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백한 말 재정주행하다 급 뽕차서 씀.

토리엘 노멀 루트 토리엘 사망시.










"네 강함을 증명해보렴."


아가. 네가 내게 온 순간을 기억하고 있단다. 내가 나로 있는 한, 설령 세계가 수천 번 부서지고 다시 세워지더라도 네가 왔었다는 사실을, 네가 온 그 날을 잊어버릴 일은 없을 거란다.


"네가 이 지하에서 살아나갈 수 있을 정도로 강하다는 걸..."


짓이겨진 풀꽃의 향기에 듬뿍 적셔진 네가 내게 왔었지. 내가 그 향기가 어떤 꽃의 향기였는지, 네 머리카락에 아롱이는 꽃잎이 어떤 꽃이었는지 떠올리는 데는 조금 시간이 걸렸었단다. 나는 지상에 있었을 때에는 괴물들이 자랑으로 여길 정도의 화원을 돌보고 있었는데도.

아가. 나는 널 만나고서 내가 지하에서 하늘을 그저 올려다보게 된 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났는지 깨달았단다. 네가 내 손을 잡아주려 손을 뻗어오던 때, 사랑스럽게 여길 수밖에 없는 머뭇거림을 기다리며 나는 시간이 흐른다는 말을 다시금 실감할 수 있었단다.


아가. 너는 인간의 아이였지. 우리에게 태양과 달을 빼앗고 소원을 매달 별하늘 한 조각조차 허락하지 않은, 우리를 지하에 가두고 잊어버리기를 선택한 인간들의 아이였지. 네가 우리들의 역사를 배우며 그 사실에 죄의식을 느꼈었다는 걸 알고 있단다.

하지만 아가. 네가 우리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 간 인간의 아이였음에도 말이다. 네가 우리에게 아침과 밤을 돌려주었단다. 낮도, 밤도, 아침도, 저녁도, 여명도, 황혼도 잊어버린 이 지하에서 네가 우리에게 오고서야 나는, 우리는 산다는 게 무엇인지 겨우 실감할 수 있었단다.


널 기다리며 어지럽혀진 방을 정리하고, 네가 언제쯤 깨어날까 시간을 가늠하며 파이를 굽고, 네 전화와 전화 사이를 가슴설레하며 기다리는 그런 사소하기에 눈물겨운 것들이야말로 삶이라는 것을 나는 정말로 오래도록 잊어버리고 있었던 거란다.

네가 나를 처음으로 엄마. 라고 불러도 괜찮겠냐고 물어본 때. 더 이상 울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도 나는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려버리고 말았었지. 언제나 몸가짐을 조심하는 구석이 있었던 네가 초콜릿을 한 조각 더 먹어도 되느냐고 내 옷자락을 잡고 조심스럽게 물어오던 때 들렸던 심장이 기쁨으로 철없이 뛰는 소리가, 아가. 나는 내 심장이 어디 있었는지조차 오래도록 잊어버리고 있었다고 고백한다면 믿어주겠니?


부모란 자식이 태어날 때 같이 태어나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존재라고들 하더구나. 그 말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내가 진실로 그 말의 참됨을 실감한 것은 조그맣고 따뜻한 너희들의 몸을 끌어안고 정수리에 입 맞췄을 때란다. 네가 자라는 것만이 내 보람이었고, 네가 웃으며 문 안으로 뛰어 들어올 때부터가 나의 의미 있는 시간의 시작이었단다. 너희들만이 내 모든 것이었고, 삶이었단다. 살아갈 희망이었단다.

하지만 나는 어리석었었고, 그렇기에 나는 깨닫지도 못한 사이에 너희를 놓쳐버렸었지. 기적과도 같은 너희를 당연히 여긴다는, 너희가 언제까지고 내 옆에 있어줄 거라고 여기는 실수를 저질러 버린 거야. 아가. 네가 너 스스로가 인간임에 부채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나는. 엄마라면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당연히 알았어야 했는데도 나는 그걸 후회라는 방식으로 배우지 않았다면 결코 깨닫지 못했을 정도로 바보 같은 여자였던 거란다.


하지만 후회하고 후회한들 너희는 이미 나를 떠나버린 지 오래였지.

그리고 나는 다시 시간을 잊어버렸단다.


"잘 들으렴..."


하지만 아가. 내 아가.

새로운 네가, 이상한 노란 꽃과 함께 찾아온 거야.


손을 내밀면 너는 내 손을 한참이고 바라보다 노란 꽃물이 든 손을 옷깃에 몇 번 닦아내고 내 손을 잡아주었지. 네 손에서는 언제고 너를 만날 때마다 났던 그 눈물겨운 꽃즙의 냄새가 나고 있었단다.


"이 문으로 걸어 나가면, 최대한 멀리 걸어 나가렴..."


내 말을 주의 깊게 듣곤 더미 인형에 말을 걸어줄 때, 먼저 걸으면 당연하다는 듯이 뒤따라와 내 옷깃을 살며시 잡아주었을 때, 생면부지의 나를 믿고서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복도를 걸어가 주었을 때, 전화로 엄마. 라고 불러도 괜찮겠느냐고 물어보았을 때, 스스럼없이 좋아하는 파이의 종류를 말해주었을 때.

알맞은 침대에 폭 잠겨 세상모르고 잠들어있던 널 보았을 때..

아가. 그런 네가 얼마나 사랑스러웠는지..


"그럼, 출구를 찾을 수 있을 거란다..."


살면서 이토록이나 누군가를 절실히 사랑하게 될 줄은, 너희들을 만날 때까진 알지 못했었단다.

아가. 너희들은 이토록이나 어리석고 못난 여자인 엄마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었지. 모든 것을 잃어버린 나에게 다시 찾아와 준 너. 아무것도 없는 볼품없는 여자인 나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너였고, 사랑할 것도 너뿐이었단다 아가.


"아스고어...아스고어에게 영혼을 빼앗기지 말렴..."


아가. 나는..너희를 잃어버리고서 나는 너무나도 오랫동안, 사무치도록 외로웠었고


"그 자의 계획이 성공해선 안 돼...."


너는 사랑하지 않기에는 너무나도 사랑스러웠었단다.


"착하게 살아야 한단다...알겠지..?"


그래.


"내 아가....."


내게는, 그거면 충분했던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