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이 지났다. 슬슬 주먹만 한 호박이 담장을 따라 늘어져서는 새근덕거리며 하루하루 몸을 불려가야 하건만 어째, 조용하다.
쩌르렁한 햇빛에도 쓰던 밀짚모다 저 어디 구석에 던져 놓고는 나름 차려입은 모습이 어색하지는 않은지 거울 앞에서 잠시 살피다가. 조촐한 가방 하나를 섬돌 위에 올려놓고는, 잠시 큰 눈망울 어미소와, 벌써 제 어미 반만 한 새끼소의 머리를 쓸어주며 뭐라 또 중얼거리다가. 이제는 됐다는 듯이 다시 돌아가 가방을 손에 쥔다.
“필수야.”
이름을 두어번 재차 불러도, 무얼 하는 지. 소리도 들리지 않지만 이러다 버스를 놓칠 수도 없는 일이기에 어깨를 한 번 으쓱해 보이고는 마당을 나선다. 제가 찔리는 마음에 괜히 보름이란 시간을 들여, 새벽같이 일어나 일이란 일은 도맡아 하면서, 나름대로 어르고 달래 이젠 괜찮아 졌다고 생각했건만. 저 속은 별로 그렇지도 않은듯하나 이제는 어쩔 수 없다. 기름칠도 하고, 페인트칠도 새로 해서 이제는 깨끗해진 대문을 나서서. 뒷산 쪽을 바라보며 꾸벅 인사하고는 두어 걸음 나선다.
“성! 잘.. 다녀오소.”
그제서야 대문 밖을 나서는 맺힌 목소리엔, 뒤돌아 웃으며 마주.
“그래, 잘 다녀올게.”
어느 대목이 거짓말이 될 줄 모르는 인사를 보내준다.
아직 일만 잔뜩 남은 논두렁을 둘러, 여유 있고 넉넉하게 정류장에 들어서니,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이가.
“아저씨.”
“아.. 숙구야.”
기다린다. 분명히 평일이고, 어린 아이들은 학교에 있을 시간인데 얇은 눈이 더욱 얇아진 이 아이. 인사할 수도 없이 그저 우뚝 서 있는 아저씨에게 조심스럽게 묻는다.
“아저씨.. 서울 가시는 거 맞죠?”
“어, 그래.”
동리에도 몇 사람에게만 조용히 일러둔 일. 그 리혜 씨가 약속을 어겼을 리는 없으니, 영민한 이 아이가 숨과 졸음을 참아가며 엿들었거나 아니면 그 비상하게 돌아가는 눈치로 알아냈을 것이라고 짐작할 밖에 없었다.
“언제 올 거에요?”
“글쎄, 나도 잘 모르겠어.”
“....그냥 안 가면 안돼요?”
“미안, 이미 다 이야기가 되어 있어서...”
아이의 악의 없는 질문은, 깨끗하기에 더욱 난감하였다. 한 번 질문이 오갈 때마다 묘하게 굳어가는 얼굴을 마주대하는 지금은, 아이가 받을 상처까지 결국은 헤아리고야 마는 어른에게 너무 버거웠다.
“왜 다 서울로 간다고 그래요!”
“...”
결국은 제 분을 못 이겨 소리를 지르고야 마는 앞에, 아저씨는 죄인처럼 말이 없다.
“귀동이도 그렇고, 대동이 오빠도 그렇고.. 다 왜... 거기 좋을 것 하나 없는데!”
“...”
“다 들었어요. 서리 때문에 그렇죠? 그 서리 때문에.. 그래도 이제 다시 그런 일은 없잖아요. 기상청에도 막 전화해서 물어보고 했는데...”
“아니, 서리의 잘못만은 아냐.”
“네?”
어린애한테는 이 정도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지금은 어른이 남겨놓고 간 수수께끼를 어떻게 받아들이던지, 언젠가 저도 마찬가지로 이곳을 떠날 아이는 이해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피식. 그냥 웃어 보인다, 습관대로. 더 이상 분을 풀 데도 없는 아이는 결국 입을 닫고, 다른 문을 열었다.
버스가 정시에 도착했다. 덜커덕- 낡은 소리를 내며 그를 맞는다. 우는 아이의 어깨를 토닥여 주며, 그래도 인사 한 번 없이 떠나는 것과 지금의 상황. 그 경중을 수 십 번 비겨 보며, 가방을 앞세워서 그 위로 한 계단씩 천천히 오른다. 그 때, 주머니에 뭔가 바스락한 것이 갑자기 들어온다.
“서울 가서, 내 생각하면서 읽어 줘요.”
“그래.”
“얼른 갔다가 다시 와요.”
“그래.”
멀고 먼 서울 가는 길, 버릴 수는 없지만 읽지 않을 편지를 품은 채로, 이제는 차창 너머. 손을 흔든다, 손을 마주 흔든다. 영원히 그들의 이별을 기다릴 수 없는 버스는 읍내를 향하고 저 멀리 보이는 뒷산. 손 흔들어 날 보내주고 있을까, 생각하다 고개를 돌린다. 참 뻔뻔스럽기도 하다. 이젠 떠난 마을, 짓무른 모든 문제는 사실 서리의 탓은 아니었다.
[完]
* 지금까지 읽어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허뮈...더안쓸거야?ㅠ - dc App
4편에 같이 올라갈 줄 알았는데 길이 제한 때문에 못 올렸어..
결국 모두가 떠나네. 씁쓸하다 그동안 잘봤고 연재해줘서 고마웠어
프리스크가 의지를 가지고 시간을 달려서.. 내일의 날씨를 미리 예측하고!! 풍년을 맞는.. 그런 결말이길... 원했으나.. 그없 광광
수고했어!!
사실 세상에는 시간을 되돌려도 막을 수 없는 일들이 있지.. 다들 재미있게 읽어줘서 고마워~
이야기 마무리가 여운이 깊다 작별하는 모습이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서 이전편 다시 읽으면서 곰곰히 생각해보는데도 결국 이렇게 끝맺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