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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이 열렸다. 오랜만에 보는 풍경이었다. 드리무어 가족와 함께 살던 집의 지하실을 통해서 나오면 있던 길이다. 여기에 엘리베이터는 없었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풍경은 비슷했다. 회색으로 칠해진 길과 풍경들, 괴물들이 사는 웬만한 동네는 여기서 볼 수 있다. 도대체 어떤 구조로 이뤄져야 여기서 다른 괴물의 집들을 볼 수 있는 위치가 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건 그때나 지금이나 불가사의하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났을 텐데, 바뀐 게 그다지 없다.
알현실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이상하리만치 조용했고, 조금만 더 앞으로 가면 아스고어를 만날 거라는 생각에 손에 땀이 쥐였다. 어차피 만날 괴물이라면, 만나야 한다. 아스고어와 대화를 하든, 도망쳐서 결계로 직행하든 어떤 일이든 해야 했다. 딱히 뭘 해야 할지는 모르겠다. 다만, 아스고어를 만나야 한다는 것 정도만 알 수 있었다. 문을 지나가고 싶다면 문지기를 만나는 게 당연하니까.
조금이라도 발을 헛디디면 추락할 수 있는 위험한 벽돌길이었다. 양 옆에 난간 같은 거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그런 건 딱히 없었다. 정말로, 바뀐 게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며 나는 계속 앞으로 걸어갔다. 아스고어는 나를 보면 무슨 반응을 보일까? 답은 뻔했다. 별로 탐탁지 않아할 것은 분명했다. 딱히 인간과 전쟁을 한다거나 영혼을 취하는 것 따위를 좋아서 할 인재는 아니었다. 내가 버터컵의 독성을 확인해보려고 아스고어가 먹을 음식에 넣었을 때, 그리고 아스고어 내가 그 독을 넣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아스고어의 반응은 참 웃겼다. 그저 웃으면서, 괜찮다고 했었다. 독살당할 뻔했는데, 웃으면서 괜찮다고 하다니. 난 별로 이해가 안 됐다. 그래서 나도 웃으면서 괜찮다고 해주었었다.
……, 별로 칭찬받을 만한 짓은 아니었다.
길의 끝에 다다르고 궁전의 입구에 이르렀다. 나는 잠시 멈춰서 주변을 다시 둘러봤다. 회색의 벽돌로 지어진 수도와 그 길들, 길 옆으로 보이는 풍경들, 오랜만이었다. 다양한 생김새의 괴물들이 거리를 걸어다니는 게 보였다. 개중에는 떠들며 웃는 괴물들도 있었고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가만히 있거나 그저 걷는 괴물들, 노점을 운영하는 괴물들, 바닥을 기어다니며 의미 없어 보이는 행동을 하는 괴물들, 인간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을 하며 아무렇지 않게 다니는 괴물들이 있었다. 다들 잘 살고 있었다.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었다.
작다면 작고, 크다면 큰 산 아래에서, 사실 그들에게 지옥이자 감옥인 곳에서 어떻게든 잘 살고 있었다.
궁에 들어가기 전에 보이는 지하 왕국의 문양이 보였다. 괴물과 이들을 구할 천사의 상징을 그린 델타 룬이었다. 뭐였더라, 밑에 있는 점은 괴물이고 위의 날개는 천사라고 했었나? 지상을 보고 온 천사가 지하 세계의 괴물들을 구할 거라는 예언에 따른 왕국 문양이다. 지상을 보고 온 천사들을 죽여서 영혼을 취한 다음 결계를 부술 생각이라면 꽤 알맞는 왕국 문양이다. 나는 궁으로 들어가는 입구로 들어갔다. 입구 옆에 엘리베이터가 있었는데, 굳이 여기에 왜 엘리베이터가 있는지 모르겠다. 아니면 애초부터 여기 도착하게 해주던가.
입구에 들어서자 화려하게 장식된 스테인드 글라스 같은 창문들과, 알현실로 이어지는 홀이 보였다. 여긴 정말로 화려하게 생겼다. 쓸데 없이 많이도 박힌 기둥들, 지상에서 새어 들어오는 빛들을 받아 찬란히 빛나는 유리창들, 그리고 그 복도의 중간에 서 있는 한 괴물.
"안녕, 꼬마야."
"안녕, 샌즈."
아무렇지도 않게, 후드 주머니에 두 손을 꽂은 채로 나에게 안녕이란 말을 건네는 괴물, 샌즈였다. 나는 샌즈에게 다가갔다. 평소처럼 귀에 걸릴 듯 웃는 표정을 지은 채로 나를 그 자리에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무슨 말을 하려고 여기까지 와서 기다린 건지 모르겠다. 아니, 기다린 건지, 살짝 먼저 온 건지는 모르겠다.
"너 정말로, 아무도 죽이지 않고 잘 했구나. 정말 친절한 꼬마네."
"사람을 의심하고 믿지 못 하는 게 그렇게 좋았어, 샌즈?"
잡담 할 생각 없다.
"의도적으로 지하실로 프리스크를 끌어들이고, 굳이 너의 가짜 진심을 내보이면서 완전히 믿지는 않고 있다는 걸 내비치고, 그것 때문에 프리스크는 상처 받고, 너는 너대로 짜증나고, 도대체 어느 부분이 너한테 이득이라 생각한 거야?"
"헤헤."
"웃지만 말고, 말을 해!"
"그냥, 난 어떤 상황이든 책임질 수는 없었다고만 말해줄게."
뭘 책임진다는 건가? 아무도 오지 않는 벤치에 혼자 앉아서, 메아리꽃에 지껄이던 말을 나한테 또 말하고 있었다. 자신이 의지의 힘에 대해서 알고 있으니, 무슨 일이 일어나든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없고, 거기에 대해서 어설프게 개입할 생각은 없다는 건가? 요컨대, 프리스크가 정말 착한 인간이든, 정말 나쁜 인간이든 간에 자신이 정말 할 수 있다는 건 없다는 말이었다. 프리스크에게 잘해준 것도, 중간에 가선 오판이라고 생각한 걸까? 슬슬 샌즈의 생각에 대해 추측하는 게 무의미한 것 같았다.
첫 번째 가능성, 샌즈는 프리스크를 믿지 못 하지만 비위를 맞춰줬다. 두 번째 가능성, 프리스크를 믿고 싶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생각해보니 사실은 무의미하다고 판단했다. 세 번째 가능성, 프리스크를 믿든 말든 일단 '의지'의 힘을 경계했다. 네 번째, 밥을 잘못 먹어서 머리가 쳐돌았다. 첫 번째랑 세 번째 건 제끼고, 두 번째랑 네 번째가 남았는데, 내가 봤을 땐 네 번째가 맞다.
"아무도 너에게 책임을 요구하지 않았어."
나는 샌즈를 무시하고 아스고어에게 가기로 했다. 샌즈가 나를 쳐다보면서 가로막든 얘기를 계속 하든 내 알 바 아니다. 나는 나뭇가지를 쥐고 샌즈의 옆을 지나 알현실 쪽을 향해 걸어갔다. 샌즈는 나를 막지 않았다. 그저 똑같은 자세로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생각보다 싱거운 반응에 나는 뒤를 돌아봤다.
"샌즈, 넌 도대체 왜 여기서 나타난 거야?"
"헤헤."
굳이 왜, 이 홀에서 모습을 나타냈냐고 물어보고 싶었다.
"너를 떠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 같아 보였으니까."
"누굴 떠 봐? 나? 아니면 프리스크?"
샌즈는 잠시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샌즈는 슬쩍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어느 쪽이든, 별로 상관 없어 보이는 걸."
"무슨 말인진 모르겠는데, 할 말은 하고 가야겠어. 어차피 너한테 프리스크가 어떤 애인지에 대해서 알려줘 봤자 소용 없을 거 같고, 다른 말을 해줄게. 누구한테 상처를 줬으면, 그딴 식으로 얼굴 내비치지 마. 얼굴이 있었으면 다 뜯어버렸을 테니까 다행인 줄 알아."
"그거 좋은 농담거리네."
지겨운 놈이다.
나는 샌즈를 뒤로 하고 바로 알현실 쪽으로 향했다. 알현실로 가까워지자, 지상에서 새어 들어오는 빛의 양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궁으로 올 때까지 보였던 벽돌길보다 더 어두운 색깔의 벽과 길이었다. 나는 계속 해서 걸어갔다. 거대한 문을 지나, 알현실로 이어지는 높은 계단을 올라갔다. 굳이 왜 이렇게 계단을 만들어놓은 건지는 모르겠다. 왕이 있는 곳은 더 높아야 한다는 건가.
바로 알현실 앞에 도착했을 때, 나는 잠깐 한숨을 쉬었다. 알현실은 열려 있었고, 지상의 빛을 받으며 만개한 황금꽃밭이 보였다. 그리고, 그 꽃밭에 물을 주고 있는 한 괴물.
"흠~, 흠~."
콧노래를 부르면서, 아스고어는 꽃밭에 물을 주고 있었다. 나를 아직 보지 못 하고 있었다. 여기서 그의 이름을 부를까 하다가, 나는 그냥 입을 닫기로 했다. 어떤 말이라도 해야 하긴 하겠지만, 아스고어를 내가 먼저 부르기는 싫었다.
아들을 죽여놓고, 그 아들의 아버지를 태연하게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몇 없을 거다.
나는 그저 알현실 안으로 걸어 들어갔고, 바로 아스고어의 등 뒤에 섰다. 아스고어가 인기척을 느꼈는지, 물을 주다가 잠시 멈췄다.
"오, 누군가 왔소? 잠시만 기다리시오. 꽃밭에 물을 거의 다 줬으니."
따뜻한 목소리, 왕의 품위 보단 따뜻한 손길이 느껴지는 듯한 목소리였다. 아스고어는 물뿌리개를 마저 털어내고 꽃밭에다가 살며시 내려놓은 뒤, 뒤를 돌아보면서 나를 봤다.
"그럼 차라도 한 잔……."
나를 봤다.
"오."
소스라치게 놀랐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뒤로 몇 걸음 물러섰다. 자신이 놓아둔 물뿌리개에 걸려 넘어질 뻔했다. 아스고어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난 뒤, 나를 잠깐 동안 보다가, 옆을 돌아보며 한 숨을 쉬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아스고어를 보면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황금꽃의 은은한 향기가, 이 방에 너무 가득 차서 아찔할 정도였다. 꽃 향기는 은은할 때에만 향기다. 이렇게 많은 꽃들이 있는 방에서 향기가 갇혀 있다면, 공기가 가득 찬 풍선을 품 속에 담고 있는 것처럼 답답하다. 옆을 돌아 보며 잠시 침묵하던 아스고어가 입을 열었다.
"정말, 정말로 차 한 잔 하겠냐고 물어보고 싶지만……, 미안하게도 그럴 수가 없네. 이해해주길 바라네."
나는 말하고 싶었지만 입을 열지 못 했다.
"날씨가 정말 좋지 않나. 꽃은 활짝 피고, 새들은 지저귀고, 캐치볼하기 딱 좋은 날씨지."
…….
"준비가 되었다면, 따라오게."
아스고어는 앞으로 걸어갔다. 알현실 중앙에 있는 왕좌를 지나쳐, 알현실 뒤로 나있는 길로 향했다. 구석에 있는 다른 왕좌가 신경 쓰였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아스고어를 따라갔다. 아스고어가 가는 길 중간에 잠시 서서 한숨을 쉬고 있었다. 내가 따라 붙자, 아스고어는 입을 열었다.
"정말 긴장되는군. 그렇지 않나? 그냥……, 치과 진료를 받으러 간다고 생각하면 될지 모르겠네."
그러고 나서 아스고어는 앞으로 갔다. 나도 따라갔다.
거대한 문 앞에 섰다. 문 너머로 하얀 결계가 보였다.
"준비가 안 됐나? 이해하네. 나도 마찬가지거든."
여기까지 와서야, 나는 아스고어가 날 죽일 준비를 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세상에, 왜 지금까지 난 눈치를 못 챘지? 죽이려는 장본인이 더 두려움에 떨고 있는 와중이지만, 눈치채지 못 할 수가 없는 데 말이야. 조금 무감각해지는 느낌이다. 아니면 정반대로, 감상적으로 되고 있던가.
아스고어는 결계 바로 앞으로 다가갔다. 나도 그 앞에 섰다. 아스고의 양 옆으로, 땅에서 무언가가 솟아올라온다. 여섯 개의 영혼이었다.
"준비되었나? 그렇겠지. 여기까지 왔으니까."
어,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데. 목이 메여서 말이 안 나온다.
"만나서 반가웠네, 인간이여."
"……."
싸우는 중에라도 말은 걸 수 있겠지만, 아스고어를 보자마자 생각난 말 한 마디가 입에서 맴돌았다. 전혀 예상하거나 계산해보지 못 했던 것이었다. 어쩔 수 없었다. 아스고어를 보자마자, 그냥 갑자기 생각났다. 그래서 다른 아무 생각도 못 했다.
"잘 가게."
아스고어가 자신의 망토를 덮었다. 붉은 창을 꺼내고 날 겨누려고 준비한다. 나는 입을 열었다.
"아……"
아스고어의 붉은 창이, 나의 영혼을 빠른 속도로 관통했다. 나의 말은 입 안을 벗어나지 못 했다.
아빠…….
아아아... - dc app
대디....
마지막에 차라는 어떤 말을 하고 싶었던걸까, 샌즈는 무엇을 책임지지 못하는걸까. 오늘도 잘 봤어
ㄴ 아빠라잖니ㅠ
마지막 말이 아빠라고 하다니 슬프다
ㄴㄴㄴㄴ 아빠 뒤에가 궁금한거지 나는 ㅠㅠ
목매여서 아빠 말도 제대로 못하는거 진짜 리얼하다 그리고 그와중에 샌즈 존나 발암
샌즈... 결국 아무것도 안했네
아아..
샌즈 저새끼 복도에서 나올건 알고있었지만 나와서 속만 뒤집고가네 어휴
뭘 떠보려고 했다는건지 이해가 안가는데, 혹시 지금까지 내용중에 나왔는데 내가 모르고 넘어간거냐?
어머...
전부 다 좋지만 이부분 특히 진짜 사랑한다."자신이 놓아둔 물뿌리개에 걸려 넘어질 뻔했다."
ㄴㄴㄴ 기다려봐
ㄴ 앞으로 나온단 뜻임? ㅇㅋㅇㅋ
담편이 시급하다 휘리리릭
ㅏ...아빠ㅏㅏㅏㅏㅏㅏㅏㅠㅠ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