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 SIDE B.




매일 반복되는 삶. 할 일은 많아 온 마을을, 캄캄한 지하 작은 나라를 구석자리가지 돌아다니는 삶이어도 바쁨마저 똑같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면. 때로는 제멋대로 일의 순서를 바꿔보고 방법을 바꿔보고. 때로 아슬아슬한 날이 있다 하여도, 결국 언젠가 그마저도 질리고 물려 마음 쓸 것 하나 없어지는 그때가 오고. 결국은 아무리 애를 쓴다 하여도 반복이라는 잔인한 것이 피할 수 없는 권태를 불러온다는 사실을 깨닫고 말게 되는 것이었다.

권태. 그것이 삶에 불어넣는 무기력과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의무 내지는 숙명 앞에서 하루에 열두 번도 더. 포기할까. 두골을 부여잡고 황폐한 눈동자를 굴리는 그는. 도대체 언제부터 자기가 이렇게 권태와 무기력에 잠겨 있었는지 떠올려 보려 하였으나, 그려지는 것은 어제 혹은 그저께. 회상 또한 매일 돌아가는 하루 속에서는 의미가 없다는 깨달음 속에서. 자기도 놀라 소스라치곤 한다.

어느 순간부터 자기의 모든 것이던 햇살 같은 목소리마저 무디게 들리는지. 변함없는 그 앞에서 억지로 끌어 모은 웃음밖에 보일 수밖에 없는지. 만난 날에도 이별을 말할. 밖에 없었는지. 권태가 사랑과 기억마저 집어 삼키고 있는 것은 아닌가. 소스라치지만. 그 또한. 일상이 되었다.

딱 하나. 권태의 굴레에서 벗어난 것이 있다면 원초적인 즐거움을 선사하는 그 맛뿐. 단골집에서 일을 마치고 한 잔. 아니 한 병 들이키는 그 맛. 과묵하여 마음 편한 주인장이 그의 지정석 앞에 언제나 놓아두는 그 맛. 우습게도 토마토케첩.

맛도 좋고 야채도 들어갔으니 몸에 좋을 거라는 착각을 하게 만드는 그것은, 때로는 뼈저린 시큼함으로 그의 정신을 깨우고. 때로는 미칠 듯한 달콤함으로. 또 때로는 어디서 많이 만나본 찝찔함으로 그의 텅 빈 안쪽을 꽉꽉 들여 채우는 것이었다.

일상사에 한 번뿐인 일탈. 뻣뻣한 그의 온 몸이 잠시 풀어지는 순간. 허나, 순간만으로는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는다는 사실이야, 말 해줄 이 없어도 잘 안다. 매일 같은 상표의 케첩을 정량만큼 들이키고 나면, 정확히 3분 후에 튀어나오는 시큼털털한 트림 같은 일상으로. 권태로. 돌아간다.


이변이 생긴 것은, 드디어 토마토케첩마저 일상이란 단어로 부르기 시작했을 무렵. 삶에 한 가지 즐거움마저 강도가 약하여지고, 왠지 모르게 잠잠한 마음과 생각을 부여잡고 회전목마에 묶인 말 마냥 하루 또 방황하다 돌아온 날이었다. 질린다고 다른 무엇을 찾을 용기도 없었기에, 거침없이 문을 재치고 들어가 앉아. 시답잖은 농담 한 마디로 외상을 번 뒤 케첩을 벌린 목구멍에 들이 붓는다.

그래도 변함없이 이 순간은 자극적이라고. 자조하고는 병을 내팽개치자. 그의 혀를 뒤흔드는 낯선 맛. 놀라 더러운 마룻바닥에 떨어진 병을 주둥아리부터 싹싹 훑어 내리자. 더욱 강렬해진 맛. 약간 씁쓸하기는 한데, 맛이라고 부르기는 뭐한 맛이.

- , 지금 뭐하고 있는 거야? 으으, 지저분한 줄은 알았는데 바닥에 떨어진 것도 주워 먹을 줄은 몰랐는걸?

- ? . 네가 여긴....

- 옷은 왜 이렇게 지저분해진 거야? 얼른 집에 가자 형. ?

새하얀 실루엣, 언제나 먼저 손 내밀어주던 다정한 동생을 불러낸다. 시린 두 손을 맞잡자. 답지 않게 보들보들하다, 동생의 성미처럼. 사철 눈 내리는 길을 같이 걷는다. 가는 그 길 영웅의 퍼레이드에 하듯 빽빽이 둘러 선 이들이 두 손 들어 인사한다. 게으르고 더럽다 해도, 능청스럽고 웃긴 녀석을 싫어하는 이는 이 세상에 없다는 걸 믿는다.

멀고 먼 우리 집. 앞서가는 뒷모습이 무언가 낯설어 떨리는 목소리로.

- , . 그런데 너 머플러는 어디 둔거야?

- 어디 두긴, 떨어진 걸 형이 방에 갖다 놨잖아.

어느새 뒤돌아 웃는. 먼지로만 이루어진 동생. 아니 웃을 때도, 화 낼 때도. 울 때도 있었지. , 제발 그러지마. 그게 일단 시작이던가? 어제의 너는 어떤 모습이었고, 오늘의 너는 어떤 얼굴이었니. 바싹 다가온 동생의 얼굴, 아니지 어느새 너는 그렇게나 자랐니. 좋아하던 큐브마냥 눈과 눈썹과 입과 코와 목소리가 빙글빙글 섞이네-. 이것 참, 기분이 좋다.

어라. 우리 집이다. 문고리, 차가운 문고리. 하루에 한 번 열었다 닫는 문고리.

열 때가 아닌데. 열면 불어 날아갈 텐데. 누가 열어 놨을까.

세상은 붉은 막 아래, .

거의 일평생을 두고 본 떨어지는 눈이 먼지 되다 별 되다 눈물 - 아 지금 울고 있나? 누가? 다리가 풀려서 누워 있나? 그러니까 누가 어디에.

농담, 머플러, 양말, 핫도그.

뼈다귀, 농담 책, 양자물리학, 케첩.

양자물리학, 책임감, 키슈, 스파게티. , 농담 책?

- 동생, 우리 쌓인 눈밭을 구르자. 차가운 게 기분 좋아.

- 그래 형, 우리 같이 구르자. 차가운 게 기분 좋더라.

쌍쌍이 형제가 부르는 왈츠, 아니 왈츠는 추던 건가? 바닥을 구르기만 하면 족적은 두 배. 끝내주는 나의 동생, 저기 천장에는 파란 하늘. , . 구름.

사랑하는 마음 가득 담아 죽인 동생. 죽이기 전엔 얼굴도 못 본 친구. 갚은 적 없는 외상. 살지도 죽지도 않은 스승.

- 어딘가 콕콕 쑤시는데 어딘 지는 모르겠어.

- 샌즈 형은 진짜 바보!

안아주자 누워있는 너를, 무지갯빛으로 환한.

경험, 사랑, 불면증, 편집증.

심판. 방관. 방관자. 심판자.

얘들아 도망가.

글씨만 써놔도 눈사람이야.

도망 가!

어라 몇 년 전에 잃어버렸던.

여기 살인마가 나타났어! 모두 다 죽일 거야 나도, 도망갈 거야. 도망치고 싶어.

아냐 도망치지 마. 어디가 나만 두고.

, 가도 상관없어, 난 포기.

트럼본 부부붕, 제발 잊어버리지 마. 시간과 공간.

아냐 도망 가. 제발.

, 내 동생 끝내주지? 드럼은 두둥탁.

농담 한마디마다 하이라이트를 넣어주는 오케스트라.

스탠딩 코미디의 정수.

양말과 쪽지.

도망 가. 동생. 제발.

- 아냐 형, 난 안 도망가. 가장 나쁜 사람이라도.........................................

그만해. , , , .

고마워,



어스름, 끝나지 않던 시간이 끝나갈 무렵. 넘치다 마른 눈물, 애타는 몸.

끝나..구나.”

아직도 혼몽이, 혀도 닳은 몸도 어딘가 먼 곳을 떠도는 것만 같은데. 그의 달콤한 악마가 붉게 미소 짓기에 함께 웃는다.

, 끝내주는데, 이거.”

그래? 의외인데?”

끝에서, 동생이 내 목을 졸라주거든. 말 그대로 끝내주는 동생이지. 근데, 그거 더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