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토비 폭스, 언더테일.
김보영, 스크립터. http://teen.munjang.or.kr/archives/2327
“그리고 아무도 오지 않았다.”
허공에서 들려온 말이었다. 프리스크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에봇산의 꼭대기에서 누군가 땅을 향해 내려오고 있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인간이었지만, 군데군데 괴물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토리엘의 뿔, 샌즈의 푹 꺼진 눈, 파피루스의 머플러, 언다인의 장갑, 알피스의 실험가운.
프리스크가 미간을 찌푸렸다. 마치 자신을 놀리기 위해 준비된 모습 같았다.
“참 오랜만에 듣는 말이죠? 프리스크 씨.”
지상에 발을 내디딘 사내는 기쁜 듯이 웃었다.
“아, 미안해요. 프리스크는 당신 이름이 아니라 그 캐릭터의 원래 이름이었나요? 아니면 차라였나? 뭐, 어느 쪽이든 상관없겠죠? 이 세계에 들어온 이상. 저도 이 세계의 규칙을 따르는 게 순리일 테니까요.”
“넌 대체 뭐야.”
무미건조한 목소리였다. 사내는 프리스크의 말을 무시하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우와. 이 게임의 스타팅 포인트는 왜 이렇게 음침해요? 보아하니 여긴 동굴이나 던전, 뭐 그런 곳인가요? 꽃 한 송이라도 심어놓고 있으면 분위기가 한결 더 나아질 텐데.”
“넌 대체 뭐냐고 물었어.”
프리스크의 목소리가 한결 더 거칠어졌다. 사내가 쿡쿡 웃었다.
“에이, 사람들 사이에서 게임 용어 좀 썼다고 그렇게 차갑게 나올 필요는 없잖아요? 선생님 소문은 이미 저희 팀에 파다하게 퍼졌어요. 게임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현실을 잊어버린 폐인, NPC인 척 하고 신규 유저들을 골탕 먹이는 데 일조하는 괴짜…. 이런저런 루머가 나돌고 있지만, 저는 선생님을 그래도 긍정적으로 보는 편이랍니다.”
“그 모습은 뭐지?”
프리스크가 눈을 흘겨 뜨고 물었다. 사내는 두리번거리다 자신을 향한 질문임을 깨달았다.
“아, 이거요? 신경 쓰지 마세요. 게임에 접속하려고 했는데 외모를 설정해야 한다고 해서 생성 창에서 랜덤으로 돌린 결과물이거든요. 원래는 캐쉬를 내야 했던 것 같은데, 이젠 언제든지 바꿀 수 있어요. 제가 이 게임의 마지막 남은 운영자거든요. 절대 고의가 아니었어요. 기분 나빴다면 사과드립니다.”
사내의 몸 위로 사각형의 역장이 솟았다. 역장이 꺼지고 드러난 사내의 모습은 괴물의 자취를 찾아볼 수 없는 정상적인 모습이었다.
그 모습이 오히려 프리스크를 더욱 역겹게 만들었다. 프리스크가 상대도 하고 싶지 않다는 얼굴로 쏘아붙였다.
“무슨 말을 하려고 이곳 에봇산까지 올라온 거야.”
“에봇산이요? 그게 이 게임의 프롤로그였던가요?”
사내가 머리를 긁적였다.
“제가 스킵을 선호하는 편이라 프롤로그를 다 보지는 않았거든요. 사실 저는 이 게임의 배경에 대해서도 잘 몰라요. 운영자라는 사람이 정작 자기가 맡은 게임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없다니, 참 우습죠? 하하.”
사내가 흙 한줌을 들어 올렸다. 손가락 사이로 도트 사이즈의 흙 알갱이들이 흘러내렸다.
“이야. 이거 도트바닥이네요. 그렇죠? 타일 사이즈를 보아하니 16 곱하기 16…. 한 번 만들어놓으면 편하긴 하겠지만, 요새는 이런 타일 방식을 거의 쓰질 않아요. 하물며 가상현실에서야.”
사내가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보았다. 도트로 구성된 그의 팔과 다리가 기계적이면서도 고정적인 움직임만을 선보였다.
“등장인물들의 역동적인 움직임을 그려내는 데엔 3D보다 나은 점이 하나도 없거든요. 3D야 그저 모델링만 조금 바꾸면 되는데, 아시다시피 도트는 그렇질 않잖아요. 프레임 하나하나를 다 생각하면서 깨알같이 도트를 박아 넣어야 하니까요. 게다가 무슨 모션이라도 하나 추가하는 날에는… 그래픽 담당은 그날로 죽어나는 거죠.”
사내가 끅끅 웃었다. 그의 눈이 어둠 속에 비친 괴물 세계의 관문을 향했다.
“아직 판단하기엔 좀 이르지만, 프롤로그만 봤을 때는 별로 성의 있게 만든 게임 같지가 않네요. 게임의 첫 도입부를 이렇게 음침하게 만든 이유를 전혀 모르겠어요. 소수 매니아 층만을 노린 게임이었나요? 아니면 이 시절엔 이런 도입부가 유행이었나?”
“여기엔 꽃 한 송이가 있었어.”
사내가 고개를 돌렸다. 프리스크가 양지바른 곳 위에 쭈그려 앉아 중얼거리고 있었다.
“플라위라는 이름이었지.”
“플라위요? 와, 그거 되게 성의 없는 이름이다. 운영진이 그렇게 지은 건가요?”
“그의 진짜 이름은 아스리엘이다.”
프리스크가 무덤덤하게 대꾸했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사내가 김빠진 미소를 흘렸다.
“뭐에요, 그게. 지금 저랑 농담하신 거예요?”
“아니.”
프리스크가 고개를 저었다.
“단지 있는 사실을 그대로 말한 것뿐이야.”
“아, 이제 알겠다. 그런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뭐 그런 말씀이시죠?”
사내가 프리스크를 향해 몸을 옮겼다. 프리스크가 그와 눈을 맞대고 물었다.
“무슨 목적으로 여기까지 올라왔지? 원하는 게 뭐야?”
“흠. 예상했던 것보다 꽤나 단도직입적으로 물어주시네요. 제 도발 작전이 통한 걸로 쳐도 되죠?”
프리스크는 말이 없었다. 그 모습을 본 사내가 실쭉 웃었다.
“좋아요. 선생님이 원하시는 만큼 저희도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하죠.”
사내가 헛기침을 내뱉곤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선생님께서도 아시겠지만, 수십 년 전에 어떤 회사에서 ‘언더테일’이라는 인디게임의 판권을 사들였어요. 당시에 한창 주가가 오르던 가상현실 온라인 게임으로 개조하기 위해서요.”
프리스크는 그 말에 신경 쓰지 않고 토리엘의 집을 향해 걸었다.
사내가 그 뒤를 따라 나서며 장문의 말을 늘어놓았다.
“당시 선생님께선 클로즈베타 테스터셨고, 최종 던전의 불살 루트를 가장 먼저 찾아내신 보상으로 평생무료계정이 제공되었죠. 나중에 게임이 부분유료게임으로 전환했을 때에도 선생님의 계정은 어떤 특권이 적용되었다고 들었어요.”
드문드문 떨어진 꽃잎들을 밟으며, 두 사람이 육각형의 방 안에 발을 들였다.
방 모양처럼 여섯 개로 된 스위치 배열이 바닥 아래 놓여있었다. 사내가 눈빛을 보내기도 전에 프리스크가 먼저 순서대로 스위치를 밟았다.
쾅. 문이 열렸다. 두 사람은 다음 장소로 향했다.
“뭐, 제가 거기까지는 알 바 아니고. 어쨌든 세상이 많이 변했어요. 가상현실 온라인게임은 이제 대세가 아니에요. 사람들은 보다 직접적으로 타인과 마주치는 일에 열광하게 되었고, 언더테일 온라인을 비롯한 여타 게임들은 하나 둘씩 서버를 닫게 되었죠.”
복도를 거닐던 프리스크가 어느 더미인형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낡은 헝겊과 바느질만으로 구성된 더미인형이었다. 군데군데 튀어나온 도트자락과 실밥을 보니 형편없는 몰골이었다. 프리스크는 그를 향해 말없는 인사를 건네고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이쯤 되면 선생님께서도 예상하셨겠지만, 저는 그 언더테일 온라인을 인수한 게임회사의 직원이에요. 저희 회사의 경영방침이 돈 안 되는 게임은 문을 닫아야 한다는 입장이라…. 아무래도 언더테일 온라인에까지 손이 미칠 수밖에 없었다고요.”
지그재그로 구부러진 복도를 건너, 가시트랩이 쫙 깔린 방에 도달했다.
사내를 흘겨보던 프리스크가 여의치 않다는 듯 그에게 손을 건넸다.
차가운 손이였다. 사내가 피식 웃고는 프리스크의 손을 잡고 걸었다.
“현재 이 게임에 접속하고 있는 사람은 저를 빼고 나면 선생님 단 한 분뿐이더라고요. 평생무료 계정을 받은 사람도 선생님 단 한 분뿐이고, 지난 1년간 이 게임에 접속로그가 남아있는 사람도 선생님 단 한 분뿐이었어요. 마음 같아서는 당장 공지를 올리고 서버를 내려버리고 싶지만 저희 회사에도 나름대로의 경영방침이 있거든요?”
길게 쭉 뻗은 복도를 지나 아래로 떨어지는 함정 투성이인 방을 건넜다.
돌을 쌓아 지나가야하는 함정의 방에서, 프리스크는 말하는 돌에게 인사를 건네며 모처럼의 호의를 보여주지 않겠냐고 부탁을 해왔다.
돌은 귀찮다는 듯이 툴툴거렸지만, 이내 자리를 옮겨 길을 열어주었다.
“마침 선생님께서도 이 자리에 계시니 한 말씀만 여쭙겠습니다. 얼마를 원하세요? 필요하신 금액을 쭉 불러주세요. 이미 가상현실 온라인게임은 시대가 다 지났단 말입니다. 추억의 상징, 구시대의 전유물 정도로 남은 상태라고요.”
금액을 부르라는 말에 솔깃할 법도 했지만 프리스크는 고개 한번 돌리지 않았다.
입술을 질끈 깨물고 보라색으로 도색된 도트 발판을 걸어 나갈 뿐이었다.
“아무도 안 해요. 유입도 없고, 더 이상 신작이 나올 기미조차 보이질 않죠. 캡슐 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는데 유통 회사들은 줄줄이 도산했어요. 장르로 통하는 생명줄이 무너져버렸단 말입니다. 이런 게임을 이제 더 이상 누가 하겠어요?”
상호소통을 거부하던 두 사람 사이의 대화가 끝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토리엘의 집에 당도한 것이다.
지하실로 향하는 프리스크의 뒤에서 쉴 새 없이 권유가 이어졌다.
“선생님께서도 잘 생각해보세요. 이건 한 밑천 잡을 절호의 기회입니다. 제 입으로 이런 말 꺼내긴 좀 뭐하지만, 저희 회사는 유저와의 신뢰를 이제껏 단 한 번도 깨뜨리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거든요? 설령 돈이 아니라도 좋습니다. 사실 저희 회사가 이런 저런 쪽에 연줄이 닿아 있거든요? 원하신다면 저희 측에서 직접 알아봐드릴 수도 있는데….”
“여, 프리스크?”
지하실의 끝에서 파카 차림의 해골 한 녀석이 손을 내밀었다.
푹 꺼진 두 눈이 사내를 향했다.
“이 녀석은 뭐야? 또 산 위에서 떨어진 녀석인가?”
“어떻게 저를 알아보는 거죠? 운영자 캐릭터는 npc에게 투명한 상태로 나타날 텐데?”
사내가 눈을 흘겨 떴다. 이런 사태는 전혀 예상치 못한 얼굴이었다.
한참 생각하던 사내의 입에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아! 그렇군요. 기억났어요. 이 npc가 샌즈죠? 접속하기 전에 들었던 것 같아요. 이 npc는 유저의 전회차 기록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서요?”
“어? 내 이름을 알아?”
샌즈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다가왔다.
사내가 미간을 찌푸렸다.
“이 게임의 세계관은 어떻게 되는 거죠? 이거 몬스터 아니에요? 이 게임의 세계관은 인간과 괴물이 같이 공존하는 건가요?”
불쾌한 어조로 중얼거리던 사내가 샌즈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그의 정면에 상태창이 떠올랐다.
“아니, 이게 뭐야? 공격력 1. 방어력 1? 아무리 구식 게임이라지만 이건 좀 너무한 스탯 같은데요?”
“이 녀석이 아까부터 무슨 소릴 지껄여대는 거야? 산에 들어올 때 머리부터 떨어졌나?”
“신경 쓰지 마. 그릴비나 가자고.”
프리스크는 샌즈의 손을 붙잡고 느긋한 발걸음으로 방을 빠져나갔다.
그 뒤에서 사내의 비명에 가까운 목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선생님! 아무리 현실도피를 하려고 해봤자 소용이 없어요! 저흰 어떻게 해서든 선생을 로그아웃시킬 방법을 찾아낼 거고, 언더테일 온라인은 결국에는 문을 닫게 될 겁니다! 이건 선생님을 위해 드리는 충고에요! 제 말 듣고 계시죠?”
천천히쓰는중
기-묘
일단 문학에는 개추알갱이를...
꿀잼;
스탠리패러블 생각나네
가상현실 온라인이 한물 갔다면 어떤 종류의 유희거리가 유행하는거냐
오 어서담편을!!!!
오 내 취향이야 더써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