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스크 패러블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7.5  18  19  20  21  특별편  22  23  24  25  26  27 27.5  28  29  30  31  32  33  34  35  36  37 38 ]



 정말로 그렇게 한참 동안 있었다. 프리스크는 결국 울다가 지쳐 주저 앉은 채로 있었고, 파이널 프로깃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면서 너를 쳐다보고 있었다. 너는 더 이상 움직일 의지가 없었다. 너가 다른 괴물을 스스로 죽이려고 했으며, 게다가 너가 죽이려고 했던 그 괴물이 너를 구하고자 애썼다는 사실이 너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지금까지 너가 해온 말들과 행동에 완전히 반대되는 그 행위, 곧 살인 미수였다. 그 단어가 너의 머릿속에 들어와 헤집어 놓고 있었고, 넌 어떠한 저항도 하지 못 했다.

 나도 뭐라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위험하니, 남을 희생해야 한다. 프리스크가 했던 이 판단은, 정말 본능적이었지만, 동시에 정말……, 나다웠다. 프리스크는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내가 도와줘야 했다.


 "프로깃 씨."

 "개골?"


 나는 나뭇가지를 집어 들었다. 조금 후들거리는 다리를 짚고, 나는 주저앉았던 그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갑작스럽게 일어나는 바람에 파이널 프로깃은 놀라면서 하얀 나비들을 거둬야 했다. 그리고 다시 차분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 보면서 내가 무슨 말을 꺼낼지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프로깃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무릎을 굽혀 프로깃을 안아주었다. 프로깃의 불타는 듯한 모양의 몸이 꿈틀거렸다.


 "고마워요."


 다른 할 말은 없었다. 두 마디 이상의 말은 필요하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말했고, 파이널 프로깃은 나의 말을 완전히 이해했다.


 "하지만, 전 아스고어를 만나야 해요."


 파이널 프로깃이 방심했다. 나는 프로깃을 감싸 안은 팔에 힘을 주어 프로깃을 옆으로 밀어 넘어뜨렸다. 파이널 프로깃이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울었다. 미안했다. 하지만, 설명할 시간은 없고, 파이널 프로깃을 지나가야 했으므로 이 방식이 가장 현명했다.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싶었지만, 나는 바로 앞에 있는 또 다른 괴물을 상대해야만 했다.


 "오, 자기."


 프리스크를 떨어뜨리고 튀어놓곤, 여기에 있었다. 금속으로 된 몸체를 하고 있던 것은 여느 때와 똑같았지만, 네모 화면에는 불빛이 점멸되지 않았다. 그리고 항상 기계 팔 어딘가에 들거나 숨겨두고 있던 마이크가 보이지 않았다. 내가 들어온 이 방은 꽤 어두웠고, 나와 메타톤만이 오롯이 그곳에 있을 뿐이었다.


 "아스고어는 착한 괴물이에요. 동시에 우리의 왕이죠. 만약 자기가 아스고어에게 간곡히 부탁하면 지나가게 해줄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글쎄요, 그러진 않을 것 같아요. 결국 자기는 죽을 거예요. 자기가 아스고어를 죽일 수는 없을 거고요."

 "……."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메타톤은 맞는 말을 하고 있었다. 나는 아스고어를 죽일 수 없다. 내가 만약 죽고 살아나기를 반복해서, 결국에 아스고어를 죽이려 노력한다고 해도, 프리스크는 절대로 그러지 못 하게 막을 것이다. 프리스크가 하지 않고 싶다면, 나도 할 수가 없다. 방금 멋들어지게 생긴 개구리 하나 죽이려고 해서, 충격을 받고 아무것도 못 하게 된 애다. 괴물들의 왕을 죽이면 어떻게 될지 상상도 하기 싫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나도 아스고어를 죽이고 싶지 않다.


 "메타톤, 왜 그러는 거죠?"

 "자기, 왜 그러냐니요."

 "저는 인간이에요. 괴물들이 이 감옥을 빠져나갈 수 있게 해주는 열쇠라고요. 그런데 왜 취하려 하질 않는 거죠?"


 메타톤이 기계 웃음 소리를 내면서 뒤집어지려고 했다. 내 딴에는 꽤 진지하게 한 질문인데, 외바퀴를 마구 돌리면서 엄청나게 재밌다는 듯이 웃어대니, 그렇게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메타톤의 네모 화면이 노란색과 빨간색으로 반복적으로 점멸되며 나를 쳐다봤다. 네모 화면의 점멸이 하트 모양을 그리고 있었다.


 "맞아요! 저 바깥으로 나가면 지하의 대스타가 아닌 지상의 대스타가 될 기회가 생기겠죠! 제 방송국도 하나 다시 세울 거고요. 정말 훌륭한 일일 겁니다. 그리고 그거 알아요? '살인 로봇의 습격 - 마지막 인간의 영혼'이라는 프로그램으로, 당신을 죽이는 쇼를 하면 시청률이 하늘을 찌를 겁니다! 정말로요. 정말 꿈만 같은 일이에요! 하지만, 전 봤어요!"


 메타톤이 과도한 액션을 취하다가, 기계 손으로 너를 조용히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당신은 몸을 던져 가면서 꼬마애 하나를 살려줬어요! 당신을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괴물에게 찾아가 따뜻한 말을 건네고 같이 요리도 했어요! 게으른 괴물도 하나 갱생시켰고! 근위대가 되는 것이 꿈이었던 괴물마저 자기 편으로 끌어들였어요! 스노우딘의 추위를 버티려고 목도리를 두르고 있는 괴물의 투정을 듣고 슬퍼 했어요! 괴물들을 구해주겠다고 큰소리도 치고 다녔죠! 세상에! 제가 자기에 대해 얼마나 더 설명해야 하죠? 이런 당신을 죽이고 결계를 부수라고요? 전 그렇게 생각 안 해요!"


 메타톤은 팔을 꼬고 외바퀴를 들썩이며 다시 말했다.


 "하지만, 아스고어는 그럴 수 없어요. 아스고어는 자기를 죽여야만 해요. 우리의 왕이니까요. 우리의 희망과 자유를 약속한 왕이니까 자기를 죽이려고 할 겁니다. 그건 지하 세계의 그 어느 누구도 막을 수 없어요! 그렇다면, 아스고어가 당신의 존재를 모르도록 못 만나게 하는 수밖에 없죠!"

 "제가 아스고어를 만나야 한다면요?"

 "만나서 어쩌시려고요?"

 "몰라요."

 "세상에, 그러면 가지 마요! 왜 가려고 하시는 거죠?" 

 "혼자서라도 결계를 넘어가야죠." 


 거짓말이었다. 보통 괴물들은 결계를 깨는 데에 인간의 영혼 일곱 개가 필요하다는 사실만 알지, 괴물 하나가 지나가는 데에 인간의 영혼 하나가 필요하단 사실은 알지 못 한다. 나는 인간이니까 순서가 반대겠지만 별 상관 없다. 어쨌든 메타톤이라고 예외는 아닐 것이다.

 너와 샌즈가 결계를 통과하는 것에 대해 대화하는 장면을 연구소의 감시 화면으로 본 적이 있었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아마 메타톤은 그 부분까지 엿보진 않은 것 같았다

 "아스고어는 절대로 자기가 도망치게 두지 않을 거예요."

 "한 번 시험해보실래요? 제가 도망을 치는지 못 치는지?"


 나뭇가지를 꽉 쥐었다. 메타톤은 내가 그냥 지나가게 내버려두지 않을 거고, 그렇다면 결국 싸울 수밖에 없다. 내가 메타톤을 죽일 수는 없다. 이딴 나뭇가지로 저 금속체를 박살낼 수도 없고, 그리고 박살낼 생각도 없다. 최대한 시간을 끌면서 힘을 빼놓은 다음에 기회를 봐서 도망치는 수밖에 없다.


 "자기, 정말 이러고 싶진 않았어요." 


 메타톤이 자신의 두 기계팔을 빠른 속도로 빙빙 돌렸다. 마치 두 개의 선풍기 바람을 나를 향해 보내는 것 같았다. 꽤 장난스러워 보이는 동작이긴 했지만, 너를 쫓아내려는 메타톤의 전투 준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메타톤은 나에게 다가오지 않았다. 오히려 뒤로 물러났다. 메타톤은 계속 나에게서 멀어졌고, 나는 메타톤이 도대체 무엇을 할지 알 수가 없어서 나뭇가지를 꽉 붙잡고, 당장이라도 옆으로 몸을 던지거나 달릴 준비를 했다. 어느 순간, 메타톤이 멈췄다. 하지만, 메타톤은 팔을 빙빙 돌리길 멈추지 않았다. 메타톤은, 자신의 뒤에 있던 길에 서 있었다.

 잠깐, 나 저기로 지나가야 하는데?


 "하하하! 자기는 절대 못 지나가요! 아스고어에게 가는 길을 여기 하나 뿐이랍니다! 하하하! 이제 괴물들과 행복하게 지낼 시간이 남은 거예요!"


 이런 미친.


 메타톤의 금속 몸체는 도대체가 뚫을 수가 없다. 단언컨대 내가 봐온 지하 세계의 괴물 중에 가장 단단했다. 어떤 식으로든 부술 수가 없다. 저런 엄청난 장애물이 내가 지나가야만 하는 길을 가로 막고 있었다. 좌우에 남은 틈도 없고 메타톤이 난잡하게 기계 팔을 휘두르고 있는 와중에 다가갈 수도 없었다. 저 기계팔을 휘두르지 않고 가만히 있는다고 해도 지나갈 수가 없을 거다. 마치 계획된 것처럼, 메타톤의 몸체와 저 길의 크기는 완벽하게 들어맞았다.


 "치, 치사해요!"

 "하하하!"


 망할 로봇 웃음. 나는 메타톤 쪽으로 다가갔지만, 메타톤이 휘두르는 기계팔의 소리에서부터 압도됐다. 스치면 나뭇가지도 박살 난다. 뚫고 나갈 구멍이 없었다. 

 주변을 둘러봤다. 역시나 다른 길은 없었다. 그저 내가 들어왔던 길만이 다른 곳으로 향하는 유일한 길이었다. 메타톤에게 매달려 있는 것보단, 다른 길을 찾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나는 메타톤에게 시간을 낭비하는 것보단 다른 곳으로 가는 게 낫다고 생각하고 일단 거기서 달려서 빠져 나왔다. 뒤에서부터 들리는 메타톤의 목소리가 거슬렸다.


 "하하하! 다른 길을 없어요, 자기! 저는 언제까지고 이러고 있을 수 있답니다!"


 진심인 것 같았다. 망할.

 옆에 있던 엘리베이터는 코어의 입구로 가는 경로밖에 없었다. 엘리베이터로 움직이거나 하는 방법은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 저 상태의 메타톤을 말로 설득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굉장히 지루하고 소모적인 말싸움이 될 것이다.

 나는 주변을 둘러봤다. 아무리 봐도 다른 길이 있을만한 곳은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이곳의 구조는 나보다 메타톤이 잘 알 거고, 다른 길이 없다면 정말로 없을 것이다. 저런 어이없는 수단으로 길을 가로막힐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저, 저기……."


 갑자기 어딘가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옆을 돌아봤다. 작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벽 모서리에서 얼굴만 빼꼼 내밀고 나에게 말하고 있었다. 이내, 나에게 모습을 제대로 드러내며 작은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내, 내가 지름길을 알아."


 알피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