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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두 사람의 테이블. 남자와 또 한 남자, 카드는 그들을 여기로 이끌었다.

아예 마주 앉자 보이나 보이지 않는 조용한 사내. 흔한 초보들과 달리 조용하게 별 말이 없다만 침묵이 되려 자신을 특별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한숨과 휘파람이 섞인 가벼운 소리가 어두운 테이블을 감싼다.

, 이제 본 게임인가?”

가볍게 던진 한 마디가 어느 때보다 무겁게 여겨지는 순간. 이미 행운이라 하는 절대로 믿을 수 없는 것이 얇게 갈라진 두개골 사이, 두 눈동자, 그리고 하얀 손가락에 끈적끈적하게 달라붙어 더 이상 어떤 무게의 도움도 필요치 않는 남자. 왠지 그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아 서둘러 자신의 계산을 입 밖으로 이끌어 내보였다.

이봐, 게임을 바꾸자.”

?”

어차피 일대 일이잖아. 괜히 시간 낭비할 필요 있겠어?”

“...전 상관없습니다만.”

뭘로 바꾸려고?”

파이브 카드 드로우.”

미친 XX."

그런 소리 들어 마땅하다는 것은, 남자 스스로도 잘 아는 일이었다. 확률이 아닌 운에 기대는 게임. 어쭙잖은 호구를 벗겨먹을 때라면 확률에 기대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다만 왠지 모르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계산이, 아니 직감에 가까운 무언가가 남자의 입을 움직인다. 어차피 운명에 말리어서 여기까지 떠밀리어 온 이.

조금만 더 운에 기대 보는 게 만용일까-?

남자는 묻는다.

어때, 신사씨? 해 볼래? 아니면 도망갈래?”

“... 알겠습니다. 받아들이죠.”

주저하던 이의 낮은 목소리가 짧은 기다림 끝에 긍정을 표하는 순간, 남자는 이제 됐다 싶으면서도. 눈 한편에 딜러의 눈 사이에 접히는 짜증이 읽힌다.

누구 귀찮아지라고, XX. 운빨 텄다고 정신도 놨구나?"

, 그럴지도.”

원래 입이 험한 딜러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다시 카드를 섞는 손길에 속도를 붙인다. 남자에겐 저 카드 사이에 은근한 기대감이 섞여 보인다. 큰 판, 방관자의 큰 즐거움, 뒤통수 너머 새로 시작하는 내기 소리, 허나 이제는. 온전한 두 사람만의 테이블. 보이지 않는 귀를 막는다. 남자에게 세 장, 사내에게 세 장. 다음으로는 각자 두 장씩. 양쪽으로 카드는 갈라져 날아들었다.

손에 모인 두 장의 9, 스페이드 Q, 다이아 3, 하트 6.

원 페어이기는 하나 영 심심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조합. 허나 남자는 그 고민은 카드를 갈아치운 다음으로 맡겨두기로 하고는 은근히 눈을 들어 앞을 바라본다. 진짜 문제는 이쪽, 열심히 훑어 내리는 보람도 없는 돌 같은 저 사내. 우울은 마음을 가린 베일, 그의 변함없음이 만일 전략이라면.

XX보다 무서운 XX는 없겠지-.

생각만으로, 남자는 척추를 타고 오르는 한기를 경험한다. 인생을 내던지는 여기서는, 마음을 주무르는 능력이 곧 실력이었으니. 다만, 처음에 우연히 마주한 그의 눈빛이, 어슴푸레한 잔상이 머리 한 구석에 남아 어디선가 묘한 안도감으로 들어앉는 것은. 변덕스러운 행운의 선물일지, 벼랑 위의 걸음이 준 선물일지. 남자는 굳이 구별하려 하지 않았다. 작고 연약한 뼈다귀의 삶 속에서 끊임없이 되풀이되어 온 공식대로. 억지로 시작하였더라도 살아남기 위해서는 최선을 다해야만 하기에, 감히 불만 같은 사치를 가질 수 없었다. 지금은 이기기 위해, 살아 이 지하 중의 밑바닥을 나가기 위해.

어떻게 할래?”

단 몇 초의 복기만으로도 실체를 드러낸 사내의 패턴은. 정말로 단순한 것이었다. 처음에 숫자를 크게 부른 뒤 다음부터는 첫 베팅에 응한 이들이 떨어져 나가긴 어려우면서도 마음엔 부담을 느낄 밖에 없는 아주 미묘한 금액을 높여서, 망설이다 따라가게 만든다.

XX 체급 차가 이렇게 나니-.

허나, 적어도 저 자에게 감당해야 할 위험은 별 것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니 기회 좋을 때 선수를 칠 수 밖에.

, 300G부터 시작할까?"

스스로도 불러보게 될 줄 모른 숫자. 남자는 단어 그대로의 도박의 냄새가 진한 돈을 테이블에 쌓아 놓았다. 묵직한 제 부피에 발이 걸려 흩어진 동전을, 순전한 의무감만으로 정리하는 딜러의 욕지거리 사이. 중년의 남자는 짧은 고민 끝에 100G을 올려 불렀다. 말끝에 묻은 작은 망설임. 눈이 날카로운 뼈다귀는 흔들림을 느낀다.

역시, 이쪽에서 공격적으로 나오니까 당황한 건가-?

받고 300 .”

확신이 없는 남자. 약간의 미친 짓을 더하여, 그 진폭을 따라간다. 이에 답하듯 사내도 똑같은 금액과 똑같은 흔들림으로 다가왔다. 낡은 시계추의 움직임과 같은 일정한 패턴, 남자의 눈에 윤곽이 잡혔다. 초장에 높은 숫자로 압박한 뒤 조금씩 올려가며 따라오게 만든 뒤, 상대가 부담을 느껴 포기하게 하는 어중간한 사내의 베팅. 확실한 우위에 기대어 판돈을 키우는 데에는 효과적이지만, 그 다음이 없다.

이렇게 생각이 짧은 성격은 아닌 것 같은데-.

탐색은 여기까지. 진의를 캐보는 것은 카드를 바꾼 뒤라도 충분하다는 생각에 남자는 달리기를 멈췄고 음울한 사내 또한 약간의 머뭇거림은 있었으나 그대로. 귀찮음을 숨기지 않는 딜러의 물음에, 남자는 36, 사내는 6A를 버려 세상에 내어 놓았고, 빠른 손에서 날아든 새로운 카드를 받아들었다.

, 이번에도-.

남자의 손에 안긴 것은 또 한 장의 Q, 그리고 이제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하나. 다섯 장 게임에서 투 페어, 상황이 좋아졌다는 판단에 남자는 조금 더 과감하게 주머니에 손을 뻗었다. 전례 없는 과감함의 배경에는 그의 손가락 아래, 다섯 장의 카드와 남자의 빈 머릿속을 둘둘 감아 채운 아주 얇은 확신, 또는 직감이라 부르는 것이 있었다.

“500G, 레이즈.”

다만, 벌써 이런 숫자에 익숙해졌다는 서늘한 자각. 허나 남자는 움츠러들지 않았다. 이미 담이 작아진다면 고꾸라질 고지 위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저 주름 깊은 사내도, 같은 고지에 서 있을지. 남자는 의문일 뿐이었다.

보기 드물게 몇 번 작게. 입술을 달싹거리던 사내는 레이즈하지 않았다. 사내를 내려다보는 남자의 직감이 묻는다. 더 몰아붙일지, 아니면 다음 판과 혹시 모를 실패를 대비하여 여유를 둘지. 찰나의 언쟁 끝에 고작 투 페어에 충분히 과했다는 사실을 순순히 인정하며, 남자는 손을 거두고 먼저 카드를 뒤집어 내보였다.

“Q, 9 투 페어야, 어때 그쪽은?”

이어 짧은 쉼표 뒤에 얼굴 깊은 사내도, 제 것을 풀어내려 놓았다.

“6 원페어.”

, 겨우 그거야? ?”

알록달록한 색깔과 숫자, 겨우 서로 몸이 맞은 한 쌍. 그러나 예사로이 그것을 훑던 두 눈을 잡아끄는 묘한 위화감이 숨겨져 있어 남자는 얼빠진 소리를 내뱉고 말았다. 사내의 손앞에 늘어져 있는, 스페이드 6, 다이아몬드 A, 하트 6, 스페이드 7, 클로버 8. 앞의 셋은 분명히 처음 손에 쥐고 있던 것. 그리고 끝의 둘은, 교환한 것. 두 사람만이 아는 진실에 허탈한 한숨이 잇새로 터져 나간다. 남자는 그 위에 얹어 속삭이는 소리로 믿을 수 없는 사내를 겨눈다.

, 왜 풀 하우스를 깬 거야.”

그때 처음으로 남자는 사내의 표정을 만났다.

웃음이다. 미소와 조소, 그 사이 어딘가에 깊게 못 박힌.

당신 몫의 행운을 가져가시죠.”

원했던 대답대신 삐걱이는 목각인형의 말이 들리고, 경악과 의혹에 뒤덮인 어두운 두개골 속에서 남자는 답을 찾으려 헤맨다. 일부러 판을 키워놓고는, 좋은 패를 나쁜 패로 바꾼다. 그저 그런 패를 들고서도 과감하게 올인을 외친다. 어느 하나 남자의 생각, 승리를 향해 나아가려 하는 나침반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잠깐만-.

사내의 기행을 이해할 수 있는 한 가지 가능성에 남자의 생각이 미치고 아주 잠시 동안, 그의 모든 것이 멈췄다가 이윽고 단단한 모든 것이 부딪히는 달그닥거림으로 마주 웃었다.

헤헤.. 이봐, 어디서 저주라도 받았어? 아니면 이걸 핑계 삼아 날 어떻게 해 보려고?”

일그러진 두 눈동자 가득한 이글거림과 살랑거리는 목소리. 그 온도차 가운데에서 사내는 답을 목구멍 아래에 밀어 가둔 채.

대답해 봐, 신사 나부랭이.”

주변의 웅성거림이 아닌 오직 한 존재에게만 내보이는 적의, 그 눈을 마주 들여다보지 못하는 사내. 머뭇거림이 그를 한 없이 작아 보이게 만드는 것은 착각일까. 영원같은 한 순간 듬을 들인 사내는, 결국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나쁜 의도는 절대 아닙니다.”

겨우 그런 말로 나더러 어떻게 납득하라는 거지? 이대로라면 더는 못 어울려 줘.”

“... 조금만 더.. 마지막 판에 가르쳐 드리죠. 충분히 납득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그래? 마치 나를 붙잡아 두고 싶다는 것처럼 들리는데? , 손해 보는 일은 아니니까. 일단은 넘어가지.”

사철 하얀 얼굴의 남자, 입 꼬리를 조금 더 높이 들어 보이며 안광을 지웠다. 딜러가 의아한 표정으로 둘을 번갈아 바라보다 혀를 차며 죽은 카드들을 갈무리해 둔 뒤 적어도 계속할 거냐는 질문이 필요 없다는 정도는 이해했는지, 말없이 카드를 가른다. 그 둥근 물음표가 마음에 들어 더욱, 보람찬 대화였다고 남자는 자평하며 남은 족보를 헤아린다.

다시 다섯 장. 믿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