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즈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기이할 정도로 짙은 푸른빛으로 빛나고 있는 한쪽 눈동자를 조심스럽게 내려깔며, 그 자리에 힘없이 털썩, 주저앉는다.  


이제야 모든 것이 끝났다.

자신의 바로 앞에서 지독하게 깊어보이는 피웅덩이 속에 서서히 잠겨가고 있는 하늘색 줄무늬 스웨터 차림의 꼬마아이의 몸은, 이제는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다시 시간이 마법같이 되돌아가지도 않는다.

다시 쓰러졌던 꼬마의 몸뚱아리 주변에 흩뿌려진 그 살점들이, 퍼즐조각을 끼워맞추듯이 다시 꼬마의 상처에 강제로 들러붙지도 않는다.


다시...

...꼬마가 살기로 가득찬 그 가는 눈매를, 자신을 향해 쳐들고,

서슬 시퍼런 식칼을 빼어들고 다가오는 일도 없다.


그래, 모든 것이 끝난 것이다. 끝없이 시간이 역류하는 일은 이제 더이상 없고, 이제 지하세계 최악의 학살극도 막을 내린 것이다.


샌즈는 쓰게 미소를 지으며 눈부시게 비쳐들어오는 인공태양 빛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회랑 창문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어이, 너."


샌즈는 여전히 쓰디쓴 표정을 지은 채 말문을 열었다.


"이젠 지겨운거야? 지겨워?"


샌즈는 자신이 누구를 향해 말하고 있는지조차 정확히 알 수가 없었다. 단지, 그의 두개골 속에서 몇 시간전부터 미친듯이 자신의 정신을 뒤흔들어오던 일종의 '감'이 그 '누군가'가 분명히 저 한 편에 존재하고 있다고 조용히 속삭여대고 있을 뿐이다.

그래도 그는 무언가를 말하고 싶었다. 그 '누군가'가 자신의 말을 듣고 있든 말든, 정말 이야기를 하지 않고선 자신이 더이상 버티질 못할 것 같았다.


"계속 저...꼬마가 내 손에 죽어서 지겹단거지? 응?"


샌즈는 씹어내뱉듯이 말을 이었다.

아직도 은은한 푸른색으로 빛나고 있는 한쪽 눈동자가 꼬마의 자그마한 몸뚱아리를 힐끗이 스쳐지나갔다. 저 아이를 만난 괴물들은 누구든지 아이를 '대재앙'으로 여겼을테지만, 

샌즈는 무언가 다른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저 꼬마나, 자기나...결국은 같이 피해자에 지나지 않았을 뿐이라는 사실을. 아니, 더 넓게 보자면 정말로 인생 최고의 친구가 될 수도 있었을 아이였다는 사실까지.

진짜 책임을 져야 할 대상은 어딘가에서 여전히 안전하게, 또 자기 할 것까지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으며 마음대로 행동하고 있을 것이라는 사실까지조차 자기가 알고 있다는 것이 너무나 괴로웠다.


"저 꼬마가 진짜 '너'가 아니라서, 그냥 죽게 나둬도 된단 말이야? 응???"


샌즈의 가슴 한 켠에서 무언가가 조용히 그 말을 중간에 가로챘다.


'뼈다귀, 이제 끝났어. 넌 목적을 이룬거야.'


도대체 무슨 목적을 이뤘다는 거지?

무엇을 이루어냈다고?


'네가 아무리 '그'를 향해 원망을 쏟아내도, 이 세상은 절대로 바뀌지 않아.'


가슴 한 켠의 목소리에는 아무런 감정도 담겨있지 않았다. 무미건조하다 못해 완전히 감정이 메말라버린 낮고, 차갑디 차가운 누군가의 음성.

샌즈는 목소리가 누구의 것이였는지 어렴풋이 생각날 듯도 했지만 결국은 아무것도 떠올리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여전히 무엇을 해야될지 모르는채로, 환하게 빛나는 스테인드글라스를 멍하니 쳐다보며 가슴 속 누군가의 이야기에 뜻하지도 않게 귀를 기울인다.


'손을 통해 이야기하는...존재. 이미 이야기는 끝난거야.'


"아니야...아니야. 그 녀석은 결국 내 말을 듣게될거야."


샌즈는 온 얼굴을 일그러트려가면서까지 뼈다귀 특유의 미소를 어떻게든 유지하려 했다.

하지만 가슴 한 켠에서 속에서 속삭이는 목소리는 그의 정신을 온전히 내버려두려 하지 않았다.

새로운 의문, 그리고 막연한 무언가에 대한 새로운 공포감과 무력감이 샌즈의 머릿속에서 자그맣게 싹을 틔어간다.


'샌즈.'


목소리는 애틋한 감정을 느끼는건지, 아니면 비웃는건지 분간이 안되는 투로 다시 입을 열었다.


'네가 그렇게나 말을 하고 싶어하는 그 녀석한테는...우리가 뭐라고 생각되고 있을 것 같아?'


샌즈는 자기도 모르게 척추뼈에서 서늘한 느낌이 타고올라오는 기분이 들었다.

도대체 이 모든 혼란을 만들어내고, 꼬마를 조종하고, 이젠 이 곳이 지겨워졌는지 자신의 분신인 연약한 꼬마아이가 몇백번이나 처참히 죽음을 당했는데도 더이상 눈길 한 번 주지 않으려하는 그 녀석이랑 자기 사이에 도대체 얼마나 많은 벽이 있다는 걸까?


'우린 말이야.'


목소리는 잠시 뜸을 들였다.


'손을 이용해 말하는 녀석들한테는...애초에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는 것처럼 여겨질 뿐이야.'


또 한 번의 침묵.

그러나 목소리는 별로 개의치 않는다는듯이 계속해서 폭탄같은 말만을 골라서 말을 이어나갔다.


'우린 어차피 쪼가리들이야. 수많은 자그마한 쪼가리들이 뭉쳐서 만들어낸...조금 더 큰 덩어리일 뿐이지.'


샌즈는 지그시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은 여전히 피웅덩이에 잠긴 채 꼼짝하지 않고 있는 꼬마의 몸뚱아리에 가서 멎었다.

너무 허무하다. 모든 것이.


'그들에겐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아. 우리가 하는 말이라고 예외일까?'


꼬마의 행동 뒤에 무언가가 다른 것이 개입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이미 샌즈도 알던 바였다.

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그렇게나 절망적인 차이가 자신 앞에 가로놓여있는지는 꿈에도 생각하지도 못했다. 


파피루스라면 뭐라고 말했을까?

여전히 무언가 좋은 점을 찾아내고 싶어서 애쓰다가 서서히 절망감에 물들어갔을까?

아니, 파피루스가 아니라 먼지가 되어버린 그 모든 괴물들도 그랬을까?

자신들이 어찌할 수조차 없는 무언가 거대한 존재에 의해 단순한 쪼가리 취급을 받고 있었다는 걸 알고는 뭐라고 말했을까?

무슨 반응을 보였을까?


'포기해.'


목소리가 조용히 속삭였다.


'난 이미 포기했어.'


샌즈는 대답하지 않았다.

꼬마의 시신 앞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서, 꼬마의 곁에 떨어져있던 식칼을 집어들었다.


샌즈는 그 다음에 자신이 취했던 행동에 대해선 도저히 기억을 할 수가 없었다.

오직 분명한 것은, 자신의 귓가에 엄연한 진실을 속삭여대는 그 목소리를 뭘 해서든 제발 멈추고 싶었다는 마음밖에 들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샌즈는 자신의 가슴이 없어져버리면 그 목소리도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막대한 공포와 무력감에 일그러져버린 입가를 아무렇게나 뒤틀어버리며 미친듯이 되뇌었다.


처음에 자신의 가슴을 찔렀을 때는 정말 더럽게 아팠다.

하지만 너무나 분명한 진실에서 제발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이 너무나 간절해졌기에, 고통은 이제 자신의 머릿속에서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두 번째로 식칼끝을 가슴을 향해 다시 한 번 쑤셔박았을 때는 전혀 아프지 않았다.


끊임없이 진실을 속삭이던 가슴 한 켠의 목소리가 점차 늘어지는가 싶더니 결국은 아예 뚝 끊어져버린다.

동시에 자신의 시야가 이상하게 점차 회색빛으로 물들고 있다는 사실도 느껴졌지만, 

샌즈는 별로 개의치 않았다.


그 진실에서부터 도망갈 수 있으면 무엇이든지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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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내가 무슨 정신으로 이 글을 쓴건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