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스크 패러블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7.5  18  19  20  21  특별편  22  23  24  25  26  27 27.5  28  29  30  31  32  33  34  35  36  37  38  39  40  41  42  43  44  45  46  47  48  49 ]




 해골에게 사랑을 품기 시작한 그녀가 프리스크인지, 차라인지는 정말 모를 일이었다. 두 사람 모두 샌즈에게 빚진 것이 많았다. 프리스크와 차라 둘 모두에게 샌즈는 구원자나 다름 없었다. 프리스크의 목숨을 몇 번이나 살려준 것이 샌즈였고, 차라의 마음을 이해해준 것이 샌즈였다. 결국 둘 다 좋아할 만한 이유가 있다는 건데, 그 행동이 정확히 누구의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아니면, 프리스크가 말한 대로(이미 이전에 샌즈가 말했던 것이지만) 둘 중 누구인지 별 상관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몇 번의 고성과 시시콜콜한 농담이 지나간 뒤, 파피루스는 퍼즐을 손보기 위함이라며 다시 되돌아갔다. 이때 프리스크는 당연히 샌즈가 파피루스와 같이 갈 것이라고 생각했으므로, 가만히 있었다. 하지만, 샌즈는 파피루스를 따라가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이건 프리스크의 계산 밖이었다. 당연히 자기 동생과 같이 갈 줄 알고 돌발 행동을 한 것이었는데, 그 자리에 그저 가만히 서서 있을 뿐이었다. 민망함 때문에 프리스크는 나올 수가 없었다.


 "나와, 꼬마야."


 샌즈가 부르고 나서야 프리스크는 꼼지락대며 등불에서 나왔다. 여전히 당황스러운 표정이었다. 


 "후우, 그런 식으로 반응할 거면 애초에 왜 그런 거야? 도대체 그 샌즈는……. 아니, 말을 말아야겠군."


 샌즈는 확실히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에 대한 고찰을 마친 상태였다. 아이의 말이 모두 사실이라는 가정 하에, '그 샌즈'의 행동은 어린 아이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했다. 그렇다면 지금 자신에 대해서 그 애정을 표현할 수 있으리라고 결론 내렸고, 샌즈에겐 그저 그 뿐이었다. 인간에게 필요 이상의 애정을 보여줄 생각이 없었으므로, 샌즈는 당황하는 모습을 보여주거나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부정적인 반응도 내보이고 싶지 않았으므로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기 위해 노력했다. 예를 들어, 뼈 위에 인간의 살이 맞붙은 감촉은 그렇게 유쾌한 감촉은 아니었으므로 왼뺨, 정확히는 턱뼈 부분을 뭐로든 닦아내고 싶었으나 참고 있었다. 그런 행동 자체가 아이에겐 실례일 수 있었다.

 여러 계산이 머리 속에서 이루어지는 건 프리스크도 마찬가지였다. 프리스크와 차라가 서로 대화하는 내용은 '이제부터 어떻게 할까'에 대한 것이었으나, 둘 다 난생 처음 해보는 '뽀뽀'에 흥분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정확하게 말하자면 앞으로의 행동에 대한 논쟁은, 이 지하 세계를 위해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가 아닌, 샌즈와 어떻게 해볼까에 대한 것이었다. 지하 세계를 구하겠다는 고명한 목표는 잠시 잊었다. 하지만, 그 둘을 탓할 순 없었다. 애초에 위대한 사명 같은 걸 어깨에 지고 살 수 있는 나이의 인간이 아니었다. 그녀들에게도 쉴 명분이 필요했고, 그것이 멋지고 신사다운 샌즈일 뿐이었다.

 그러나 샌즈는 그런 장단에 어울려줄 정도로 프리스크와 신뢰를 쌓지 못 했고, 그렇기에 거부 의사를 표하려고 했다. 샌즈의 탓은 아니었다. 플라위의 장난에 이미 오랫동안 놀아난 상태였으므로 의지의 힘을 가진 인간을 믿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꼬마야. 너가 그런 생각을 가지는 것도 이해할 수 있어.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 샌즈와 나는 달라. 왜냐 하면……."

 "아니야!"


 샌즈가 여러 근거를 들어 자신과 이전 샌즈의 차이를 언급하려고 했으나, 갑작스런 프리스크의 외침에 말이 끊겼다. 샌즈는 짐짓 무심한 표정을 짓고 프리스크를 쳐다 봤다. 속으로는 예상하지 못 한 반응에 살짝 놀라고 있었다.


 "만약, 샌즈가, 날 구해준 샌즈랑 다르다면……, 그 샌즈는 정말 죽은 거잖아."


 샌즈는 프리스크의 대답을 듣고 잠깐 표정이 흐트러졌다. 프리스크는 다시 울상이 되었다. 프리스크는 울먹거리는 목소리를 감추면서, 말을 이어갔다.


 "그러니까 그런 말은 하지 마. 응? 샌즈가 살아 돌아온 거야. 죽은 게 아니야. 내 앞에 이렇게 서서 나랑 얘기하고 있잖아."


 샌즈는 프리스크의 눈을 보았다. 입 모양과 혀의 움직임을 보았다. 눈물을 삼키는 행동 거지 하나하나를 살펴보았고, 프리스크의 고사리 같은 손을 보았다. 너를 대하는 눈빛과 말투, 그 단어 하나 하나를 곱씹어 보았다. 추운 스노우딘의 눈밭 위에서, 작은 인간 아이가 자신에게 애원하고 있었다. 샌즈는 시선을 이리 저리 돌려가며 고민했다. 후드 주머니 속에서 꼼지락대는 손가락 뼈를 멈추려 노력했다. 이내, 다시 아이의 간절한 눈빛을 보았다. 그 안에서 거짓을 찾을 수가 없다. 샌즈는 눈을 감고 잠깐 동안 고민하다가, 결론을 내렸다.


 "그래, 친구야. 알았어. 앞으로 계속 가. 파피루스랑 놀아줬으면 하거든."

 프리스크는 환하게 웃었다. 그녀도 느꼈다. 샌즈의 보이지 않는 그 눈빛을 보았고, 그녀만이 눈치챌 수 있는 안도의 한숨을 느꼈으며, 이전의 샌즈가 했던 목소리 톤과 몸짓을 투영했다. 이제 그녀에겐 샌즈가 제대로 보였다. 프리스크는 고개를 끄덕였고, 샌즈는 더 이상 말을 붙이지 않았다. 대충 무슨 일이 있을 지는 그녀도 알고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긴장을 늦추지 않았고, 그녀가 눈치채지 못 하게 뒤를 밟기 시작했다. 물론, 눈치채지 못 하게 뒤를 밟겠지만, 모르진 않으리라고 샌즈는 생각했다.

 그러면서 샌즈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토록 찾던 희망이, 정말로 나타난 것 같다고.

 진심이란 게 있다면, 웬만해선 그게 통하기 마련임을 샌즈가 직접 보여주고 있었다.

 

  *


 그 뒤에 일어난 일은 모두가 알고 있는 일이리라. 다를 바가 없었다. 파피루스와 경비대들, 그냥 그들과의 이야기였다. 전투는 쉬웠고, 퍼즐도 쉬웠다. 프리스크에겐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파피루스의 호들갑은 이미 질리게 들었으므로, 오히려 웃으면서 화답할 수 있었다. 그 점이 파피루스의 마음을 흔드는 부분이었다. 마침내 스노우딘 마을에 도착했을 땐, 프리스크는 마치 고향에 돌아온 듯한 느낌을 받았다. 프리스크가 가장 먼저 찾아가는 곳은 당연히, 뼈다귀 형제의 집이었다.

 거침없이 뼈다귀 형제의 집의 문을 열었다.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아무도 없는 건 아니리라고 생각했다. 프리스크는 자기 집인 것마냥 2층으로 올라갔고, 불이 이글이글 타오르는 듯한 효과를 내뿜는 방문을 두드렸다. 이내, 불길은 사라지고 문이 천천히 열렸다. 역시, 샌즈였다.


 "……, 들어와, 꼬마야. 얘기할 게 많아."


 프리스크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방 안으로 들어갔다. 웃으면서였다. 물론, 이야기하는 마냥 좋은 게 아니라, 그냥 샌즈랑 단 둘이 한 방 안에 있는 게 좋아서.

 샌즈는 옆에서 정신없이 휘몰아치는 '자가 유지 소용돌이'를 무너뜨렸다. 쓰레기들이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프리스크는 신경 쓰지 않았고, 샌즈는 더욱 신경 쓰지 않았다. 샌즈는 프리스크가 들어오고 나서 방문을 잠구고 문에 기대어 앉았다. 프리스크도 어떻게 할지 잠시 고민하다가, 그냥 바닥에 앉았다. 잠깐의 침묵이 둘 사이에 흘렀다. 그러다가 샌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몇 가지 물어볼게, 꼬마야."

 "응."

 "그 샌즈, 아니, 너가 알고 있는 나는, 도대체 뭘 떠보고 싶었다는 거지?"

 "응?"

 "홀에서 말이야."


 샌즈가 말한 건, 아스고어를 만나기 전에 나타났던 샌즈에 대해서였다. 샌즈는 확실히 '떠보기 위해' 나타났다고 했고, 그리고 차라가 한 번 죽고 난 뒤에 다시 나타나자, 그제서야 샌즈는 이야기를 제대로 했었다.


 "그 표현이 난 이해가 안 되거든. 그 상황에서 뭘 책임질 수 없다고 한 거고, 뭘 떠보고 싶었다는 거지?"

 "음……, 그걸 나한테 물어봐도……."


 확실히 알았으면 샌즈 자신이 알아채지, 프리스크가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프리스크가 추측하기로는, 차라를 의심하고 경계하다가, 한 번 죽고 난 뒤 나타난 차라의 표정을 보고 나서야 더 이상 경계하지 않은 거라고 생각했다. 프리스크는 그런 자신의 생각을 샌즈에게 말해주었다. 직접 그 상황에 빠져보지 않은 샌즈로서는 완전히 이해하긴 힘들었다. 나라면 그런 선택을 했겠지, 라는 확신 따위는 없었다. 샌즈는 모든 것에 대한 기대를 져버렸듯이, 자기 자신에 대한 기대도 져버린 지 오래였다. 그렇기에 또다른 자신의 행동까지 그 이유를 스스로 찾아낼 순 없었다.

 샌즈는 프리스크의 설명을 듣고 어느 정도 납득했다. 나라면 그렇게 행동할 수도 있겠다, 정도로는 이해했다.


 "그리고 내가 죽였다는 그 꽃 말이야……."

 "응."

 "그 녀석은 누가 봐도 악당이잖아. 그치?"


 차라와 아스리엘의 관계에 대해서는 샌즈도 이미 프리스크에게 들은 바가 있었다. 그걸 염두에 두고 한 질문이었다.


 "……, 응. 그렇지."

 "그렇다면 내가 너 주변에서 그 꽃을 발견하면, 망설임 없이 죽여도 상관 없는 거겠지?"

 "그건 안 돼."


 샌즈는 눈동자를 한 번 굴리면서 후드 주머니에 손을 꽂았다.


 "헤헤, 그거 꽤 이상한 농담이란 거, 알고 있어?"

 "난 모두를 구할 거니까."

 "도대체 무슨 자신감인지 모르겠는 걸."

 "방법을 찾아낼 거야."


 샌즈도 아예 가능성을 배제하는 건 아니엇다. 의지의 힘은 정말 가능성이 무한하다고 봐도 무방했으므로, 결계를 부수는 데에 용이하게 사용될 수 있었다. 그 방법을 찾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긴 했지만, 말이 안 되는 소린 아니었다. 하지만, 이 꼬마가 그런 차원에서 고려하고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의지를 활용해서 무언가를 더 얻어내겠다는 것 같았고, 그 방식은 샌즈가 봤을 땐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저번에도 얘가 이런 식으로 나왔다면, 나는 도대체 얘를 어떻게 믿어준 거지……?'


 샌즈는 그렇게 속으로 생각했고, 프리스크는 그 속을 알 리가 없었다.

 프리스크는 오히려 샌즈가 완전히 헌신적으로 나오는 것보단 이게 더 좋다고 생각했다. 감싸주다 못 해 대신 목숨을 바치는 행위까진 절대 하지 않을 것 같았다. 두 번 다시 겪고 싶은 일은 아니었으므로,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프리스크는 그저 웃으면서 샌즈가 고민하는 모습을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 샌즈는 그 시선이 부담스러워서 식은땀이 날 것 같았다. 샌즈는 다른 질문 거리를 생각해냈다.


 "너가 폐허에서 나오기 전에, 그 꽃을 만났다면서. 그 꽃이 무슨 계획을 꾸미고 있는 건진 알고 있어?"

 "응? 나도 몰라. 그냥……, 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샌즈가 느끼기엔 그 꽃은 보통 위협 요소가 아니었다. 여차 하면 여섯 영혼을 뺏어가려고 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굉장히 신경이 쓰였는데, 특히 샌즈가 알고 있는 지식 중 하나가 뇌리를 스쳤다. 샌즈가 생각해낸 그 상황이 벌어진다면, 아예 돌이킬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부러 프리스크에겐 말하지 않았다. 딱히 말해봤자 좋을 건 없어 보였다. 이 아이의 모험이 계속된다고 가정하면, 플라위가 만약 저지를 수 있는 그 상황은 무조건 벌어지게 되어 있었고, 그것에 대해 괜히 떠들어봤자 좋을 게 없다고 생각했다. 아직은 말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와중에, 프리스크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나는 나도, 괴물들도 구할 수 있는 가장 최고의 상황을 찾아낼 거야."


 프리스크는 그렇게 말하면서 살짝 묘한 표정을 지었는데, 딱히 기뻐 보이진 않았다.


 "그런데, 그 방법을 아직도 모르겠어. 그런데, 꼭 해내야 해. 나 밖에 할 수 없는 일이라서."


 프리스크는 겉으론 웃으면서 입안으로는 쓴맛을 머금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어린 아이에게선 절대로 찾아볼 수 없는 그런 표정이었다. 웃거나, 울거나, 기분 나쁘거나, 무섭거나, 징그러운 걸 보거나, 맛있는 걸 먹거나, 좋은 냄새를 맡거나, 등등 아이들은 각 상황에 따른 한 표정을 하나씩만 지을 수가 있다. 그들은 감정을 섞을 줄 모른다. 스스로을 속이는 거짓말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프리스크는 분명히 웃으면서 슬퍼하고 있었다. 샌즈는 그것을 꿰뚫어 보았다. 샌즈는 눈을 감고 조용하게 말했다.


 "꼬마야. 너 많이 지쳤구나."

 "아니, 괜찮아. 이제 그만 워터폴로 가볼게."


 프리스크는 급하게 나서려고 했고, 샌즈는 그 말을 듣고 반사적으로 문을 열어주려고 했다. 하지만, 샌즈는 이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했고. 이내 다시 문 앞에 앉았다. 문을 열어주려다 다시 앉는 샌즈의 모습을 보고 프리스크는 어리둥절해 했다. 나가게 문 좀 열어달라고 하려는데, 갑자기 샌즈가 프리스크의 옷자락을 끌어당겼고, 갑작스런 힘에 프리스크는 넘어지듯 주저앉았다.

 그렇게 프리스크와 샌즈는 그릴비네 바에 앉아 있었다.


 "응?"

 "뭐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말하라고, 꼬마."


 그릴비는 유리컵을 닦다가 느닷없이 나타난 두 손님 때문에 놀랐지만, 이내 아무 말 없이 다시 컵을 닦을 뿐이었다. 프리스크는 오랜만에 오는 그릴비네의 풍경을 잠시 둘러보다가, 웃으면서 말했다.


 "케찹!"


 프리스크는 그렇게 말하면서 샌즈의 어깨에 기댔고, 샌즈는 그런 프리스크를 별 신경 쓰지 않으면서 말할 뿐이었다.


 "그릴비, 햄버거 두 개 줘."


 그릴비가 햄버거 두 개가 내올 때까지, 그 둘은 그렇게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었다.