아직까지 쟤가 안 죽은 게 신기하다는, 말 그래봤자 별 거 없다는, 말. 아무래도 단순한 방관자가 아닌 것 같은 그들은 속내를 숨길 생각이 없었다.
요컨대, 우리는 경주용 달팽이 같다는 건가-.
들어와 앉을 용기도 없어 구경꾼으로 머물러, 시시한 내기나 하고 있는 그들. 두골을 매만지는 남자, 완전한 타인들이 벌이는 논쟁에 완전히 질려버린다. 운 나쁘게도 지하에 태어나 오늘까지 살아온 저들에게 삶을 위한 긴장감은 이미 충분하다 못해 넘쳤겠지만, 오로지 긴장감.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는지도 모른다. 아마 남자는 그들의 세계를 이해할 수는 있지만, 그들은 남자가 들어앉은 이 세계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네모난 세계, 누가 누구에게 사냥당하는 지 이제는 알 수 없게 된 사각의 링. 초 단위의 잔상에서 흔적을 쫓고 승패를 저울질하는 여기. 이미 드러난 공용 카드는 애매해서 이미 이긴 자, 지나치게 운 좋은 뼈다귀를 제외하면 아무도 승패를 장담할 수 없었다. 일찌감치 결론을 맺은 남자가 그들을 짧은 순간 훑어보며 소리 없이 묻는다.
어떻게 할래-?
위험을 감수하고 덤벼들 것인가, 남은 조각이라도 건질 것인가.
남자를 가두었던 프레임이 자신들에게 덮어 쓰인 순간을 저들은 알고 있을까, 의미 없는 울림이 가라앉으며 차차. 저들도 평정심을 찾은 듯 보이나, 흔들릴 것이다. 흔들리는 이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아무리 길어도 짧았다. 주변에서는 계속 그들을 자극하였고 일을 키운 장본인, 선택권이 없는 사내를 제외하고 남은 다섯 중 결국 둘이 포기를 선언했다. 의미 없이 묻어놓기만 한 돈이 아까운 지 표정들이 좋지 않은 반면 그들을 바라보는 남자도 겉으로는 웃지만 사실 한결 홀쭉해진 저들의 주머니 속 찌꺼기마저 아쉬워 속이 쓰리다.
이제 살아남은 이들이 남은 것을 모두 올려놓자, 남자는 주머니의 내용물을 드러내 보이는 것이 내키진 않았으나 물고기가 너무 크기에. 금화를 차곡차곡 쌓아 손닿는 곳에 내려 두었다.
“얼마야?”
“440G."
남자는 공연히 오늘은 핫도그 장사가 잘 안 되었다고 변명하지만 잘 알고 있다. 여기에 진짜 단어 그대로 하루하루 살기 버거운 이는 자기밖에 없다는 사실을. 곳곳에서 비웃음이 들린다. 매일 부지런히 따가던 돈은 어디로 갔냐는, 투잡이던가 쓰리잡이던가, 저 골통 속에 한 1000G쯤 감춰 둔 것 아니냐는 야유 속에.
어디로 가긴 XX-!
그 강함만큼 연료가 많이 필요한 동생과 둘이서 먹는-돈, 다 낡아 쓰러져가지만 어쨌든 네 벽이 달려있기에 비싼-집세, 노점을 단속하는 왕실 경비병에게 쥐어줄-뇌물, 그리고 수시로 동생이 요구하고 들어주지 않으면 목숨을 장담할 수 없게 만드는 상당한 금액의-용돈. 아니 어쩌면 더한 상납금. 하루에 나가는 것 만해도 이러니 융통할 수 있는 한도는 많아야 500G정도, 딱 원금의 절반만큼을 벌어간다 해도 마법 태양이 질 무렵이면 남은 것은 부스러기 이상이 될 수 없었다. 게다가 아무리 도통한 그라 해도, 매일 딸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
발전이 있을 수가 없지-.
소문으로만 전해지는 MTT 리조트의 비밀 카지노에서 화려한 한 판을 벌이는 꿈을 꾸던 한때의 자신에게, 조소하자. 시간이 지나며 그에게 남은 건 도망가거나 몸으로 때워 온 경력뿐이었다.
“이거 너무한 거 아냐, 딜러야. 겨우 이것밖에 없는 XX도 끼워주는 거야?”
“헤, 너무 뭐라 그러지 마. 나도 실망하고 있으니까.”
별 것 아니라는 듯 웃는 남자를 향한 야유가 짙어진다. 아까부터 불만이 많던 여자도, 방금 그를 낮잡아 본 이도. 어디에서든 들어오는 것이 욕, 대수롭지 않았기에 남자는 윙크 한 번으로 무시하기로 하지만. 왠지 이번에도 침묵하며 천천히 동전을 세어 올리는 사내의 몸짓은 남아 그의 마음에 불규칙한 파문을 일으킨다.
올인, 모든 일이 잘 풀렸다. 조금 지나칠 정도로. 무표정한 듯하지만, 끝끝내 음울함을 가리지 못하는 중년의 사내. 얼마나 괜찮은 패를 들고 있기에 ‘올인’이란 단어를 내뱉었는지 모르겠지만, 저게 과감한 건지 멍청한 건지 구별할 수도 없었다. 어찌되었든 판돈을 키우기 위한 액션 따위야 아무 의미 없었고, 아마 자신이 아무것도 하지 않았더라도 결과는 같았을 것이라는 사실을 남자는 잘 안다. 깨달았다. 오늘의 첫 판. 이 모든 흐름이 그의 생에 드물게도 감사할 일이지만, 어딘가 모르게 거북하다.
“이봐, 암만 그래도 카드 놓을 자리 정도는 내 달라고.”
테이블 위는 가득 차, 아무리 야유를 산 액수여도 네 배가 모이니 꽤나 빽빽하다. 테이블 좀 미리 좀 큰 걸로 구해 놓지 그랬냐고, 투덜대는 목소리는 있어도 얌전히 동전들을 다시 쌓아 올린다. 좁다랗게 쌓인 그 모습이 위태하다. 지하, 몇 안 되는 불빛밖에 비추지 않아도 금화는 금. 광채가 눈 둘 곳 모르게 하나, 아무도 고개를 돌릴 수는 없었다. 그 빛을 보는 게 일인 딜러는 가늘게 뜬 눈으로 순식간에 금액들을 읽어 나간 뒤,
“배팅은 끝났으니까.”
의례적인 한 마디를 던지고는 다시 한 번 카드를 섞는다. 낯설게도, 속도가 미묘하게 느리다. 팔랑이는 너머에는 기도하는 이와 뭐라고 낮게 중얼거리는 이, 쓰게 웃는 이가 있다. 그리고 판 위에 한 손을 내려놓은 남자는, 갑자기 속에서 뭔가 알 수 없는 것이 꿈틀거린다. 알 수 없는 것이지만 느낄 수는 있다, 무언가 어둡다.
딜러의 손가락이 멈추고 정확히-어떤 속임수도 없이 두 장이 테이블 위에 엎어져 내려선다. 구경꾼들을 위한 것인 듯, 손가락 세 개로 그것을 짚고는 잠시간 미동도 없는 집행인. 갑자기 남자는, 가진 것은 뼈뿐인 남자는 그 패를 열지 말라고 소리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힌다. 뼈뿐인 몸은 본능뿐인 영혼보다 더 이성적이었던가, 굳게 닫힌 사이 그리고 순간.
지금은 구경꾼의 웅성거림도, 얼굴이 일그러진 경쟁자들도, 변화가 없는 사내도, 의미가 없다. 하나 그리고 둘. 모든 것이 결정되었다. 숨이 멈추고 낮선 침묵 앞에 선다. 없는 심장마저 터질 것만 같다.
누군가의 눈짓을 신호로 숨기고 있던 것을 내려놓자 그들의 민낯이 드러났고, 소리 없이 재촉하는 사이에서 마지막으로. 남자는 패를 던지듯이 뒤집고는 미소 지어보였다.
네 장의 K가 어두운 조명 아래 몸을 비튼다.
완벽한 승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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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나도 읽어줘서 고맙고, 좋은 대회 열어줘서 고맙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