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undertale&no=516257
2편 :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undertale&no=535523
바닥에는 패잔병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그 빛깔과 무늬를 훑으며, 남자는 얇은 두 팔 가득 전리품을 긁어모으기 위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몸짓을 따르는 눈빛들의 온도가 그의 승리를 반기는 이는 아무래도 없는 것 같다고 속삭인다. 그 차가움이 익숙하기에 남자는 들뜨지 않았다.
아무렇지 않게 가까이 앉은 금화에 손을 뻗으려는 순간. 옆자리에서 거친 손이 와락, 달려들어 남자의 주홍빛 셔츠를 난폭하게 감아올리고는 그대로 바닥에서 몇 센티미터쯤 들어버린다. 갑작스런 상황에 그 힘을 이길 재간이 없어 그는 마치 교수형에 처해진 이미 시체처럼, 위태롭게 덜렁인다. 기도는 없지만 숨이 막히는 기분. 다음 순간 자신이 EXP가 되어 있진 않을까, 익숙한 감각이다. 뼈다귀는 술렁이는 조소가 가득 찬 가운데 그는 유일하게 흔들리지 않았던 것. 미소를 내세운다.
“이봐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알겠는데 일단 내려놓고...”
“야 이 사기꾼 XX. 무슨 짓을 한 거야?”
“헤. 무슨 짓이라니?”
“모르는 척 하지 마. XX야, 다 알고 왔어. 너. 너 지금 어떻게!”
“누가 들으면 둘이 짰다고 오해하겠네. 징크스 얘긴 거지? 소문을 들으면 좀 더 디테일하게 물어봐. XX.”
“XX? 이 XXX가 지금 정신 못 차리고 XX하네?”
“조금만 더 머릴 써 봐, 니가 생각하는 것처럼 장난을 쳐서라도 이긴 적이 있었으면 소문이 돌았겠냐고.”
“뭐?”
멱살 정도야-이런 일 한 두 번 겪는 것도 아니기에, 그는 침착하다. 상대가 달아올랐을수록 자신이 내뱉는 마디마디의 힘이 강해진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조심스럽게 자신을 가다듬어 내보내며, 부드러운 목소리와 올라간 입 꼬리가. 여유로운 태도와 옅은 체념이. 흥분한 괴물을 혼란하게 할 것을 기대한다.
“시도해 봤지, 안되더라고. 난 포기했어.”
공중에 붙들어 맨 손에 약간의 떨림이 비칠 만큼 그의 설득은 효과적이었고 평생을 따른 그의 불운은 강렬한 것이다. 허나 패배를 인정하지 못하는 목소리는 미련만 깊어 아직도 그를 놓을 생각이 없어 보이기에,
“그렇게 확신하면, 손모가지라도 내놓고 제대로 한 번 해 봐?”
도발이다.
“저.. 저 K 네 개가.”
“뭐, 어쩌라고. XX. 증거 있어?”
남자 자신의 말대로 어차피 시도조차 하지 않은 일에 물증은 존재하지 않는다. 실체 없는 의심은 때로 강렬한 무기가 되나, 지금은 때가 아니라. 아무래도 생각보다 움직임 쪽이 빠른 이자는 그저 욱하는 마음에 지레짐작으로 덤벼들었을 것이라는 계산의 결과였다. 그리고 남자는 그가 더 덤벼들기를 바라지만 이제는 뭐라 할 말이 없는 지 조용하다. 한참을 불편한 고개를 올려낸 후 높이가 맞지 않는 두 눈이 마주치고, 털이 가득한 미간에 가는 주름이 드러난다.
“살다보면 이런 날도 하루쯤 있어야겠지, 안 그래?”
손아귀 힘이 오히려 쭉 힘이 들어갔다가 다시 빠져 나간다. 틈을 타 슬쩍 몸을 비틀어 남자는 벗어났다. 형편없이 구겨진 셔츠를 정리하며, 황망히 서서 아직 팔도 내리지 못한 이에게 윙크와 함께 전한다.
“말하자면, 운이 과했던 거지.”
도박에서 이기기 위해 필요한 건-.
남자는 의자에 다시 올라 앉았다. 아직 의심을 거두지 못하였으나, 어찌할 방법을 찾지 못하였는지, 뜨거운 콧김만을 내뿜는 여자, 이런 상황에서도 아무 반응 없이 묵묵히 바닥에 고인 먼지만 쳐다보는 사내. 그리고 알 수 없는 표정의 둘. 남자는 한 푼 한 푼을 빠르게, 허나 공들여 세어내 주머니에 넣는다. 잠시 조용했던 주변이 짤랑거리는 소리에 맞춰 다시 웅성이기 시작한다. 그들의 내기는 완전히 망가졌다. 적어도 잃은 놈이 없으니 평화롭긴 하겠지만, 뒤통수가 따가운 것은 어쩔 수 없다. 게다가 더 따가운 것이 그의 안에 있었기에 별로 마음도 가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운이 나쁜 편이다. 그러나.
장내가 정리된 것을 확인한 딜러는 확연한 웃음, 아니 비웃음을 지으며 카드를 갈무리한다. 그가 사용한 카드를 그러모으는 동안 다섯이 앉았던 테이블에는 두 자리가 비었다. 정확하게 아까 올인 상황에서 포기한 이들의 자리였다. 뼈뿐인 남자는 그들의 현명함에 감탄하고는 자취 없이 사라지는 모습을 눈으로 좇아 두 망막에 꼼꼼히 새기어 둔다.
“설마 그대로 도망치려는 생각은 아니겠지, 해골?”
경멸을 담은 날카로운 목소리. 잃은 것을 되찾겠다는 오기를 담은 눈빛이 해골, 남자를 노려본다. 아무래도 엉뚱한 방향을 너무 오래 보고 있었던 것 같다고 생각하며 남자는,
“헤, 내가 왜?”
답한다. 거짓말이다.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자신도 그들과 같이 사라지고 싶다고 생각했으니. 도망을 쳐도 수지가 맞는 날이다. 단순히 계산해도 가져온 돈에 세 배 정도는 땄으니 한 일주일 정도는 쉬어도 괜찮을 것이고 지금의 불안도 잠시간의 변덕으로 치부할 수 있을 것이다. 허나,
내가 왜-?
왠지 오늘은 그래선 안 될 것만 같다. 왠지 모르게, 첫 판에 운이 과한 대승에서 시작하여서 모든 게-잘 풀릴 것만 같은 예감이 들어 더더욱 떠날 순 없다. 어차피 집에 들어가기도 싫으니, 중얼거리며. 그는 열 몇 개의 동전을 테이블 위에 쏟아 놓는다. 도망가지 않겠다는 다짐을 쏟아 보인다.
다시 한 번 카드가 몸을 섞는다. 한 몸이 되었다가 안타까운 팔랑거림으로 물러서 나뉘었다 또다시, 한 몸이 된다. 그렇게 운명은 만들어진 뒤 모두의 손에 평등하게 두 장씩. 저공비행 끝에 날아들었다. 남자는 스스로에게 속삭인다.
너무 흥분하지 마-.
운이 선물한 갑작스러운 승리로 인한 여유, 그는 여유가 자기에게 주는 힘을 알았지만 그것이 어떻게 쉽게 꺼지는지 또한 잘 아는 남자. 너무 뒤로 쳐져도 안 되지만 너무 앞으로 달려 나가도 안 된다고 다시 한 번 다독인다, 그는 모든 것을 신뢰하지 않는 경향이 있었다. 잔상으로 남은 숫자와 문양이 시시하기 이를 데 없지만, 상관없다. 답은 정해져 있었다. 그대로, 남자는 다시 한 발짝 물러나 지켜본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첫판에 너무 많은 것을 쏟아 부었기 때문일까, 판을 맴도는 돈도 감정도 잔잔하다. 공용 카드가 모습을 드러내자, 살짝 기대했던 남자는 마음을 젓는다. 여기 그의 손의 패와 짝을 이루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이럴 때 패만 바라보고 있어서 될 일은 없기에, 남자는 살짝 두 눈을 들어 다른 이들을 훑어보고는. 슬쩍, 미소 짓는다.
참 피곤하겠네-.
자기들은 숨길 수 없는 데, 속을 통 알 수 없는 게 둘씩이나 되니 얼마나 답답할지. 남자는 그들의 몸이 보내는 미묘한 신호를 모른척하고는 머리를 굴렸다. 사실 불리할 때 내리는 결론의 절반은 블러핑. 조금 잃어도 된다. 자신이 블러핑에 능하다는 사실을 각인시켜 놓는 것만으로, 남은 시간이 더 유익해질 거라는 생각에. 이번 판을 희생하려는 것이었다.
남자는 자기 차례마다 눈에 띄지 않게 조심하면서 조금씩 판돈을 올렸다. 한 발짝 물러난 그의 모습을 보이기 위하여. 어떤 것도 판단할 수 없는 상태가 때로 더 큰 혼란을 야기한다. 그렇기에 그의 생각에 한 번에 왕창, 겁을 주는 것도 맛이겠지만 진짜 블러핑은-성실함이었다. 성실함, 가장 비겁한 기술에. 아이러니컬했지만 이 판이. 세상이 원래 그러하지 않던가, 코웃음으로 넘긴다.
게임은 계속 그를 의심하지 못한 채로 차분히 흘러간다. 다만 돈은 평소의 두 배 정도로 쌓였지만 첫 판의 영향으로 감각이 무뎌진 듯, 담담하였다.
잔뼈가 굳은 남자에게 이 액수는 흥분의 산물이 아니었다. 상대적이었다. 지금의 판돈은. 말 없는 사내야 당연하고, 오늘따라 든든한 남자에게도 별로 두렵지 않은 돈이지만 아까 왕창 잃은 이에겐 어떻겠는가. 좋은 패를 쥐고 있다면야 어차피 자기 손에 들어올 돈으로 보이겠지만, 남자는 아무리 패가 좋아도. 두려운 순간이 올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예측했다.
현실을 보면 지는 게임, 결국.
“난 포기.”
못 버티겠다며 핫랜드 출신의 여자가 먼저 손을 들었다. 아무래도 망한 패로 계속 밀고 나가는 게 겁이 났기 때문이겠지, 이런 걸 ‘속였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일단 한 명 경쟁자가 준 것에 남자는 안도하지만 여자가 포기하는 것을 기점으로, 마음 급한 목소리가 속도를 붙이기 시작한다.
이 XX. 나와 봤자 투 페어인데-.
남자는 습관적인 욕지거리와 함께 다시 팽팽한 신경의 고삐를 더 당긴다. 족보로는 상대가 안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 이기기 위해서는, 어떤 확률이 적용되어야 하는 지도. 허나, 되돌 지점은 지났기에 또한 성실한 블러핑을 이어가기 위해 그것을 받아들인다. 테이블에 앉은 셋, 티끌만큼도 서로 양보할 생각이 없는 지. 길고 지루한 레이즈가 판돈을 벌써 지난 판, 남자의 올인에 가깝게 불려 놓았다.
한 번 찔러나 보자는 생각으로 남자는 더 높은 골드를 불러 보았지만, 허나 곧 자신의 예측이 빗나갔다는 것을 직감하게 되었다. 성격이 급하면서 고집도 있는 이는 꿈쩍도 안하고 남자의 공격을 받아들이고는 더 올리지도, 죽지도 않는다. 살기가 가득 찬 눈을 하고 지금 내 패는 단단하니 건드리면 다친다고 말하는 듯이. 남자는 그 태도에 어딘가 모르게 김이 빠져 더 어찌해 보지 못하고. 그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얼간이-.
조소하면서.
딜러가 두 장의 카드를 바닥에 내려놓고는 천천히 뒤집는다. 외돌던 그의 손, 한 장의 카드가 제 짝을 둘이나 찾았다. J 트리플. 등골이 오싹하다. 허세가 고양감으로, 이내 두려움으로 번져 간다.
판은 마치 그가 이기게 하기 위해서라는 듯 움직였고. 남자는 또 다시 크게 이겼다. 따가운 시선과 입말, 실랑이가 반복되지만. 결론은 같은 것이었다.
무엇으로도 설명할 수 없지만 무엇이든 설명할 수 있는 말. 운.
블러핑 따위. 헤, 아무 소용없었던 건가-.
연약한 뼈다귀뿐인 남자. 어쩐지 한 발 물러나지 못하고 헤실, 웃어 보인다.
어째서일까 두 손 두 발 다 묶여 얻어맞던 그 때보다 더한 무력감이 덮쳐누른다.
느아.. 이래서 도박은...
완결까지 연재해줫으면... - dc App
재미있게 읽어 줘서 ㄳㄳ 완결까지 열심히 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