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지않아 어느 닭장을 습격할지도 모르는 나의 범죄충동에 관하여

글쎄 내 인생에 빨간 줄을 남기지 않으며 조만간 정말로 범죄를 실행하려 하는 거라면

그건 우발범죄가 아니라 계획범죄여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범죄스릴러 장르를 좋아하는 나의 보잘 것 없는 지식을 총동원해야 할 때는 바로 지금 일거다

그런데 문제는 다수의 범죄자들이 나 이상으로 똘똘하며 그럼에도 우발범죄라는 말이 존재한다는 점

그리고 나는 지금 나의 뇌세포들이 가장 섬세해지기 쉬운 그리하여 계획은 커녕 인내심이 부족해지기 쉬운 시간에 범죄를 부추김 받고 있다는 점이다

기이하게도 지금껏 얼굴을 마주친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나의 이웃은 마당에 애완 닭을 키운다

닭을 애완동물로 키운다니 아니 도댕체 왜?

일단은 전쟁이 나지 않는 한 저 닭의 소재는 식용이 아닌 게 틀림없었다

그 집 마당이 너무 넓은 탓에 자세히 보지는 못했지만

저 멀리 마당 구석에 그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어떤 상자처럼 생긴 닭장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건 식육을 최종적 목적으로 하여 지어둔 축사라기보다는 조형미를 갖춘 새장에 가까웠다

이름이 잘 기억나지 않는데 초등학생 때 였나 학교 안에 저 새장이랑 비슷하게 생긴 나무 상자 같은 게 있었다

뭔 습도계랑 온도계 같은 게 들어있는 지붕이 달린 나무 상자였는데 이걸 뭐라 부르던가 그 이름이 도통 기억 안 난다

아니 그런데 내가 현재 겪고 있는 이 고민을 선험하여 공감해 줄 현대인이 얼마나 될까

픽션에 한하여 그럴만한 이를 하나 알고 있긴 했다

이전 J네 집에서 밤새 섹스앤더시티를 본 적이 있는데

분명 어느 에피소드에서 여주인공의 아파트 창문 근처의 지붕에

밤마다 수탉이 우는 탓에 잠들지 못하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옆집 지붕에서 밤마다 닭이 운다며 고민을 털어놓는 여주인공은

제 고민을 말할 적마다 수탉을 자꾸 닭이라고 불렀고

여주인공을 제외한 등장인물들은 그런 여주인공의 말실수를 일일이 교정해주었기에

여주인공은 에피소드 내내 의외의 백치미를 어필하며 인상을 찌푸렸었다

아무튼 그 에피소드가 재생될 당시 시간은 네 시 경을 넘었고 그쯤의 나는 솔직히 졸려서 죽을 지경 이었다

에피소드 내에서 재생된 닭울음소리는 티비를 한참 보느라 졸려진 날 깨우기엔 미미한 음량이었다

예술가 기질이 다분한 J는 밤을 샌 반동으로 오전 내내 자다 한낮에 깨어날지언정

그 예술 감성이 폭발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암튼 그 새벽 시간대만큼은 절대 자지 않고 깨어있는 걸 즐겨한다

세시 경이면 꾸벅꾸벅 조는 날 보면 기겁을 하며 나를 먼저 재우는 한이 있어도 자기만큼은 밤새 깨어있고는 했지

아무튼 그러한 J가 티비에 USB를 연결해 틀어놓은 게 여자들이나 좋아할 법한 드라마라니

본래 같아서는 헬레이져 텍사스전기톱 미드나잇미트트레인 디센트 그런 종류의

내가 흐억 소리를 내며 제게 달라붙을 정도로 끔찍한 호러영화를 좋아하는 J

그 날 무슨 심경으로 저걸 받았는지 그 까닭을 상영이 시작할 당시야 당최 몰랐었다

이후 J가 말하기를 자기가 연애감정을 잘 몰라서 제 작품에 연애갈등 같은 게 나오지를 않는데

그 탓에 그런가 문득 캐릭터며 스토리에 인간미가 느껴지지 않는 걸 깨달았고 학습의 차원으로 나름의 조치를 취한 거였다나

그런데 나는 로맨스 물을 엄청나게 싫어한다 그래서 드라마도 절대 안 본다

물론 이전에도 J가 뭔가 재미없는 걸 보자고 했던 적이 몇 번 있었다

그런데 내가 아 제발 다른 거 보자고 말하면 진짜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으흐흐 드디어 너와 간다무를 재탕을 하게 되는 날이 오는구나 이러는 J의 모습을 한두 번 본 게 아니었다

건담 덕후인 그런 J가 대안으로 뭘 틀어줄지 그게 너무 뻔해 나는 그날 끙끙 앓다가 쇼파에 드러누웠다

사실 초딩 때 초성으로 영화 맞추기 놀이를 하면서 몇 번 써먹어본 적이 있어 이름만은 알고 있던 드라마였다

당시엔 어렸던 난 무슨 내용의 드라마인지도 모르는 주제에 저 여섯 글자짜리 정답을 맞히는 게

한편으론 내심 부끄러웠었던 적도 있었다 물론 지금은 섹스 대환영이지

이젠 성인이 된 나는 당시와 같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법 없이 당당히 저걸 봐도 된다

그런 나는 제목에 섹스가 들어가서 앞으로 보게 될 드라마의 장면에 엄청 큰 기대를 했는데

아니 근데 막상 봐보니 섹스의 비중은 십 퍼센트 정도 되려나 나는 퍽 실망했다

근데 더 놀라운 건 의외로 그 드라마가 재밌었다!

섹스가 누락된 구십퍼센트의 내용은 우릴 암 걸리게 하면서도 기가 막힐 정도로 유쾌했다

남주인공에게 이미 한번 먹버를 당한 여주인공이 질리는 법도 없이 그 옛 연인을 만나는 걸 보면서

나와 J는 진짜 그날 밤 엄청나게 웃다가 소리 지르다가 박수를 쳤었다

아무튼 저 미친 닭새끼의 생체리듬에 무슨 이상이 생긴 게 틀림없었다

체력이 거지인 평소에도 이따금 저녁을 먹은 후 죽은 듯 뻗어버리고 그러다 자정 언저리에 깨고는 했다

거기서 더 푹 자버리면 아침이 되는 거고 대개의 경우 한번 깨어나도 뭐 대체로 나는 다시 자버렸다

아 근데 문제는 지금껏 다섯 시 쯤에 울던 그래서 나또한 제법 덕을 톡톡히 보아왔던 저 녀석이 요새 내가 가장 푹 잠들 시간에 운다는 점이다

참 대견하게도 저녁을 먹고 곧장 뻗지 않은 내가 인터넷이나 하며 시간을 허비하고

차라리 그 시간에 일찌감치 자는 게 나았을 지도 모르는 아무튼 그런 날엔

이후 설핏 잠에서 깨어나기는 하더라도 늦어진 취침 시간 덕분에 이미 너무나 피곤한 탓에 아 시끄럽다 하고 다시 잘 수 있었다

다섯 시 경에 울고는 했던 저 수탉에게 어떠한 이변이 생기고

특히 이러한 이변에 관한 나의 가장 그럴 듯한 추측은 열대야 였다

아무튼 그리고 마침내 내가 기록을 남기자 라고 마음을 먹었던 게 사흘 전이다

최근 나의 사랑스러운 댕댕이는 사라졌다

비가 오지 않은 버스정류장에서 다시 그 집주인 아주머니를 마주칠 수 있길 고대하였지만

어쨌든 오늘은 비가 오지 않았기에 더욱이 그런 우연이 있을 리는 만무하였고 사흘째의 나는 오늘도 실망하였다

여전히 백구는 안보이고 그 망할 놈의 솥단지는 아직도 화단 옆에 세워져 있었다

개집이 세워진 틈으로 들어가 길다란 담장을 지나 사유지의 심방에 놓인 그 솥뚜껑을 열어볼 용기는 내게 없다

사라졌어야 하는 건 백구가 아니라 저 망할 닭이었는데

내가 아는 민간상식에 의하면 삼복 이란 건 뭐 세단계로 구성되어 있는 거고

하나를 거치면 거칠수록 더욱 보양이 되는 동물을 먹는 게 아니었나

분명 차례를 매겨보자면 예를 들어 닭 개 염소 뭐 대충 이런 수순이 되어야 할 텐데

어째서 내 댕댕이가 그 순번을 새치기하고 저 닭은 버젓이 살아있는 건지 도댕체...

애초에 그냥 어디 먼 집에 보낸 게 틀림없다 설마 잡아먹었겠나 싶은데 그냥 속상했다

튼 어제 밤 새벽에도 닭 때문에 깨어난 나는 전날보다 그 전날보다 그 전전날보다도 화가 나있었다

난 달팽이나 지렁이가 아닌 평범한 인간인 탓에 공기 중의 습기는 불쾌지수의 척도일 수밖에 없다

난 거의 한 달 전부터 베란다 창문을 활짝 열어두고 자고 있었다

낮엔 무덥지만 요새 밤공기가 얼마나 시원한지 창문을 열어두고 자면 방안에 적당히 서늘한 공기가 가득 차

그 탓에 내가 웅크리고 있는 이불 속이 더욱 아늑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어제 밤은 평소와 달리 바람 한 점 불지 않았다

닭울음소리에 잠을 깬 나는 한 오 분 간 어두운 방안에서 인내심 있게 눈을 꿈뻑 거렸다

밤새 활짝 열어둔 베란다 창문으로 여느 때처럼 찬 새벽공기가 들어오길 고대했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방안에 정체된 공기가 순환할 조짐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고

눅눅하고 후덥지근한 밤공기 탓에 한때는 아늑하게 느껴졌던 내 이불이 너무나 거추장스러웠다

나는 결국 이불을 걷어차고 일어나 올해 최초로 에어컨을 작동시킨 후에야 침대로 돌아올 수 있었다

아무튼 지난 며칠간 남겨둔 나의 기록은 내림차순으로

세시 삼십 구분

세시 삼십 오분

세시 사십 삼분이었다

뻑뻑한 눈을 간신히 찌푸려 뜬 채 손을 더듬어 어디 베게 맡을 굴러다닐 폰을 찾아 시계를 보고 짜증이 치밀었다

그리고 메모장 어플을 열어 저놈의 기행을 기록한 후 어젯밤 나는 다시 기절했다

그니까 즉 거의 오차 없이 세시 사십분 경이면 저 녀석이 울어댄다는 거다

오늘 새로운 기록이 경신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스릴러물의 식상한 클리셰로서 시체를 처리하는 방식은 먹어서 없앤다는 거다

그런데 지난 두 달간 치킨이라면 물리도록 먹어서 난 저놈의 사체를 처리할 기운이 없다

아니 애초에 남의 집 닭을 건드릴 생각을 할게 아니라 방문이라도 해야 그게 정상이지

그나마 위안이 될 수 있는 것 중 하나는 우리 집 베란다 창문은 방음이 정말 잘 된다는 점이겠다

이런 역경만 아니었다면 필시 자연풍을 택하고 팠던 나는 오늘 저 창문을 닫고 에어컨을 틀고 잘 예정이다

그때 섹스앤더시티의 여주인공이 그랬었다

끝내 참지 못하게 된 여주인공이 불만을 토로하기 위해 용기 내어 방문한 이웃의 정체는 수의사였고

지붕 위 철창에 담겨 밤새 울며 여주인공을 괴롭히던 닭들은 사실 동물학대 현장에서 구출해낸 가엾은 친구들이었다나

저 닭들은 자유를 갈망하고 있어요 라는 수의사의 말에

여주인공은 아니 띠용 그렇다면 제가 참을게요 자유라니 으으윽 하며 제 집으로 돌아가버린다

아 여주인공이 정말 착하다 자신의 수면욕의 자유를 얻을 수 있는 순간이었는데 그걸 순순히 포기하며 돌아선다니

근데 난 저 이웃집까지 찾아가는 게 너무 귀찮다 이미 밤이 깊었는데 저길 언제 방문해 어쨌든 저 집주인이 수의사는 아닐텐데

튼 창문도 닫았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난 에어컨을 틀었다 이어플러그도 있으니까 오늘은 깨는 일이 없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