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터는 잠든 샌즈의 손가락을 두 번 건드렸다. 새가 가볍게 상대의 부리를 쪼는 것 만큼이나 가볍고 경쾌했다. 시간차를 두고, 가스터은 다시 샌즈의 손가락을 건드렸다. 처음과 달리 두 번째는 거의 툭툭 치듯이 건드렸음에도 샌즈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서로가 음식을 나누고 먹는 건 어느 문화권에서든 상대방에 대한 믿음에 표시였다. 샌즈는 너무나 쉽게 자신을 믿었다. 가스터는 이렇게 싱거울 정도로 간단하게, 정신을 잃은 샌즈와 자신의 공간에 둘 만이 놓여 있는 상황이 이루어졌다는 점에 있어 약간 김이 샐 정도로 쉽다는 기분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마취된 짐승을 사냥하는 건 그의 취향이 아니었지만 생기 있는 사냥감을 산 채로 잡기엔 덫이 다 완성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샌즈가 온 몸을 기댄 채 누워있는 쇼파는 예전에 그가 직접 가구점에 방문해 언젠가 얻어질 이러한 시간들을 위해 특별히 주문 제작된 물건이었다. 거의 파묻힐 정도로 부드러우면서도 골격을 받쳐줄 만큼의 단단한 재질로 된 마호가니 쇼파에, 몸을 아예 던지듯이 누워있는 샌즈는 마치 아끼는 은식기에 올려진 완벽한 음식을 떠올리게 했다. 가스터는 손가락을 건드리는 손 끝에 좀 더 힘을 주었다. 쇼파의 팔걸이에 가지런히 올려진 손은 깊이 잠든 이 특유의 생체적인 현상들처럼, 딱히 반응이 없었다. 

 그가 샌즈에게 로히프놀(Rohypnol)*을 그가 마실 음료에 넣은 건 단지 급작스러운 변덕이었다. 실험 도중 황을 넣기 위해 우연히 찬장을 열어 그 약이 눈에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쇠약해진 자신의 사랑스러운 제자를 위해서 목숨만을 부지할 수 있을 정상적인 식사를 대접할 생각이었다. 그러던 도중 이 옆에 걸쳐있던 약병을 발견하게 된것이다. 약병을 본 순간 가스터는 이 약이 무슨 효과가 있는 지도 전혀 모르고 있다는 걸 알았다. 알지도 못하는 약을 부엌 찬장에 넣어 놓고 있었지만 어떠한 약이든 그는 지금 당장이라도 수십가지의 정당한 이유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그래서 그가 그 약병을 보았을 땐 위기감보다는 단지 호기심이 더 앞섰다. 특히 연구소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샌즈의 뒤통수를 본 순간 즉시 간단한 실험이 가능하리라는 생각을 했다. 그 결과가 기절하듯이 잠든 샌즈의 얼굴이었다. 그는 천천히 눈을 감으면서 피곤과 혼란스러움에 못 이겨 쫓기듯 눈을 감던 눈동자를 꽤 즐겁게 지켜보았다. 발음이 점점 느려지면서 포크를 쥔 채로 쇼파에 완전히 몸을 기대는 샌즈를 보면서 느낀 감상은 딱 한 줄이었다. 엑스터시나 알코올을 좀 더 섞어서 먹여볼 걸. 

 

 식탁에 놓인 제 몫을 완전히 끝낸 가스터는 조급해 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도 없었다. 이게 정말 로히프놀이 맞다면 샌즈는 앞으로 6시간 이상은 여타 실험체들처럼 꼼짝하지 못할 터였다. 그는 맞은 편에 앉아 천천히 손을 뻗어 의복이 가려줄 수 없는 부분부터 매만지기 시작했다. 21세기 첨단과학의 세상에서 그 옛날에 건틀릿을 제외하곤 아직 손을 보호할만한 어떠한 방어구도 보편화 되지 않았다. 샌즈가 지금 벌거벗고 있다면 그에게 가장 절실히 필요한 건 장갑일 것이다. 


  가스터 박사는 환자의 손가락을 향해서 슬금슬금, 세상에서 가장 위험하고 단단한 거미가 경련하는 것처럼 다가가 자신의 손가락을 얽매었다. 닿자마자 급작스러운 자극에 반응해 한 번 움찔했지만, 그 뿐이었다. 가스터는 상대의 손허리뼈를 손끝으로 집요하게 문지르며 얽힌 따뜻한 손가락뼈들을 가지고 놀았다. 손톱과 손끝, 뼈마디를 가볍게 쓸면서 힘을 주기도 하고, 힘없이 모인 손가락뼈들을 억지로 펴기도 하면서 싫증이 날 만큼 놀자, 그는 손바닥을 통해 제 손아귀를 군데군데 빠져나간 샌즈의 손허리뼈를 짓눌렀다. 평균적인 크기의 성인 남성의 손이 더 길고 세심하며, 더 잔인한 손이 주는 압력을 상대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받아 들였다. 가스터는 샌즈의 손을 강간하듯 만져대면서도 상대의 얼굴에 눈을 떼지 않았다. 샌즈는 평온했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폭탄이 떨어져도 그게 너무나 멀어, 마치 아무일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듯이. 위태로우면서도 권태로운 평화가 있었다. 샌즈는 정신적으로 가스터가 주는 자극에 무능할 뿐더러 육체적인 자극에도 무력한 상황이었다. 가스터는 이 상황이 은근히 만족스러웠다. 


 얼마나 더 높은 자극에도 반응이 없을 수 있을까. 그는 지극히 자연스럽게 샌즈의 손가락 뼈을 들어 올려 약지와 새끼 손뼈를 바로 입으로 물었다. 턱에 힘을 주진 않았지만, 이와 혀가 차가운 뼈에 닿았다. 위팔뼈가 크게 움찔했다. 가스터 박사는 새끼 손가락의 손뼈끝에서부터 천천히 혀로 핥다가 두 손가락뼈을 입 안에 온전히 넣었다. 손가락에서는 약간 짜고, 샐러드에 올렸던 키위소스 맛이 낫다. 샌즈의 까끌한 중지와 검지가 가스터의 뺨을 스쳤다. 그는 아주 천천히 혀로 입 안에 들어온 손가락뼈을 굴렸다. 혀 만을 통해 잘 만든 음식의 감촉을 느끼듯이, 가스터는 눈을 감고 있었다. 그는 충동적으로 이로 제 마음껏 씹어버리고 싶은 느낌을 받았다. 혀로 굴린 것들에 저작운동을 하는 게 버릇이 된 것 뿐만이 아니라, 실제로 난폭하고도 흉포한 성정을 마음껏 드러내 있는 힘껏 입 안에서 씹어서는, 뼈가 부서지는 소리와 배어 나오는 짜고도 쓴 피 맛을 보다가, 와인 한잔과 함께 뱃속에 넣어서는 자신의 몸을 구성하는 요소가 되기를 원했다.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자극에 샌즈가 깨어나 아연한 눈으로, 바닥까지 흘러넘치는 피를 보며, 사라진 제 두 손가락뼈를 찾아 헤매며 혼란과 고통에 빠진 모습을 두 눈으로 감상하고 싶었다. 그러지 말아야 할 이유가 뭔가. 가스터는 그의 손가락뼈 뿐만 아니라 손목뼈를 없애고도 그를 이해시킬 변명을 만들어낼 자신이 있었다. 가스터는 입 안에서 손가락을 빼냈다. 젖은 손가락뼈은 나머지 손가락뼈보다 이상하게 작고 가늘어 보였다. 가스터는 제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어 두 손가락을 꽤 꼼꼼하게 닦았다. 손수건을 두 번 접을 무렵엔 갑작스레 날뛰던 광기와 잔인함은 잘 갈무리되어 그 흔적은 단지 샌즈가 마신 물잔에 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로히프놀(Rohypnol) 

*흔히 데이트 강간약물로 불리며 의식을 잃고 기억상실의 효과가 있음


 

 

 

예전에 써놓은 야설을 조금 수정해서 올린다. 

딱히 야설은 아니고 은꼴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