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스크 패러블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7.5  18  19  20  21  특별편  22  23  24  25  26  27 27.5  28  29  30  31  32  33  34  35  36  37  38  39  40  41 ]



 시야가 검게 물들다가, 이내 밝아진다. 아스고어가 던진 일격에 즉사했고, 나는 결국 다시 의지의 힘으로 돌아왔다. 별로 좋은 느낌은 아니다. 몸에 힘이 탁 풀려 그 자리에 풀썩 앉아버렸고, 그러고 나서야 숨을 돌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지상의 빛이 새어 들어와 아름답게 빛나는 스테인드 글라스로 장식된 홀이었다. 왜 굳이 이 장소에 있던 시점으로 돌아온 건지 모르겠다. 여기에는 분명히……


 "헤헤."


 아까와 똑같이, 그저 주머니에 손을 꽂고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물론, 샌즈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잠깐 웃다 말고 나를 쳐다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더니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는 게 아니라, 내 앞으로 천천히 걸어왔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엄청 오랫동안 보지 못 했던 아빠한테 창을 맞아 죽은 딸의 심정은 어떨까. 난 이제 별로 궁금하지 않았다. 한 번 창에 맞아 죽는 것도 싸다고 생각했다. 난 아스리엘을 죽여서 감정이 없는 꽃으로 만들어버렸고, 아스고어는 그 사실도 모른 채 슬퍼했을 테니까. 아마 그것 때문에 토리엘이 폐허에 있는 거겠지.


 "꼬마야?"


 샌즈는 웃는 표정을 조금 누그러뜨리고 한쪽 눈썹을 치켜 뜨며 나를 불렀다. 대답할 생각 없다. 샌즈랑 얘기해봤자 도움될 게 없었다. 이번에도 나나 프리스크에게 눈꼽 만큼도 도움이 안 될 거고, 오히려 내 속만 태울 거니까, 그냥 빨리 정신 차리고 다시 아스고어를 만나야겠다. 당장 꺼지라고 말을 하려고 했지만, 아직 제대로 진정하지 못 한 나의 목이 목소리가 나오는 걸 방해하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나오고 딸꾹질이 나올 것 같았지만, 그래도 참았다. 이런 상황에서 목소리를 냈다간 바로 이상하게 보일 것이다. 나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 샌즈는 쳐다보지도 않고 고개를 숙인 채 앞으로 걸어갔다.


 "차라?"


 나를 부르건 말건 신경 쓰지 않고 그냥 가려다가 멈췄다. 샌즈는 프리스크를 보고 프리스크가 아닌 나라고 판단했다. 독심술 하나는 끝내주는 녀석이라고 생각해주며, 난 다시 앞으로 걸어갔다. 샌즈가 나를 알아보든 말든 내 알 바 아니다. 나는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했다

.

 "잠깐 쉬었다 가는 게 어떨까?"


 샌즈가 뒤에서 말했다. 쉴 시간 없다. 사람을 떠본다느니 뭐 한다느니 하는 망할 괴물이랑 상대할 시간도 없다. 프리스크한테 사과도 안 하고, 도대체 뭘 하는 건지 알 수가 없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도 알 수 없는 놈이랑 대화할 생각 없다. 어디에서 쉬고 뭘 위해 쉰다는 건가. 나는 앞으로 계속 걸어갔다. 

 그런데, 갑자기 프리크스의 영혼 색깔이 파란색으로 바뀌었다. 예상하지 못 한 상황에 깜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샌즈가 나에게 손을 뻗고 있었고, 그대로 잡아 끄는 듯한 행동을 했다. 나는 저항 한 번 하지 못 하고 샌즈 앞으로 끌려가 버렸다. 공중에 뜬 채로 잠깐 동안 있다가, 샌즈는 나를 살며시 내려놓았다. 난 처음 느껴보는 감각에 어안이 벙벙해서 잠깐 멍을 때렸다. 그러다가 눈치챘다. 전에 한 번 프리스크의 영혼이 파란색으로 바뀐 적이 있었다. 그 덕분에 추락사할 뻔한 프리스크가 겨우 살 수 있었다.


 "너……, 너."

 "나는 널 떠보려고 한 거지, 이런 상황까진 예상 못 했는데 말이야."

 "프리스크를 도와준 게 너였다고?"


 샌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그 자리에서 살짝 일그러진 웃음을 보여줄 뿐이었다. 그렇다면, 샌즈는 계속 프리스크를 따라다녔고, 위기에 순간에 구해줬다는 뜻이 된다.


 "왜?"

 "뭐가?"

 "넌, 넌 프리스크가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잖아!"

 "그런 적 없어."

 "그래서 프리스크한테 이상한 말을 해댄 거고!"

 "내 말의 어디가 이상했다는 거지?"


 샌즈의 왼눈이 푸르게 빛나며 빛을 뿜어냈다. 금방이라도 불탈 듯, 푸른색의 불길이 샌즈를 감쌌다. 백골의 두개골에서 빛나는 푸른 불길, 범접할 수 없는 거대한 상대를 만난 것처럼 순간 오금이 저렸다. 왼손을 후드 주머니에서 뺀 채, 언제든지 휘두를 수 있을 것처럼 준비해놓고 있었다. 나는 샌즈에게서 뒷걸음 치다가 엉덩방아를 찧었다. 하지만 일어날 수가 없었다. 샌즈의 눈빛은 맹수의 것이었다.


 "왜 자꾸 날 위협으로 인식하는지 모르겠어. 심지어는 지금도, 날 무서워 하네. 프리스크가 자신을 믿냐고 물어볼 때, 나는 믿는다고 대답했어. 우울해진 프리스크에게, 내가 가장 숨기고 싶은 장소, 지하실까지 불러와서 내 진심을 보여줬지. 상대방을 믿는다는 증거 중 하나는, 내가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것을 보여주는 거니까. 난 정말, 오랜만에 진심으로 누군가를 응원해주고 있었다고. 그런데 꼬마의 반응이 참 이상하더라고."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샌즈가 한 걸음, 두 걸음, 나에게 천천히 더욱 가까이 다가왔다. 왼손은 여전히 나에게 손을 뻗친 채였고, 아직도 프리스크의 영혼은 파란색이었다. 몸이 무거웠다. 나는 일어서지 못 한 채로 뒤로 손을 뻗으며 물러났다. 마치 거대한 발에 밟히지 않기 위해 도망가는 거미 마냥, 나는 계속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샌즈는 천천히 계속 다가오면서 입을 열었다.


 "먹여주고, 재워주고, 대화하고, 지켜줬어. 작고 작은 아이가 우리의 희망이니까 말이야. 정말로, 난 그 아이가 해답을 내놓을 수 있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지하실에 데려왔을 때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늘어놓더라고. 자신을 믿지 못 하고 있냐고 묻질 않나, 다리를 벌벌 떨면서 날 무섭게 쳐다보질 않나, 마지막엔 너가 나타나서 왜 프리스크를 못 믿냐고 소리를 지르고 도망치더라고. 이해가 안 되는 게 많아서 침묵으로 일관해도, 그걸 불신으로 받아들이더라고.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지 않을래? 그때 내가 뭐라고 말했었지? 프리스크를 믿지 못 한다고 말했나? 내가 불안한 기색이라도 내비쳤나? 그렇게 느꼈다면 그게 진짜였다고 확신할 수 있어?"

 "정말이야. 정, 정말! 너, 너는 프리스크를 믿지 못 해서, 불안해 했다고! 언제라도 배신할까봐! 그렇게 느끼는 게 느껴졌단 말이야!"


 무서웠다. 


 "도대체, 너가 어떻게 남의 감정을 이해한다는 거지? 나의 손짓과 발짓을 보고 눈치 챈 건가?, 표정도 잘 꿰뚫어보기 힘든 해골의 감정을 어떻게 엿본다는 거지? 내가 말을 할 때에 불안하게 떨거나 더듬기라도 했었나? 내가 스스로 '나는 그러지 않았다'라고 말하진 않을게. 대신 이렇게 물어보도록 하지. 너가 기억하는 나는 정말로 그렇게 행동했나?"


 분명 그랬다.

 뼈다귀 형제의 지하실에 들어가자마자 느껴지는 불안한 분위기, 들어가자 샌즈가 그 거대하고 괴상한 기계에 기댄 채로 너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프리스크에게 여러 가지 응원을 말들을 해줬다. 하지만, 분명히 뭔가 이상했다. 불안했고, 오금이 저렸다. 샌즈는 겉으로 프리스크에게 격려의 말을 하고 있었지만, 그 속은 분명히 달랐다. 프리스크에게 응원을 하긴 했다. 했는데……, 그 속은 다른 것 같았다.

 그런데, 도대체 내가 무슨 근거로 그렇게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혼란스러워? 지금 내 모습이 어떻게 보이지?"


 고개를 들어서 샌즈의 모습을 봤다. 괴상한 해골, 사람이 썩어 죽은 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될 수 있는 순수한 백골, 그 백골의 눈 속에서 푸른 불길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를 내려다 보는 것은, 마치 하찮은 노예를 보는 듯한 주인의 눈빛이었다. 언제라도 나를 맘대로 가지고 놀 수 있는 상급자의 눈빛, 나를 내려다보는 저 눈빛이 너무 무서웠다.

 나는 고개를 숙였다. 뒤로 물러나는 걸 포기했다. 두 팔로 얼굴을 가려 막으려고 했다. 내가 뭘 막으려고 하는 건진 모르겠다.


 "나는 프리스크를 믿었어. 다만, 넌 아니었지."

 "으으……."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지만, 지하실에서 있던 그 일 이후로 미심쩍더라고, 너가 프리스크를 조종해서 제대로 된 인식을 못 하게 만드는 거라고 생각했지. 그래서 경계했고, 지켜봤어."


 샌즈가 무릎을 굽혀 나와 눈높이를 맞췄다. 나는 쳐다보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런데 메타톤과 같이 다니는 걸 보니 꼭 그런 건 아닌 것 같더라고. 그래서 나는 한 가지 추리를 했고, 그걸 확인하기 위해 여기에 온 거야. 그리고, 맞춘 것 같네."


 샌즈가 나에게 얼굴을 들이민다. 여전히 무서운 모습이었다.


 "프리스크가 해골을 무서워 해도, 넌 아니었지. 그런데 너는 지금 그러고 있잖아. 공포라는 감정을 스스로 느낄 줄 아는 거야?"


 샌즈가 무슨 말을 하든지 간에, 나는 앞에 있는 해골이 무서워서 쳐다볼 수가 없었다.


 "너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는 몰라. 하지만, 프리스크 덕분에 스스로 감정을 느끼기 시작했다면 너가 먼저 느낄 일이 뭘까? 행복? 우정? 즐거움? 아니야. 너는 인간을 죽이려고 할 정도로 증오심이 깊었던 애지. 그런 걸 먼저 느낄 수 있을 리가 있나. 불안, 공포, 의심, 적대감, 배신감 그런 것들이 너가 먼저 알아갈 만한 감정 아닐까? 프리스크는 항상 너가 스스로 감정을 느끼길 바랬지. 그 정도는 나도 알고 있었어. 프리스크는 너가 무조건 긍정적인 감정만을 느끼길 바랬겠지. 하지만, 그렇지 못 한 것 같아. 프리스크의 영향을 크게 받을수록, 너의 감정도 깨어났겠지만, 너가 느낄 수 있는 건 행복과 즐거움이 아니었지. 그 기점이 마침, 내가 프리스크를 지하실로 데려왔을 때였고, 그때 너가 느낀 건 불안과 의심이었겠지. 너가 느낀 건 나의 속마음이 아니라, 너 스스로의 감정이지 않았을까?"


 제발 나한테서 떨어져…….


 "……, 너 도대체 바깥에서 무슨 일을 당하고 왔었던 거야?"

 "너가 상상하는 그 모든 일."

 "……."


 샌즈는 그제서야 나에게서 살짝 떨어졌다. 눈 안에서 불타던 불빛도 보이지 않았다. 샌즈는 뒤로 물러나서 잠깐 고민하고 있는 것 같았다. 샌즈가 후드 주머니에 손을 넣었고, 프리스크의 영혼이 다시 붉은색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나는 팔을 내리지 못 했다. 저, 저 인간을 닮은 괴물이, 당장이라도 날 때릴 것 같았다. 샌즈가 했던 말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생각할 틈이 없었다. 나는 아빠가 보고 싶었고, 아빠에게 죽은 뒤로는 그냥 갑자기 모든 게 힘들었다. 샌즈가 다시 나에게 다가오더니, 두 손을 나에게 뻗쳤다. 몸을 더욱 움츠렸다. 두 팔로 계속 얼굴을 막아 아무리 맞아도 죽지 않도록 내 자신을 보호한다. 익숙한 자세다. 갑자기, 나의 몸을 뼈다귀의 팔이 감싼다.

 샌즈가 무릎을 꿇은 채로 나를 안아주고 있었다.


 "어……¸ 어어……."

 "겁을 줘서 미안하지만, 여기엔 인간이 없어. 너에게 욕지거리를 할 인간도 없고, 죽기 직전까지 때리는 인간도 없고, 내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최악인, 그런 짓을 할 인간이 여기엔 없어. 여기엔 괴물들 뿐이야. 아무도 널 싫어하지 않아. 아무도 널 괴롭히지 않아. 안심해."

 "어어……."


 잘 모르겠다.


 "인간과 어느 정도 닮은 모습이라 미안하네. 하지만, 이렇게 태어난 건 내 탓이 아니라서 말이지. 하지만, 괜찮아. 무서워할 거 하나도 없어. 여기에 네 적은 없어. 그냥, 다 똑같은 '사람'들이야. 그저 그렇게,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는, 그렇지만 너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는, 그런 세계야. 너가 무서워 할 대상은 없어, 불안해 할 대상도 없어. 안심해. 걱정 마. 다 괜찮으니까."


 샌즈가 내 등을 두드려주었다. 탁, 탁, 천천히, 나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나를 달래주고 있었다.


 "너 한 번도 운 적 없지 않아? 맨날 프리스크를 도와주느라 힘들지 않았어? 이번엔 좀 쉬는 게 어때? 울어보는 것도 정말 좋을 거야."

 "흐아……."


 눈물이 핑 돌았다. 그냥, 나는 이렇게 생각할 필요를 못 느끼겠다.

 나는 프리스크가 울던 것보다도 더 크게, 더 오래 울었고, 샌즈는 미안하다고 말하며, 계속 등을 두드려주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