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스크 패러블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7.5  18  19  20  21  특별편  22  23  24  25  26  27 27.5  28  29  30  31  32  33  34  35  36  37  38  39  40  41  42 ]



 저는 꽤 오랫동안 그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한참을 울고 나서야 정신을 차린 것 같았어요. 정신을 차려 보니, 샌즈가 저를 달래주고 있었고, 저는 샌즈 품에 안겨서 또 펑펑 울고 있었습니다. 잠시 동안 내가 왜 울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고, 언제부터 샌즈가 저를 껴안고 있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잠시 동안 더 울다가, 그제서야 상황 파악이 됐어요. 그러니까, 차라가 나 대신 여기까지 와줬고, 나 대신 죽었고, 나 대신 울었다는 걸요. 내가 했던 행동들을 기억해내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다는 감각이 조금 신기했습니다.

 제가 정신을 차리고 나니까, 차라는 그저 계속 울고 있었어요. 저도 따라 울었죠. 완전히 알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이해는 할 수 있었어요. 생각해 봐요. 자기를 속인 줄 알았던 친구가, 사실은 자기를 지켜주고 있었대요. 그것도 자기가 정말 보고 싶어하던, 아빠의 손에 죽고 나서 말이에요. 정말 힘들지 않았겠어요? 그런 상황에서 누군가가 자기를 이해해준다면 정말 기쁠 거예요. 그래서 눈물이 나겠죠. 엄청나게 기쁘면, 동시에 너무 슬프거든요.

 샌즈는 계속 저를 위로해줬어요. 아니, 차라를 위로해줬어요. 차라가 듣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그냥 계속 울고 있거든요. 차라는 너무 지쳤을 거예요. 차라도 결국 어린 애인 걸요. 제가 힘들다고 숨어버렸을 때, 제 대신 움직이는 건 너무 무책임했어요. 결국 저 대신 차라가 고생을 한 거예요.

 그래서 저는 우는 걸 멈추고 진정했습니다. 저까지 울어봤자 나아지는 건 없다고 생각해요. 제가 우는 걸 멈추니까 샌즈도 얼마 지나지 않아 저를 풀어주고 제 얼굴을 쳐다봤죠. 얼굴이 엉망이었나 봅니다. 샌즈가 손가락으로 제 눈물을 닦아줬어요. 그러고선 다시 제 등을 몇 번 두드려줬어요. 


 "이제 괜찮니, 꼬마야?"

 "응, 괜찮아, 샌즈."


 목이 살짝 메였지만, 조금 있으면 괜찮아질 거예요. 저는 옷소매로 제 눈가를 몇 번 닦았어요. 아까보단 낫겠죠. 샌즈는 저를 잠깐 쳐다보더니 안도의 한숨을 쉬는 것 같았습니다. 제 두 팔을 잡아서 일어나는 걸 도와줬어요. 조금 힘들었지만, 별 문제 없이 일어날 수 있었어요. 제가 아무리 연약한 애라고 해도, 좀 울었다고 일어서지도 못 하진 않거든요. 저는 일어나서 바지의 묻은 먼지를 털어냈어요. 그러고 나서 전, 안심한 표정으로 웃으며 저를 쳐다보는 샌즈를 안아줬답니다. 뼈밖에 없는 괴물인데, 왜 그렇게 품 속이 따뜻한지 모르겠어요. 샌즈가 절 믿어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니 정말 기뻤어요. 또다시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참았어요. 저는 그냥 더 샌즈를 더 껴안았어요. 샌즈는 그저 웃으면서 제 머리를 쓰다듬어줬습니다. 기분 좋았어요.

 저는 더 이상 껴안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그러고 싶었지만, 그러면 평생 그러고 있을 판이더라고요. 그래서 전 샌즈를 풀어줬죠. 


 "어, 그래서, 차라니, 프리스크니?"

 "프리스크에요. 차라는 지금 아무 말도 안 해요. 아직 울고 있어요. 제가 그러고 있던 것처럼요."

 "그래. 시간이 좀 걸리겠지."


 차라가 없으니까 이렇게 말하는 건 조금 어색하네요. 어, 조금 창피하기도 하고요. 왜 차라가 계속 그렇게 말하고 있었는지 차라가 자리를 비우니까 이제 알겠네요. 주목 받는 건 익숙하지 않기도 하고요. 아, 신경 안 쓸 게요. 서로 어색할 거 같아요. 차라도 이런 얘기는 안 했잖아요?

 조금 고민을 해야 했어요. 일단 저도 정신을 차렸고, 샌즈와의 오해도 풀었어요. 정말 기분이 좋긴 한데, 아스고어에 관한 게 조금 마음에 걸리네요. 정말 아무런 근거도 없이 여기까지 오긴 했지만, 결계로 가려면 일단 아스고어를 지나쳐야 해요. 그런데 차라를, 아니, 결국 저를 죽였네요. 차라도 피하지 못 할 창을 던진다면, 저도 마찬가지겠죠. 가면 죽을 거예요.

 하지만, 대면은 해야 해요. 이미 알고 있어요. 뭘 하려든 간에 저는 일단 결계로 가야 해요. 그래야 포기를 하든, 다른 방법을 찾아내든 하죠. 그 중간에 아스고어가 저를 죽이려 한다고 해도,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 해요. 저를 죽이기 전에 망설였던 걸 생각하면, 아예 방법이 없을 것 같진 않네요.


 "꼬마야,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방법이 없을 것 같진 않아요?"

 "무슨 방법?"

 "아스고어 대왕님과 이야기할 방법이요."

 "……, 그게 의미가 있다고 보니 꼬마야?"

 "딱히 있을 것 같진 않아요. 일단 해보는 거예요."


 솔직히, 이제 집에 돌아갈 방법이 있을 것 같진 않아요. 결계를 통과하려면 제가 괴물 하나를 죽여야 해요. 전 그러고 싶진 않아요. 숲에 있는 토끼 한 마리를 사냥하는 것처럼, 그냥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저는 그렇게 죽고 싶지 않아 하면서, 어떻게 남을 죽일 수가 있어요? 그럴 순 없어요. 그건 잘못된 생각이에요. 물론, 제가 죽어도 다시 살아나는 힘이 있어서 그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래도 제 생각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래도, 아스고어와 얘기는 해봐야겠어요. 제가 만약……, 나가기를 포기하고 여기서 살아야 한다고 해도, 지하 세계의 왕과 대화는 해야겠죠. 저는 인간이니까요. 괴물들에겐 그저 결계를 깰 도구로밖에 보이지 않을 수도 있어요. 아예 틀린 말도 아니고요. 그냥, 저도 포기할 준비를 해야겠습니다. ……, 아스고어는 아마 차를 좋아 하는 것 같네요. 저도 준비해가야겠어요.


 "샌즈, 저 좀 도와줘요."

 "어떻게 도와줄까, 꼬마야?"

 "머펫 언니한테 데려다주세요. 절 머펫 언니한테 데려다준 뒤에는, 황금꽃차를 구해서 저한테 다시 와주세요. 다시 여기로 돌아오게요."

 "헤헤, 왕과 차라도 한 잔 하겠다는 건가?"

 "과자랑 차를 잔뜩 들고 가면 최소한 창을 던질 것 같지는 않아서요."

 "현실적이네. 그런데 머펫한테서 차랑 과자는 어떻게 얻어내게? 그냥 부탁한다고 주진 않을 거야. 돈을 줘야지."

 그 부분은 생각 못 했는데.

 "지금은 나도 돈 없는데 말이야. 일단 외상이라도 부탁하던가, 어떻게든 해봐. 일단 데려가 줄게."

 "응."


 저는 샌즈를 또 꼭 안았어요. 샌즈가 잠깐 당황한 것 같았지만, 전 이렇게 가는 게 더 좋을 것 같았어요. 샌즈도 제 머리에 손을 얹었고, 순간 시야가 흔들렸어요. 여러 번 겪은 적이 있으니까 이제 익숙하네요. 샌즈가 제 머리를 놓아줬고, 저도 샌즈를 풀어줬어요. 뒤에 인기척이 느껴져서 뒤를 돌아봤는데, 놀란 표정으로 머펫 언니가 절 쳐다보고 있더라고요. 저는 잠깐 샌즈를 쳐다봤어요. 이렇게 바로 앞에 데려다줄 필요는 없었는데 말이에요. 샌즈는 그냥 어깨를 으쓱 했습니다.


 "자기, 어디서 나타난 거야?"

 "저, 언니 차랑 과자 사러 왔어요!"


 샌즈의 능력에 관해선 대답을 하지 않는 게 가장 나을 것 같습니다.


 "아후후~, 남자친구랑 같이 왔구나? 우리 사이에 무슨 돈을 받아, 자기. 나를 너무 구두쇠로 보지 마. 차랑 빵을 담아줄게~."

 "어……, 네? 감사합니다?"


 머펫 언니가 선뜻 그냥 준다고 하니까 고마웠어요. 그런데, 괴물들은 인간의 나이 개념을 잘 모르나 봐요. 저랑 샌즈를 애인 관계로 보는 건 솔직히 말도 안 되지 않나요? 샌즈는 아무리 봐도 어른이고, 저는 어린 애잖아요. 물론, 샌즈가 좋긴 하죠. 음, 잘 모르겠네요. 샌즈도 그냥 웃고 있을 뿐이고요. 여기서 막 부정하거나 긍정하는 것 둘 다 이상할 것 같아요. 그냥 가만히 있으려고요.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머펫 언니가 종이 봉지에 크로와상이랑 도넛을 잔뜩 넣어줬습니다. 찻가루도 넣어줬고요. 찻가루나 빵에서 단내가 났어요. 맛있겠네요. 지금이라도 먹고 싶지만, 조금 참아야겠어요. 뒤를 돌아보면서 샌즈한테 말했습니다.


 "샌즈, 이번엔 황금꽃차를……."

 "이미 구해놓았어."


 샌즈가 한 손에 황금꽃차가 담긴 종이곽을 들고 흔들었어요. 제가 머펫 언니한테 빵이랑 차를 받는 순간에 벌써 갔다 왔나 봐요. 진짜 저도 저런 능력이나 있으면 좋겠어요. 훨씬 더 편할 것 같아요. 그 모습을 머펫 언니가 봤나 봐요. 머펫 언니가 눈을 두세 개 깜빡이더니, 샌즈를 보고 말했습니다.


 "아후후, 나중에 나 좀 도와줄 수 있어, 뼈다귀 아저씨?"

 "음?"

 "폐허에 있는 거미들을 여기로 데려다 줄 수 있겠어? 물론, 데이트는 마치고 와서 도와줘도 돼~. 그 정도로 급한 건 아냐~. 그냥, 돈 대신 그 정도면 될 거 같은데 말이지~."

 "헤헤, 계산이 빠른 아가씨네. 나중에 오도록 하지."


 샌즈는 그 다음에 머펫 언니가 하는 말을 듣지도 않고 바로 제 머리 위에 손을 얹었어요. 그러고 나선 바로 아까 있었던 궁으로 돌아왔죠. 그런데 그 예쁜 홀은 아니었답니다. 바로 아스고어가 있는 방에서 조금 떨어진 곳이었어요. 어차피 여기까지 왔어야 하니까 오히려 잘 됐어요. 샌즈는 제 눈 앞에서 잠깐 사라지더니, 또 다시 나타났어요. 이번엔 한 손에 찻주전자와 찻잔 두 개를 들고 있었습니다. 들고 있다기 보단, 손 위에 띄우고 있었죠. 따뜻한 물이 들어있는지, 김이 조금씩 새어나왔죠. 하긴, 알현실 안에 찻주전자가 있는 것 같진 않았어요.

 샌즈가 황금꽃차 상자와 찻잔을를 거미 빵이 있는 종이 봉지에 넣었어요. 그리고 제 다른 손에 찻주전자를 쥐어줬어요. 뭔가 들고 있는 게 많긴 하지만, 불편하진 않네요. 찻주전자의 손잡이가 따뜻해서 기분이 좋았어요. 샌즈는 그걸 저한테 쥐어주고 나서 조금 뒤로 물러났어요.


 "프리스크, 미안하지만 아스고어를 같이 만나줄 수는 없어."

 "알아요. 괜찮아요, 샌즈."


 아스고어는 괴물들의 왕이고, 저는 인간이에요. 샌즈가 저를 보호하고 있는 걸 아스고어에게 대놓고 보여줄 순 없죠. 저도 그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샌즈는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저를 잠깐 쳐다보더니, 그 자리에서 사라져 버렸어요. 뭐, 별 상관 없어요. 또 제가 못 보는 곳에서 숨어서 절 지켜보고 있겠죠. 어, 이렇게 생각하니까 샌즈가 좀 멋있어 보이네요.

 잡생각할 시간은 없어요. 샌즈가 바로 아스고어 앞까지 데려다 줬으니까, 빨리 바로 가야겠죠. 저는 뜨거운 물이 쏟아지지 않게 천천히 알현실로 걸어갔어요. 아까 차라가 왔을 때랑 똑같았어요. 아스고어는 여전히 꽃밭에 물을 주고 있었어요. 알현실 입구에 서서, 이번엔 어떻게 할까 고민했어요. 음, 그냥 정면으로 들어가는 게 낫겠어요.


 "안녕하세요! 대왕님!"


 대왕님이랑 호칭이 맞는진 모르겠어요. 하지만 전 크게 말했어요. 아스고어가 아까랑 똑같이 말을 했어요.


 "오, 누군가 왔소? 잠시만 기다리시오. 꽃밭에 물을 거의 다 줬으니."


 아스고어는 물뿌리개를 놓고 몇 번 털고 나서야 뒤를 돌아봤어요. 지금 보니, 토리엘 아줌마랑 정말 닮았어요. 대신 아스고어는 긴 뿔이 있었죠. 그리고 정리되지 않은 갈기가 머리와 입 주변을 덮고 있었어요. 그리고 바닥까지 내려오는 기다란 망토와, 머리에 올려진 왕관이, 왕이라는 신분을 잘 보여주고 있었어요. 음, 꽤 멋들어졌다는 뜻이에요. 샌즈보단 덜.


 "차라도 한 잔 하겠……."


 아까랑 똑같네요. 뒤돌아보면서 차를 마시겠냐고 물어보다가, 절 보면서 놀라버리네요. 뒷걸음질을 치다가, 물뿌리개에 걸려 넘어질 뻔 해요. 음, 타이밍을 놓치기 전에 제가 먼저 선수를 쳐야겠네요. 저는 몇 걸음 다가가서 아스고어에게 말했어요.


 "차라도 한 잔 하시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